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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새로운 분들이 여덟 분이 늘었습니다.♡
이 글은 부처님이 하셨던 수행 방법을 알려드리는 글인데요.
부처님이 알려주는 수행 방법은 아주 간단하답니다.
그냥 현재 이 순간을 (1)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리시고 (2) 내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시고 (3) 내 마음을 비우고 버리시면 되는데요.
처음에만 좀 어렵지 오늘 본문 내용처럼 송곳이나 뽀족한 정으로 돌을 때리듯이 꾸준히 때리다 보면 마음에 것들은 떨어져 나갈 수 박에 없답니다.
(핵심: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것)
아무쪼록 부처님 가르침을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꼭 성불을 이루시길 기원드려봅니다.
본 내용이 자신과 맞지 않으시는 분들은 한동안 열어보지 않으시면 자동으로 글이 안 들어가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 ♡
[선문염송]은 부처님부터 역대 조사들이 깨닫고 증득한 내용들을 적어놓은 것들을 하나로 모아 놓은 책인데요.
다른 말로 1700 공안이라고도 하지요.
오늘 내용은 그 내용 중 121번째 이야기랍니다.
지난 내용들은
( https://cafe.daum.net/119sh )
에 모아두었는데요.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선문염송] 중에서.. (121편)
20220119
마조가 좌선을 많이 했는데, 회양 선사가 어느 날 벽돌을 들고 가서 그의 암자 앞에서 갈았다.
이를 본 마조가 묻대
"벽돌을 갈아서 무엇하십니까?"
선사가 대답 호대
"거울을 만들려 한다."
마조가 다시 묻대
"벽돌을 갈아서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선사가 대답 호대
"벽돌을 갈아서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찌 부처가 되겠는가?"
마조가 다시 묻대
"그러면 어찌하여야 되겠습니까?"
선사는
"수레에다 소를 메워 끌게 하는데 수레가 가지 않거든 소를 때려야 되겠는가? 수레를 때려야 되겠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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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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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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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마조 어록]에 나오는 수행 방법에 관한 내용인데요.
오늘 내용의 핵심은..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되겠는가? 수레를 때려야 되겠는가?"
라는 비유로 수행의 핵심을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랍니다.
오늘 내용을 단 한마디로 표현하면..
[수행을 할 때에 의식이 어디에 가 있어야 하겠는가?]
라고 묻는 내용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정답은 의식이 마음(내 쪽)에 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요.
수행의 핵심은 의식이 깨어서 현재를 알아차리는 것이고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고 마음의 것들을 비우고 버리는데 의식이 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가장 중요)
,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를 [마음]에 비유하고 (수레)는 우리들의 [몸]을 비유해서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핵심을 가르치는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때린다]는 표현은 수행정진을 이르는 말인데요.
요즘 말로 하면 [열심히 한다] [힘을 쓴다]라는 표현입니다.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르침은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몸에 해당하는 좌선에 힘을 써야 하겠는가 아니면 마음을 알아차리고 비우고 버리는데 힘을 써야 하겠는가라고 조크를 주는 거랍니다.
ㅡ
(보충 설명)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이런 분들이 아주 많은 편인데요.^^
좌선이 수행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답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좌선을 한답시고 몸만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좌선을 하든 무엇으로 수행을 하든 마음이 앉아있어야지 몸만 앉아 있어서야 되겠느냐? 하는 뜻이랍니다.
마음이 앉아 있지 않고 몸만 앉아 있는 것은 마치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뜻이지요.
누차 말씀드렸듯이 거울은 불성 자리를 뜻하는 것임으로 좌선만 해가지고는 불성자리를 증득하기란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뜻입니다.
(참고 : 좌선을 하다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거의 없음. 부처님도 샛별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고, 혜능도 금강경 구절을 듣다가 문득, 원효대사도 해골 물 마시다가 문득, 서산대사도 닭 울음소리 듣다가 문득, 경허선사도 콧구멍 없는 소 소리를 듣다가 문득 깨달았답니다.)
결론: 수행은 오로지 마음 하나만을 상대로 하는 것이랍니다. 그 외에 것들은 모두가 방편이랍니다.
♡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한문 속에 담긴 뜻. ^^)
오늘 내용 중에 [때린다]라는 단어가 나와서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왔는지 재미로 잠깐 알아보겠습니다.^^
수행(修行)이라는 단어 안에 때린다는 뜻을 가진 글자가 있는데요.
그 글자는 攵(칠: 복)라는 글자랍니다.
攵라는 글자에는 "치다" "때리다" "채찍질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뒤에 (行)가 있음으로 열심히 채찍질을 하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修) 자를 좀 더 살펴보면..
사람이 (亻) 송곳(丨)으로 뚫는 모습을 그린 뜻글자인데요.
거기다가 (攵)라는 글자를 더하면 사람이 송곳을 때리는 모양이 되지요.
수행을 할 때에는 현재 이 순간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 마음을 뾰족한 송곳이나 정으로 내 마음을 때려서 뚫어내듯이 가루를 내어 밖으로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그리고 나의 육식과 욕심을 때려서 꺾어야 한다는 뜻이랍니다.
나 자신을 때려서(攵) 꺾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 자신을 때려서(攵) 굴복 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 자신을 때려서 굴복시키는 방법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나 자신을 때려서 굴복 시키면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데 훨씬 수월하답니다.
그러면 풍성한(彡)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 수행(修行) 안에는 담겨 있답니다.
중국어 품사로 알아보는 수(修)의 해석은 (주어(亻+丨) + 동사(攵) + 목적(彡)
(사람이 송곳을 때려서 풍성한 목적을 이룬다.)
(한문은 뜻글자이기 때문에 한문 하나하나를 뜯어서 보면 말하고자 하는 그 뜻을 알 수가 있답니다. 특히 경전 같은 경우는 안으로 표현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주의할 점은 한문에 자신이 있다 해서 그냥 알고 있는 단어라 해서 쉽게 해석하고 따라 하는 것은 금물이랍니다.)
(2)
오늘 내용 중에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내용과 소가 수레를 끄는 모양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거울은 마음을 뜻하고 있지요.
흔히 불교에서는 마음(불성/성령/본성)을 거울에 비유를 많이 하는데요.
오래된 사찰에 가보면 불단 앞에 여러 가지 장식물들 중에 나무를 깎아서 만든 거울 모양의 장식물이 있답니다.
이 거울 모양의 장식물이 본성(불성/성령/마음)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마음]을 [소]로도 비유를 많이 하는데요.
대웅전 외벽에 가보면 심우도(尋牛圖)라는 [소] 그림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런 이유에서랍니다.
심우도 그림의 내용이 깨닫고 해탈을 하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거든요.
그래서 오늘 내용에도 수레가 움직이려면 [소~마음]를 때려야지 수레를 때려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는 거랍니다.
지금 우리가 같이 보고 있는 유마경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요.
유마거사가 사리불에게 이렇게 말을 하지요.
"그대가 쫓고 있는 것은 단지 그 방법일 뿐 좌선은 결코 수행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라고 한 내용이 바로 오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랍니다.
그렇다고 좌선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좌선만큼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또 없으니까요.
그러나 마음이 앉아 있어야지 몸만 앉아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랍니다.
의식이 마음(나)을 향해 있다면 좌선을 하든, 누워서 하든, 걸으면서 하든, 달리면서 하든, 대화를 하면서 하든, 밥을 먹으면서 하든, 똥을 누면서 하든 그 어떤 행동을 하면서 하든 그것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랍니다.
선방에서 수행자들이 흔히
누구는 "두 시간을 앉아(좌선) 있네.." "세 시간을 앉아 있네.." "열 시간을 앉아 있네.."
하는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단 십분을 앉아 있더라도 모든 의식이 마음(나/오온)에 가 있다면 그것이 수행을 잘 하는 것이랍니다.
간화선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단 일 분을 앉아 있더라도 모든 의식이 화두 한곳으로 꽂혀 있어야 그것이 수행을 잘 하는 거랍니다.
앞전에 이에 대해서 유마거사가 사리불에게는 했던 전체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끝내겠습니다.🙏♡
[그대가 쫓고 있는 것은 단지 그 방법일 뿐 좌선은 결코 수행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원래 몸도 마음도 삼계(三界) 가운데 그 모습이 내비치지 않도록 해야 참다운 좌선인 것입니다. 멸진정(滅盡定)<모든 마음의 활동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는 상태의 선정>에 들어 있는 그대로 행주좌와를 내 보이는 그런 좌선을 행하소서. 이미 획득한 성자로서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성품마저 지니는 그런 좌선을 행하소서. 그대 마음이 안도 아니고 바깥 사물에도 향하지 않도록 좌선을 행하소서. 그릇된 견해까지도 무시하지 않고 37조도 품 위에 모습을 나타내는 그런 좌선을 행하소서. 윤회를 부르는 번뇌마저 끊지 않고 그대로 열반에 드는 그런 좌선을 행하소서. 대덕 사리불이시여, 누구인가 이미 그러한 좌선을 행하고 있다면 세존께서는 반드시 그를 진정한 좌선인(坐禪人)이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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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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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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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페이스북 상에서 저에게 보내온 글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저와 가깝게 지내는 스님들과 같이 이 글을 보면서 이구동성으로 맞는 말이라 하면서 한숨을 지었던 내용이기도 한데요.
요양병원 현직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저에게 직접 보내온 착잡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여러분들과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
(이 분은 제가 스님인 줄 알고 부탁을 하는 글귀로 보내온 글인데요 이름은 성씨만 빼고 가리겠습니다.)
반가워요 _()_
안녕하세요 스님?
저는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배씨성)이라 합니다
이렇게 스님께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불교계에 가난한 스님들의 마지막을 사람답게 모실 요양병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 한국불교계에 아픈 스님들을 모실 요양병원하나 없는것이 말이 됍니까? 전국에 몇 개의 스님들을 모시는듯한 요양병원이 있지만 다 개인의 사업입니다
스님들을 제대로 모시는 곳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수행하시다가 미쳐 노후란 것을 발견 못한 불쌍한 스님들이 우리나라에 너무 많습니다
본인의 노후 삶을 생각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병이 찾아옵니다
재가에서는 출가하였는데 왜?란 말과 도움은 없습니다 가족이 없는 스님들도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많은 스님들은 걱정이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스님들은 병원에 갔다가 돈이 없어 약으로 버티다가 고통속에 누울 곳도 마땅치 않는 토굴이나 여인숙 같은 보잘 곳 없는 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삶을 놓아버리는 스님들도 계십니다 이 얼마나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현실 입니까
자신보다는 타인의 삶에 영적인 도움을 주다가 자신에게 오는 병마는 알지 못하고 슬프게 가는 것입니다
한 삶을 마치는 시간에 누구보다도 평온하게 가셔야 될 분들이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것 이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가족이 계신분들은 조금이나마 작은 도움은 있겠지만 아무도 없는
스님들은 말 그대로 노숙화 되어 고통속에서 가십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한국 천칠백년 불교가 어찌 이런,,,
불교계의 노령화는 일반인들 보다 더 빨리 진행 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슬픔과 고통에 빠진 병든 스님들의 노후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하려면
불교요양병원은 빨리 건립 되어야 합니다.
이젠 스님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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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현실이지만 부끄러움을 외면하거나 가리려 하면 할수록 그 부끄러움은 더 커지겠지요..🙏🏻)
♡♡♡
저는 개인적으로 이 글을 보고 또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면서 보았는데요.
스님들과도 같이 보면서 어쩌다가 우리 한국 불교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으로 마음이 먹먹하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는데요.
한 스님의 말씀이
"종단에 큰 어른 들이나 큰 스님들이 이 글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씀도 있었고,
"이러니 여러 스님들이 이런 페닉을 안 당하려고 줄 서기를 잘 해야 한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스님들도 있었는데요.
종교가 종교로서 바로 서지 않으면 그 나라 백성들의 마음이 흉흉해지듯이 같이 먹고 잠자던 도반들과 제자들조차 돌보지 못하는 종단이 무슨 중생들을 제도한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부처님 법은 해탈의 법이고 자비의 법이랍니다.
우리 부처님은 지나가는 걸인이나 바보들에게도 일체의 편견을 두지 않으시고 이 법을 전하셨는데요.
아무쪼록 우리 한국 불교가 바로 서서 부처님 가르침을 잘 따를 수 있는 그런 불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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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보자 내용
이 글은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한 부처님 내용이랍니다.♡
어려운 용어들은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을 위한 것이니 초보자분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답니다.
오늘도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내용 중 고성제(苦聖諦)를 끝내고 집성제(集聖諦)의 수행 방법인데요.
사성제의 전체 내용을 한문식으로 표현하면..
고(苦)·집(集)·멸(滅)·도(道)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네 가지의 수행 방법은 해탈로 가는 수행 순서를 말하는 내용이랍니다.
고(苦)와 집(集)은 깨어서 알아차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말씀드렸고,
멸(滅)은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말씀드렸고,
도(道)는 이 모두를 성공시킨 후 [팔정도]나 [바라밀]등을 기준으로 행하면서 후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간화선도 이 사성제를 응용해 중국인들에게 맞게 수행 방법이 개발된 것이라 말씀드렸답니다.
사성제를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1)
고통과 괴로움(즐거움도 포함) 등을 깨어서 알아차려보아라,
(2)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 원인을 알아차려보아라,
(3)
마음에 것들은 욕망의 완전한 소멸이며, 버림이고, 포기이고, 그것으로부터의 해탈이며, 초연함이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마음에서 들고 있지 말고 내려놓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4)
도(道)는 깨닫고 증득을 했으면 [팔정도]나 [바라밀] 등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가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지금은 이러한 것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마시고 열심히 나와 내 마음과 현재 이 순간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일에만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간화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화두를 열심히 깨어서 알아차려보시고요.. (고와 집)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수행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답니다.
그리고
초보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1)(2)랍니다.
(1)과(2)가 숙달된 분들은 (3)으로 들어가시면 된답니다,
(3)을 이루신 분들은 (4)는 한결 수월하게 이루어 나갈 수 있답니다.
그러나 바로 (3)과 (4)로 들어가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건데요.
그러나 (3)은 바로 해보시는 것은 의미가 있답니다.
그 이유는 과거 생에 수행을 오래도록 하셨던 분들은 가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바로 (4)를 통해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랍니다.
왜냐하면 (4)는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팔정도 등을 기준으로 오후 공부에 해당하는 것들이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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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2)를 하라는 이유는 예를 들어 비유를 하자면
마른 땅에 박힌 잡초를 뽑을 때에는 물을 주고 갈아엎어야 잡초가 잘 뽑히고 곡식을 심기가 좋은 것과 같답니다.
고(苦)의 알아차림을 통해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저도 이것을 거쳤답니다.)
그러면 한결 수월하게 멸(滅)을 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1)(2)를 거치지 않고도 (3)이 되시는 분들은 바로 (4)로 들어가십시오.
참고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고통이란 즐거움과 행복도 포함이 된답니다.
한번 즐거움을 맛보면 대부분이 또 그 즐거움을 맛보려고 다시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 안에 엄청난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밖에서만 즐거움과 행복함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지요.
부처님이 했던 방법은 이렇게 네 가지의 순서로 수행을 해나가는 방법인데요.
말만 어렵지 마음먹고 실제로 해보면 쉽답니다.
다만 방법을 모르고 하거나 하고자 하는 의욕과 성의가 없으면 정말로 힘만 들고 어렵지요.
(수행자들 중 이런 분들이 정말로 많음)
간화선도 사성제의 수행 방법을 그대로 응용한 수행 방법이랍니다.
고(苦)는 화두로 대신한 것이고,
집(集)은 의단(疑團)을 말하는 것이고,
멸(滅)은 화두 타파를 이르는 것이고,
도(道)는 도인의 길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우리들도 오늘 내용을 잘 듣고 부처님 식으로 따라 해 보겠습니다.^^
(※)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나의 몸을 포함해 마음 밖의 모든 것들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먼저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어보겠습니다.^^♡
(※)
들으실 때 각자가 본인들 마음과 연관시켜서 들어보십시오.
그러면 한결 이해하시기 좋고 어쩌면 중간에 깨달으시는 분들도 나올 수 있답니다.(진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I9V6YYR96JCtEaMZJYfcrU6eEYW3u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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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을 깨어서 알아차리란 뜻이랍니다..)
대념처경.15법념처 E4성제 2집성제
2.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 집성제
(저번 주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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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58~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시각 대상에 대한 생각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소리에 대한 생각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향기에 대한 생각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맛에 대한 생각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몸의 접촉에 대한 생각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마음의 대상에 대한 생각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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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늘 내용은 생각에 대한 내용인데요.
우리는 흔히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접하게 되면 생각을 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접했을 때 환희를 느끼면서 속으로..
"와! 맛있겠다."
하면서 생각을 하고 입에 침이 고이면서 유혹을 느끼고 즐거워하게 되지요.
그리고 거기서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마음에 자리를 잡습니다.
일단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면 그 맛의 유혹을 느끼게 되고 욕망을 일으키게 되지요..
반대로 맛이 없는 음식을 접하게 되면 욕망과 즐거움은커녕 혐오와 짜증이 일어나지요.
맛에 해당하는 입뿐만이 아니라..
눈, 귀, 코, 몸(피부), 마음 등을 통해 접하는 모든 것들이 "이것은 좋은 것," "저것은 나쁜 것" 하면서 내 마음에 고정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고정되어 있는 것들과 맞으면 좋아하고 안 맞으면 싫어 라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분별심(分別心)이라 표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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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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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행자 내용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네 분을 위해 신설된 글이랍니다. ♡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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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갈호 안에 넣겠습니다.^^)
42:09~
(내용이 길어서 두 번으로 나누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목련의 설법 (1)
★ 세존께서 다시 목련에게 이르셨다.
“그대가 유마의 문병을 다녀오지 않겠는가?”
목련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게는 저 고매하신 분을 문병할 능력이 없으니 문득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서입니다.
언젠가 제가 바이살리 시내 사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유마가 제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덕 목련이시여, 흰옷 입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할 때에는 지금 그대가 하는 것처럼 법을 설해서는 온당치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법은 반드시 여래의 가르침 그대로 설해야 합니다.
(이 내용은 반드시 부처님 방법대로 말씀대로 가르치고 배우라는 뜻이랍니다. 제 경우도 이것이 가장 빨랐답니다.)
★ 법은 중생이 아니니 중생의 티끌을 벗어난 것입니다.
(법은 중생이 아니라 본성이라는 뜻)
★ 자아가 아니니 욕망의 티끌을 벗어난 것입니다.
(법이란 나의 생각, 감정, 의지, 주관 등과 같은 나라는 관념이 아니라 모든 욕망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뜻)
★ 목숨 있는 것이 아니니 나는 일도 죽는 일도 벗어난 것입니다.
(본성(법)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니 죽는 일도 태어나는 일도 없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는 뜻 -진실-)
★ 개아(個我)도 아니니 시간적으로 앞뒤가 한정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본성(법)은 개별적으로 있는 자아가 아니니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뜻)
★ 법의 특징은 고요함에 있으니 욕망의 대상이 아니며, 상대에 의존하지 않으며, 문자로 그려낼 수 없으며, 모든 언어가 끊어진 것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온갖 생각의 물결을 여읜 것입니다.
모든 것에 두루 찼으며 허공 같습니다.
(맞는 말이랍니다. 본성(법)은 아주 고요하고 여여하답니다. 그 어떤 욕망이나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지요. 허공을 어떻게 문자로 표현할 수 있으며 우주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 색깔도 특별한 성질도 형태도 없으며 모든 움직임을 떠나 있습니다.
(허공과 같은 곳에 색깔이나 성질, 형태, 움직임 따위가 있을 수 있을까요? 그저 그 자리에 여 여히 존재하는 것인데요)
★ 내 것이라 할 것도 없고 내 것으로 취할 것도 없습니다.
(허공과 같은 곳에서 내 것이다 네 것이다 해서 취할 것이 있을까요.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내 것을 찾아다니면서 살아가고 있지요.)
★ 표상하는 것도 없고 심의(心意)라든가 인지(認知)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표상(表象) 즉 허공과 같은 것을 형상으로 보일 수 있을까요? 마음과 의지로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 맞서 상대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비교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허공과 어떻게 맞서서 상대할 수 있을까요. 비교 자체가 있을 수 없지요)
★ 필연적인 원인도 없고 연(緣)으로써 설정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허공이 왜 거기에 있는지 그 원인을 설정 지을 수 있을까요? 허공은 그냥 거기에 존재하는 건데요.)
★ 법계 가운데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법은 평등하게 존재합니다.
(허공은.. 우주는 집약(集約) 즉 한 통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평등할 수 박에 없답니다. 예전에 풍선으로 비유한 것과 같음.)
★ 그것은 원래 뒤를 쫓음이 없는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진여의 뒤를 쫓습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진실의 궁극에까지 도달합니다.
(허공은 어느 대상이나 경개를 쫓아가지 않지요 허공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을 뿐이랍니다.)
★ 여섯 가지 감각의 대상에 의지하지 않는 까닭에 부동(不動)이며 머무는 일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서 오지도 않고 어디로 가지도 않습니다.
(깨닫고서 보면 허공(본성)은 육식 즉 눈, 귀, 코, 입, 몸, 마음 등에 의지를 안 한답니다. 움직이지를 않기 때문에 오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을뿐더러 없어질 수도 생겨날 수도 없는 것이랍니다.)
~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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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예전에 본성을 풍선으로 비유해 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여러 개의 풍선이 있습니다.
이 풍선을 우리들의 몸이라고 해보지요.
풍선이 살아 있을 때나 내 풍선 네 풍선이 있을 수 있지 풍선이 터지고 나면 그 안에 있던 공기는 곧바로 밖에 있는 공기와 하나가 되지요.
그래서 안과 밖이 다르지 않다 하는 것이고 무아(無我)라 하는 것이랍니다.
허공에 앞과 뒤가 어디 있고 위아래가 어디 있고 전후좌우가 어디 있고 나라는 것이 어디 있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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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이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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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 세존이 아난과 함께 길을 가다가 한 탑묘를 만나자 세존이 절을 하셨다. 이에 아난이 "그것이 누구의 탑묘입니까?" 하니 세존께서 대답하시기를 "과거 부처님들의 탑묘이니라" 하였다. 아난이 다시 묻되 "그는 누구의 제자입니까?" 하니 "나의 제자이니라" 하였다. 이에 아난이 말호대 "의당 그러할 일입니다" 하였다.]
(선답)
누가 저에게 오늘 선문을 답해보라 하시면 [皆佛性]이라고 답을 할 것 같은데요.^^
[皆佛性] 이란 모두가 불성 자리라는 뜻입니다.
오늘 선문은 참으로 오묘하게 가르침을 주시고 계시는 내용인데요.^^
여러분들도 자세히 본문 내용을 관찰해 보지지요.^^
지금 세존의 말씀은..
탑묘의 과거는 부처이고 그 부처의 스승은 바로나 세존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쉽게 말해 부처의 스승은 부처이고 부처의 제자 또한 부처라는 뜻입니다.
탑묘의 과거는 부처이고 그 부처의 스승은 바로 나 세존이라는 뜻은 역으로 말하면 탑묘의 과거인 부처는 곧 나의 스승이라는 뜻과 같습니다.
그래서 세존은 탑묘에 절을 하신 것이고 저 또한 이번 내용의 선답을 [皆佛性]이라고 답을 한 것이랍니다.
(보충 설명)
그 자리는..
모두가 부처라 해도 되고..
모두가 공(空) 또는 무(無)라고 해도 됩니다.
누구나 깨닫고 보면 모든 것이 [공]이고 [무]이거든요..
그리고 누구나 부처이고 모두가 불성 자리를 가지고 있답니다.
그리고 누구나 죽으면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되지요. (진실)
(사실 돌아가고 말고 할 것도 없음, 왜냐하면 바로 깨어있는 자리가 그 자리이기 때문에 그러함)
그래서 오늘 부처님도 이렇게 말씀을 하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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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지요.
그러나 살아 있을 때에는 누구나 본성 자리가 우리 육신을 주관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죽기 전인 과거를 부처라 하는 거랍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해서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모두가 부처이고 제자랍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지금 탑묘의 과거는 부처이고 그 부처의 스승은 바로 나 세존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거랍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모두는 부처이고 부처의 제자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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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다음 주에도 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려 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18
[일곱 현녀가 시다림을 지나가다 현녀가 시체를 가리키면서 말하대 "시체는 여기에 있는데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하니, 다른 현녀가 "무슨 말이요?" 하니, 모든 현녀가 자세히 보고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제석이 이에 감동하여 꽃을 뿌리면서 말하대 "거룩하신 아가씨 들이여,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제가 목숨이 다하도록 공급 하겠습니다." 하니, 현녀가 "우리 집에는 네 가지 일과 일곱 가지 보물이 모두 구족 하지만 오직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뿌리 없는 나무 한 구루요. 둘째는 음지와 양지가 없는 땅 한 조각이요. 셋째는 소리쳐도 메아리 없는 산 골짜기 한 곳입니다." 하였다
이에 제석이 대답하대 "요구하는 온갖 것은 모두 나에게 있으나. 이 세 가지 물건 만은 나에게 진실로 없습니다." 하니, 현녀가 "이런 것이 없으면 어찌 남을 구제 한다 하리요." 하였다.
이에 제석이 현녀 들과 함께 부처님께 가서 이 사실을 사뢰니 부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교시가야 나의 제자들 중에 큰 아라한들도 이 이치를 알 수 없고 오직 큰 보살이라야 이 이치를 아느니라." 하였다.]
(주석)
1. (일곱 현녀) ㅡ 칠현녀경에 있는 이야기를 추린 것이니, 지시는 시체를 가리키는 것 이다.
2. (시다림) ㅡ 시체를 버리던 곳.
3. (교시가) ㅡ 제석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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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용도 참 재미난 표현으로 마음을 가리키는 내용인데요.
이번 내용에서도 마음을 뜻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잘 알아차려 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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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음 주 선문염송
뜻을 아시는 분들은 간단히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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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22편)
20220202
[영가현각 대사가 조계에 가서석장을 짚고, 병을 들고 6조를 세 바퀴 도니, 六조가 말해대 "사문은 三천 가지 위의(威儀)와 八만 가지 미세한 행을 갖추어야 되거늘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대단한 거만을 부리는가?" 하였다. 영가가 대답호대 "나고 죽는 일이 중대하고 무상은 빠릅니다" 하니, 六조가 다시 묻되 "그러면 어째서 생멸 없음을 체득하여 무상치 않는 도리를 깨닫지 않는고?" 하였다. 이에 영가가 사뢰되 "체득함에는 생멸이 없고 깨달음에는 본래 빠름이 없습니다." 하니, 六조가 말하대 "그렇다. 오른 말이다." 하니, 영가가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절을 하고는 이어 떠나려 하니, 六조가 말호대 "너무 빠르지 않은가" 하였다. 영가가 말호대 "본래부터 움직이지 않거늘 빠름이 있겠습니까?" 하니, 六조가 묻되 "움직이지 않는 줄은 아는가?" 하였다. 영가가 대답호대 "스님 스스로가 분별을 내십니다." 하니, 六조가 말호대 "그대는 생멸 없는 이치를 매우 잘 아는구나" 하였다. 영가가 말호대 "생멸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하니, 六조가 말호대 "뜻이 없으면 누가 분별을 하는고?" 하였다. 영가가 대답하대 " 분별도 뜻이 아닙니다." 하니, 六조가 말호대 "옳은 말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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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용은 좀 긴대요.
앞에 것과 같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뜻을 잘 새겨서 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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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법문 동영상
제목: 지혜로 사는 삶 _ 동효스님 [BBS 정기법회 380회]
오늘 동영상 내용도 하남시에 있는 상불사 주지로 계시는 동효 스님의 법문 내용인데요.
이분의 말씀을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S--Ci0f3Q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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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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