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의 이해를 돕기 위해 팔레스틴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예수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성경을 읽는다면 성경구절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나 억지 해석과 오류를 방지할 수 있고, 의미를 더 정확하게 알게 하는 큰 유익이 있다. 타자 쳐서 올리는 내용은 에드워드 로제 지음, 박창건 옮김의 『신약성서배경사』(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이다.
유대교의 역사는 바빌론 유배 시대에서 시작된다. 그 땅의 북부에 이주했던 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에 의하여 사마리아가 멸망한 이후 몰락하였다.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7년 끝내 바빌론에 의하여 점령되었고, 예루살렘은 파괴되었으며, 민족의 지배층들은 바빌론으로 잡혀갔다. 이방 세계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바빌론에서 함께 살 수 있었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성전 의식을 거행하는 일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의 율법을 엄수하였으며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선택받았다는 것을 언제나 의식하려는 표지로써 안식일 계명과 할례의 계명을 준수하였다. 그럼으로써 바빌론의 지배가 끝난 후 조상의 땅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던 정신적이고 영적인 전제들이 마련되었다.
변화는 신바빌론 제국을 군사적 일격으로써 무너뜨린 페르샤 왕 고레스(Kyrus)의 승전의 행군과 함께 왔다. 그는 기원전 539년에 승리자로서 바빌론에 입성하여 바빌론뿐만 아니라 시리아와 팔레스틴의 지배자가 되었다. 페르샤는 자기들의 지배하에 들어온 이방 민족들에 대하여 자기들 이전에 앗시리아와 바빌론이 취했던 것과는 다른 정책을 추구하였다. 앗시리아와 바빌론은 나라들을 점령한 후 전 민족을 이주시키거나 혹은 적어도 지배층들은 유배시켰다. 그들은 또한 도처에서 그들의 의식(儀式)을 국가 종교로서 거행하였다. 페르샤는 대대적인 이주를 강요하거나, 어디에서나 단 하나의 국가 종교만을 신봉하도록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때때로 주어진 지방적 상황에 따라서 그 민족의 독자성을 지키도록 하였다. 또한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살도록 허용하였다. 페르샤는 이러한 방법으로 그러한 민족들을 자기들의 편으로 얻고자 하였다. 페르샤 정부는 직무상의 거래를 위하여 그들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 시리아와 팔레스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던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페르샤의 이러한 정책은 유대인 사회에 정부의 명백한 지지 아래 그들의 독자적인 생활을 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다. 바빌론을 점령한 직후 고레스 왕은 포고를 내려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집을 재건하고 느브갓네살이 성전에서 탈취하여 왔던(스 6:3-5) 기물들을 다시 돌려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추측컨대 유배지에서 살던 매우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허가를 이용하지 않은듯하다. 그리고 팔레스틴에 남아서 살던 유대인들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성전의 재건은 힘들고 오랜 과정을 거쳐야만 하였다.
5세기에 바빌론에서 살던 유대인들 가운데서는 예루살렘에 유대인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강한 충동이 일어났다. 대왕의 위임으로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함께 상황을 정돈하기 위하여 차례차례로 팔레스틴에 왔다. 느헤미야는 튼튼한 예루살렘 성벽을 쌓도록 하였으며, 이방 출신의 이웃 민족들과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 약속을 유대인들에게 지키게 하였다. 에스라는 그의 시민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왕의 명령 위에 율법의 효력을 두었다. 이러한 율법은 모세의 다섯 책, 즉 이스라엘의 고대 전승들이 수집되어 정돈된 오경(Pentateuch)이라는 점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유대인들이 율법에 구속받고 왕의 포고가 율법을 보중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율법은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페르샤의 국법으로서의 효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 공동체의 의식(儀式)은 페르샤 당국의 보호 아래 있게 되어서 유대인들은 간섭받지 않고 율법의 규정에 따라서 그들의 생활을 영위해 갈 수 있었다.
이러한 발전은 주변의 이웃 사람, 특히 사마리아 주민들에게 있어서 시기와 악의를 불러일으켰다. 앗시리아에 의하여 점령된 후 팔레스틴 북부에는 잔여 주민들과 혼합이 된 이방 주민들이 정주하게 되었다(왕하 17). 그들의 후손들은 야훼를 대지(大地)에 풍요와 번영을 주는 땅의 신으로 숭배하였으나 유대인들로부터는 순수한 이스라엘 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와 에스라에 의하여 다른 민족들과의 어떠한 결합도 용납되지 않도록 되었던 예루살렘 공동체는 그들을 다른 민족들과 구별하였으며 그들과는 어떠한 교역이나 거래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날카로운 구별과 고레스 대왕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강력한 특권이 부여됨으로써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 가운데서 반감이 일어났고, 이로써 북부와 남부 사이가 크게 벌어지게 되어 결국은 사마리아와 유대의 정치적인 분리를 초래하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야웨를 이스라엘의 신으로 숭배하는 한, 그들은 그들과 반목 상태에 있는 이웃 나라의 수도에 있는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회생 제물을 드리고 기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다. 그래서 이러한 정치적 알력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으로부터 독립될 수 있는 그들 자신의 성소(聖所)를 만들고자 하는 소원을 싹트게 하였다.
처음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아직 예루살렘의 제의(祭儀) 공동체에 속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인들과 더불어 모세의 다섯 책을 공통적으로 거룩한 성서로써 소유했다는 점이 그것을 설명하여 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약성서 정경의 다른 부분들, 즉 예언서와 시편은 성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서 오경이 확정된 이후, 그리고 구약성서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정경의 한계가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이전(143-144 면 참조)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분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사마리아인들이 알렉산더 대왕의 치하에서 비로소 가리짐(Garizim)에 성전을 건설하도록 재가를 받았다(Jüdische Altertümer XIII, 74-79)고 기록하고 있으나 아마도 그들의 성소의 건축은 그 이전에 이루어진 것 같다. 페르샤 제국이 몰락하기 전에 심한 동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 때 가능한 한 빨리 사마리아인들의 성지 건축을 위한 대왕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매우 자랑스럽게 모세의 율법에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들의 성산(聖山) 가리짐이 명확하게 일컬어진다는 짐을 지적하였다(신 11:29, 27:12–13).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성소를 소유하게 된 이후 유대인들과 그들 사이에는 더욱 격렬한 적대감이 지배하게 되어 끝내 전쟁의 충돌이 일어났고 기원전 128년 요하네스 히르칸(Johannes Hyrkan)의 지도하에 유대인들은 가리짐의 성전을 파괴하여 버렸다. 이 성전이 사마리아인들에 의하여 재건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리짐을 주저하지 않고 그들의 성지로서 고수하였다. 오늘날에도 소수 사마리아 공동체는 이곳에서 매년 그들이 보존해 온 옛날의 관습에 따라서 유월절 축제를 지낸다.
예수의 시대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교제하지 않았다(요 4:9).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으로 여겨졌다(눅 17:18). 사마리아인이란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람에게나 붙여지는 모욕적인 말로 사용되었다(요 8:48). 유대인 축제 순례자들이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여 예루살렘을 가려고 할 때 그들은 통과하는 도중에 훼방을 받고 적대적인 대우를 받을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눅 9:51–56). 사마리아인들은 족장들을 그들의 조상이라고 불렀으나(요 4:12) 유대인들은 이러한 주장을 타당하지 않게 여겼다. 예수는 사심 없는 이웃 사랑에 대한 예(例)로서 유대인의 행위가 아니라 한 사마리아인의 행위를 들고 있다(눅 10:30-37).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은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시공동체는 처음에는 머뭇거렸으나 (마 10:5–6). 곧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생겨난 분열을 극복하였으며 복음을 사마리아에 전파하였다(행 8:4-25). 가리짐에서 예배할 것인가 예루살렘에서 예배할 것인가 하는 옛날의 논쟁 문제 (요 4:20)는 이제 사라졌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에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요 4:24).
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셔서 잘 읽겠습니다. 팔레스틴과 유대 역사에 대해 알려 주는 내용이네요.
역사와 성경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좋은 글이네요.
팔레스틴(Palestine)은 팔레스타인으로 표기해도 되거나 더 좋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으로 굳어져 있으니까요.
상당히 공감합니다.
안그래도 팔레스타인, 페르시아 등등으로 최신 표기에 맞추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했습니다. 조금 옛날 책 그대로를 올리는 것도 괜찮을 것도 같아서요.
@코람데오 네, 원본 그대로 올리셔야지요.
신바빌론
신바빌로니아 제국 또는 바빌로니아 제2제국은 기원전 626년부터 기원전 539년까지 존재한 칼데아인의 바빌로니아 제국이다. 아모리인들이 주축이 된 고바빌로니아 제국과 달리 칼데아인들이 주축이 되었기 때문에 칼데아 제국이라고도 불린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B%B0%94%EB%B9%8C%EB%A1%9C%EB%8B%88%EC%95%84_%EC%A0%9C%EA%B5%AD
네, 좋아요. 일반 역사에서 쓰는 지명과 발음을 알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읽은 위키백과의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바빌로니아 제국의 역사와 초승달 지역의 문명에 대해서 현 이라크 지역인 수메르에 대해서 공부가 되네요.
앗시리아
아시리아(아카드어: 𒀸𒋩)는 중동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존재하던 제국이다.[1] 앗수르 또는 앗시리아라고도 한다. 기원전 2450년부터 기원전 609년까지, 다시 말해 대략 전·중기 청동기 시대에서 시작해 후기 철기 시대까지 존속했다.[2][3] 시기에 따라 크게 초기 아시리아(2500–2025 BC), 구아시리아 제국(2025–1378 BC), 중아시리아 제국(1392–934 BC), 신아시리아 제국(911–605 BC)으로 나뉜다. 주로 셈어를 사용하는 북부 메소포타미아 티그리스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라크·시리아·터키·이란에 옛 영토가 남아 있다.
본래 '아시리아'라는 단어는 티그리스강 상류 지역을 부르는 말이었으며, BC 2000년 경에 세워진 고대 도시이자 수도였던 아수르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나중에는 북부 메소포타미아 전체, 이집트, 아나톨리아까지 지배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아시리아 본토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전체(남부는 바빌로니아)에 해당하며, 니네베를 수도로 삼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8B%9C%EB%A6%AC%EC%95%84
니네베가 니느웨이지요. 요나가 생각납니다.
사마리아
사마리아, 또는 소므론 (히브리어:שומרון, 아랍어: سامريّون, 또는 ألسامرة, 그리스어: Σαμάρεια)는 전통적으로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북쪽으로는 갈릴리와 남쪽으로는 유대와 경계를 나누는, 산지가 많은 지방을 일컫는 지리적 용어이다. 역사적, 정치적, 자연적으로 다른 지방과 구분되는 지역이며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땅의 중앙부분이다.
사마리아라는 이름은 구약성경 열왕기상 16:24에서 유래한다. 구약성경의 그 기록에 따르면, 북이스라엘 왕국의 여섯 번째 왕인 오므리가 원래 그 땅의 주인인 "세멜"로부터 사마리아의 산지를 샀는데 사마리아라는 이름은 그"세멜"에서 따왔다고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B%A7%88%EB%A6%AC%EC%95%84
우리말 성경에는 가리짐을 그리심으로 표기했군요.
신명기(신) 11장
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29.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이 들어가서 차지할 땅으로 당신들을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당신들은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십시오.
29.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LORD thy God hath brought thee in unto the land whither thou goest to possess it, that thou shalt put the blessing upon mount Gerizim, and the curse upon mount Ebal.
발음의 차이가 꽤 크네요^^
@노베 공감합니다.
세속 백과사전과 코람데오님이 포스팅한 본문을 함께 보니 이해가 더 많이 돼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