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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
사도행전 28:16-31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연금을 당한 2년 동안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는 말로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입니다
[행28:16-31, 쉬운성경]
16 우리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그를 지키는 군인 한 사람과 함께 혼자 지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17 삼 일 뒤에 바울은 그 곳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이 모이자,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포 여러분, 나는 우리 백성이나 우리 조상들의 관습을 거스르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로마 사람들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18 로마 사람들이 나를 심문했으나 내게는 사형을 당할 만한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를 풀어 주려 했습니다.
19 그런데 그 곳의 유대인들이 반대해서 나는 로마에 와서 황제에게 상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백성을 고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20 이런 이유로 여러분을 뵙고 말씀드리고자 오시라고 했던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사슬에 매인 것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입니다."
21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유대로부터 당신에 관한 어떤 편지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또 유대로부터 온 우리 형제들 중에서 당신에 관한 나쁜 소문을 전하거나 당신을 나쁘게 말한 사람도 없습니다.
22 우리는 다만 당신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어디를 가도 당신 종파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23 바울과 유대인들은 만날 날짜를 정했습니다. 그 날이 되었을 때, 더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이 지내고 있는 곳으로 모였습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선포했습니다. 또 모세와 예언자들의 글을 예로 들어서 그들이 예수에 관한 것을 믿게 하려 애썼습니다.
24 바울의 말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5 그들이 이처럼 의견이 갈린 채 헤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마디 말을 남겼습니다. "성령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여러분의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은 진리입니다.
26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여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27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졌고, 귀로는 듣지 못하며 눈은 감겼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내게 돌아와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28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들을 것입니다."
끝까지 복음을 선포한 바울
[29]
30 바울은 자기 셋집에서 꼬박 이 년을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맞이하였습니다.
31 그는 담대하게, 그리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쳤습니다.
[Ac 28:16-31, NIV]
16 When we got to Rome, Paul was allowed to live by himself, with a soldier to guard him.
17 Three days later he called together the local Jewish leaders. When they had assembled, Paul said to them: "My brothers, although I have done nothing against our people or against the customs of our ancestors, I was arrested in Jerusalem and handed over to the Romans.
18 They examined me and wanted to release me, because I was not guilty of any crime deserving death.
19 The Jews objected, so I was compelled to make an appeal to Caesar. I certainly did not intend to bring any charge against my own people.
20 For this reason I have asked to see you and talk with you. It is because of the hope of Israel that I am bound with this chain."
21 They replied, "We have not received any letters from Judea concerning you, and none of our people who have come from there has reported or said anything bad about you.
22 But we want to hear what your views are, for we know that people everywhere are talking against this sect."
23 They arranged to meet Paul on a certain day, and came in even larger numbers to the place where he was staying. He witnessed to them from morning till evening, explaining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from the Law of Moses and from the Prophets he tried to persuade them about Jesus.
24 Some were convinced by what he said, but others would not believe.
25 They disagreed among themselves and began to leave after Paul had made this final statement: "The Holy Spirit spoke the truth to your ancestors when he said through Isaiah the prophet:
26 "'Go to this people and say, "You will be ever hearing but never understanding; you will be ever seeing but never perceiving."
27 For this people's heart has become calloused; they hardly hear with their ears, and they have closed their eyes. Otherwise they might see with their eyes, hear with their ears, understand with their hearts and turn, and I would heal them.'
28 "Therefore I want you to know that God's salvation has been sent to the Gentiles, and they will listen!"
[29]
30 For two whole years Paul stayed there in his own rented house and welcomed all who came to see him.
31 He proclaimed the kingdom of God and taught about the Lord Jesus Christ—with all boldness and without hindrance!
소망- 일상적인 삶에서 가질수 없는 기대로부터 하나님을 찾고 그 은혜를 체험하고자 갈망하는 마음에까지 이르는 확고한 기대감을 말한다. 신학적인 의미로 소망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교회가 가져야 할,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다.I. 용어영어로 '소망'(Hope)에 꼭 들어 맞는 히브리어 단어는 없으나 여러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이 약간씩 다른 뜻을 가지고 '소망'으로 번역될 수 있다. '소망, 기대'를 뜻하는 명사는 다음과 같이 여러가지가 있다. '미크웨'(예. 렘14.8), '티크와'(욥 4:6, 이 단어는 '확신'이라는 뜻의 '키슬라'이다. 시 71:5, 렘 31:17, 슥 9:12), '토헬레트'(시 39:7, 잠 10:28), '마바트'(사 20:5-6).
다른 명사들은 '확신'이나 '신뢰'등을 뜻하는 일반적인 의미를 갖는다 . '베타흐' (참조. 겔 28:26 RSV에서는 '확실하게, 안전하게, 견고하게'라는 뜻을 가진 'securely'로 번역 되었다), '케셀'(시 78:7, 참조. 잠 3:26), '미브타'(렘 17:7).
그 외의 명사로는 '소망을 가지고 기다린다'라는 뜻을 지닌 '세베르'(시 119:116, 146:5)가 있다. 명사와 마찬가지로 '소망 하다'(to hop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여러가지가 있다. '소망과 인내로 기다리다'의 뜻을 지닌 '야할'(예. 시 31:24, 3:18, 22), '기다리다. 기대하다. 열망하다. 소망을 갖다'의 뜻을 지닌 '카와'(예. 렘 14:22 참조. RSV에서는 '기다리다'의 뜻을 지닌 'wait for'로 번역되었다. 창 49:18, 사 40:31), '기다리다. 기대하다. 소망하다'의 뜻을 지닌 '사바르'(사 38:18), '소망을 갖다. 피난하다'의 뜻을 지닌 '하사'(잠 14:32).
70인역도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번역되었다, '엘피스', '엘피조'. 소망이라는 용어를 파악함에 있어서 소망의 기초, 소망의 대상, 소망하는 행동(activity of hope)등으로 구분해서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명사형은 소망의 배경이나 그 근거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즉 명사형은 소망의 직접적인 대상을 나타내지 않고 가끔 종말론에 그 초점이 맞추어진 구절들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구절에서 직접적인 소망의 대상을 빠뜨리는 것은 소망의 토대나 소망을 보장해주는 요소가 든든하지 못한 기만적인 요소임을 나타낼 때 쓰인다. 동사형은 소망을 가진 인간의 반응, 행동, 소망의 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자세 등을 강조할 때 쓰인다. II. 성경의 가르침소망은 신약과 구약에서 자주 세속적인 의미로 언급된다. 룻은 남편에게 소망을 가졌다(룻 1:12).
욥은 자주 자신에게 소망이 없음을 한탄했다(욥 7:6, 17:15, 19:10).
악어의 힘 앞에서 사람은 소망을 잃는다(41:9).
아버지는 아들로 하여금 옳은 곳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힌다(잠 19:8).
나무에게는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않는다는 소망이 있다(욥 14:7).
바울은 자기가 편지를 보낸 교회와 교인들을 방문하기를 소원했다. 이상과 같은 예들 외에 성경적인 소망에 초점을 맞춘 내용들이 많이 있다. 성경의 저자들은 정당한 근거가 없는 헛된 소망들과 확고한 기초 위에 선 소망들을 구별해서 기록하였다. 헛된 소망의행동이란 곧 자기 기만으로 인한 인간의 행함을 의미한다. 군대의 힘(사 31:1-3)이나, 스스로의 지혜(잠 26:12)나, 의로운 행위(겔 33:13)나, 부(잠 26:12)나 심지어 성전(램 7:9-10)이나, 모세의 율법(요 5:45)에 소망을 두는 것까지 헛된 일이다. 이러한 것들은 정당하지 못한 소망의 근원이며, 실제로 이러한 것들을 의지하는 의롭지 못한 사람들은 참소망을 갖지 못한 자들이다(욥 8:13, 11:20, 27:8, 잠 10:28, 11:17).
그래서 소망에 관한 성경의 많은 예들은 하나님만이 인간의 참소망의 기초가 됨을 설명해 준다. 이 점은 구약과 신약에서 분명한 연계성을 갖고 성경에 나타난다.구약에 있어서 참소망은 언제나 하나님께로 향한 것이었다(예. 시 39:7, 71:5, 사 8:17).
낙담하여 절망에 빠졌을때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의 소망'이 되시며(렘 14:8, 참조 50:7), 온 땅의 참된 소망이 되시는(시 65:5)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함을 스스로 권면하였다(시 42:5, 11, 43:5).
종종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속성이나 행동을 소망의 이유로 묘사하였다. 즉 소망은 하나님의 견고한 사랑과 인자하심(시 33:18, 22, 애 3:24),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렘 14:22), 만민을 심판하시는 능력(한글 개역 성경에는 '하나님의 팔'로 되어 있다, 사 51:5)에 그 기초를 두었다. 구약에는 소망의 목적이 빠진 듯이 보이나, 개인의 구원(시 119:166)과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렘 29:11, 31:17)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열망하는 소망이 은연 중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슴 속에 소망이 충만해 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특히 언약의 말씀(시 119:43, 130:5)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랑을 가지고 그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 관계를 통하여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소망의 하나님으로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시고 복을 주심은 구약의 핵심되는 소망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군주 시대에는 이루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구체적인 성취를 소원하는 소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소망에 대한 기대감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가면서 무너져 버렸다(겔 37:11).
약속의 땅을 회복하리라는 소망은 선지자들이 그의 백성을 구하러 오실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계속되었다. 선지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슥 9:12)이라는 역설적인 구절로 요약될 수 있다.이스라엘의 어리석은 행동과 정복자들로 인하여 전쟁에 져서 포로가 된 기간 중에도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피'를 기억하면서(11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의 소망 가운데서 인내할 수 있었다.신약에서도 이와 같은 의미로 소망을 설명하고 있다. 복음서에서는 이러한 연급이 많지 않지만, 그 흐름은 명백히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로서의 사역과 구원 사역을 통해서 나타난다. 마 12:21에서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 외인'(엡 2:12)이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소망이 없었던 이방인들에게까지 이러한 참소망이 확산된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하였다('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이는 사 42:4의 70인역의 구절을 인용한 것임, 참조. 롬 15:12, 이와 유사한 용법이 사 11:1에서 표현되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메시야적 전통의 연계성을 띤 측면에서 소망이 제시되었다. 제자들의 메시야에 대한 소망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전히 꺾여 졌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다시 살아 났으며 성취 되었다(행 23:6, 24:15, 참조. 2:26, 이는 시편 기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인용한 것이다 시 1:9).
서신서들 속에서 '소망의 신학'(the theology of hope)은 매우 발전하여 주요한 주제로 대두된다.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스스로가 기독교인들의 소망이 되신다. 그분은 '소망의 하나님'이시다(롬 15:13, 참조. 딤전 4:10, 벧전 1:21).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로 하여(고전 15장, 벧전 1:3) 그리스도를 소망의 근거라고 주장하였다('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예수' 딤전 1:1, 참조. 엡 1:12, 살전 1:3).
성령의 능력으로 인하여'(롬 15:13, 갈 5:5) 소망의 사역은 시작된다. 소망은 기록되어진 성경의 증거를 통하여 주어지나(롬 15:4),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개되는 약속들로 인하여(히 6:18-19)새 계약은 '더 좋은 소망'(히 7:19)을 공급해 준다.신약은 소망의 목적에 대하여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을 갖는다. 소망의 목적은 개인의 구원이지만(살전 5:8), 온 교회를 하나로 묶는 '소망'(엡 4:4)을 얘기하는 측면도 갖는다. 또한 신약의 소망은 '~의 소망'(갈 5:5, 부활의 소망(살전 4:13), 영생의 소망(딛 1:2, 3:7), 성도에게 이루어지는 그 기업의 영광된 소망(엡 1:18, 참조. 고후 3:12 이하) 그리고 하나님 영광의 소망(롬 5:2) 등이다. 이러한 소망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며(골 1:5) 모든 피조물은 이러한 소망을 기본적으로 갖는다(롬 8:20 이하).
스가랴의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소망으로...'(롬 8:20 이하)라는 바을의 표현속에서 재차 언급된다. 이는 어두움과 고난과 박해의 상황 속에서만 그 참의미를 갖게 된다는 소망의 역설적인 면을 표현한 것이다. 성도의 소망은 성도의 삶에 권능과 보호를 부여해 주는('구원의 소망의 투구', 살전 5:8) '산 소망'이 된다(벧전 1:3).
이는 입술로 고백되어지는 합당한 도리의 소망이며 (히 10:23),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항상 대답해 줄 수 있는 소망이다(벧전 3:15).
소망은 또한 기쁨 속에서(롬 12:12), 확신 속에서(히 11:1), 인내 속에서(롬 8:25), 그리고 거룩한 삶 속에서(요일 3:3)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성경에서 소망은 하나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지만, 그 자체로써 독립된 하나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누구나 소망을 가질 수 있는데, 이렇게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소망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망을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신학적인 세 가지 덕목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다(예. 롬 5:1-5, 엡 4:1-6, 살전 1:3, 히 6:10-12).
이 세 가지 덕목은 언제나 협력하여 하나의 역할을 하게 된다. 서로의 도움 없이는 그 어느 것도 독자적으로 발현될 수 없다. 행동의 의미로 소망한다는 것은 사랑(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믿음의 총체적인 응답이 기대감 속에서 표현되는 것이다. 사랑은 소망의 근원이 되시고 소망의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 의 본질적인 속성,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사랑은 이러한 세 가지 덕목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함께 그 역할을 감당한다(고전 13:13).
(E. Hoffmann, NIDNTT, II, 238ff. )
편지- 성경 및 고대 용법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기록 문서를 지칭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편지가 고대에는 매우 다양한 사업,행정,법률문서,정치·군사적 보고,지시,교신,사적인 교신 등에 이용하였다. Ⅰ. 개관여러 편지들이나 편지들의 일부분이 구약 및 묵시 문헌에 보존되어 있다(예.삼하 11 : 15 ;왕상 5 : 2-6 ; 21:9-10,대하 2:11-16 ;스 4 : 11-22 ; 7:12-26 ;느 6 : 6-7 ;렘 29장, 마카비 1서 10-15장) 뿐만 아니라 이 편지는 중요한 내용의 인용보다 편지를 요약한 것이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예. 왕하 20 : 12,느 2:7-8;6:17, 19;에 3:12-13;8:9-11;9 : 20-32;유딧 4:6-7 ;마카비 1서 1:41-42, 44-50장).
신약에는 부분적으로 편지 형식으로 된 성경도 있고(이들 모두는 '서신' 혹은 '편지 '라는 말로 지칭되고 있다), 아시아에 보내는 요한의 편지들도 있으며 ( 계 1 : 4-8 ; 2-3장),행 15:23-29 ; 23 : 26-30에도 편지 내용이 있다.편지들은 일반적으로 구어체 또는 문어체로 되어 있다(참조. 왕하10:2-8;18-19장;대하 32 : 17-18).
구술로 시작된 것도 있으며 수신인들에게 낭독되기도 했는데(예. 스4:23;참조. 행 15:31).
수신자가 직접 읽을 때는(왕하5: 7 ;행 23 : 34), 대개 큰 소리로 낭독하였다. 편지는 사신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는 관습이 발전하여 생겨났다. 큰 왕국과 제국 사이에 행정상의 필요 때문에 정식으로 우편 제도가 생겼지만(참조.대하 30:6, 10 ;에 3 : 13, 15 ; 18:10,14 ; 마카비1서 1 : 44), 사적인 서신 연락을 위해서는 어떠한 우편 제도도 존재하지 않았다. 바울의 편지들은 그의 동역자들에 의해 전달되었으며, 수신자들과의 접촉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빌 2 : 25-30 ;골 4 : 7-9 ;참조. 엡 6:21-22) .Ⅱ. 형식 및 형태많은 편지들이 전문적인 서기관들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관습적인 형식으로 그 내용이 서술되었다. 고대의 편지들은 서론-본론-결론의 일반적인 순서에 의해 분석될 수 있다(참조. 대하 2:11-16;스4:11, 17;5:7;7:12-26:에스더 부록 13:1-7, 마카비 1서 10:18-20,마카비2서 1:1-2:18).
1세기의 헬라어와 아랍어 편지들과는 달리 히브리어 편지들에는 일종의 결어가 없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헬라어 편지들은 서두에는 ' ~가 ~에게 '라는 인사와 '나는 잘 지낸다'는 말, 수신자의 건강을 비는 표현 등이 있었으며 결어에는 인사, 말이나 기도, 기록 날짜 둥을 적었다. 바울의 편지들은 헬레니즘 시대에 쓰여진 편지들 속에 속하며, 유대적 관습에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사역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어 보다 발전된 편지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에 의해 발전된 편지는 교회의 정책, 교육, 권면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또한 멀리 떨어져 있는 교회간에 연락을 위한 방편으로도 이용되었다. 바울이 쓴 편지 형식의 영향을 받아 기륵된 다른 그리스도인 편지들도' ~가~에게 '라는 인사말로 서두를 시작하여 일반적으로 헬레니즘적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점점 그 형식이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예.롬 1:1-7;갈1:1-5;살전1:1;딛 1:1-4 ;몬 1:1-3 ;유 1 : 1-2 ;계 1 :4-5;클레멘트1서, 폴리갑의 빌립보서 표제).
저자(때때로 공동 저자) 및 수신자의 신분이 언급되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상호간의 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된다(이그나티우스는 특별히 수신자들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일반적인 헬레니즘 형식의 인사인 '카이레인("은혜")은 카리스에이레네-"은혜, 평강' 이는 히브리인사 '솰롬'을 가리킨다'와 '엘레오스("자비")로 대치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중 삼중의 인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등의 말을 첨가하여 축복 기도가 되었다. 헬레니즘의 편지들은 때때로 그 서두가 신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기도 했다(참조. 마카비 2서 1:11-17).
바울의 편지들과 이에 영향을 받은 다른 편지들은 대부분 수신자들을 위한 기도(예. 고전 1 : 4-9 ;엡 1:15-23;빌 1:3-11; 살후 1:3-12;2:13-14,딤후 1 : 3-7),유대의 예배 전통과 보다 관련이 있다(고후 1 : 3-4 ; 엡1:3-14;벧전 1:3-5) 하나님께 대한 찬미와 기쁨 (요이 1 : 4 ;요삼 1 : 3-4 바나바 서신 1 : 2-3 ;서머나의 폴리갑,빌립보 서신 1장)등의 내용으로 된 감사의 표현들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바울의 감사는 수신자들의 신실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편지를 쓰던 당시에 제기된 어떤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다.독특한 많은 표현들은 그리스도인 편지들의 본론을 시작할 때, 또는 본론 내에서 내용 전환을 알릴 때 사용되었다. "형제들아 내 가 너희를 권하노니"(예.롬 15 : 30 ; 16 : 17 ;고전 1 : 10 ;참조.고후10 : 1 벧전2: 11), "형제들아 우리가 [내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살후2:1;요이 1 : 5), "들으니..."(고전 5:1), "...에 대하여는"(고전 7 : 1 ;8:1 ;12:1;16:1),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15: 1 ,참조. 벧후1:12; 유1:5), '너희가 친히 아나니"(살전 2:1 ;참조 딤후 1: 15),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이는 때때로 편지의 맺음말으로의 전환을 가리킨다(예.고후 13 : 11 ,엡 6:10 ;빌 3:1 ;4:8,살전 4:1)-등이 그러한 표현들이다. 보다 교훈적인 내용으로부터 다른 긴 문장으로의 전환은 결어적인 송영 및 전환적인 어구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예. 롬11:36-12:1;엡3:21-4:1;살전3:11-4:1).
바울이 쓴 편지 본론의 또 다른 특징은 사도적 '파루시아'(즉, "임재")이다. 바울은 그의 여행 계획(수신자들과 함께 있고자 하는 그의 의도)과 그의 동역자들을 통한 수신자들과의 만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예. 고전 4:17-21 ; 16 : 5-12 ;빌 2 : 19-30 ;살전 2:17-3:11 ,몬 1 : 22;참조. 히 13:19).
바울은 결어에서 사용한 인사말을 통해 회중과 자신의 선교여행을 연결시켰고, "서로 안부를 전하라"는 권면이 담겨 진 표현을 썼다(예. 름 16 : 3-16,21-23 ;고후 13 : 12-13 ;골 4: 10-15,18 ;딛 3:15 ;참조. 벧전 5 : 13-14 ;요삼 1:15).
바울과 다른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쓴 편지의 결어에는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삽입구적 내용(예. 롬16 : 17-20 ; 고전 16:13-18,고후 13 :11,히 13:22), 축도(예. 고전 16:23갈 6:16, 18 :엡 6:23-24,살후 3:16,18), 송영(예. 롬 16:25-27 ;히 13:20-21 ;벧전 5 : 11 ;유 1:24-25)이 곧 그것이다.바울의 편지는 매우 광범위한 형태를 띤다. 다양한 수사법을 구사하고 있고, 전통적인 찬송과 전문적인 자료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는 편지 형식의 설교와 연설에서 한정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로마서에 나타나 있는 질문-대답의 법정 문답 형식은 구약의 권위에 보다 접근한 헬레니즘적 수사학의 특징이다. 바울과 다른 사람들은 전통적인 찬송 및 전문적인 자료들을 사용했다(예. 롬 1:3-4;고전 15:3-7,16:22.골 1:15-20,딤전3:16,Ignatius Epeh. 7:2, Trall 9:1-2).
편지로 알려진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 기록은 부분적으로만 편지 형식일 뿐, 설교에 가깝다. 이것은 예레미야서(렘29장)와 같은 구약의 전례를 따른 것으로, 이 예레미야서는 편지라기보다는 선지자가 전하는 설교 형식으로 되어 있다(대하 21:12-15에서의 엘리야의 편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청중을 위해 기록된 그리스도인의 설교는 아주 흔했다(예. 히브리서, 야고보서 ;참조. 에베소서).
바울의 편지를 포함하여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편지들에는 설교적인 요소가 많이 나타나있다(참조. 골4:16).
※참고 문헌W.G. Doty, Letters in Primitive Christianity(Philadelphia 1973) ; D.C. Pardee, Handbook of Ancient Hebrew Letters. SBL Sources for Biblical Study 15(Chicago :1982)) J.L White, The Form and function of the Body of the Greek Letter. SBL Dissertation 1(Missoula 1975) , ed., Studies in Ancient Letter. Writing. Semeia 22(1982).
심문- 자세히 따져서 묻는 것이다(사 53:8; 겔 23:10).
이해하기
바울은 로마 군인의 감시를 받는다는 조건 하에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는 억울하게 잡혀온 일을 예수님을 전할 기회로 사용합니다. 먼저는 로마의 유대인부터 시작해서,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선포합니다(16-28절).
바울은 재판을 기다리면서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죄인으로 끌려온 그의 신분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성령님이 시작하신 복음전파의 이야기는 마무리 됩니다(29-31절).
함께 묵상
Q1. 로마 재판정으로 간 바울은 옥에 갇히지 않았지만, 2년 동안 집에 갇혀 지내야 했어요. 그 시간 동안 바울은 무엇을 했나요?(23, 31절)
Q2.바울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했어요.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우리 가족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해 보세요.
기도하기
내일부터 진행될 캠프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기도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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