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적응하는 법을 각자 터득해 가고 있으리라 본다. 짬짬이 추후 여행을 위한 관련 책들을 보며, 근방의 예술 공간들을 찾아 소확행 예술 기행을 한지도 반년이 넘었다. 이번엔 '책' 주제의 전시이다. 책은 간접경험, 여행은 직접경험이다. 예술은 보너스경험이다. 서초구 반포대로 흰물결갤러리의 김청전 작가전 <저기 걸어간다. 한 권의 책이 될 사람!>(2020.12.3~2021.1.30)을 다녀왔다.
전시 주제는 '책이 사람이다'이다. 검색하면 '여행은 사람이다'라는 책도 있다. 그리고 '사람이 미래다'라는 컴퍼니 슬로건도 있다. 이 말들을 붙이면, 책이 사람이고, 여행도 사람이고, 그 사람이 바로 미래다~
흰물결갤러리가 있는 흰물결아트센터는 카톨릭 베이스의 공간이다. 전면유리 1층의 갤러리에 입장하면 여러 형태로 쌓여 있는 "책장 그림"이 벽에 자리한다.
아래 작품은 책의 단면들이 콜라쥬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는 혼합 재료 작품이다. 실제로 책들을 저렇게 쌓아두면 경험상 무너진다^^
<사람의 빛>
그래서 옆에서 보면 돌출되어 있는 작품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똑같은 책은 하나도 없다. 똑같은 사람도 하나도 없다. 똑같은 먼지도 하나도 없다. 그걸 인정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편해진다.
<사람의 빛>
한 벽면을 가득채운 책장 그림의 타이틀이 <책이 사람이다>이다. 자세히 보면 캔버스 6개를 이어붙여 그렸다. 작가는 미술을 꿈꿨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인문계 고등학교를 거쳐 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1년이 지나 그만두고, 이후 미술 전공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안정적인 직장이냐, 원하는 추운 삶이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뭐가 옳은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결과의 판단도 당사자의 몫이다.
<책이 사람이다>
전시는 1층과 중층, 그리고 2층의 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중층으로 올라가는 팻말에 "가끔은 거꾸로 봐야해" 라는 글씨와 그림이 맘에 들어 촬영했는데, 나중에 보니 작가의 그림과 글이다.
<가끔은 거꾸로 봐야해>
중층으로 오르는 길목의 조그만 서점이다. 카톨릭 서적들이 있나 했는데, 인문학 및 소설류의 잔잔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예술사 부문에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구분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림과 글은 통하지만 묘하게 다른 독자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언어철학자들은 글이 전부라고 하지 않을까 한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이다'라고 한 비트겐슈타인을 포함해^^
<책과 마음이 통할 때>
작가는 틈틈이 생각을 기록하며 그 글이 작품의 바탕이 된다고 한다. 아래 작품은 예닐곱 번 붉게 옻칠한 목판에 고려청자 상감기법처럼 조각도로 새기고 백토를 채워 넣는 방법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아래 글들 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목판은 "깽판을 쳐라"이다.
<꿈꾸는 세상> 옻칠한 목판에 상감기법
좌 <꿈>, 우 <열정으로 날다> 한지에 오일스틱
'그의 책장' 작품에는 책 제목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읽은 책도 있고, 맘에 드는 책도 있고, 관심 없는 책들도 있고, 읽고 싶은 책들도 있다. 다 섞여 있다. 그 사람이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수 있다고 했던가. 사실 읽는 책들이 계속 바뀐다. 사람이 계속 바뀌는 것이다.
<그의 책장>
중층에서 찍은 1층의 모습이다.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세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의 뚫린 공간에서 촬영했다.
2층에 대부분의 그림들이 포진해 있다. 아래 작품의 타이틀이 "씨앗이 뿌려지다"인데, 씨뿌려 책들이 차곡차곡 올려지는 것을 형상화 한 듯하다. 세상을 밝히는 촛불같기도 하다.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 책장의 모습과 페이지를 펼친 모습을 동시에 표현한 작품이다. 내용이 통하는 페이지들은 색이 뭉게져 있고, 페이지마다 반전이 펼쳐진다면 초록이었다가 노랑이었다가 검은 줄무늬가 되기도 한다.
<기쁨의 책장을 넘기며>
<흐르는 지혜의 샘>
<씨앗이 데구르르>
<오늘도 내가 먼저 맑음이다>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아래 왼쪽의 사람 키만한 플라스틴 원통형에 가득 채운 색색가지의 알갱이들의 타이틀은 '지혜의 씨앗'이고, 그 오른쪽에 벽면을 채운 책장 그림은 '책이 사람이다'이다.
좌 <지혜의 씨앗>, 우 <책이 사람이다>
<지혜의 씨앗> 클로즈업 부분 촬영
<빛이 들어오다>
책장이 있을 자리에 책을 가장한 그림이 떡하니 자리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위선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책장의 책들이 대부분 세로로 꽂혀 있는데, 가끔 가로로 뉘여 꽂혀 있는 불규칙적인 것도있고, 어떤 칸은 마구마구 뒤섞여 있기도 하다. 삶이 그럴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작품으로 세상에 나온 이상 더 이상 작가의 몫을 떠났다고 한다. 해석은 오픈되어 있다.
좌 <희망>, 우 <어린 시절>
<일용할 양식, 그들의 사과>
좌 <즐거운 세상>, 우 <즐거운 세상>
다른 분위기의 방에 들어섰다. 체계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아서 모를 수 있지만, 2층 전시관은 거실을 비롯해 여러 개의 방에서 책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컬러풀 라이프에서 흑백의 공간으로 넘어왔다. 작품 타이틀이 '유토피아로 가는 길'인데 검은색이다.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간다.
좌 <유토피아로 가는 길>, 우 <Whitewave>
좌 <그 한 구절이>, 우 <그 한 구절이>
좌 <희망>, 우 <희망>
작가의 책그림은 2020년 12월 책표지 모델이 되었다. 참고로 나는 불가지론자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옮겨본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데, 책을 읽으면 인간을 이해하게 됩니다. 인간을 이해하면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려낸 수많은 책은 다양한 인간의 삶을 상징합니다. 살아가며 경험하는 인간의 좌절과 한숨, 기쁨과 눈물, 꿈과 행복을 각기 다른 빛깔의 책으로 펼쳐놓습니다." 이하 작가의 말을 전부 동의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