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은 삶의 스승
오늘도 한 때 소나기가 내린다는 예보입니다. 장마에 접어들었지만 일부 지방에는 아직도 비 한 방울 내림이 없습니다. 하늘만 쳐다보는 농민의 가슴은 그저 타 들어갑니다. 낮에는 기온이 30℃를 훌쩍 상회하는 흐덥지근한 날씨입니다. 용마산을 넘어서 아차산을 오르고 광나루역으로 하산할 예정입니다. 용마산(龍馬山 348m)은 서울 중랑구와 광진구에 걸쳐 있으며 아차산(峨嵯山 287m)은 광진구와 구리시를 어우르고 있습니다. 주위에 있는 망우산 봉화산 용마산도 예전에는 아차산에 일부로 불리웠습니다. 사가정역 4번 출구를 오전 10시 40분 경에 위짜추 씨모우 서류바 조단스 까토나 다섯 노객이 빠져 나옵니다. 벌써 온 몸이후끈 달아오르고 땀은 머리에서 부터 퍼지기 시작입니다. 용마터널 입구에서 우측으로 면목제일교회 방향으로 올라섭니다. 양편으로 연립주택을 끼고 언덕으로 잠시 오릅니다. 사가정공원과 용마폭포공원의 중간 지점으로 용마산 들머리가 비좁게 나타납니다. 산객들은 이 코스를 잘 이용을 하지 않는 곳입니다. 땀이 비 오듯 온 몸을 휘감아 놓고 있습니다. 노약자는 외출을 삼가하라는 국가안전처의 경보가 스마트폰에 뜹니다. 가파른 바위길을 숨을 추스리며 30여분을 부지런히 오르면 바로 용마산 정상에 다달를 수 있는 코스입니다. 오늘 같은 무더위에는 가다 쉬다를 여러번 반복합니다. 갈증을 시원한 어름물로 달래 보지만 잠시 그 순간 뿐 입니다. 정오가 넘는 시각에야 용마산 정상 삼각 표시점에 올라섭니다. 아차산 너머로는 한강을 가로 지르고 있는 암사대교와 강동대교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시선을 더 상류 방향으로 끌어 당기면 팔당대교와 팔당댐도 한 폭의 그림으로 가물거리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장마비로 역시 강물은 엷은 흙색갈을 띄고 있습니다. 용마산과 아차산에서 바라보면 북쪽으로는 불암산과 수락산 북악산 인왕산이 서쪽에는 관악산, 서북 방향으로는 도봉산과 북한산, 동쪽에는 팔당댐과 예봉산과 검단산, 남쪽에는 청계산과 남한산성이 서울을 에워싸고 중심에는 남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용마산과 아차산은 낮은 산이지만 서울 시민은 물론이고 타지의 산객들도 즐겨 찾아오는 명산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용마산을 내려오며 건너편에 있는 아차산으로 서둘러 향합니다. 바로 뒤에서 내려오던 서류바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전화로 확인을 하니 친구 따라 강남으로 간다고 하지만 남들 따라 망우산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잘 나가던 제약회사 영업부장 시절에 방석집 술집 마담에 홀리듯 잠시 헤매였나 봅니다. 아차산 4보루에서 허다소(패노우)를 만났습니다. 힘에 부친다고 용마는 포기하고 광나루역에서 아차산으로 오른다고 카톡을 보낸 지기(知己)입니다. 평평한 자리에 여섯명이 둘러 앉습니다. 막걸리 참치캔 과일 떡 빵 요구르트 초코렛 오늘의 간식 메뉴입니다. 고교 동기생들에 대한 직장에서의 에피소드가 화제로 채택됩니다. K와 H 그리고 L이라는 세명의 동기들이 오늘의 화제의 주인공들입니다. 한 마디로 허당이며 허접한 친구라는 결론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동기생 모두 까마득한 먼 곳으로 떠나버린 벗들이라 다행입니다. 어쩌면 지금 저 높은 하늘에서라도 눈알을 부라리며 내려다 보고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어느 새 14시 05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전화벨 소리가 연달아 울립니다. 아뿔싸 광나루역 1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치빠흐와 대바기가 있습니다. 재빨리 발길을 옮기지만 14시 30분 까지의 약속 시간은 물 건너갔습니다. 게다가 허다소는 중간에 주저앉고 맙니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고 몸이 천근만근이라며 마이동풍입니다. 체감온도 35℃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기다리던 두 친구들의 표정은 짜증의 극치입니다. 광진교 북단 한강호텔 근처의 고깃집으로 들어갑니다. 시원한 막걸리 소주를 취향대로 각자 한 병씩을 주문합니다. 돼지갈비와 오리고기 주물럭으로 짜릿한 알콜이 식도를 흘러서 위장으로 흡수됩니다. 짜증스런 무더위에 지쳐버린 몸과 마음은 일거에 삭제되어 흔적도 없습니다. 터지는 권주가 합창소리와 웃음 꽃이 끝일 줄을 모릅니다. 산행 후에 갖는 회식(會食)은 회식이라기 보다는 주식(酒食)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시간은 가는대로 흐르지만 지기(知己)들의 넋두리와 토론의 장(場)은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곤 합니다. 그래도 못 다 한 이야기와 아쉬움은 생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거나하게 몸과 마음은 풀려 버리고 편안한 기분으로 귀가를 합니다. 잠자리에 들어가니 지난 세월 아차산에서의 추억이 새삼 흑백 필름으로 상영이 됩니다. 강남구를 떠나 현재 강변역 근처로 이사를 온 이후로는 거의 매일 아차산을 오르 내리곤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아차산을 거쳐서 약국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20여년 전부터 아차산은 노객에겐 일과의 일부분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습니다. 50대 중후반(中後半)에는 과체중(過體重)으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부정맥등 성인병의 집합체로 얼룩지기도 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C2H5OH의 노예가 되는 주객(酒客)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조제 환자에게서만 보았던 통풍(痛風)으로 두번째 손가락이 버얼겋게 붓기도 합니다. 주(酒)님을 기필코 멀리 할 것이라고 다짐도 수 없이 하곤 합니다. 어둠이 깔리는 밤이 오면 마음과는 달리 주석(酒席)으로 발길을 향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업보(業報)의 부산물(副産物)이기도 합니다. 진료한 의사의 처방약 권유를 마다합니다. 새벽 뿐 아니라 낮시간에도 하루에 두번씩 아차산을 뛰어 오르내립니다. 3개월만에 약 10kG 정도 감량으로 정상 체중을 되찾습니다. 악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피나는(?) 노력으로 알콜 차단과 식이요법으로 성인병의 홀릭에서 빠져 나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의문의 눈초리로 묻곤합니다. 왜 그렇게 갑자기 체중이 빠졌냐고, 어디 아픈 데 없느냐고 측은지심의 걱정들을 합니다. 7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로는 노년(老年)일 뿐이며 삶의 노객(老客)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산(山)은 인종(人種)도 남녀노소(男女老少)도 어느 누구도 차별(差別)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지위(地位)와 명예(名譽)와 부(富)와 빈자(貧者) 모두를 조건없이 품에 받아들입니다. 해발 300m의 낮은 산이든 히말라야 산맥처럼 하늘 아래 지붕 같은 고산준령(高山峻嶺)이든 산은 산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무한(無限)한 산(山)이 있었기에 산을 오를 수 있었으며 내려 올 수도 있었습니다. 산은 인간에게 무한한 도전과 꿈과 희망(希望)과 행복(幸福)과 또한 고통(苦痛)과 좌절(挫折)의 쓴 맛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도 폭염을 무릅쓰고 산행을 함께 한 지기(知己)들이 가장 행복한 하루였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주저 앉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포기(抛棄)할 줄 모르는 노객지기(老客知己)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歲月)일랑 미리 생각지도 말고 계산하지도 말고 잊어야겠습니다.
산(山)은 나의 인생(人生)이며 삶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인생은 산행(山行)이요, 산행(山行)은 고행(苦行,孤行,高行)이라는 것을 새삼 마음 속으로 읊조리며 잠을 뒤척여 봅니다.
2017년 7월 27일 무 무 최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