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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24권
대보적경 제24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7. 피갑장엄회 ⑦
“다시 무변혜야, 보살이 이렇게 온갖 법을 관찰할 때에 모든 법에 법 광명을 얻어서 저 공(空) 가운데 공을 보지 아니하며, 또한 공을 여의고 공을 보지도 아니하며, 어떤 법이 공과 서로 응하거나 혹은 응하지 않음을 보지 아니하며, 공의 공으로써 공을 보지 아니하며, 공이 아닌 것도 보지 아니하며, 또한 본다는 것[見]으로써 온갖 법을 관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렇게 볼 때에 상 없는 데서 상 없는 것을 보는 것도 아니요, 상 없는 것과 달리하여 상 없는 것을 보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어떤 법이 혹 서로 응하거나 혹 서로 응하지 않음도 없으며, 상 없는 것으로써 보지도 아니하며, 상 있는 데서 상 있는 것으로써 보지 아니하며, 상 있음이 아님의 견해와 상 없음도 아님의 견해와 남 없음과 지음 없음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한 다함[盡] 가운데서 다함을 보지 아니하며, 또한 다함과 달리하여 다함을 보지 아니하며, 어떤 법이 다함과 서로 응하거나 혹 서로 응하지 않음을 보지 아니하며, 또한 저 다함에서 다함으로써 보지도 아니하며, 저 다함에서 다함없음으로써 보지도 아니하며, 또한 다함이 있음도 아닌 견해와 다함이 없음도 아닌 견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보살이 이렇게 볼 때에 어떤 법을 얻어 본다거나 볼 수 없다거나, 혹 분명히 드러낸다거나 드러내지 못한다거나, 혹 보리에 나아간다거나 나아가지 못한다거나, 혹 깨쳐 안다거나 깨쳐 알지 못한다거나 할 것이 없느니라.
무변혜야, 이것이 보살이 이 도의 큰 법 광명에 편히 머물게 됨이니라. 법의 광명인 까닭에 온갖 법이
변두리가 없으며 변두리와 가운데 또한 집착이 없나니 집착이 없으므로 불법 가운데 향하여 나아가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공에서 공을 보지 아니하며
공과 달리하여 공을 보지도 않나니
능히 이렇게 법을 보는 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공을 보았다 하리.
어떤 법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또한 어떤 법에도
저 공과 서로 응하거나
응하지 않음을 보지 않도다.
공이라 함은 자성이 공하였기에
저 공에 아무 것도 취할 것 없나니
취할 것이 없음으로써
능히 온갖 법을 아나니.
저 견해[見]에 취할 바가 없으며
저 관(觀)에 집착할 바가 없이
능히 그 견해와 또한 관에
이 두 가지에 함께 받지 않을 줄을 알지니라.
저 견해에 다 청정하며
저 관에 가히 얻을 것 없이
이렇게 모든 법 관하면
끝내 잡을 바 없으리.
상 없는 것으로써 보지 않으며
상 없는 것으로써 관하지 아니하며
또한 저 상 없는 데서
상 없다는 관도 짓지 않나니.
상 없다는 것도 나타낼 것이 없으며
원 없다는 것도 얻을 수 없나니
어떤 조그만 법체도
닦아 익힐 것이 없으리로다.
상 없는 것 생각지 말며
원 없다는 것도 생각지 말라.
이렇게 분별함 없으면
상과 상 없음이 드러나리라.
상 없는 데 나아가지 말며
상 없는 데 들어가지 말라.
나아감도 없고 들어감도 없이
환히 알고는 평등하게 머물라.
지혜로운 사람은 상을 보지 않고
상 없음도 보지 않고
보지도 않고 사유하지도 않으며
일체 밝게 요달함도 없네.
사람이 항상 깊이 사유(思惟)하여
생각함도 없고 환히 앎도 없으며
저 생각과 환히 앎에
평등한 마음으로 평등법에 머물라.
이렇게 저 상 없는 것과
지을 것 없음도 그러하며
드러냄도 드러낼 것 없나니
사유만이 환히 아는 까닭에.
남이 없음도 또한 그러하여
일찍이 어떤 법도 남이 없나니
자성이 본래 없는 것
환히 알고 보아도 자체가 없는 것.
혹 낳았거나 남이 없거나
지음 있거나 지음 없거나
또한 조금도 집착함 없이
슬기로운 이는 분별치 않나니.
생각하는 지혜는 움직임 없고
환히 앎도 분별함 없으며
체성이 있거나 없거나
평등하여 모든 성(性)을 여의었네.
다함에서 다함 보지 않으며
또한 다함없다는 견해 없고
환히 앎도 보는 것 없나니
다함의 지혜 더 위가 없도다.
다했거나 다함없거나
둘을 함께 분별치 않나니
분별이 없는 까닭에
생각함 없이 평등에 머물도다.
저 다함에 다함이란 견해가 없고
또다시 다함없다는 견해가 없나니
이렇게 다함을 볼 때에
다함과 다함없음에 집착치 않도다.
만일 저 다함과 다함없음에
일체를 집착함 없으면
집착함 없는 까닭에
다함의 지혜가 환하게 드러나리.
다함의 지혜 경계는
두려움 없는 이가 얻는 것이며
이 법을 환히 안 까닭에
보살이 편히 안주(安住)하도다.
그때에 대중 가운데 승혜(勝慧)라는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이 모든 법지(法智)를 거두어 잡아 가지지 위하여 수행을 일으키어 능히 큰 법의 광명을 얻었사오나, 그 법의 광명이 조금도 볼 것이 없으며 법의 광명으로써 온갖 법의 유위․무위․세간․출세간 혹 순하거나 역하거나 혹 희론(戱論)이 있거나 희론이 없거나를 환히 아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법의 광명을 어찌 보살의 수행 없이 얻으리이까?”
세존은 승혜보살에게 이르셨다.
“승혜야, 모든 보살이 조그만 수행도 없으며, 수행을 따르지도 아니하며, 수행을 두루하지도 아니하고, 능히 끝없는 법의 광명을 얻느니라. 보살이란 것도 오히려 얻을 수 없으며 볼 수 없거니, 하물며 보살행을 가히 얻으며 보겠느냐? 어떻게 이에 약간 겁에 수행하여 능히 끝없는 큰 법의 광명을 얻었다고 보겠느냐? 모든 보살은 일체 행이 쉬어서
행한 바가 청정하므로 법의 광명을 얻나니, 법의 광명은 어떤 수량(數量)의 행이 아니며, 상에 따르는 행도 아니거니 무엇으로부터 일체 행을 시설하겠느냐? 그러나 수행하는 것이 시설의 행이 아니면서 또한 여읨도 아니니라.
승혜야, 모든 보살이 이 행에 머무를 때에 일체 행을 놓아 버리어 집착함이 없나니, 이 행을 갖춘 이는 수량의 행이 아니며, 상을 따르는 행이 아니니라. 상도 없고 행도 없으므로 이에 능히 이 큰 법의 광명을 얻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은 행할 것이 없으며
또한 행이 있음도 없도다.
행이 있을 것 없음을 얻으면
두려움 없는 데 나아가리라.
일찍이 승행(勝行)이 있음이 없으며
또한 변행(徧行)도 있을 수 없도다.
행도 없고 승행도 없이
평등한 보리에 나아가도다.
이 행은 나나태어 보일 것이 없으며
또한 모든 상이 없도다.
상도 없고 행하는 자도 없음이여
이것이 행의 모습이 되도다.
보살은 상 없는 행으로
모든 사상(事相)에 머물지 않으며
행도 없고 머무름도 없는 것
슬기로운 이만이 성취하리라.
행할 것 없으면 움직일 것도 없나니
이 행이 최상이 되도다.
능히 움직임 없는 행을 행하면
용맹스레 보리에 나아가리라.
보살도 얻을 수 없으며
행 또한 볼 수 없으며
육신도 보지 못하나니
이것이 잘 수순하는 것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나니
일체 행도 있을 수 없네.
저 보는 데 취할 것 없으면
이것이 견줄 데 없는 보살행.
보살의 위없는 행은
시설에 떨어지지 않으며
또한 변하여 옮김도 없나니
그 속에 무엇을 집착하리?
행에 시설이 없는 것
이것이 위없는 보살행
이러한 행 얻고 보면
큰 법의 광명 얻게 되리라.
보살의 닦는바 행은
무량겁이라 말함이 없이
그러나 무량겁으로
모든 도행을 나타내도다.
보살의 도행은 청정하여라.
청정한 그곳에 묘하게 머물러
온갖 행상 다 놓아 버리어
거두어 가질 것 아무 것도 없어라.
보살은 언제나 버림에 머물러
온갖 도행을 수호하나니
온갖 도행을 놓아 버리므로
저 버림에 묘하게 머무네.
보살의 끝없는 행은
가[邊]와 가없음을 여의어
그 행이 움직임 없나니
이것이 위없는 도행
보살의 상 없는 도행은
이 행이 최상이 되나니
이 행을 수행할 때에
마군의 경계를 뛰어넘도다.
보살의 상 없는 행은
상 없는 법을 환히 깨닫고
상이 있거나 상이 없거나
일체에 의지함 없네.
보살이 이 슬기로움에 머물러
이 행을 잘 성취하므로
조금도 행할 것이 없나니
이것을 ‘행 아닌 자[不行者]’라 하네.
보살이 언제나 청정하여
도행에 두려움 없이
바른 생각으로 나아가나니
이것이 잘 머무름 되도다.
그때에 승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선장부의 수행이 매우 깊사와 어리석은 사람의 상이 있고 함 있는 수행으로는 능히 행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행이 선장부의 평등행이 되나이다. 세존이시여, 선장부의 행은 모든 수량과 변제(邊際)로 능히 헤아릴 것이 아닙니다.”
그때에 승혜보살은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셨다.
대웅(大雄), 바른 깨달음으로
지혜와 복을 두루 갖추신 최상의 높은 이시여,
매우 깊은 도행 말씀하시어
이 모든 보살들 요익하시네.
세존님 미묘한 말솜씨[辯才]는
그 분량 자못 헤아리기 어려워라.
막힘없는 말솜씨 다 갖추신
가장 거룩하신 선장부로다.
법왕은 모든 희론 쉬셨으니
이것은 다 바로 아시기 때문
그리고 모든 보살 위하시어
가장 높은 보리행을 말씀하셨네.
모든 상이 적멸한 행의 방편을
세존은 다 능히 연설하시고
저 행에 모두 다 뛰어넘나니
슬기로운 사람은 나아가오리다.
큰 용이신 그 덕은 사의하지 못하리.
끝없는 지혜의 묘한 경계며
다 바로 깨쳐 아신 사람 중 높은 이여
미묘한 보리행을 보여 주셨네.
세존께서 우리에게 열어 보이신
고요하고 잠잠한 성자의 도행
이 행을 그 누가 움직일 것인가.
그러므로 위없는 행이라 하네.
큰 영웅 큰 성자시여
지나간 그 옛날 수행하심을
끝없는 겁을 두고 닦는다 해도
그 누가 그 경지에 이를 것인가.
보살이 이러한 큰 법을 듣고
중생의 세간에 함께 있어도
위없는 보리의 일체종지에
오래지 않아서 증득하리.
우리도 모든 중생 불쌍히 여겨
장차 다가올 말세 가운데
이 같이 위없는 보리의 법에
능히 옹호하여 지니오리다.
우리는 이러한 최상법 듣고
장차 다가올 말법 세상에
모든 중생들 위한 까닭에
스스로 행하고 남 위해 말하리.
우리는 이러한 법 광명으로
장차 다가올 말세 가운데
법 구하는 모든 행자 위하여
커다란 이익을 일으키리다.
우리는 커다란 서원 발하여
장차 다가올 말세 가운데
모든 중생들 위한 까닭에
이 법을 호지하여 건립하리다.
우리는 언제나 생각하리다.
장차 다가올 말세 가운데
불법의 바다에 공양하오며
위없는 법보를 지니오리다.
우리는 부처님 법의 보장(寶藏)에
마땅히 용감한 대장부되어
이 법문 언제나 받아 지니며
수호하여 오래도록 머물게 하리라.
우리는 이러한 감로법수(甘露法水)를
맹세코 다 능히 받아 마시며
이 미묘한 감로법문을
마땅히 지키어 보호하리다.
우리는 이러한 법문 듣고는
장차 다가올 말세 가운데
맹세코 용감한 대장부되어
부처님의 바른 법 지니오리다.
우리는 차라리 목숨 잃어도
위없는 이 법은 놓지 않으리.
맹세코 이 뒤로 이 법 가운데
법의 호지자(護持者)가 되오리이다.
우리는 이 법을 지닐지라도
일찍이 만족심 내지 않으리.
이렇게 깊고 묘한 결정 법문을
듣고 또 들어도 듣고 싶기에
우리는 다가올 말세 가운데
바른 법 구하려는 행자 위하여
마땅히 바른 법 연설하므로
그들을 다 능히 기쁘게 하리.
법왕은 가히 사의할 수 없는 것
능히 중생의 의지처가 되시나니
바라건대 우리를 가호하시어
법 지니는 우리들 호념하소서.
세존께서는 승혜보살에게 이르셨다.
“착하다. 승혜야, 네가 능히 뒤 말세 가운데 이 법을 호지하기 위하여 큰 갑주를 입음은 또한 옛날 모든 보살이 저 부처님께 공양하고 이어 섬기어 모든 착한 뿌리를 심고 오랫동안 범행을 닦으며 큰 갑주를 입고
모든 부처님의 법을 호지한 것과 다름이 없도다.”
그리고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 뒤 말세 겁에
너는 마땅히 이 법을 지니어
모든 중생들 이익하게 하려고
이러한 묘한 법 열어 보이라.
이 뒤 말세 겁에
이 거룩한 법 받아 지니고
행여 이 법 듣는 이로서
사랑하고 즐거운 마음 내도록.
이 뒤 말세 겁에
너는 이 법을 받아 지니라.
내가 이에 말한 깊고 묘한 법
너는 남김없이 받아 지니라.
비밀한 부처의 뜻 수다라(修多라羅) 법을
너는 듣고 기억하여서
이 깊고 묘한 이취 가운데
다시는 조금도 의심치 말라.
다시 없이 깊은 결정된 뜻을
너는 듣고 마땅히 기억하여서
모든 중생 위하여 요익케 하라.
이것이 법장을 지니는 자니라.
감로의 법 비로 널리 베풀어
모든 중생을 두루 적시어
맞고는 모두 다 만족하여서
몸과 마음 두루 다 기쁘게 하라.
여러 보살도를 위하여
행할 깊은 이취와
저 수다라를
끝끝내 받아 지니기 때문에
모든 세간 가운데의
건지지 못할
한량없는 중생들을
너는 마땅히 건질지니라.
너는 이 법을 지닌 까닭에
모든 중생을 요익하게 하리니
훌륭한 복더미를 얻음으로써
이로써 보리에 나아가리라.
내가 이제 이 법을 연설하노니
너는 이 법을 받아 지니고
이 뒤 겁나는 말세 가운데
슬기로운 중생 위해 연설하여라.
현재나 또는 미래 세상에
능히 이 법을 지니는 자는
이는 곧 천불(千佛)의 올바른 법을
능히 받아 지니리.
모든 중생 위하여
이 법 지니고
뒤의 말세 가운데
큰 이익 지으라.
말세 가운데
이 법 지니면
그는 한 부처님만
친근히 하고 섬김 아니리.
만일 능히 장차 올 말세 가운데
이 법을 수호하여 지니는 이는
그는 이미 많은 부처님 섬기고
이 바른 법을 말하는 자이리.
능히 이 법 가운데에
적은 의혹도 없이
말세에 법을 수호하여 지니는 자
이는 슬기로운 이라.
그는 끝도 없이 큰 갑주를 입고
적과 싸워서 이기며
말세 가운데에
능히 이 법을 지니리.
부처님 바른 법에서
의혹의 그물 모두 없애고
이 법을 들으면 두려움 없이
그는 능히 이 법을 지니게 되리.
“그러므로 승혜야,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부지런히 가장 거룩한 공덕을 구하는 자는 말세 가운데서 깊은 법을 위하여 마땅히 갑주를 입고 이 법을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며 그 뜻을 해설할지니라.
다시 승혜야, 내가 생각건대 지나간 겁에 한량없는 부처님이 출현하셨으니 그 호는 변조(徧照)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고, 겁의 이름은 ‘초승(超勝)’이요, 나라 이름은 ‘이구(離垢)’였다. 그 땅이 평탄하고 넓고 깨끗하며 7보로 이룩되었다.
그 국토의 넓이와 길이가 7만 유순이며, 그 가운데 다시 6만 큰 성이 있었는데 성마다 길이와 넓이가 평균 16유순이고 안팎으로 담을 빙 둘러서 누각과 치문(雉門)으로 장엄되었으며, 문전각이 수승하여 보는 자가 기뻐하였다.
미묘한 묘다라수(妙多羅樹)가 줄을 지어 둘러섰으며 백․천 동산이 똑같이 장엄되었으며, 모든 동산 가운데 누대(樓臺)와 걸상이 곳곳에 설치되었으며, 못과 늪과 도랑이 가득 차 흐르며, 물기슭과 층계는 뭇 보배로 꾸몄으되 두루 돌고 평탄하여 나고 들기에 안온하며, 그 언덕 가에 침수향(沈水香)․전단향․다마라 등의 향나무가 듬성하게 늘어섰으며, 그 성마다 각기 천년 구지(俱脂)의 인민이 그 속에 머물러 있었으니, 그 모든 중생은 다 이미 10선업(善業)을 성취하였으므로 이러한 안락을 받게 되었느니라.
그 부처님이 처음 겁[初劫]으로부터 이백 겁을 뛰어넘어서 그 중에 출현하셨다. 그러므로 겁의 이름을 ‘초승(超勝)’이라 하였느니라.
그 겁 가운데 오백 여래가 차례로 출현하였으니 그 국토는 다 7보로 이룩되었느니라.
그 부처가 열반에 드신 뒤에 바른 법이 세상에 머물기를 각기 일만 년, 이렇게 오백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시매 성문․보살의 법회가 많았으며, 법회마다 각기 나유타(那由他)의 한량없는 보살이 1승도(乘道)에 나아가서 무생법인을 얻었느니라.
그때에 그 겁 가운데 전륜성왕이 있었으니 이름은 용맹군(勇猛軍)이며, 그는 7보를 성취하였고 4천하에 왕이 되었다. 그 염부제에 한 큰 성이 있었으니 그 성 둘레가 60유순이며 다시 8만 구지 인민이 그 속에 머물러 있었으며, 안온하고 쾌락하며 풍부하고 번영하였다. 그 일곱 겹의 성황(城偟)과 참호(塹壕)며, 일곱 겹의 줄나무며, 일곱 겹의 길이며, 일곱 겹의 망대[表刹]며, 일곱 겹의 방울 그물이 있었다.
일천동산이 에워싸서 큰 성을 장엄하였으며, 동산은 각기 길이와 넓이가 똑같이 20유순이며, 그 가운데 각기 일곱 겹 담과 일곱 겹 그물이 갖가지로 장엄되었는데, 미묘한 보배 구경거리가 모든 하늘과 같았다. 다시 일백의 못이 있는데 폐유리 보배로 그 제방 기슭이 되었고 마노․잡옥으로 층계의 섬돌이 되었으며 온갖 꽃이 피어 늘어지고 보배 나무가 줄지어 섰다.
그 큰 성 가운데 왕의 정전은 크기가 7유순이니 황금과 제청보(帝靑寶)로 섞바뀌어 이룩되었으며, 보배 당기로 두르고 유리로 꾸몄으며, 마니 구슬 그물로 그 위를 덮었으며, 모든 묘다라수가 빛나게 장엄되었고 이십의 연못이 띠처럼 둘러 얽혔으며, 밑에는 순금 모래가 펴 있고 위에는 금 그물로 덮였으며, 잡유리 보배로 다리를 삼고 순 황금으로 계단 길이 되었으며,
그 못 가운데는 우발라꽃․구물두꽃․분타리꽃이 피어 가득 찼었다.
그 전륜성왕의 이천 채녀와 육만 모든 아들이 모든 권속과 함께 그 동산 속에서 오욕으로 즐겼다. 그들은 가만히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욕심은 항상됨 없이 오래지 않아 시들어지는 것이니 나는 결정코 불법을 구하리라. 만일 법을 들으면 가르침과 같이 수행하여 나고 죽음의 긴 밤에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리라.’ 마침 이렇게 생각할 때에 문득 하늘 사람이 공중에 나타나서 그 왕에게 일러 말하였다.
‘착하다. 대장부여, 이제 변조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시어 바른 법을 연설하되,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이 다 진선진미하나니 왕은 속히 저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서 바른 법을 들으라. 왕께서 긴 밤 속에 이익되고 안락케 하여 불법을 성취하고 불법을 원만케 하리라.’
왕은 하늘의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그 권속에게 둘러싸여 큰 변조여래의 처소로 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법으로 모든 법의 교묘한 방편을 거두어 능히 범행을 속히 원만케 하오리까? 제가 닦아 행하려 하나이다.’
이렇게 묻자, 그때에 저 여래는 널리 왕을 위하여 열어 보시었다. 왕은 법을 듣고 그 권속과 함께 안락한 생활의 수용품을 놓아서 변조여래와 모든 대중을 공경․공양하기를 2만 세를 채웠다. 그리고 변조여래 법 가운데 집을 떠나서 바른 법을 수행하였느니라. 법을 받아 들은 착한 뿌리와 법을 지닌 착한 뿌리와 법을 설하는 착한 뿌리를 얻어서 법을 듣기만 하면 생각하여 잊지 않으며, 한량없는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익히고 ‘원하옵건대 여래의 3시(時)의 바른 법을 가지고 모든 중생을 위하여 가지가지로 법을 설하여지이다’라고 서원을 세웠다.
이렇게 원을 세우고는
초승 겁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낱낱이 친절하게 공양하고 이어 섬기고는 그 모든 여래의 현재의 바른 법과 중간 시대의 바른 법과 나중 시대[後時]의 바른 법을 다 능히 받아 지니고, 4만 8천 구지 나유타 중생을 교화하여 성취시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게 하며, 방편으로써 한량없는 중생을 길들여 성문․벽지불 지위에 머무르게 하였느니라.
그 겁 가운데 최후의 여래의 호를 전광(電光)이라 하였다. 용맹군 비구는 전광여래의 설법을 들을 때에 무생법인을 얻었다. 전광여래는 곧 그를 위하여 증언하셨다.
‘너 용맹군아, 저 오는 세상에 한량없는 천불 세존을 공양하고 여래의 삼시 바른 법을 받아 지니며, 수없는 중생을 이익하며, 백천 구지 나유타 중생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서게 하며, 한량없는 중생을 성문승에 머물게 하리라. 이렇게 아승기겁을 지내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니 호를 무변정진광명공덕초승왕(無邊精進光明功德超勝王)여래라 하리라. 그 부처님의 국토는 한량없는 청정 공덕을 쌓아 모아서 안온하고 풍락하며, 인민이 충만하고 성문 및 보살중이 많으며 그 부처의 수명은 다섯 소겁에 이르리라. 열반에 든 뒤에 바른 법이 일소겁을 머무를 것이며, 법교가 널리 유포되어 인간․천상이 받아 지니며 사리(舍利)의 탑과 사당이 모든 국토에 가득 차리라.’
그러므로 승혜야, 모든 보살은 이 청정하고 깊은 법을 마땅히 받아 지니고 닦아 익힐 것이며, 법의 장엄구로 그 몸을 장엄하며, 법을 장엄하므로 여래의 금강으로 이룩된 큰 나라연의 견고한 몸을 증득하리니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그 몸의 힘을 다하여 그 견고한 몸을 파괴하려 하더라도 능히 꺾어 엎을 자가 없으며, 일체 세간 천상․인간․아수라 가운데 법의 광명을 연설하되 또한 능히 맞서 의론할 자가 없느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깊은 법을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며 부지런히 닦아 익히면 그 뜻의 원함을 따라서 청정한 큰 성바지에 태어나며,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명칭이 갖추어지며, 세계가 수묘하여 다른 길[異道=外道]에 섞이지 아니하나니 어찌 바라문이 자란 악견(惡見)․사도의 무리가 있겠느냐? 모든 좋지 못한 법은 일찍이 듣지도 못하였거니 어찌 불선(不善)의 종자를 닦아 익히는 자가 있겠느냐? 능히 발가락으로 큰 광명을 놓아서 두루 끝없는 세계를 비추면 모든 중생으로 이 광명을 만나는 자는 다 안락을 얻으며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라. 그러므로 승계야, 만일 보살이 이 법을 부지런히 수행하는 자는 이러한 훌륭한 공덕을 얻으리라. 만일 갖추어 말하려면 끝이 없느니라.”
그리고 부처님은 무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무변혜야, 만일 이 보살도에 머무르는 이는 부지런히 이렇게 청정한 깊은 법을 닦아서 공과 서로 응하며, 적정과 서로 응하여 법의 광명을 얻어서 법의 광명으로써 온갖 법 자성이 다름없음을 보느니라. 성품이 다름없으므로 보는 것이 청정하며, 보는 것이 청정하므로 곧 법의 견해가 없고 또한 법도 없으며, 자성의 견해를 여의고 법의 견해가 청정하므로 또한 청정함도 없으며, 청정한 자도 없으며, 청정한 때[時]도 없으며,
능히 청정한 지혜의 경계를 얻으며, 모든 법계가 계(界)가 아니며, 계가 아님을 보므로
계의 견해가 청정하여 멀리 모든 계의 가지가지의 성(性)이라는 생각을 여의며, 성이라는 생각을 여의므로 저 계의 이취에 대한 비밀한 언사(言辭)를 능히 깨달아 알며, 또한 능히 모든 법이 계가 아님을 두루 아나니 법계가 차별 없음을 본 까닭이며, 가히 무너뜨리지 못하는 까닭이며 변하여 달라지지 않는 까닭으로, 문득 법계 이취의 선교방편을 얻으며, 선교방편으로써 두루 능히 법계 이취를 깨달아 알고 등지(等持)의 힘으로 모든 법계 차별․이취에 따라 들어가느니라.
이 행에 머무를 때에 온갖 법 선교방편으로써 온갖 법에 머무름도 없고 집착함도 없나니, 집착할 것이 없으므로 능히 일체 법계 이취에 그 응하는 바에 따라서 갖가지로 열어 보이며, 등지의 힘으로 다시 능히 정려(靜慮)․해탈․등지(等志)․등지(等至)를 내며, 신통에 노닐면서 하나를 변화하여 많음을 만들고 많은 것을 변화하여 하나를 만들며, 산과 돌과 장벽에 걸림 없이 자재로이 날아다니며,
교묘하게 능히 네 가지 요소가 화합한 것을 알아서 계에 머무르지 아니하나니 일체계가 공계(空界)와 합한 줄을 알아서 허공계에 집착함 없고 얽매임 없으며, 계의 화합을 아는 선교자(善巧者)로서 일체계에 방편으로 닦아 익히는 까닭에 수계(水界)를 결정하여 알고는 능히 수계에 혹은 연기를 일으키며 혹 그 가운데 연기와 불꽃이 함께 치성하게도 하며, 한량없이 갖가지로 변화하여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익을 지어서 능히 법계 이취․선교방편에 안주(安住)시키되 움직인 일 없이 그 뜻에 좋아하는 대로 어떤 부처님 세계든지 인간․천상에 태로 받아 나는 몸을 굴려서 변화하는 몸을 받아 항상 시방 모든 세계 부처님을 뵈옵나니 저 모든 부처님의 명호며, 족성(族姓)이며,
회중이며, 설법 등을 다 분별하여 아느니라.”
그때에 대중 가운데 한 보살이 있으니, 이름은 무변승(無邊勝)이다. 부처님 앞에 나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이 어떤 법에 머물러야 부처님의 말씀하신 것과 같이 능히 이러한 가장 거룩한 공덕을 얻으리까?”
부처님은 무변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무변승아, 보살이 온갖 법에 머무르는 바가 없을진대 내가 말한 것과 같이 능히 이러한 가장 거룩한 공덕을 얻으리라.
무변승아, 모든 보살이 만일 물질․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 머무르거나 혹 지계․수계․화계․풍계․공계에 머무르거나 혹 욕계․색계․무색계에 머무르면 나는 이 경에서 이러한 공덕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모든 보살이 온갖 법에 머무르는 것이 없으며, 들어감도 아니요, 나아감도 아니므로 나는 그들이 마땅히 끝없는 큰 공덕의 바다를 얻는다고 말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보살이 조그만 법이라도 얻을 것․머무를 것이 없으며, 또한 조그만 법도 혹 들어가거나 나아갈 것이 없으며, 능히 모든 법 이취에 편히 잘 머물러서 움직일 수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보살은 머무름도 없고 움직임도 없나니, 움직임이 없는 까닭에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으며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높은 것을 멀리 여의고 낮음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며, 머무르지 아니하므로 좋은 곳에 머무른다고 말하며, 좋은 곳에 머무른다는 것은 어떤 곳에 머무름이 없으며, 어떤 곳에 머무름이 없다는 것은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 아니함이니라.
모든 보살은 조그만 법이라도 혹 가리어 세우거나 혹 쌓아 모으거나 함이 없나니 어떤 곳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일어남도 없고 지음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곳이란 것을 얻을 수 없나니, 곳이 없으므로 곧 분별이 없으며, 분별이 없으므로 움직이지 않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
법계의 머무름과 같으며, 어느 곳에 머무름이 없으면 곧 머무름 자체가 없는 것이니라. 어떤 곳이라든가 곳이 없다 하는 데 집착함이 없는 것이 잘 머무름이 된다고 이름하느니라.
무변승아, 모든 보살이 법의 이취에 안주한다는 것은 이렇게 설 곳에 서되 머무름 없는 데 머무르며 머무름 없는 곳에 머물러서 일체 법계를 보되 분별함이 없나니 이러한 분별없는 행에 머무르며, 이러한 행으로 온갖 법을 보되 움직임이 없으면 곧 이치와 같이 머무름과 서로 응하며, 이치답게 움직이지 않음과 서로 응하며, 이치와 같이 취하지 않음과 서로 응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바른 법을 잘 기억하며
그 뜻을 어김없이 사유하나니
모든 법 가운데 머물지 않으니
이것을 말하여 지자(智者)라 하네.
일찍이 조그만 법도
가려 세울 자 없으며
가리어 세울 것이 없는 까닭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도다.
어떤 색상(色相)에도 서지 않으며
어떤 감수(感受)에도 서지 않으며
어떤 상음(上陰)이나 행음(行陰)이거나
식음(識陰)도 그러하네.
이미 5온(蘊)에도 머물지 않고
18계․12처도 또한 그렇고
접촉하는 곳이거나 곳 아니거나
또한 언제나 머무름 없도다.
지계(地界)에 일찍이 머물지 않고
수계(水界)에도 또한 머물지 않고
화계(火界)와 풍계(風界)도 다름이 없이
언제나 그 속에는 머물지 않아.
욕심의 세계라 머물지 않고
색계․무색계도 다름이 없이
가려 설 것이 없는 까닭에
삼계 어디서도 머물지 않네.
허공은 본래부터 형상 없거니
그곳이 어찌하여 머무름 있으랴.
그곳에 아무 것도 머무름 없기에
평등한 보리에 나아가도다.
그러므로 어떠한 작은 법이나
그 가운데 머무름 있을 수 없네.
머무름 없는 이치 체득한다면
이것을 교묘한 지자(智者)라 하리.
묘한 지혜 본래 머무름 없나니
머무름 없는 것이 보살이라네.
이러한 머무름 체득한다면
그는 능히 법계 속에 머무르리라.
머무름 없는 법과 서로 응하면
그는 항상 잘 머무름 얻으리로다.
머무름도 없고 의지함도 없고서야
그는 정녕 법 가운데 편히 머무르리라.
의지할 것 없는 법을 얻고 보면
그는 언제나 움직일 일 없으며
들어감도 아니요, 나아감도 아니요,
평등한 법계 속에 잘 머무르리.
이 법에 이렇게 머무르는 이는
용맹한 사자의 무리
모든 법은 본래 높음도 없고
본래 낮음도 없네.
이렇게 일체에 움직임 없이
법계에 착실히 머무르는 이는
조용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으면
곧 위없는 머무름 얻으리.
머무름 없는 머무름에 서로 응하면
이것은 용맹한 사자의 무리
머무르는 곳에 머물지 않아
저곳에 언제나 움직임 없이
머무름 없는 곳을 성취하여서
조용히 머무름을 체득한 이는
혹은 곳이거나 곳 아니거나
일체가 이곳에 움직임 없네.
움직임 없는 곳에 머무르므로
움직임 없다고 이름하나니
움직임 없는 곳에 머물게 되면
일체는 그곳에 머무름 없네.
곳이니 아니니를 생각지 말고
언제나 무분별에 머물러 보렴.
저곳에 머물지 않은 까닭에
이것이 곧 움직임 없는 것이네.
그곳에 움직임 없음으로써
온갖 법에 머무름 없게 되나니
머무름 없는 곳을 체득한다면
곳이니 아니니에 움직이지 않으리.
만일 저곳에서 움쭉 않으면
저곳에서 잘 머물게 되고
잘 머문 곳에서 편안히 머물면
머물 만한 곳에 머무름이니.
모든 법 실상을 비치어 보고
법다운 머무름에 머물게 하라.
이렇게 모든 법 비치어 보면
온갖 법이 본래 머무름 없네.
머묾도 없고 편히 머묾도 없으면
법에 머묾이 매우 교묘해
모든 법에 항상 머물되
분별이 없으면
분별을 잘 떠났기 때문에
이것을 부동자(不動者)라 이름하리라.
움직임 없는 곳에 능히 머물러
그는 곧 모든 행에 분별함이 없이
곳과 곳 아님을 멀리 여의면
이것을 관찰자(觀察者)라 말하리라.
움직임 없는 이치 관찰하여도
일체의 경계에 움직임 없으면
모든 법이 언제나 평등한지라
이렇게 보리에 나아가리라.
이치다운 머무름에 서로 응하며
이치대로 항상 움직임 없이
움직임 없는 곳을 체득하므로
언제나 없는 곳에 머무름이라.
무변승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능히 모든 보살의 저 법이 이취에 얽매임도 없고 해탈함도 없는 듯을 가리어 세웠나이다.
세존이시여, 법의 이취에 잘 머무르게 되면 어떤 법과 혹은 서로 응하거나 서로 응하지 않거나, 혹 화합하거나
화합하지 않거나, 혹 탐하거나 탐을 여의었거나, 혹 성내거나 성냄을 여의었거나를 관계치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이 온갖 법 이취 가운데 훌륭히 머무름에 있어서 설사 중생이 공양․공경하더라도 탐착하지 아니하며, 훼방하여 모욕하고 핍박하여 시끄럽게 하더라도 성내지 아니하며, 갖가지 생각이 없고 온갖 법을 여의며, 어떤 작은 법이 다른 어떤 법과 서로 응하거나 서로 응하지 않음을 보지 않으며, 서로 응하고 응하지 않음을 뛰어넘은 까닭에 서로 응하고 응하지 아니함의 생각을 멀리 여의며, 서로 응하고 응하지 않음의 생각을 환히 알되 그 환히 앎도 뛰어넘어서 어떤 법에도 혹 나아가거나 혹 물러가거나 혹 나아갈 바가 있거나 없거나에 서로 응함이 되지 않으며, 일체 이취 가운데 망령된 생각이 없으며, 또한 집착심이 없고 묘한 방편으로써 법성을 무너뜨리지 아니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온갖 법에 이렇게 머무를 때에 선교방편으로써 일체 법계의 이취를 선설하여 일체 불법을 속히 원만케 하나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무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불법 가운데 잘 머무를 것이 없으며, 머무를 것이 없을 때에 곧 불법에 잘 머무름이 없는 이치를 볼 것이며, 또한 제일의제에 머무름도 없고 두루 머무름도 없이 불법의 머무름을 보리라. 기울어 움직이지 않는 까닭에, 흘러 구르지 않는 까닭에, 변하여 달라지지 않는 까닭에 일체 법계가 서로 응하여 머무름을 일체 법계 이취의 선교안립(善巧安立)이라 말하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불법 가운데 머무름도 없고 머무르지 아니함도 없으며, 제일의제에 머무름도 없고
두루 머무름도 없으며, 어느 곳에 머무름도 없고 곳 아닌데 머무름도 없으며, 움직임도 없고 분별함도 없으며, 수승한 분별도 없고 두루 분별함도 없나니, 이것을 법계 이취의 선교안립이라 말하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어떤 작은 법과 다른 어떤 작은 법이 안립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또한 어떤 일체 법이 수승하게 안립하는 곳을 보지 못하고 또한 분별도 없고 수승한 분별도 없고 두루 분별함도 없음을 이름하여 일체법계 이취의 선교안립이라 말하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어떤 법이 혹 머무르거나 혹 가는 것을 보지 않으며, 또한 분별이 없고 제일의제의 분별도 없으며, 두루 분별함도 없이 온갖 법이 깨끗한 허공과 같이 광명이 환히 비치어 번뇌를 멀리 여의며, 온갖 법에 광명으로 비춘 까닭에 일체 법계의 이취라 말하나니, 좋은 방편을 얻어서 잘 머무름으로써 법계를 관찰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법계에 조금도 머무를 것이 없는 까닭이니라. 비유컨대 허공과 풍계나 처소가 없으며, 또한 가히 볼 수 없으며, 머무를 곳과 의지할 곳이 없으며, 가히 나타내어 보일 수 없으며, 법계도 또한 그러하여 가히 들어갈 곳이 없으며 가히 볼 곳이 없나니, 머무를 곳이 없다 하고 의지할 곳이 없다 함도 또한 사무쳐 알 수 없으며, 또한 나타내어 보일 수도 없느니라. 모든 보살이 나타내어 보일 것이 없으므로 그대로 진리인[如如] 법계와 서로 응하며 머무르느니라.
무변혜야, 일체 법계가 남[生]도 없고 목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올라감도 없고 떨어짐도 없으며, 나타내어 보이는 경계도 없는 것, 이것이 법계가 되며 변화로 다름이 없는 경계가 법계가 되나니 법계라는 것은 일체에 두루하니라.
무변혜야, 법계는 갈 것도 없고 또한 가는 곳도 없나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 이것을 법계에 서로 응하여
그대로 진리인 법계에 머무른다 하나니 그 가운데 처소가 없으며 또한 처소 아닌 것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대로 진리인 법계에 자성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이 말을 듣고 일체 법계 이취에 곧 끝없는 큰 법의 광명을 얻으며, 법의 광명으로 무생법인을 얻어서 속히 여래의 10력(力)․18종 뛰어난 법[不共法] 등의 일체 불법을 원만히 성취하며, 일체 중생의 광대한 착한 뿌리의 수승한 자량을 성취시키기 위한 까닭에 여래의 종자를 끊어짐 없이 하기 위한 까닭에, 빨리 도량에 나아가서 법바퀴를 굴려 모든 마궁(魔宮)을 가리고 외도의 사론(邪論)을 꺾어 항복받으며, 대장부의 사자후를 지어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묘한 법을 연설하며, 그 좋아함에 따르며 그 지원(志願)에 따르며 그 바른 해탈의 진취함에 따르는 까닭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게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일체의 보살이
모든 법에 머물지 않고
불법 가운데에서
편안히 머무름 없나니
일체의 보살이
가려 세움 없는 까닭에
저 불법 가운데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도다.
일체의 보살이
불법을 볼 때에
머무름도 처소도 없이
묘한 방편으로 평안히 머무나니
일체의 보살이
어느 곳에 머무름 없이
머무름도 물러감도 없이
모든 법 능히 보도다.
일체의 보살이
머무름 없는 불법을 보고서
그 법에 움직임도 없고
그 법에 구함도 없도다.
일체의 보살이
다름없는 불법을 보고
그 법에 움직임도 없고
추심(推尋)함도 없도다.
일체의 보살이
법을 봄이 이렇듯이
저 법의 미묘한
방편에 머물도다.
일체의 보살이
언제나 평등법 보고는
불법에 머무름도 아니고
머물지 않음도 아니로다.
언제나 머무르는 곳 있을 수 없고
또한 그곳이 없음이 아니로다.
분별도 아니며
분별 아님도 아니며
갖가지 분별이
본래 없는 것이라.
일체의 보살이
머무름과 응함이 없고
언제나 어디서나
동요함이 없이
일체의 보살이
이 법의 깊은 이취에
평등하게 머무를 때
잘 머묾이라 하네.
일체의 보살이
이 법의 깊은 이취에
어떤 법도 봄이 없이
평등에 머물러
일체의 보살이
모든 법을 사무쳐 볼 때에
처소가 없거나
처소를 여읨도 아니며
움직일 바 없거니
친근함도 없어라.
일체의 보살이
능히 저 일체의 법에
이취선교의
방편에 머무르되
머물러도 실로 머무를 것이 없는 것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네.
일체의 보살이
저 어떤 작은 법에도
가느니 오느니
분별함 없이
모든 법 이취에
머무르도다.
일체의 보살이
능히 저 법의 이취에
갖가지 방편으로 머무르면서
큰 법의 광명
끝없이 일으켜
이 법의 광명으로 평등견(平等見)에 머물러서
일체의 법과일체 법의 깊은 이취 사무쳐 보되
깨끗한 허공이나 그림자와도 같이
평등하고 청정하며 때가 없도다.
일체의 보살이
그 견해[見]에 사무쳐 알되
사무쳐 알았다는 모양도 없이
모든 법의 자성을 멀리 여의리.
일체의 보살이
이렇게 관찰하고는
온갖 법에서 이취에 머물러 있어
능히 저 법계에 견고하고 부지런하게 닦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법계
이취의 방편이라 말하네.
일체의 보살이
법계에 머물지 않고
여러 법계를 관찰하되
끝내 공(空)으로 보도다.
일체의 보살이
법계를 사무쳐 알고
온갖 법을 보되
허공이나 바람과 같이 보도다.
머무를 것 따로 없이
일체의 처소에 두루하였네.
법계도 또한 저 허공과 같이
일체의 처소에 두루 하였네.
법계는 생각하고 의론키 어렵고
형상으로 나타내어 보일 수 없는 것
슬기로운 이들이라도
친근히 할 수 없고
내보일 수 없는 것이
법계가 되며
머무를 곳 없는 것이
머무름 되리.
법계는 본래 남[生]이 없으며
목숨도 없고 늙음도 없으며
죽음도 없고 윤회도 없으며
또한 세간을 벗어남도 없도다.
법계는 사의(思議)하기 어려운 것
오는 것도 없으며 가는 것도 없나니
법계는 근본 온(蘊)이 아니며
18계도 아니요 12처도 아니라.
법은 또한 12처를 여읨도 아니며
그러나 경계에 움직임 없이
법계는 언제나 그대로 진리인[如如] 모습
자성이 본래 있는 것 아니더라.
일체의 보살은
법계는 사의하기 어렵다고
이렇게 사무쳐 알며
실상을 비쳐보는 광명을 얻네.
이로 말미암아 나아가되
보리를 향해 나아가며
불법에 있어서
의혹됨이 없고
일체 경계에 움직임 없이
큰 법의 광명으로 널리 비쳐서
중생들로 하여금
큰 안락 얻게 하도다.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능히 이러한 매우 깊은 법에 부지런히 수행하는 자는 이러한 큰 법의 광명을 얻어서 이 지혜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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