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제목 : 기도 어떻게 해야 하나?
성경 본문 : 마가복음 11장 20절-25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7월 24일 수요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 <마가복음> 11장 20절-25절 말씀입니다.
20절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절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 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힘써야 하고 반드시 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기도입니다.
기도, 이것은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무척 쉽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내가 대화하는 것이기에 그냥 앞에 계신
어른에게 말하듯 하나님과 대화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 이 기도는 무척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할 정도입니다.
기도가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방법도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도 응답이 어려운 문제이기에 어려운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는 기도요.
하나님 응답하지 않는 기도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 말하기를
성도는 기도를 쉬지 말고 해야 한다 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은 월래 기도하는 날이요. 화요일은 화끈하게 기도하고.
수요일은 수없이 기도하고. 목요일은 목이 터져라 기도하고.
금요일은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토요일은 토하면서 기도하고.
일요일은 일어나자마자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기도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릴 때 기도응답이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이른 아침에 <베다니>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감람산>언덕길을 올라가는데
거기에 무화과나무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아침식사도 아니하시고 가시는 길이라 시장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무화과나무 중에 가장 크고 잎이 무성하고 잘 생긴
무화과나무 밑에 가서 무화과가 있는지 살펴보셨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난데없이
제자들이 다 듣는 앞에서 엄숙하게 무화과를 저주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제자들은 아마 주님이 시장하신데 무화과 열매가 없으니까
주님이 화가 나셔서 그렇게 하셨나보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그 무화과나무 옆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깜짝 놀랐습니다.
무화과나무를 보니 뿌리 채로 싹 말라버렸습니다. 너무 놀라서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가 말랐나이다.” 하고 소리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러보시고
그 무화과나무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 하반 절 이하를 다 같이 읽습니다.
22절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주님께서 무화과나무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왜 저주를 선포하셨을까요? 정말 배가 고파서 화풀이 하신 것일까요?
우리 주님은 그런 심술쟁이 주님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셨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교훈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의 능력을 가르치기 위해 무화과나무를
시청각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24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삶의 현장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기도한대로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완전히 말라버렸습니다.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 말씀에
22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믿으라는 구절의 헬라어를 보면
‘에케테 피스틴 데오’라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믿으라.’ 고 해석할 수 있고
2)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라’ 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아주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합쳐보면
먼저 하나님을 믿고 그 다음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을 체험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또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은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경험이나 우리의 이론이 아닌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을 경험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첫 출발이요. 기적과 부흥과 치유와 회복의 첫 출발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믿음은 절대적 요소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 말씀에 보면
28절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믿은 대로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가 믿는 대로 나온 말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말대로 하나님이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불 신앙자들. 하나님을 신뢰치 못하는 사람들의 말도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말이야
더 이상 말할 것이 뭐겠습니까?
<예레미야> 29장 12절-13절 말씀에 보면
12절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절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했습니다.
온 마음으로 찾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들으시고 만나 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야
우리의 삶이 복된 삶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로마서> 10장 17절 말씀에
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듣고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계시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지금 현재로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과거의 책이나 미래의 책일 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책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신 메시지로
하나님은 언제나 현재 시제로 그 말씀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언제나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말씀을 받아서
믿음으로 행할 때에만 우리에게 살아납니다.
전기도 집밖에 전봇대까지 와 있어도 전선으로 연결해야 그 힘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도 믿음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현재적 실제성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주어지는 말씀을 사모하시되 그 말씀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그대로 따라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생각과 형편을 앞세우지 마세요. 내 능력과 내 힘을 계산하지 마세요.
자식 걱정. 남편 걱정. 이것저것 다 고려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경말씀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현재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즉시 역사해 주십니다.
2. 믿음을 말로서 선포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 말씀에
22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말로써 우리 마음속에서 풀려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은 믿음의 고백을 항상 요구했습니다.
주님께서 큰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언제나
우리 입의 고백을 원하셨습니다.
이를 테면 <신명기> 7장 15절 말씀에
15절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하셨습니다.
이때 <아멘>으로 받으세요.
또 <마태복음> 4장 23절 말씀에
23절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말씀을 들었으면 <아멘>하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것임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질병을 향하여 단호히 명령하십시오.
“이 더러운 질병아!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너를 꾸짖노니 지금 즉시 내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모든 질병으로부터 고치시며.
주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내가 모든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입었노라!”고 명령하며 선포하시란 말입니다.
그러면 그 질병이 떠나가고 강건케 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고백과 선포입니다.
입술로 믿음을 고백하셔야 합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두로>와 <시돈>지경에 갔을 때에
<수로보니게> 여인 찾아 나와 딸을 고쳐 달라 하십니다.
그 때 주님께서 그 여자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십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십니다.
정말 깜짝 놀랄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을까 할 정도입니다.
그때 그 여인이 멋진 신앙 고백을 합니다.
다 같이 읽습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했기 때문에 귀신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귀신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귀신이 나간 것 아닙니다.
믿음의 신앙의 고백이 이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신앙을 보시고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보시기 위해 모욕적인 말을 해보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우리의 믿음을 말로 선포해야 합니다.
또 하나 살펴보면 ‘<여리고> 성의 맹인 <바디매오>’도 마찬가집니다.
그가 길가에서 구걸하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누가 지나 가냐 묻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 하니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뿔쌍히 여겨주소서” 소리칩니다.
주님이 그를 불러 오라 하십니다.
그리고는 묻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 해주기를 원하는가?"
뭐하러 물어봅니까?
물어보나 마나 아닐까 생각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대답합니다.
“보기를 원 하나이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결코 이런 고백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고 메시아라고 믿었기에
‘보기를 원한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이요 선포입니다.
그때 주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 나올 때
우리에게 믿음의 신앙 고백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용솟음치는 믿음을
언제나 입술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 고백을 받아서 놀라운 기적적인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시험할 때에 언제나 입술로
하나님을 부인하게 만듭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침략해서 주의 종들이나 장로나 교회 성도를 붙잡았을 때에
언제나 대중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입술로 부인하면
그만 신앙이 사라지기 때문에 끝까지 입술로 부인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기 위해서
수많은 종들과 성도들이 그들의 목숨을 바치고 순교를 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입술의 고백은 그와 같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음속에 믿음이 생겼으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말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도 입술의 고백입니다.
그러기에 내 말로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예수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도 입술의 고백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지만
내게는 입술의 신앙고백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도로 내게 돌아와서
나에게 큰 복이 됩니다. 그것이 내 믿음을 강하게 하고 성숙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전도하는 신앙의 고백을 하지 아니하면 내 믿음도 희미하고
약해지고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증거. 이것은 다시 말하면
입술의 고백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음에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 하반 절을 보세요.
23절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내가 믿음을 가졌고 입술로 고백했지만 마음속에 의심이 다가와서
우리 마음을 흔들어 버립니다. “안될 거야.” “어려울 거야” 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게 합니다.
그러면 응답은 날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믿음을 고백했으면
끝까지 믿음을 잡아야 합니다.
작은 의심이라도 하면 안 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의심하지 아니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주님께서 "그것이 이룰 줄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오직 성공을 생각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요한복음> 14장 12절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이 말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행한 일도 행하고.
그것보다도 더 큰 것도 행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렀기 때문에 마음에 강하고 담대한 배짱을 가지고
꼭 내가 믿고 말한 대로 이룰 줄 믿어야 합니다.
"나는 못해요. 안돼요. 할 수 없어요. 나는 패했어요."
그러면 내 말에 내가 묶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꼭 마음에 이룰 줄 믿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8절 말씀에 보면
6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의심이 들어와서 우리 마음을 쪼개어서 두 마음을 품게 합니다.
믿는 마음도 있고 안 믿는 마음도 있고. 믿고 싶은 마음도 있고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게 합니다.
마음을 쪼개는 칼이 바로 의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의심을 단호하게 차단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니 약속만 바라보고 믿고 행동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없는데도 벌써 주셨다고 생각해야합니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 “나는 치료받았다.”
“나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기도 응답을 받았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우리가 생각하고 믿고 행동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기적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4.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응답이 오는 중간에 장애물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그 시간에 그 장애물을
우리의 마음속에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드러나는
그 장애물을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그 장애물은 타인에 대한 용서하지 못함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에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용서를 못하고 다시 용납을 안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아니하십니다.
말로는 용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는 상대 안합니다.
그것은 용서 안한 것입니다.
용서는 아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본문 <마가복음> 11장 25절을 보세요.
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기도 응답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용서를 먼저 하라 하실까요?
용서가 어려운 것이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그래야 응답을 누릴 자격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예배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절-24절 말씀에
23절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절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십니다.
예배드리고 나서 찾아가라 하지 않습니다.
그냥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가서 화해한 후 와서
예배드리라 하십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란 말입니다.
내가 미워하고 용서 못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에게 아픔과 성처를 주는 사람도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나 유럽에 있는 사람.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가까운 <북한><일본><중국>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이 있는 남편. 아내. 부모. 자녀. 형제. 시누이. 시어머니. 친구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그들이 내가 용서해야 할 대상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의 마음으로 대하고 있으면.
이것이 내 인생을 멍들게 합니다.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능력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용서로 만들어가는
혁명적인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주님, 이제 제가 용서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오늘부로 다 용서합니다.’
우리 안에 용서의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내일의 소망은 없는 것입니다.
내 속에 용서의 강물이 흐르게 합시다.
그것이 우리 인생에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행복가족 여러분!
기도 응답 어려운 것 같으나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은 기도는 무화과나무 사건을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믿고 구하라 하십니다. 받은 줄로 믿으라 하십니다.
그러면 기적의 삶이 우리 앞에 전개 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