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달아보시는 하나님” 量られる神様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 보면 위대한 왕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위대하다>는 뜻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크게 쓰임을 받은 왕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세상적으로 많은 권세를 자랑했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와 같은 왕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입니다. 그는 바벨론의 왕이었으며 예루살렘을 몇 번이나 침공하고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온갖 금과 은 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포로로 잡아갔다고 해서
모두 노예로 삼아가지고 힘든 노동을 시킨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지혜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밑에서 정치나 행정업무를 맡기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니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역시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만, 그는 다니엘 2장에서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이 꾼 꿈을 해석해줌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바벨론 총리를 맡게 됩니다. 그가 관직에 있었던 기간을 보면, 다니엘 1장 1절에 보면 유다왕 여호야김이 다스린지 3년 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이 공격을 하면서 포로로 끌려갔다고 하는데, 이 시기가 기원전 605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장 21절에
보면 다니엘이 있었던 시기가 고레스왕 원년까지라고 하는데, 고레스왕/クロス王 은 페르시아 왕입니다만, 그 시기를 기원전 536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단순계산으로 70년간이나 당대 왕을 섬겼다는 것이니, 왕이 바뀌고 나라가 바뀐다 하더라도 누구나가 다니엘을
중용했다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지혜롭고 뛰어난 인물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다니엘 5장에 보면 벨사살/ベルシャツァル 이라고 하는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천하를 호령하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의 후손이었습니다. 2절에 보면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이 그의 부친이라고 나옵니다만, 신학자들에 의하면 그가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직접적인 아버지와 아들이라기 보다는, 조상과 후손……이라는 관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합니다.
그런데 그 대단했던 왕의 후손인 이 벨사살/ベルシャツァル이라고 하는 왕은 어땠냐 하면 그 행함이 대단히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다니엘 5장 1절~3절을 봅니다.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이에 예루살렘
v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
ベルシャツァル王は、千人の貴人たちのために大宴会
を催し、その千人の前でぶどう酒を飲んでいた。ベルシャツァルは、ぶどう酒を飲みながら、父ネブカデネザルがエルサレムの宮から取って来た金、銀の器を持って
来るように命じた。王とその貴人たち、および王の妻とそばめたちがその器で飲むためであった。そこで、エルサレムの神の宮の本堂から取
って来た金の器が運ばれて来たので、王とその貴人たち、および王の妻とそばめたちはその器で飲んだ。
이 벨사살/ベルシャツァル 왕은 귀족 천 명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던 중에 자신의 아버지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온 금그릇과 은그릇을
가져오게 해서 그것들로 술을 마시고 거하게 놉니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냥 술을 먹고 노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 있었던 금 그릇과 은 그릇들을 가져다가 그것으로도 술을 마시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바쳤던 헌물을 다시 가져다가 자기들을 위해서 쓰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짓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다니엘 5장 4절에 적혀 있습니다.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彼らはぶどう酒を飲み、金、銀、青銅、鉄、木、石の神々を賛美した。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있었던 물건들을,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자신들의
희락을 위해 더럽혔을 뿐만 아니라 금이나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어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다음 구절, 다니엘 5장 5절을 봅니다.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すると突然、人間の手の指が現われ、王の宮殿の塗り壁の、燭台の向こう側の所に物を書いた。王が物を書くその手の先を見たとき、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그 손가락이 석회벽에 글자를 썼다는 것이지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쾌락에 가득 찼던 그 잔치자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와중에 왕이 얼마나 놀랐는지에 대한 묘사가 참으로 리얼합니다. 다음 5장 6절입니다.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王の顔色は変わり、それにおびえて、腰の関節がゆるみ、ひざはがたがた震えた。
참 묘사가 흥미롭죠?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칠 정도로 벌벌 떨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때 나타난 손가락이 쓴 글자가 도대체 뭐라고 썼는지 해석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걸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은 왕뿐만이
아니었습니다.
5장 8절을 봅니다.
“그 때에 왕의 지혜자가 다 들어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그 해석을 왕께 알려 주지 못하는지라”
その時、王の知者たちがみなはいって来たが、彼らは、その文字を読むことも、王にその解き明かしを告げることもできなかった。
지금도 왕이나 대통령, 총리 주변에는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만, 당시도 역시 마찬가지였겠지요. 갑자기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글을 썼다고 한다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거기 있던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그
글씨를 읽을 수도 없었고 해석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앞의 7절에 보니까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
王は、大声で叫び、呪文師、カルデヤ人、星占
いたちを連れて来させた。王はバビロンの知者たちに言った。「この文字を読み、その解き明かしを示す者にはだれでも、紫の衣を着せ、首に金の鎖をかけ、この国の
第三の権力を持たせよう。」
이를 해석하는 사람한테는 내가 이렇게 큰 상도 주고 벼슬도 주겠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얼마나
두렵고 답답했겠습니까.
그런데 마침 왕비가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당신 신하 중에 다니엘이라고 하는 인물이 있지 않느냐, 다니엘을 불러서 한 번 물어보라고
조언을 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왕 앞에 서고는 그 글씨를 해석하는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해를 돕기 위해서 5장의 순서를 조금 바꾸어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손가락이 나타나서 썼다고 하는 그 문제의
글씨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その書かれた文字はこうです。『メネ、メネ、テケル、ウ・パルシン。』
이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하는 말은 아람어라고 합니다. 아람어라고 하는 말은 당시에도 통용되던 언어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지혜자들도 읽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읽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두고 누구는 글씨체가 고대 문자로 쓰여졌기
때문에, 또 누구는 그 쓰여진 글씨는 사람의 힘으로는 읽지 못하는 글씨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또 어떤 분들은,
그 글자를 읽을 수는 있었으나 해석을 할 수 없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글자 뜻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우선 <메네>라고 하는 말은 <수를 세어 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 둘,
셋……이렇게 물건을 세다……라고 하는 말이 <메네>입니다.
그 다음에 <데겔>이라는 말은 <저울에 달아보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시장에서 고기나 야채를 살 때 보면, 간혹 아직도 무게를 저울에
달아서 거래를 하기도 합니다만, 바로 그런 식으로 무게를 저울에 달아본다는 뜻이 <데겔>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바르신>이라고 하는 말은, 정확하게는 <우> <바르신>입니다. 여기서 <우>라고 하는 말은 <그리고>라고 하는
접속사이고, <바르신>이라는 말은 <베레스>라고 하는 단어의 복수형 수동태라고 하는데, 그럼 <베레스>는 무슨 뜻이냐고 하면,
나누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나누다>는 말을 복수형 수동태가 <바르신>이라고 하니, 이것은 <두 개 이상으로 나누어지다>는
말이 됩니다.
여기서 다시 석화벽에 쓰여진 글씨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하는 말을 직역을 해보면,
<세어보다, 세어보다, 저울에 달아보다, 그리고 둘로 나누어지다>
…가 됩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그러니까 그 자리에 있던 지혜자들이 석화벽에 적힌 이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 드디어 해석을 하게 됩니다. 이 해석은 크게 3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첫째는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에 대한 배경설명이고, 둘째는 벨사살/ベルシャツァル 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지적, 그리고 셋째는 석화벽 글씨의 해석입니다.
먼저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에 대한 배경설명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8절에서 21절까지의 기록입니다.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v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살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王さま。いと高き神は、あなたの父上ネブカデネザルに、国と偉大さと光栄と権威とをお与えになりました。
神が彼に賜わった偉大さによって、諸民、諸国、諸国語
の者たちはことごとく、彼の前に震え、おののきました。彼は思いのままに人を殺し、思いのままに人を生かし、思いのままに人を高め、思いのままに人を低くしました。
こうして、彼の心が高ぶり、彼の霊が強くなり、高慢にふるまったので、彼はその王座から退けられ、栄光を奪われました。
そして、人の中から追い出され、心は獣と等しくなり、野ろばとともに住み、牛のように草を食べ、からだは天の露
にぬれて、ついに、いと高き神が人間の国を支配し、みこころにかなう者をその上にお立てになることを知るようになりました。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에게 엄청난 권력과 권세를 주어서 세상이 모두 그에게 굴복하게끔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교만하게
되어서 쫓겨났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짐승들과 같이 살면서 풀을 뜯어먹었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진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도 본인이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4장 30절~34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
v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v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王はこう言っていた。「この大バビロンは、私の権力によって、王の家とするために、また、私の威光を輝かすために、私が建てたものではないか。」
このことばがまだ王の口にあるうちに、天から声があった。「ネブカデネザル王。あなたに告げる。国はあなたから取り去られた。
あなたは人間の中から追い出され、野の獣とともに住み、牛のように草を食べ、こうして七つの時があなたの上を過ぎ、ついに、あなたは、いと高き方が人間の国を支配し、その国をみこころにかなう者にお与えになることを知るようになる。」
このことばは、ただちにネブカデネザルの上に成就した。彼は人間の中から追い出され、牛のように草を食べ、そのからだは天の露にぬれて、ついに、彼の髪の毛は
鷲の羽のようになり、爪は鳥の爪のようになった。
その期間が終わったとき、私、ネブカデネザルは目を上げて天を見た。すると私に理性
が戻って来た。それで、私はいと高き方をほめたたえ、永遠に生きる方を賛美し、ほめたたえた。その主権は永遠の主権。その国は代々限りなく続く。
이것을 두고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이 정신적으로 이상하게 되어서 광야에서 유랑했다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7년 동안을
들짐승들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뜯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진정으로 이 나라를 다스리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총명함이 돌아와서 다시 왕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정말로 정신병이 들어서 유랑생활을 했었는지, 아니면 모든 사람들로부터 쫓김을 당해서 동안 정처 없이 방황하고, 먹는 것조차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의 교만함이 하늘을 찌를 때 사람들한테 쫓겨나고, 7년이라고 하는 오랜 세월 동안,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면서 고생을 한 후에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랬더니 모든 영광과 권세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둘째로, 지금 당사자인 벨사살/ベルシャツァル 에 대해서 말합니다. 23절~24절입니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
v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その子であるベルシャツァル。あなたはこれらの事をすべて知っていながら、心を低くしませんでした。
それどころか、天の主に向かって高ぶり、主の宮の器をあなたの前に持って来
させて、あなたも貴人たちもあなたの妻もそばめたちも、それを使ってぶどう酒を飲みました。あなたは、見ることも、聞くことも、知ることもできない銀、金、青銅、鉄、木、石の神々を賛美しましたが、あなたの息と、あなたのすべての道をその手に握っておられる神をほめたたえませんでした。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기서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후손>이라고 이해한다고 하면, 벨사살/ベルシャツァル 왕이여, 당신은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의 후손이고, 그러니 당연히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 왕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교만하게 굴고,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을 가지고 욕보이고, 그것들도 모자라서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 요즘 말로 하면, 그야말로 듣보잡, 듣도 보도 못한 잡신들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고
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글씨를 써서 하나님께서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셋째로 이 글자의 의미를 다니엘이 해석하는데 그 해석이 26절~28절에 있습니다.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そのことばの解き明かしはこうです。『メネ』とは、神があなたの治世を数えて終わらせ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
『テケル』とは、あなたがはかりで量られて、目方の足りないことがわ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
『パルシン』とは、あなたの国が分割され、メディヤとペルシヤとに与え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
이 벨사살/ベルシャツァル이 왕이 된 것은 기원전 550년이라고 하고,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기원전 538년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된지 13년째가 되는 해였던 것이지요. 이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를 한 번만 세어본 게 아니야. 몇
번이고 세어봤어. 그리고 어디 그 뿐이야? 저울에 달아보기까지 했어. 그러니까 이는 무슨 뜻이냐 하면, 너를 지금까지 하나만 본 게
아니야. 이렇게 보기도 하고, 저렇게 보기도 해봤어……라고 하는 뜻이지요. 몇 년 동안이요? 예, 적어도 13년 동안 네가 왕으로
있으면서 하는 짓을 여러 가지로 평가해봤어. 그런데 어땠다는 거예요? 예, 도저히 안 되겠다는 겁니다. 회복 불능. 너는 이제
끝이야. 라고 한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우-바르신……즉 그 나라를 갈라서 메대와 바사한테 줘버리겠다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석화벽에 쓰인 글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세다, 세다, 저울에 달다, 그리고 나누어진다>라는 말만을 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만, 이렇게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대로 해석을 하니까 모든 수수깨끼가 풀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해석을 들으니까 벨사살/ベルシャツァル 왕이 어떻겠어요? 다니엘이 왕한테 말을 한 지적이 조목조목 모두 맞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도 반박할 수가 없어요. 일이 이렇게 되니 벨사살/ベルシャツァル 왕이 7절에서 약속했던 상을 다니엘에게 내립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됩니까. 30절에 의하면 바로 그날 밤 죽임을 당하고 결국 그 찬란했던 바벨론이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신다. 이것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예, 맞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主は、ある人たちがおそいと思っているように、その約束のことを遅らせておら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かえって、あなたがたに対して忍耐深くあられるのであって、ひとりでも
滅びることを望まず、すべての人が悔い改めに進むことを望んでおられるのです。
여기서 주의 약속은 심판의 왕으로 다시 오실 날을 말합니다. 주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가 잘못이 있고 죄를 짓고 해도 오랫동안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기는 하지만, 영원히 참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심판의 그 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벨사살/ベルシャツァル 왕이 당했던 심판을 피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보면 이른바 <몰래 카메라>라고 하는 방송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개그맨 이경규씨가 진행하고 계셨습니다만,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어떤 내용이에요? 말하자면 연예인들을 몰래 촬영하면서, 무슨 속이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러면 그
연예인들이 실수도 하고 창피도 당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좀 그런 방송을 잘 못 보는 성격이라서 자주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우리 한 번 생각해봅시다.
물론 그 방송은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서 마치 아무도 안 보는 것처럼 해놓고, 그리고 그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좀 황당한 행동을 하게끔
유도를 하는 것입니다만, 그 연예인들이 걸려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몰래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연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리게 되면 연예인이 모든 비밀을 알아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실수도, 당혹스러운 행동도 하지 않게 되고,
그러니까 당연히 돌발상황도 벌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거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우리를, 설마 주님께서 미워하시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럴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세어보고 계시구나, 지금
달아보고 계시구나……만약에 이 사실을 모르면 그냥 하나님을 원망하고 나 스스로 절망하고 그럽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구나, 지금 나를 저울에 달아보고 계시는구나, 라고 하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 第一テサロニケ人への手紙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いつも喜んでいなさい。
絶えず祈りなさい。
すべての事について、感謝しなさい。これが、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神があなたがたに望んでおられることです。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몰래 카메라>라는 방송을 생각해보십시오. 예를 들어서 무슨 사고가 날 것 같아요. 일이
터질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로 사고가 나나요? 일이 터지나요? 그러면 정말 큰일 납니다. 방송을 할 수가 없어요. 몰래 카메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 결정적인 순간에, 사고가 나고 일이 터질 바로 그 직전에,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몰래 카메라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을 짓궂게 하고 골탕먹이게 해서 그걸 보고 웃으려고 하는 방송입니다만,
하나님도 우리를 그런 의도로 엿보고 계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21편 3절에서 8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
v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主はあなたの足をよろけさせず、あなたを守る方は、まどろむこともない。
見よ。イスラエルを守る方は、まどろむこともなく、眠ることもない。
主は、あなたを守る方。主は、あなたの右の手をおおう陰。
昼も、日が、あなたを打つことがなく、夜も、月が、あなたを打つことはない。
主は、すべてのわざわいから、あなたを守り、あなたのいのちを守られる。
主は、あなたを、行くにも帰るにも、今よりとこしえまでも守られる。
아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지켜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인생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아,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나를 달아보고 계신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이기면 넘치는 축복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또한 이는 어려움이 있을 때만이 아닙니다. 잘될 때,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일이 잘 풀릴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럴 때일수록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 드리고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 앞이 가로막혀 있을 때, 그것은 절망의 신호가 아니라 축복의 신호입니다. 주님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찬양하시겠습니까.
스스로 절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의지하시겠습니까.
거기서 주저앉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일어서서 주님과 함께 나아가겠습니까.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스스로 교만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께 감사하겠습니까.
모든 공로를 나한테 돌리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우리 모두, 어떠한 일이 있을 때든지 사랑의 주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믿음을 갖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 때라도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과 함께 나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일이 잘 풀릴 때라도 교만하지 않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드리는, 그리고 마침내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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