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2)
인간의 위대한 업적은 장엄한 자연의 힘에 필적한다. 그런데 자연의 힘은 창조주의 뜻으로부터 전해진 신비한 힘에 의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은 자연의 힘도 종종 무너뜨린다. 그만큼 인간의 힘은 그 잠재력이 큰 것이며, 그 도전은 위대한 것이다. 더구나 역사상으로 위대한 선각자가 한 집안을 중심으로 탄생하여 인류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경우가 다수 있다.
어린 시절에 교과서에서 읽었던 교훈의 일부이다. 귀부인들이 각종 보석을 자랑하는 자리에서 한 부인은 두 형제를 내세웠다. 바로 로마의 정치가인 「그라쿠스 (Gracchus) 」형제 이야기이다. 어머니 「코르넬리아(Cornelia)」는 남편과 사별 후에 재혼하지 않고 두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 이들은 기원전 2세기 호민관을 역임하였다. 이들은 농지법을 발의하여 시행하려 했지만 원로원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고대 역사에서 귀족층에 맞서 평민들에게 부의 분배를 시도한 가장 유명한 사례로 꼽힌다.
일찍이 1993년 말에 서울대 정치학과의 「최명」교수가 쓴 『소설이 아닌 삼국지』를 매우 감명 깊게 읽은 일이 있다. 부제로 「삼국연의 평전」이라고 했는데 삼국지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매우 일리가 있고 수준 높은 책 이었다. 아마도 이 분야의 전문서적으로서는 가장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어 항상 곁에 두고 지냈다. 모르긴 몰라도 저자가 평생 동안 『삼국지』를 반복해서 읽고 종합적인 해설을 한 필생의 업적이라고 본다.
그런 평가를 하고 지내다가 최근에 서점에서 최교수가 쓴 『이 생각 저 생각』이라는 「동서고금의 재미있는 이야기」책을 구매하여 읽게 되었다. 「김동길」 교수의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여기에서 최교수를 이야기한 것은 처음으로 그의 글을 읽고 어언 30여 년간을 음양으로 인용하거나 교훈으로 삼아왔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일면식은 없지만 지성과 인품이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 것이다.
최교수는 삼변(三卞)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변정상(卞鼎相)씨의 세 아들인 「변영만(卞榮晩)」, 「일석(逸石) 변영태(卞榮泰)」,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등에 대한 일화였다. 「변영만」은 한학에도 뛰어났던 법조인이었고, 「일석」은 외무장관과 국무총리 서리를 지냈다. 또한 「수주」는 시인이며 영문학자로, 유명한 시(詩) ‘논개(論介)’를 읊은 시인이며, 소문난 주당(酒黨)이었다. 1924년에 첫 시집인 『조선(朝鮮)의 마음』에 이 시가 실렸으나 그 내용이 불온하다하여 발행되자마자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압수 폐기되었다고 한다.
역사에는 종종 부자 혹은 형제들이 등장하여 문화의 융성을 가져왔다. 위나라의 「조조(曹操)」와 「조비(曹丕)」, 「조식(曹植)」 등 세 부자도 탁월한 시인이었다. 이들은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을 꽃 피웠다. 또한 송나라 시대의 삼소(三蘇)인 「소순(蘇洵)」과 그 아들 「소식(蘇軾)」과 「소철(蘇轍)」은 모두 당송팔대가에 드는 명 문장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허균(許筠)」은 아버지 「허엽」, 이복 형 「허성」, 친형 「허봉」, 친누나 「허난설헌(許蘭雪軒)」과 함께 허씨 5문장으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우리문학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의 자손들인 「정양모(鄭良謨)」, 정양완(鄭良婉)」 등도 우리나라의 예술과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하다. 한 시대를 장식한 「허소치(許小癡)」 일가의 남종화(南宗畵)와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과 「여초(如初)김응현(金膺顯)」 형제의 서예, 그리고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일가의 서화 분야의 기여도는 엄청난 문화유산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홍진기(洪璡基)」 전 장관과 그의 자녀들의 언론과 경제 분야의 역할도 대단하다.
그런데 항상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그 직계에 대한 것이다. 누구보다 대대로 명문대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던 「완당」은 정작 자신은 자식 복이 적었다. 서자인 「김상우(金商佑)」가 있었지만 나중에 「김상무(金商懋)」를 양자로 받아들였다. 물론 보통 사람 이상의 가계도를 이어 가고 있겠지만 「완당」의 명성에 걸맞은 역할을 했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완당」은 그런 자식에 대한 정성을 제자들에게 쏟아 부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 시절의 「추금(秋琴) 강위(姜瑋)」, 「소치(小癡) 허련(許鍊)」,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은 물론이고, 강상 시절의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와 북청 유배시절의 「요선(堯仙) 유치전(兪致佺)」, 과천 시절에는 「소당(小堂) 김석준(金奭準)」을 아끼고 좋아했다.
원래 정신을 집중하여 고도의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작가의 외로움은 크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모차르트」나 「차이코프스키」 등 일부 예술가들은 거의 불륜에 가까운 사랑을 순애보처럼 간직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들에게 이런 사랑이 없었으면 그 힘들고 외로운 창작의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유홍준」 교수의 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하튼 「완당」의 제자 사랑은 특별하였다. 제자들은 그가 외로움을 마주 대할 때 가까이에서 말벗이 되어주고 오히려 원숙한 경지의 수많은 작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었다.
어쨌든 최교수의 책을 읽고 두서없이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단상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 집안에서 다수의 걸출한 인물이 활약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우선 예전에 비하여 태어나는 아이들이 소수이니 그런 기대를 할 수가 없다. 적어도 가업을 이어 제대로 된 문화의 전승에 기여하는 인물이 탄생하길 바란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모두가 지혜를 짜내어 우선은 출생율의 향상부터 도모할 때이다. (2024.6.10.작성/6.11발표)
※ 개인 사정으로 출타하게 되어 예정보다 일찍 글을 게재하니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