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호남선』(작사 손로원, 작곡 박춘석)은 1956년 발표된
「손인호」 선생이 부른 곡으로 그의 가장 큰 히트곡이며, 역사적인
사연이 있는 노래입니다.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해공 신익희' 선생의 죽음과 관련하여 정치
음모론에 휘말려 고초를 치뤄야 만 했던 곡이기도 합니다.
189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해공 신익희'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을 주도하고 독립 운동에 헌신하였으며, 해방 직후에는 '김 구' 등
임시정부 계통과는 노선을 달리하여 '이승만'과 손을 잡고 초대 국회
의원, 국회 부의장을,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뒤에는 국회의장을
지냅니다.
정부 수립 후 '이승만'과 멀어진 '인촌 김성수'의 제의를 받아들여 '민주
국민당'을 창당하고 위원장에 오릅니다. 1956년 '민주 국민당'을 '장 면',
'조병옥' 등과 함게 민주당으로 확대 발전시켜 대표 최고 위원이 되었죠.
1956년 민주당 추천 대통령 입후보자로 선거 유세 중 5월 5일 전주
유세를 위해 내려가다가 '호남선'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였습니다.
사망한 그에게 185만 표가 추모표로 주어졌으니 그 인기를 실감할 만
합니다. 장례는 국민장(國民葬)으로 치뤄졌습니다.
'사사오입' 등 선거 부정으로 국민이 등을 돌린 '자유당'에 대항한 민주당
'신익희 후보'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신익희'의
급작스런 사망은 수많은 음모론을 쏟아내었고,
그 와중에 발표되어 급부상한 『비내리는 호남선』은 '신익희' 사망과 함께
그의 서거를 애도하는 곡으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고, 민주당
에서는 당가(黨歌)처럼 불릴 정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신익희'의 운구(運柩)가 서울역에 도착할 때 논산 훈련소로 가는 입영 열차
안에서 이 노래를 누군가 부르자 삽시간에 전체가 따라 부르며 추모하는 곡
처럼 되어버렸고, 이 소문은 급속도로 번지면서 각색(脚色)에 윤색(潤色)
까지 더해져 "신익희는 자유당에 의해 암살 되었고 미망인이 슬픔을 못
이겨 이 가사를 썼다"는 얘기까지 나왔죠.
어찌되었던지 노래는 '신익희'의 사망과 선거판을 타고 최고의 수혜를 입은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작곡가 '박춘석'은 평생 정치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지만 이 노래로 한동안 고초를 겪었습니다.
경찰은 이 노래가 '신익희'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
며 가사를 '신익희'의 미망인이 붙이지 않았는지 의심하여 추궁 하였습니다.
조사 결과 이 곡은 '신익희'가 타계하기 3개월 전(작곡은 1년 전)에 만들어
졌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우연치 않게 추모의 곡이 된 것으로 애꿎은 작사,
작곡, 가수가 주목을 받고 고초를 겪었습니다.
(인천아이러브색소폰클럽대표 윤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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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에
헤여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드란다
다시 못올 그 날자를 믿어야 옳으냐
속는 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죄도 많은 청춘이야 비 내리는 호남선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