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에는 길라잡이를 앞세운다. 나의 어쭙잖은 생활낚시도 예외는 없다. 그 길잡이는 같은 자치구에 사는 동갑내기 사촌이다. 그의 모든 삶은 낚시로 일관하고 있어 나는 대접하는 차원에서 김 프로라고 부른다. 인근에 사는 일곱 살 터울의 막냇동생도 나와 취미가 같다. 자연히 낚시 스승도 동일인이다.
오늘은 김 프로의 제안에 따라 다대포의 내만권에 갯바위 출조(出釣)를 가는 날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동생과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열정 많은 스승이 먼저 와있다. 낚시점에 들러 이것저것 공동으로 사용할 것들을 준비한다. 나는 여분으로 숭어 꽃 낚시용 재료를 구입하고 주인에게 채비 방법을 묻는다. 동생과 사촌은 그런 나를 애써 외면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대상 어종이 감성돔이나 참돔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변함없이 생활낚시용 재료를 준비하니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선착장에 가서 출항신고서를 작성하는 중, 한 배로 출항할 인원이 순식간에 꽉 채워진다. 커피를 마시고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구명조끼는 밑으로 삐어져나온 줄로 다리 부분을 단단히 묶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사시에 머리 위로 벗겨져 시신도 찾을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하늘이 희뿌옇게 변할 무렵, 소형 낚싯배는 대물의 꿈을 가득 안고 대양을 향해 힘차게 출항한다. 가장 가까운 솔섬에 한 팀이 내린다. 다음은 우리의 목적지인 쥐섬이다. 선장이 갯바위의 평평한 곳으로 배를 거칠게 밀어붙이자, 장비를 들고 잽싸게 하선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덕분에 물목 좋은 곳을 차지하려는 자리다툼은 없었다.
발판이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평소와 같이 감성돔 채비로 낚시를 시작했다. 0.5호 구멍 찌에 반유동 채비를 하여 좌측으로 캐스팅하니, 물흐름이 거의 도랑물 수준이다. 밑밥을 치고 캐스팅을 수없이 반복하여도 미끼가 그대로 살아온다. 물속에 생물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샛바람이 터졌는지 바람마저 세차게 몰아쳐 낚싯대를 세우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오전 내 실랑이를 하였으나, 내 낚싯대에 쓸데없는 복어 몇 마리가 올라온 게 전부다. 낚시 장소를 추천한 김 프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점심을 김밥과 컵라면으로 때우고, 나는 과감히 채비를 수정했다. 5호 원줄을 감은 중형 스피닝릴에 무거운 경질 3호 낚싯대로 숭어 꽃 낚시채비를 한다.
노란색의 큰 플라스틱 찌, 그 아래 T자형으로 생긴 양 갈래의 철사 밑에 오색으로 반짝이는 꽃 솔과 갈고리처럼 생긴 낚싯바늘 두 개를 달고, 20호 봉돌을 물린 다음, 앞으로 힘차게 캐스팅했다.
‘워낙 낚시가 안 되니까, 시간 보내기로 저럴 수도 있겠구나.’
내가 처음 낚시를 던졌을 때는 다들 이런 생각이었을 게다. 사실 나조차도 긴가민가했으니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물오리 모양을 한 노란색의 대형 찌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스승에게 배운 대로 힘껏 챔질을 하고, 낚싯대를 세운 뒤, 재빨리 줄을 감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땅에 걸린 것처럼 잘 당겨지지 않으면서 릴에서는 연신 드랙 풀리는 소리가 “끼이익” 비명처럼 났다. 그래도 꾸준히 당겨져 오는 것을 보면 고기가 물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낚시인의 로망인 바로 그 몸 맛?“
중노동 끝에 대형 숭어가 자태를 드러냈다. 백태 낀 흐릿한 눈으로 반짝이는 꽃술을 먹이로 알고 무턱대고 덤비다가 큰 갈고리바늘이 몸통 깊숙이 박힌 것이다. 버둥대는 숭어의 힘이 그대로 전해져 올 수밖에. 그렇게 시작된 꽃 낚시는 던지면 입질을 하는, 소위 ’물 반, 고기 반‘ 수준이었다. 나중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부러워하는 동생에게 인심 쓰듯이 낚싯대를 건넸다. 동생도 난생처음의 몸 맛을 즐기다가 흥분했는지 갑자기 휴대폰으로 친구를 부른다. 동생 친구는 다음 배로 정말 총알같이 우리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친구는 도축장에서 소나 돼지의 발골 작업을 하는 프로 칼잡이인데, 요즘 개인 사정으로 잠시 쉬고 있다고 한다. 동생이 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소주 안주로 숭어 회 뜨기를 부탁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귓전으로 들으면서, 숭어가 썰물 따라 먼 곳으로 몰려나가서 떼를 지어 와글거리다가 번갈아 가며 풀쩍풀쩍 재주넘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꼭 ‘숭어가 뛰니 망둑어도 뛴다.’라는 속담 속의 주인공을 눈으로 확인하듯이.
그러다가 우연히 동생 친구한테로 고개를 돌리니, 전혀 뜻밖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가 무릎을 꿇은 경건한 자세로 꿈틀거리는 숭어를 하늘로 떠받들었다가, 다시 얼굴 가까이로 내려서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이듯 하고 있었다. 순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묵직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하고 올라왔다. 잠시 후 예술처럼 칼질을 해서 회를 떠 왔다. 입안에 넣으니 사르르 녹는다. 횟집에서 먹는 숭어회와는 차원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철수하여 낚싯배 사무실에 모이니 모두 들 샛바람 때문에 공쳤다고 난리다. 내가 잡은 숭어가 오늘의 장원이란다. 분명한 사실 하나, 이렇게 전반적으로 조황이 안 좋을 때는 프로도 별수 없고, 나같이 생활 낚시인이 더 실속이 있다는 것.
첫댓글 손맛이 쏠쏠하였겠습니다.
. 읽어 주시고 댓글 달아 주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