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친 구
1
환한 햇빛이 얼굴에 내리쬐었다.
"오랜만에 보는 해로군."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온 사내가 뱉은 말이었다. 한참동안 말을 하지않았던지 목이 쉬어있었다.
"흠......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는군. 한참동안 말을 하지않아 목소리가 안 나올 줄 알았더니......"
검은 머리는 한동안 자르지않았던지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와있었다. 그의 이마에 메어져 있던 붉은 머리띠는
색이 좀 바래있었을 뿐 그다지 다른 흔적은 없었다.
"흠...... 이제 어디로 가지......? 우선...... 집으로 가야겠지......? 킥킥...... 나이라세는 잘 지내고 있을까? 아버지는
몸성히 계시겠지?"
뒤에 아버지이야기를 할땐 알게모르게 엄숙해지는 사내였다.
몸에는 여기저기에 흉터가 나있었다. 누가보면 조직폭력배로 볼정도로...... 몸도 그것을 뒷받쳐주듯 굉장히 우
람했다.
그 사내는...... 라이샤였다. 6년동안 성지에서 수련을 한 결과로 굉장히 긴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을 얻었
고 온몸구석구석에 붙은 근육을 얻을 수 있었다. 앞의 두개는 별 필요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지근처에는 생각보다 몬스터가 많이 출몰했다. 빛을 내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많이 몬스터가 나타
나서 라이샤를 괴롭혔다. 너무 많은 몬스터가 나타나서 상대를 다 하지못하고 정신을 잃고나서 일어나면 그
몬스터들은 누가 죽여놓았는지 모두 사망상태로 가있었다.
배가 고프거나 생리현상(!)을 봐야하건만 그 건물곁에만 있으면 나오려던것도 다시 들어가버렸다. 이상한 현
상이었다.
한 3년정도 지내고나니 몬스터도 라이샤의 무식함(?)을 알아보는지 한동안 덤벼들지 않았고 그 덕에 라이샤
는 숲으로 몬스터사냥을 하러들어가야했다.
그렇게 보낸세월이 3년......
그리고 라이샤는 문득 '그녀'가 보고싶어졌다. '그녀'를 보고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가서 결국 그 성지를 벗
어나고 다시 그 곳, 자신의 고향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인 네갈로 돌아가기위해 길을 나서게 된
것이다.
그는 그렇게 3일을 걸었다. 6년동안 잊고 있었던 느낌인 배고픔과 마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마려움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으나 배고픔만은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헉...... 배, 배고파...... 이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군....... 죽겠다......"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끌어내어 뱉은 말은 바로 이것...... 그는 그 심정대로 엄청나게 배가 고팠던 것이다. 배
를 쥐고 헉헉 거리다 결국 쓰러진 그에게 어떤 자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보다 더욱 큰 몸을 가지고 한 손에는 거대한 멧돼지한마리를 들고서는 천천히 라이샤에게로 다가오고 있
었다.
그 자는 천천히 다가오다가 라이샤와 간격을 얼마두지 않고 자리를 잡고 앉더니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리
고는 자신이 가져온 멧돼지를 불에 굽기시작했다.
쓰러져 있던 라이샤는 갑자기 몸한가운데서 힘이 솟기시작했다. 6년동안 느끼지 못했던 그의 '배고플때만 나
오는 힘'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고기를 굽는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달려갔다.
천천히 라이샤의 눈에 그 사내가 보였다. 그 사내는 갈색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마엔 갈색
의 머리띠가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라이......."
"우아아악! 우걱우걱. 쩝쩝. 콰드득."
그 사내는 다가오는 라이샤를 보고 인사를 하려 했지만 라이샤는 모든것을 무시한채 오직 멧돼지고기만을 먹
었다.
허겁지겁 고기를 먹는 라이샤의 모습을 보며 그 사내는 얼굴에는 웃음을 띄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나도 변하신 것이 없군요, 라이샤 님......."
"쩝 쩝 쩝......"
"6년 동안 아주 강해지신 것 같군요...... 굉장한 기가 느껴지는 군요......"
"쩝쩝쩝쩝......"
"허허허...... 그렇게 잡수시다간 체하시겠습니다. 여기 물도......"
그 사내가 내미는 물통을 라이샤는 바로 뺏어서는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 라이샤를 보고 그 사내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멧돼지 고기가 몽땅 사라졌다. 라이샤에게 6년동안 잊고 있었는 느낌이 되살아나면서 6년
동안 먹지 못하던 것을 먹은것이었다.
"휴...... 배부르다......"
불룩해진 자신의 배를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배를 쓰다듬고 있던 라이샤는 그제서야 자신의 옆에 누가 있
다는 것을 눈치챘다.
"엇? 당신은 누구......?"
하지만 그 사내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주먹이 라이샤의 얼굴로 돌진했을 뿐이었다.
"엇......?"
라이샤의 몸이 뒤로 움직였다. 라이샤가 다 피했다고 생각했을 즈음 다시 그 주먹은 꺾어져서 다시 라이샤에
게로 움직였다.
라이샤는 본능적으로 피할수 없다고 느끼고 그냥 맞기로 했다.
퍽
무언가가 맞는 소리가 나면서 라이샤와 그 사내는 동시에 뒤로 쓰러졌다.
라이샤는 얼굴을 맞은 것이었고 그 사내는 라이샤가 맞는 순간 라이샤의 발이 움직여서 그의 얼굴을 차버린것
이었다. 이 행동은 오직 라이샤의 순발력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가오는 주먹을 보고 오직
아무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뭐얏?"
"크으으으......"
"나랑 한번 붙자는 거냐? 좋다. 내가 상대해주지."
그 사내는 아프다는 듯이 맞은 얼굴을 감싸쥐고 있었고 라이샤는 상대해 주겠다는 듯이 일어서서는 폼을 잡
았다.
"크으으으...... 정말 강해지셨군요......"
"응? 이 말투는 어디서 많이 듣던......?"
라이샤는 손으로 가려 반쪽밖에 보이지 않는 그 사내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누구였지......? 기억이 날 듯 말 듯......?"
"역시...... 라이샤 님이 맞군요...... 아까 실력을 보고 라이샤 님이 아닌줄 알았습니다."
"아, 맞다! 너......"
기대한다는 듯 그 사내의 시선이 라이샤의 입쪽으로 갔다. 그리고 그 입은 천천히 움직였다.
"나이라세지! 너 나이라세인데 나 놀려먹을려고 이렇게 변한거지! 내가 속을 줄 알았냐?"
괜히 기대했다는 듯이 그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흔들며말했다.
"물은 제가 잘못이군요. 전 퉁가리입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전에 숲까지 같이 왔었을 텐데......"
"퉁가리, 퉁가리라......."
"생각보다 기억력이 없으시군요......"
"아, 맞다! 너......"
또다시 퉁가리의 시선이 라이샤의 입으로 갔다. 그리고 그 입은 또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그때 괴물을 나에게 맞기고 도망간 녀석 맞지?"
"아, 그땐 제가 사정이 있었습니다. 전 그때 라이샤 님이 죽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지요."
"그걸 아는 놈이 안 도와줘?"
"그건 저에게 사정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건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오호라...... 그래? 그럼 그 사정이 뭐지?"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
잔인한 미소가 라이샤의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네가 말하는 사정이...... 혹시 천사가 나타나 널 끌고 갔다...... 이런거냐?"
"어...... 그것을 라이샤님이 어떻게...... 커헉!"
"잉? 사실이야? 음...... 그냥 집어본건데...... 그런데 뭘 그리 놀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 어떻게 아신거지...... 집었다고 해도...... 너무나 정확해. 혹시...... '그 힘'이 깨어나고 있는건가?'
라이샤를 레진에게 맡긴후, 퉁가리는 천상세계로 돌아갔고 거기서 많은 욕을 먹었다. 무엇보다 다시 돌아온
창조주(인간세상으로 내려가 띵가띵가 놀다가 왔음)가 왜 일을 그렇게 밖에 못하냐고 엄청난 구박을 주었고
결국 세라핌에 의해 천사들의 감옥에 1년 정도 있었다. 퉁가리는 아직까지 자신이 대체 무엇을 잘 못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퉁가리의 심각해지는 표정을 보았는지 못보았는지 라이샤는 퉁가리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
"좋아. 뭐 사람이 많다면 길 잃어버릴 염려도 없을것이고 뭐, 나도 혼자다니니까 심심했거든.
라이샤가 이렇게 말하자 퉁가리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빛은 곧 사라져 버렸다.
"단, 조건이 있어. 나와 한번 싸워서 이기면 같이 다니지. 너무 약하면 나만 고생할테니까."
"그, 그렇지만......"
"자, 그럼 무기를 빼들어."
라이샤는 그렇게 말하며 붉은 검을 꺼내들었다. 퉁가리는 한숨을 쉬며 어쩔수 없다는 듯이 장검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 특별해보이는 검은 아니었다.
'전에 당한만큼 갚아주마, 키키키키."
'이거 큰일인데...... 천사의 힘을 사용할 수도 없고...... 헉, 설마 라이샤 님이 전에 일을 마음에 두고 계시지는
않겠지? 에이 설마.......'
"받아랏!"
붉은 검이 내려왔다. 장검이 그것을 막았다. 그리고 라이샤는 잔인한 얼굴을 하곤 말했다.
"크하하하핫. 죽어라!"
'완전 언데드 수준이군......'
라이샤는 정말 언데드처럼 오직 한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검을 휘둘렀다. 단지 언데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건 힘과 기술성이었다. 힘은 예전의 퉁가리와 맞먹는 듯 했고 기술은 지금의 퉁가리를 뛰어넘고 있었다.
'굉장한 발전이다...... 이러다간 내가 지고 말겠군......'
"크하하하핫. 죽어, 죽으란 말이다!"
'쌓인게 꽤나 많으셨나 보군...... 미리 얘기 하시지......'
쨍
결국 퉁가리의 장검이 부숴졌다. 하지만 라이샤는 그칠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공격만을 했다. 그 모습은 가히
악마와 다름 없었다.
"죽어라!"
라이샤의 검이 퉁가리의 머리를 지나가려 했을때 순간 퉁가리의 몸에서 환한 빛이 나며 라이샤를 튕겨버렸
다.
'이런, 너무 강하게 힘을 썼나?'
지금 퉁가리가 사용한 것은 천사로 변하면서 생기는 강한 실드를 이용해서 라이샤를 튕겨버린 것이었다.
라이샤는 한번 튕겨져나가더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퉁가리는 그 공격에 기절 한것이 아닌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검이 날라올까 조심하면서......
"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터져나온 유쾌한 웃음소리는 라이샤의 입에서 나온것이었다.
퉁가리는 그가 미친것이 아닌가 싶어 그를 조심스레 불러보았다.
"라, 라이샤 님......?"
"하하하하, 대단해 대단해. 그건 마법인가 보지?"
"네, 네? 네. 마법이죠."
"대단해...... 날 한번에 튕겨버릴 줄이야...... 놀라워....... 역시 마법은 강하군......"
사실 이것은 마법이 아니었다. 단지 그냥 생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이샤는 마법사도 아니고 게다가 읽은 책
도 없어 마법이라고 판정지은 것이었다.
'다행이군...... 라이샤 님이 생각보다 단순해서 다행이야......'
갑자기 라이샤가 인상을 짠뜩 쓰며 귀를 후비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죠?"
"누가 나더러 단순하다고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라이샤의 말에 퉁가리는 순간 헉하고 놀랐다. 그가 조금만 더 각성했다면 그는 오늘부로 역천사천명부(인명
부라고 하면 이상하고...... 그래서 천사의 천자 따서 천명부! 역천사들의 이름과 그들의 실적이 적힌 것)에서
사라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 설마요. 여긴 우리 둘밖에 없는데 누가 그런소릴 하겠어요?"
"하긴 그렇다. 과연 누가 나더러 단순하다고 하겠어? 그럼 가자."
"네? 어딜요?"
"어디긴? 당연히 내 고향인 네갈마을로 가야지."
라이샤가 네갈마을로 간다고 하자 퉁가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네갈...... 마을이요......?"
"왜? 불만있어? 불만있음 말구."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가죠."
"그래, 그래."
라이샤는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가는 방향을 보고 퉁가리가 한마디했다.
"저...... 라이샤 님?"
"왜?"
매우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 라이샤였다.
"거긴 네갈마을로 가는 길이 아닌데요......?"
한동안 자신이 가려던 길을 바라보던 라이샤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래? 그럼 가자."
라이샤가 오른쪽으로 돌아 가려고 했다. 그러자 또 퉁가리가 조심스레 말했다.
"라이샤 님......"
"뭐야, 뭐? 대체 뭐?"
"거기도 아닌데요......"
왠지 이번 여행도 매우 힘들어질 것만 같은 퉁가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