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성 스님, 한용운 스님과 함께 기억해야 할
또 한 명의 불교계 독립운동가 백 초 월!
│국가보훈처 선정 ‘이달의 독립운동가’(2014년 6월) 백초월 스님의 일대기
임시정부와 독립군을 위해 군자금을 모금하고 항일 비밀 결사 일심교(一心敎)를 조직하는 등, 기지와 열정으로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벌인 백초월 스님의 일대기 백초월-독립운동가 초월 스님의 불꽃같은 삶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민족사에서 나왔다. 저자 김광식(동국대 특임교수)은 불교계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백용성과 한용운을 연구하고 저술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백용성과 한용운이 독립운동으로 수감된 후 그들을 대신해 전국 불교도 독립운동본부를 이끌었던 백초월에 주목하여 연구를 계속해 왔다. 2009년 진관사에서 백초월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와 「독립신문」, 「자유신종보」, 「신대한신문」 등 독립운동 자료가 발견된 이후 연구에 박차를 가한 그는 20년 동안의 연구 성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주목할 점은 중앙학림 학인으로 서울에서 전개한 3·1운동 및 해인사 만세운동의 주역 김봉신이 백초월의 지휘하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백초월은 민족대표인 한용운과 백용성의 지휘하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듯, 초월이 만해와 용성을 대신하여 불교계 민족 운동을 총지휘하였음을 보여준다.-본문 중에서
백초월은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 독립운동사에 큰 공적을 이룬 스님이다. 20대 후반에 강백을 역임할 정도로 실력자였던 그는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불교계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저자는 사진, 옛 신문 기사, 공판 기록, 일본 첩보문서, 관련 인물의 인터뷰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해 백초월의 행적을 밝히면서 그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겉으로는 일심교(一心敎)로 포교 활동,
실제로는 독립운동 준비
│기지와 열정으로 독립운동을 이끈 백초월 스님의 치열한 삶
3·1운동으로 백용성과 한용운 등 불교계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자 백초월은 1919년 경성중앙학림 내에 한국민단본부라는 비밀 단체를 조직하고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전국 불교도 독립운동본부 격인 이 단체를 이끌면서 그는 지하 신문인 「혁신공보」를 제작해 배포하고 민단본부의 부원을 통해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일제에 투항했다. 항일 승려들을 임시정부 및 독립 부대에 보내기도 하였다. 군자금 모집과 1920년 일본의회 독립청원 활동을 이유로 일제에 체포된 백초월은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상한 몸을 추스르며 포교당에서 일심(一心) 사상을 강연했다. 저자는 이때 백초월이 이 사상을 독립운동의 이론으로 활용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즉 외면적인 포교 활동을 통해 자신의 항일 이념 및 독립운동을 숨겼다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1921년 12월, ‘일심만능’이라는 제목으로 했던 강연이다. 일제 측 비밀 문서에는 이 무렵부터 초월이 독립운동 차원에서 일심교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그래서 초월은 대담하게도 일본 불교가 주관하는 강연회에서 자신의 입론을 공개적으로 선전했던 것이다. 이는 일면으로는 자신의 독립운동을 숨기면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자리를 자신이 비장하고 있는 항일 이념을 시험하는 무대로 활용한 것이다.-본문 중에서
이처럼 백초월은 고문으로 몸이 부서지고 일제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기지를 발휘해 독립운동을 도모했다. 저자는 “백초월의 일심교 및 일심회라는 항일 비밀 결사체는 일제하 불교계 독립운동사에서 유일한 것”이며 나아가 “국내 독립운동사에서도 특별하고 희귀한 사례인 것이 분명”하다면서 백초월의 혼과 기백을 찾아 역사 속에서 그를 복권하자고 강력히 주장한다. 또한 그는 수집한 증언과 증거들을 토대로 백초월의 항일 활동이 한 개인이 아닌 전국적인 조직망을 통해 전개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불교계와 학계에 호소하고 있다.
고문으로 옥사하는 그날까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도를 갔던 큰스님
│‘불교는 인간화하기 위해 생겼으며, 행동하는 자들을 호위하는 종교’
1939년에 백초월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군용 열차에 ‘대한독립만세’라고 낙서하는 사건을 주도하여 다시 일제에 체포됐다. 이후 그는 옥살이를 하다가 1944년 6월 29일, 해방을 1년 앞두고 청주 교도소에서 끝내 순국하였다. 저자는 백초월이 일제에 맞서 그토록 열정적으로 싸웠던 근원을 그의 불교 사상에서 찾고 있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중생 구제, 즉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차원에서 일제의 국권 강탈 및 민중 탄압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중생 구제를 위해서는 지엽적인 계율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며, 불교와 승려가 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던 초월의 사상은 오늘날 불교의 현실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초월은 불교가 인간화하기 위해 생겼으며, 행동하는 자들을 호위하는 종교라고 주장하면서 불교는 현실에 토착화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 즉 초월은 지엽적인 계율에 얽매이지 말며, 중생 구제를 위해 불교와 승려가 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월은 바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대승불교의 섭중생계(攝衆生戒)를 강조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중생 구제 그것이 승려 및 계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는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고 민중을 착취 및 탄압하는 것에 결연히 맞서 싸웠던 것이다.
저자는 “일제하 독립운동사에서 옥중 순국한 독립운동가로 단재 신채호, 독립군 지도자 김동삼, 그리고 백초월 3인이 손꼽힌다”고 하면서 그중 유독 백초월의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점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독립운동 끝에 옥사하는 치열한 삶을 살았으나 무관심 속에서 잊혀 가고 있는 큰스님 백초월. 그 치열한 삶과 함께 한국 독립운동사 속에 그를 편입시키려는 저자의 헌신적인 노력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백초월-독립운동가 초월 스님의 불꽃같은 삶의 출간으로 백초월을 비롯해 세월 속에 망각돼 가는 순국선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그들의 위대한 행적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