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역할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총각을 사위로 맞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위가 연수원을 졸업할 즈음하여 진로를 선택하는데
판․ 검사를 선택하지 않고 처음부터 변호사의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이었다.
장인이 말리다가 도저히 설득이 안 되자
"여보게. 그럼 일 년 만이라도 현직에 있다가 나오게“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위는 바로 변호사의 길로 가고 말았다.
필자는 그 장인의 현실감각, 그 사위의 패기를 모두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30대 초반에 판․검사 같은,
권력을 가지고 불의와 싸우며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일에 종사한다는 것은
분명히 선망의 대상이다.
그 대신 변호사는 사인이다.
그에게는 권력이 없다.
오히려 권력의 대상이다.
판사로 재직하다가 사직하고 변호사로 법원에 들어가면,
그 즉시 법원 직원의 달라진 눈초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어제까지 자신들의 상사였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권력 아래에 있는 하나의 야인일 뿐이다.
물론 법원 직원들이 그렇게까지 대우하지는 않겠지만
자기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것일 게다.
밖에 있는 친구들도 지금까지는 선망하며 부탁하려 들었지만 이제는 그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이제는 그가 자신들과 처지가 동등한 사인이고
자신들의 도움이 없으면 변호사 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걱정까지 한다.
그러나 가끔 변호사도 판․검사 못지않은 엄청난 일을 해내기도 한다.
세상에 억울한 일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것이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것이며,
이유 없이 자신의 재산을 빼앗기는 것이다.
억울한 옥살이를 면하고 정당하게 제 재산을 찾는 일은 변호사가 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물론 억울한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부당하게 제 재산을 뺏기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끔”이다.
물론 판사가 최종적으로 판단하여 주지만 그 판사의 결정은 변호사의 역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판사는 마치 수족이 묶인 방청객처럼 객관적이다.
민사재판에서 판사는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가 억울한 것을 밝히면 억울하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못 밝히면 억울한지 모른다고 판단한다.
판사는 축구시합에서 심판일 뿐 골에 볼을 차 넣어야 하는 것은 변호사이다.
1990년대 초 영일군에서 소속 공무원의 부정으로 군유지가 부정불하된 것이 발견되었다.
그 불하는 정상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그 불하대금은 군으로 들어 온 것이 아니고 그 공무원의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그 부정이 금방 들어난 것이 아니고
형사 처벌 시효인 공소시효가 완성된 후에야 발견되었고 증거도 희미하게 되었다.
그 군유지는 요지에 있는 토지 5000평이었고 그 시가만도 50억원에 이르렀다.
법정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일심, 이심에서 영일군이 이기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어 영일군이 지고
다시 고등법원에서 영일군이 이기고
대법원에서 마지막으로 영일군이 이겼다.
재판이 장장 5년에 걸쳐 이루어 졌다.
그러한 부정을 밝힌 공무원의 역할도 컸지만 재판에서 이기도록 노력한 변호사의 역할도 컸다.
그 토지를 부정불하 받은 사람은 마지막 대법원 재판 직후 화병으로 사망하였다.
변호사의 노력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요즈음 사법연수원을 졸업하는 사람 중 판․검사 임용이 가능함에도
처음부터 변호사의 길로 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판․검사의 화려함이 옛날 같지 않기도 하지만
사회 각 분야가 다양하게 발전하여 처음부터 그 길로 가야 대성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는 전문화의 시대이다.
출발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한길로 가야 정상에 이를 수 있는 분야가 늘어나고 있다.
전문화된 변호사의 화려함이 성공한 판․검사의 화려함 못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사법연수원을 졸업할 때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아 유명 로펌의 초청을 받지 못한 변호사들이다.
그들은 사법시험 합격시의 기쁨에 걸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들에게 사법시험이 하나의 변신이었다면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도 또 하나의 변신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변신이 어려운 것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노력으로 성취될 수 있다.
변호사들이여 기죽지 말라.
당신에게 권력이 없더라도 당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 많으니까.
권력은 자칫하면 잘못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것을 바로잡을 사람은 당신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