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
정현수
K형, 참으로 오랜만에 당신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그동안 어머님도 안녕하시고 당신도 여전한지요. 여긴 모든 게 소원해지는 겨울입니다.
우리가 젊었던 쌍 팔 년도 여수를 여행하던 어느 선창가 선원 술집을 기억합니까? 막걸리를 마시며 금기시했던 몹쓸 세상을 안주 삼아 처음 본 이웃 탁자 아저씨들과 티격태격하던 그때 말입니다. 또 센티해진 기분으로 서로의 연애사를 쫄깃쫄깃하게 이야기하며 낭만을 즐기던 그 시절, 사랑에 살고 곧 사랑에 죽을 것 같은 뭔가 항상 아쉬움을 느꼈던 우리의 청춘 시대 말입니다. 누구나 똑같은 생각이겠지만 딱 한 번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땐 모두가 가난했지만 각박하지도 않고 웬만하면 서로 용서가 되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습니까? 조금은 부족하고 경솔해도, 약간 산만하더라도 후한 선배나 어른들 덕분에 정치적 어려움 외에는 살기가 정말 좋았지요.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허무가 느껴집니다. K형, 그동안 나에게서 멀어져 있던 것이나 기억에서 사라져 갔던 것들이 순간 튀어나와 나를 잠에서 깨우듯 모든 것이 선명해집니다. 지금은 뭔가 한계를 느껴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가깝고도 먼 풍경을 보듯 결코 수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또 견뎌야죠. 지금까지 나를 훈련하고 다듬었던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으니 까요.
노을이 져 가는 저 멀리 바다 한쪽 언덕에 고르지 않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성냥갑 같은 집들에 둘려 싸인 교회 십자가의 희미한 실루엣에 슬픈 애상이 얹어 저 있는 듯합니다. 종종(種種) 싸늘하거나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노을빛 하늘에 짓눌리는 무게에 어지간히 힘을 잃은 벌거벗은 나목이 새 둥지를 품어 책임을 다하듯 서 있습니다. 내 정수리 위의 색이 바랜 잿빛 하늘에 가느다란 물들임이 반복되는 환희에 순응하는 듯도 합니다. 네온은 막 반짝이기 시작했고 산 너머에는 어두움이 스미고 있습니다. 힘을 잃은 동백 이파리는 마지막 나래를 펴 듯 등짝이 훤하고 선명합니다. 어두워지는 하늘과 대비(對比)를 이룹니다. 그 밑, 땅바닥에 나뒹구는 한 송이 동백꽃이 반쯤 오므라져 서럽고 깊은 상념에 빠져 있는 것 같아 보기 좋게 애처롭습니다. 돌산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여수 노을은 거리낌 없이 목가적이고 한없이 서정적이며 끝없이 정열적이기도 합니다. 불꽃을 담은 어느 사내의 시선이 다소곳하고 처연하게 서 있는 어떤 여인을 무념하게 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마음을 예쁘게 꿰뚫어 보듯 지극히 아름답습니다. 허용됨과 금지됨이 섞인 자연과 만들어짐을 망라한 모든 것에 고고함이 묻어 있어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신이 별 뜻 없이 만들어 낸 경관이지만 나한테는 그럴듯한 것들이 꽉 찬 선물 상자 같습니다. 노을은 점점 짙어져 그리움에 빠지게 하고 밝아오는 네온의 빛은 사람 사는 세상의 각양각색의 운명적 삶과 같습니다. 하릴없이 움직이는 물방개 같은 배들은 귀항을 서두르고 바다 너머 포차 마을 일렬의 불빛이 하나씩 밝아 옵니다. 여수 만의 호수 같은 바다에 불빛이 물결에 가볍게 출렁이고 이제 온 세상은 환했던 빛의 부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더 아픈 안쓰러움을 느끼고 싶어 천천히 걸어 낭만 포차 마을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습니다. 내 삶에서 스러져 간 아쉬움을, 눈 뜨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미련과 함께……
돌산대교 중간에서 난간 아래 어둠에 묻힌 바다를 봅니다. 조용하고(자유스러운) 잔잔한 침묵이(평화) 그지없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K형, 내가 무덤덤하고 멍청한 자유를 좋아하고 있는 것 알고 있지요. 삶의 하찮은 것들이 내 자유의지를 꺾을 수 없으며 그것들이 나를 압박하면 할수록 내 저항 의지는 우선은 생각 없이(?) 용수철같이 튀어 오르는 단순함을. 물론 책임은 느껴야겠지요. 허용된 경계 안에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여수만 바다에 비치는 불빛과 주변 환경 그리고 서정을 담은 밤바다의 아늑함에 고독이 느껴집니다. 내가 남들과 가까이하려는 의지는 여전하지만 도리 없는 본래 태생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느끼는 내 내면도, 어두운 바다에 비치는 초라한 내 모습도, 그저 그렇네요. 그러나 화려함이나 아쉬움에 섞이지 않고 고독을 즐기는 것은 나와 나 자신이 더욱더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고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여 미터 앞 희미한 연두색을 띤 바다에 몇 척의 배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게 꼭 소들이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거나 한가로이 엎어져 있는 거 같습니다. 정말 평화롭습니다. 저 서정적 풍경은 자연스레 그것에 어울리고 격에 맞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 밤 모든 감성들이 내게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됩니다. 앗! 저기 음침한 해변가 난간 기둥에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열렬한 키스를 하고 있군요. 어두움 속에서 윤곽을 드러내는 그들의 정열적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옵니다. 사랑을 가득 머금은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폭폭 하고 하찮았던 일상을 극복하고 완성하려는 의지의 행위일 수도 있지 않나 짐작해 봅니다. 아마 내 나름의 이기적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여기 이곳의 형태와 같이 알파요 오메가의 충만하고 완성된 기쁨일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하는 마음이 영원히 지탱할 수 있도록 견고하고 확실한 의지의 행위일 뿐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포장마차가 좌우로 죽 이어진 광장에 다다랐습니다. 낭만 포차? 결코 낭만이 아닌 도떼기시장입니다. 완전히 실망입니다. 여기저기 손님을 부르는 호객 행위와 복잡하고 삭막한(?) 풍경은 우리나라 다른 큰 시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동떨어져 도대체 낭만과 연관 관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만치 않는 가격도 타협된 합의인지 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두 시쯤 향일암에서 먹은 두 꼬챙이의 어묵이 오늘 끼니 전부였는데 저녁 먹는 걸 포기해야 할 듯합니다. 하루 굶어서 죽는 것도 아니고…
까치 설이라 연인보다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이 보이네요. 특히 보는 재미가 쏠쏠한 삼 대 가족이 돋보입니다. 할아버지 품에 안긴 손주와 할머니 손을 잡은 손녀는 야광 장난감 장수 아저씨 얼굴을 바라보며 애틋한 구애를 합니다. 아저씨의 공교한 장난감 솜씨에 혼이 빠진 듯 천진하고도 멍한 아이들 모습이 내 마음을 후비고 있습니다. 결국 할아버지 지갑이 열립니다. 사랑과 정(情)의 더께가 충만한 모습입니다. K형, 당신이나 나나 경험하지 못한 야무진 꿈일 것입니다. 지금 난 한 오라기로 이어지는 연민을 아니 생각할 수 없군요. 때려야 땔 수 없는 한 올을 가까이에서 부여잡고 싶은 몸부림만이 가득합니다.
K형, 서정적 시를 낭송하는 어느 시인의 존재를 우리가 가볍게 이해할 수 있음은 그 안타까움이나 애틋함이 우리 마음에 쉽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무겁고 난해한 현대시 보다 서정시를 더 공감하는 것은 어쩌면 평범한 그것들이 우리 생활과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듯 어려움 속에서 나 자신을 아무렇게나 하는 것보다 그냥 평범하게 휘둘리지 않고 꽉 찬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가끔 여행도 다니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도 마시며 사는 이곳 생활이 차쯤 마음에 들고 있습니다. 무턱대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해찰하며 이것저것 느끼며 여기저기도 다녀보고 싶습니다. 외국 여행은 꿈도 뭇 꾸지만 가까운 곳이라도 자주 돌아보고 싶습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뭔가가 유야무야가 되지 않고 생각만 철 없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삶을 살지 않으려 노력할 겁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므로 갖가지 의미를 찾는 것에 정진할 것입니다. 되도록 나를 사랑하는 방향으로, 그럼으로써 흔적이 뚜렷이 남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당신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2019.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