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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복음 (3) 김상래교수
오늘 하루도 평안하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베드로후서 3장 3절로 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 붙어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재림을 믿는다고 하면 뭐 그런 걸 믿냐 놀린다는 거예요.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재림 과학 시대에 뭘 그런 걸 믿고 있어 이런다는 거지 그러면서 뭐라고 말해요?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이 말은 옛날부터 그 말입니다.
오래전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처음 있을 때부터 그냥 있다.
무슨 큰 일 없었어 무슨 재림이 있고 무슨 지구가 멸망하고 그런 비과학적인 얘기하지 말라고 세상은 다 있는거 옛날부터 있는 거야.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다음 설명이 나와요.
인은 하고 설명이 나오는데, 인은 그다음 하늘이 옛적 붓 붙어 있는 것과 그다음 땅이 물에서 나와 물도 성립한 것도 여러분 어떻게 배우셨어요?
어떻게 알고 계세요? 지구가 처음에 뜨거웠다고 식었다고 알고 계시죠?
세상이 다 그렇게 가르쳐요. 행성이 떨어져 나와서 뜨거웠다가 식었다고 말하는데, 성경은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 하나하고 그다음 두 번째 그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됐어요.
그걸 일부러 잊어버리고 그걸 안 믿으려고 하면서 그걸 안 믿으면 재림 그런 걸 믿냐 한다는 거죠.
두 번째 그러다가 그때 그때가 언제일까요? 하여간 그때 세상이 물에 넘침으로 멸망한 적이 한 번 있다.
이걸 두 가지를 일부러 잊으려고
재림 그런 거 없어 뭐 이런 말 한다는 거지요. 저는 이 저녁 시간에 창세기 1장 2장만 가지고 다섯 번의 시간을 함께 나누어 보면서 맨 처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 원 상태가 어떠하였는지 의미를 살펴보겠다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첫날 원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인간은 본래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고통의 세상에서 살게 되어 있지 않고 기쁨이라는 의미의 에덴에서 살게 돼 있었다.
에덴에서 살게 돼 있었다. 요양병원이 좋긴 하지만 여수가 좋긴 하지만은 에덴은 여수하고 비교가 안 돼.
여수는 에덴하고 비교가 안 돼. 그 본래는 그렇지 아니 아니라 오늘 보니까 제가 그래서 좀 답답해가지고 옆에 계신 분들에게 물어봤어요.
아 여수도 바다가 한 치도 안 보이는 때도 있네요. 오늘 아침 오전 낮에 바다가 안 보이니까 답답해요.
제가 보기에 이 아름다운 한려수도가 안 보여 안개가 가려져 가지고 그렇죠.
둘째 날 빛이 태양보다 먼저 창조됐어요.
원래는 태양에 감사할 일이 아니고 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돼 있어 그거 말씀드렸어요.
오늘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걸 사람들이 안 믿다가 그때 세상에 세상이 물에 넘침으로 멸망했는데 이거 두 가지를 안 믿으니까 뭐까지 안 믿느냐 말세가 되면 재림도 안 믿는다 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어 마지막에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으로 이제 불사르기 위하여 간직된 어떤 날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죠.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했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때 세상은 물이 넘치므로 멸망했다는 말이 뭔지를 한번 확인해 보십시다.
창세기 1장 1절 2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그다음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와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창조될 때 지구 전체가 땅이 다 다 물로 덮여 있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맨 처음 땅의 상태는 땅이 없었어요. 다 물로 덮여 있다가
이 물로 덮여 있던 땅의 상태에서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땅이 드러나기 시작한 순간이 그다음 구절입니다.
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그다음 무치에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그러니까 땅은 어디서 나왔어요? 물에서 나왔어요.
우리가 다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엄마 뱃속에 물속에 있죠.
그래서 수중분만 그러잖아요. 물속에 마치 그처럼 물속에서 땅이 나왔습니다.
땅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했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셨어요.
땅은 물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듯이 물속에서 태어나듯이 땅은 물속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물속에서 나온 땅 위에 사람이 번성하기 시작하더니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그다음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해요.
여러분 그냥 계획이 항상 악하다. 그래도 돼요. 모든 계획이 악하다.
그래도 돼요. 그런데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해요.
시간적으로 항상이고 마음으로 생각하니까 속속들이고 모들이니까 전부 다예요.
여지가 전혀 없어요. 이런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6장 11절 또 뭐라고 말하는가 그때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이때 포악이라는 단어가 이 폭력입니다.
와우 사람이 폭력이 일상화되는 세상이 된 거지.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위에 가득함으로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그때 세상은 물에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하는 얘기입니다.
홍수가 땅에 40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다.
여러분 원래 물속에 잠겨 있던 땅이 물속에서 나왔었는데 그 땅이 너무 악하니까 다시 어떻게 됐어요?
물속에 잠겼습니다. 그러다가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601년 첫째 달 곧 그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거친지라 지금 보시는 저 두 남녀가 저와 제 아내입니다.
저게 뭘까요? 미국 캔트키주인가요? 그게 무슨 주였어요?
가면 그 성경에 나오는 노아 방주를 실제로 사이즈로 복원해 놓은 방주가 있습니다.
지금 그 앞에가 찍은 사진이에요. 와우 굉장합니다.
한번 가볼 만합니다. 그래서
물속에 덮여 있던 땅이 물에서 나왔다가 악하여 다시 덮였다가 다시 땅에서 물속에서 땅이 나왔죠.
그러니까 물속에서 나왔다가 한 번 더 나왔죠. 이게 이게 땅의 역사입니다.
재림이 어디 있어 그런 거 조롱하는 사람들이 두 가지를 부정할 거라 그랬죠.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잊어버리고, 그때 땅이 세상에 물에 넘침으로 멸망하였던 것을 잊어버리려 일부러 잊어버리고, 이 두 가지를 부정하고 난 다음 재림도 부정한다.
그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땅이 물에서 나왔다가 악화해줘서 다시 물로 덮였다가 다시 물에서 나왔다는 이게 무슨 뜻일까요?
베드로전서 3장 20절 21절에 보면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8명이다.
물은 방주에서 물로 하시니까 이 물은 노화 홍수예요.
근데 이 노아 홍수 사건이 저 뒤에 가서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이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표가 됐는데, 이게 바로 뭔가 하면 곧 뭐라?
침내라 와 지구가 뭐 한 거 지구가 맨 처음 물속에서 나왔다가 지구가 너무너무 심각해지니까 이 지구를 다시 탄생시키기 위하여 물도 덮었다가 다시 나왔어요.
이걸 성경 자체가 뭐라고 표현하고 있죠? 침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침례라는 게 도대체 뭐예요? 침례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맨 처음 의도하신 대로 세상을 땅에서 나오게 했는데 그 땅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
또 한 번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그걸 성경은 침내라고 표현하고 있죠.
여러분 이런 사건이 이후 구약에서도 또 반복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래 하나님 백성이에요. 하나님 언약 아래 사는 백성들인데 이들이 애굽에 들어갔습니다.
애굽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살았어요.
그러다가 모세라는 지도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다 이끌고 출애굽합니다.
애굽에서 나오자 하나님이 주시 하시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해 가는데, 가나안을 향해 가려면 반드시 홍해를 건너야 돼요.
그 홍해를 건너던 걸 뭐라고 말하는가 보세요 여기 출애굽기 14장 21절.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며 쫙 바다가 갈라지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로 지났습니다.
질문 여러분 홍해 바다가 언제 갈라졌어요? 모세가 지팡이를 바다 위에다가 탁 내미는 순간 쫙 갈라졌죠 어디서 보셨어요?
읽어보세요. 여러분 여기 읽어보세요.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며 여호와께서 큰 동봉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뭘 내밀자마자 갈라져요?
영화가 그렇게 해놨어요. 성경에 그런 거 없어요.
지팡이로 내미니까 밤새도록 바람이 불어서 갈라졌어요.
영화는 종종 성경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종종 잘못 묘사하는 게 많아요.
하여간 바다가 갈라지니까 그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바다 가운데로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믿음을 보시고 밤새도록 바람으로 이렇게 바다를 갈라놓은 그 가운데로 지나갔는데 이 사건이 무슨 사건인가 보세요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뭘 받았다고요?
침례를 받았대요.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어디 들어갔다 온 거예요?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거죠 이상합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게 창조의 질서 속에 나타나 있는 거거든요.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했다는 이 사실을 바로 아는 일이 너무 중요해요.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했기 때문에 이 땅이 다시 거듭나는 것이 다시 물에 들어갔다 나온 홍수 때처럼 이후 우리들도 사람들도
거듭난다는 의미는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다.
마치 홍수처럼 마치 홍해처럼 이것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 개개인에게 적용하여 만들어 놓은 제도가 뭔가 그때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신데,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소되 이제 허락하라 이렇게 해서 요한과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요단강으로 내려가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세.
죄 없으신 예수님도 인간이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다고 하는 표로 당신이 직접 물에 내려가서 침례를 받고 올라오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빌립이라고 하는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전도자였는데,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감동을 하셔서 어떤 사람이 지금 마차 타고 가는데 그 사람한테 가까이 가 그 사람이 지금 성경 읽고 있는데 무슨 뜻인지를 몰라 감동을 해서 필립이 다가가지요.
당신 성경 읽는데 그게 뭔 말인지 알아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성경을 배웠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이제는 하나님 뜻대로 좀 살아야겠다.
이제 내가 혼자 살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이걸 깨달으니까 뭘 하고 싶어요?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는 마음이 이루어지니까 침례받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옵니다.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이런 예식이 꼭 필요합니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종교는 마음의 문제이지 무슨 의식의 문제입니까?
생각할 수 있어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침내는 인간의 3대 인생사가 다 압축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요한복음 3장 1절로 7절에 보면 침내는 탄생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걸 성경은 아예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왜 거듭난다고 이야기할까요?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가 또 한 번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기 때문에 두 번 나니깐 거듭난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지구가 뭐 한 것처럼요 그때 홍수 때 거듭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뭐 한 것처럼 거듭난 것처럼 우리도 침례를 받음으로 뭐 한다는 거예요?
거듭난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하나님 믿는 의식이라는 거죠.
또 하나 에베서 5장 26절에 보면 이 침내는 언약의 의미 결혼이에요.
또 로마서 6장 3절 4절에 보면 이건 아예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새 생명이에요.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의식이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는 말에 대한 답을 제 나름대로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제가 산흥이라고 하는 곳에서 대학에서 선생을 하면서 옆에 있던 교회를 함께 돌보고 섬기고 도와주고 있던 때니다.
거기에 우리 교회 여집사님들이 여자분들이 동네 아주머니들을 만나가지고 이렇게 뭔가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한 분은 거기 아파트 주변에 몇몇 아주머니들을 모아서 이렇게 성경을 같이 공부하다 이 아주머니들이 물어봤습니다.
거기 그 모임에 처음 온 한 젊은 아기 엄마가 있었습니다.
아이 셋 데리고 있는 아기 엄마가 있었습니다. 각자 이 땅에서 꼭 이루고 싶은 게 뭐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이야기하는데 그 아기 엄마가 뭐라 그랬는가 하면 우리는 애 아빠 만나가지고 동거를 시작해서 아이 셋을 낳았는데 어쩌다 보니 아직도 예식을 못 했습니다.
나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면사포 쓰고 결혼 예배 한번 드리는 게 꿈입니다.
그 얘기를 우리 집사님들이 듣고 교회에 와서 우리한테 전했어요.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교회에서 그러면 우리 그 여자분에게 결혼식 해드리자 서프라이즈로 그 결의 직원들이 의논해가지고 결의가 됐어요.
그러니까 본인들에게 알렸습니다. 아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런 게 여기 있지 여러분 교인들이 모여가지고 그 아주머니하고 그 남편 그 두 분 있죠 애 셋 낳은 그분들 결혼식 준비하기 전 뒤지고 뭐 이렇게 하는데 그렇게 신나 하는 거예요.
근데 곤란해졌습니다. 그럼 주례를 누가 하냐 목사님 보고 해달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 부부가 남편도 아내도 다 저보다 나이가 많아요.
그 당시에 애가 셋이에요. 저는 애 둘밖에 없는데 아이 괜찮다고 괜찮다고 우리 교회 아주 이 동네 아주 유지가 되신 연세 드신 점자는 장로님이 계시니까 그분한테 하셔도 된다고 아니라고 우리 꼭 목사님한테 하고 싶다고 주례를 여러분 그래서 제가 첫 주례를
그분들한테 했어요. 애가 셋인데 제가 기왕 오케이 기왕에 하는 거 합시다.
그렇게 제가 추리하면서 아이들이 이렇게 하는데 자 우리 교우님들 아이들 데리고 잠깐 나가십시오.
이렇게 애들은 나가라 이렇게 결혼식이 끝난 다음에 제가 잠시 미국식으로 가겠습니다.
자 애들도 없으니까 이제 신랑과 신부는 키스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한 20년 만에 만났는데 그 애기 아빠를 만났어요.
잘 계시죠? 목사님 우리 저가 갔어요. 그래 작년 재작년에 제가 그 교회 가서 일주일 동안 집회를 했어요.
이분이 트럭을 몰고 운전하면서 그 아이 셋을 키우는데 너무너무 사정이 어려워요.
여러분 생계가 그분의 하루하루 트럭에 매달려 있는데 이분이 하루도 안 빠지고 그 일주일 집회를 다 참석해요.
괜찮으세요?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어요? 화해야죠 화해야죠.
이렇게 해서 눈물이 툭 제 손만 잡으면 막 울어요. 눈물 툭툭 떨어지 우리 집사람이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끌어안고 울고 그날 마치 안식일에 침례식이 있는데 그 침례식까지 다 나보고 또다시 저를 그렇게 끌어안고 그 덕분에 저는 그다음 날부터 코로나에 걸려가지고 아마도 그분한테 경험 계시지 않았나 싶어 우리 둘 다 얼마나 끙끙 앓았는지 몰라요.
아무리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무리 애를 셋 낳고 살아도 정말 사랑하면 혼례식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그게 아직도 진심으로 하나님 믿으면 되지 무슨 의식이 중요합니까?
아직 정말 예수님하고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정말 사랑하면 공인받고 싶습니다. 드러내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죠.
무릎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핵심이에요.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다시 태어남 결혼 언약 그리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 이 모든 의미는 정말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만 구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게 그저 단순한 형식으로 머리에 갖다 물을 부어도 돼 아니에요.
땅이 물에서 맨 처음 나와서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이 구절만 제대로 이해해도 머리에 갖다 물 붓는 것으로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땅이 범죄했을 때 물로 덮였다가 물에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다시 나왔다고 하는 그 의미를 조금만 이해하면 창세기에 나와 있는 1장의 지구 탄생의 역사를 조금만 이해하면 침례가 담긴 침례에 담긴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되지요.
저는 고 이때 1974년 5월 11일 그날 일요일에 경포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좀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말씀을 드리도록 하고요.
그렇게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다가 1년 후인 1975년 7월 12일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강원도 남대천에서요. 제가 봐도 저 얼굴이 참 예쁩니다.
젊은 분 참 예뻐요. 그렇죠 귀엽기도 해요. 제가 봐도 그런데 이거 제가 그냥 가린 게 아니고요.
저는 이 사진을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저를 침내주시는 목사님 팔만 나오고 양팔만 나오죠.
제가 이렇게 붙들고 있는 팔과 드신 팔만 나오고 햇빛이 들어가서 이 나머지가 다 그냥 광선이 들어가 버렸어요.
그래서 제 침대 사진은 빛이 많은 침대 사진이에요.
사람이 안 보이고 또 아주 아주 의미 있는 침대 사진이 됐습니다.
그저 우리 물론 목사님 모임은 또 기념이 되겠지만 저는 해석을 그렇게 합니다.
오 빛이만 침내시 이렇게 침례를 받고 저도 목사가 되고 그래서 한 번은 성지 순례하는 곳에 가서 침내탕이 있길래 제 아내를 붙들고 다시 한 번 침내주듯이 한번 이렇게 성지순례 중에 이렇게 사진을 찍었지 이후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침내식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침내식 중에 평생 잊지 못하는 제 삶에서 가장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한 침례식을 소개해 드립니다.
이 사진은 제 초등학교 졸업 사진입니다. 이 아이들 중에서 저를 한번 찾아보십시오.
못 찾으시겠죠?
힌트 둘째 줄에 있습니다. 힌트 왼쪽에서부터 첫 번째 아이는 아닙니다.
두 번째 아이도 아닙니다. 세 번째 아이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네 번째 아이겠지요 이 아이의 모습 속에서 지금의 제 모습이 보이시는지요?
안 보이죠 참 많이 좋아졌다. 그렇죠 그리고 이 한 친구의 얼굴을 기억해 주십시오.
저의 그 당시 가장 친했던 베프 베스트 프렌드입니다.
그리고 또 이 한 동창 친구의 얼굴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날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찍은 다음에 남자들은 다시 정문 앞에 나와서 사진 찍었습니다.
여기 제일 큰 친구는 저희보다 4살 많아요. 그 옆에 친구는 저보다 3살 많고 그 당시에는 뭐 다 3살 4살 많은 친구들이 많았잖아요.
이 사진에 사실 이 앞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 동창들은 다 저희보다 3살 4살 위입니다.
이 중에 이제 제가 여기 있고요. 제 가장 친한 친구가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남자들끼리 둘이 사진 찍고 또
또 이렇게 찍은 다음에 또 가장 친한 두 친구하고 같이 찍었죠.
이제는 보이죠. 제 친구는 가게 빵집 아들이라 잘 먹어서 얼굴이 피둥피둥하고 저는 북한의 꽃제비하고 비슷하지 먹지 못해서 1970년 2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헤어진 친구들을 50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저와 제 친구와 아까 보여드렸던 제 여자 동창 친구 왜 이렇게 이날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을까요?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찍은 다음 1970년 2월 10일 이 사진을 찍은 다음 50년 세월이 지난 다음 2019년 3월 30일 이런 모습으로 저와 제 동창 친구가 다시 만났습니다.
제가 대학에 선생을 하고 또 대학의 총장의 직임도 마치고 이제 은퇴하기 전에 빨리 고향 가까이 가고 싶어서 서울에서 강릉 가운데쯤 되는 횡성군 둔내면에 터를 잡고 가끔 가끔 고향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친구가
어떤 곳에 가 있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우연하게 사실은 저희 집안 일 때문에 그 강릉 친구들하고의 만남을 갑자기 전화를 했는데 그날 갑자기 그야말로 번개팅이라고 그러잖아요.
번개 만남으로 동창들 한 6~7명이 50년 만에 만나서 이야기하고 헤어지려고 그러는데, 우리 친구가 왔다가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고통을 겪었던 친구입니다.
그날이 목요일이었는데 상대가 내일 모레는 안식일이잖아 그래요 깜짝 놀랐습니다.
너가 내일 모레가 안식일인 줄 어떻게 알어?
내가 어디 어디 가 있어? 왜 내가 몸이 좀 안 좋아 그 다음 주부터 그 친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주말마다 달려가서 처음으로 가서 앉았는데
저녁에 테이블에 같이 식탁에 앉았는데 친구야 내가 기도해도 될까 기도해주게.
모두가 교회에 나와도 이 친구는 교회 안 나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친구와 함께 밥을 넣고 상상하지 못하던 기도하는 순간을 갔는데 제가 목이 메어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부터 전화로 하고 가서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버지요 주의 사랑하는 아들 조중근 형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 개인의 구조로 받아들이고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 살기로 결심했으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에게 침례를 베푸나이다.
아멘
친구가 침례를 받은 다음에 내가 60이 넘어 침례를 받다니 그것도 초등학교 친구 목사님에게 침례를 받다니 이렇게 하면서 모임에서 말을 잊지 못해요.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친구의 소식이 또 왔고, 내가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예배를 다 들려주고 마지막 가는 데까지 보내주고 난 다음에 대관령을 넘어오는데 정말 제 마음속에 예수님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가 돼서 이때 고향 가까이 가 있으므로 친구에게 침례를 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때 내가 거기 가 있기를 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그런 게 어딨어 세상 다 흘러가는 거지 허니 이는 하늘에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에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그날 심판과 멸망의 순간을 맞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시기 위해 그것이 침례라고 하는 사실을 알려주시는 거지요.
그게 복음이라는 거지요. 그게 우리에게 거듭남이라는 거죠.
주님이 주시는 이 소중한 은혜가 여기 이 자리에 함께하시고 이 순간 이 말씀을 함께 듣는 모든 분들에게 함께하셔서 정녕 거듭남의 생명, 새 삶의 약속이 우리들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셔서 주님과 함께 주님과 함께 주님과 함께 거듭남의 새 생명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마음에 조용히 임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을 향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IQ가 높아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고 마음이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온, 즉
우리 마음을 그런 마음을 갖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주님이 주시는 부인할 수 없는 은혜에 호소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을 영접하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감동해 주옵소서 붙잡아주옵소서 그 약속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를 부활의 약속을,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햇빛처럼 함께 누리는 우리가 되게 해 주시고, 하루를 살더라도, 이틀을 살더라도, 1년을 살더라도 부활의 약속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붙잡아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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