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토라#샤밧
성경의 숫자가 어떻게 히브리 경전의 비밀을 풀어주는지 알아보기(part1: 1-2)
<히브리어로 된 숫자는 위의 숫자 1~10과 같이 알파벳의 해당 문자로 표시됩니다.>
“우리의 날들 세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우리로 지혜의 마음을 가지게 해 주십시오(시 90:12).”
대부분 수는 일상적으로 질량이나 개수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유다이즘에선 성격이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토라(성경의 첫 5권)의 보편적인 진리와 예언자와 예슈아의 제자들의 뜻을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성경을 읽을 때 특정 숫자들이 자주 나타나고 그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경의 패턴을 인식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마법이 아니다.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문자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이해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해석 방법과 절차가 필요하며 주관적 해석이나, 주술, 점술로 사용해선 안 된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 1부터 7까지에 대하여, 유다이즘은 이것을 어떻게 보는지, 오늘 날 일부 성경학자들과 초기 유대교의 가르침을 전한다..
1, 에하드(에하드 또는 알렢/하나, 먼저)
“몸도 하나고, 영도 하나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부름 받을 때 한 소망 안에서 부름 받았습니다. (엡4:4)”
숫자로서 1은 유일하게 그 자체로 곱해지거나, 나뉠 수 있고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일한 숫자이다. 예를 들면 하나를 하나로 나누었을 때, 답은 1이다. 유대인들의 이해로 볼 때 숫자 1처럼 하나님은 나눌 수 없는 존재이시다. 숫자 1의 독특함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통일성 또는 하나이심을 나타낸다. 유일무이한 단일성과 특이성은 세대를 이어 유대인들에 의해 적어도 매일 두 번, 신앙의 영원한 선언인 ‘쉐마’를 통해 선포 된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아도나이는 에하드(한 분이신) 아도나이시다(신 6:4).”
하나님의 이 하나, 혹은 태초에(시작)는 복합적인 통합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은 하나님과 하나입니다(요1;1). 그때 그 말씀이 살이 되어 우리 사이에 거하게 되었습니다(요1;14). 그리고 살이 되신 예슈아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십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10:30).
에하드는 유다이즘에서 특별한 위치에서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다.
“숫자 1은 유대인의 생활의 근본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곧 다른 나라들은 많은 의식, 많은 성직자, 많은 예배당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인 우리는 G-d, 방주, 제단, 그리고 대제사장도 하나, 곧 에하드이다. 그것이 말하는 것은 토라 전체가 한 분이신(에하드) 분에 의해 주어졌고 한 명의 지도자(모쉐)에의해 가르쳐진 이유이다.” 라고 랍비 오셔 하임은 말했다.
에하드는 단일성 또는 유일함을 의미하며, 그것은 또한 첫 번째를 의미하고 성경의 많은 구절에서 볼 수 있다.
“저녁이 있었고 아침이 있었다. 첫째 날(욤 에하드-일요일)”(창1;15)
첫 번째 개념은 또한 제사장에게 주어진 첫 열매(비쿠림)의 구별과 동물의 첫 새끼와 첫아들, 장자의 구별에서 볼 수 있듯이 성경에서 첫 것은 좋은 것이고, 하나님께 중요하다.
“너는 네 땅의 소산물 중 가장 좋은 것을 네 하나님 아도나이의 집으로 가져 와야 한다.”(출34;26)
“이스라엘 자손 안에서 태를 처음 연 모든 것, 곧 처음 난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나를 위해 거룩하게 하여라. 그것은 내 것이다.”(출13;2)
출애굽기 4장 22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첫째 아들로 언급된다.
예슈아는 브릿 하다샤(신약)에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여 다시 태어난 첫 번째 아이로 잠든 자들의 첫 열매로 불리며 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마쉬아흐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셔서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처음 살아나시고.”(고전15;20. 요계1;5)
첫 번째는 성경의 첫 번째 말씀인 시작과 관련된 것으로 베레쉬트이다. 이 단어의 어근은 머리를 뜻하는 로쉬이다.
하나님이 시작이고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로 거룩해야 한다. 거룩은 첫째와 관련이 있다. 먼저 것이 그 뒤에 오는 것, 곧 단계나 패턴을 결정한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고 으뜸이십니다.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처음 나신 것은 모든 것 중에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골1;18).”
2. 슈나임(슈나임 또는 베트/둘)
“제발 당신 영의 두 배가 제게 있기를 바랍니다(왕 2;9후반).”
히브리어 서수(기수) 2인 슈나임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된 것인데 히브리어 글자 베트는 토라의 첫 단어인 베레쉬트의 첫 글자이므로 창조 설화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트”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글자보다 더 많고 숫자 2이기도 하다(히브리어는 숫자이다).
2는 “결합, 분열, 목격”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또한 “이중”을 의미하고 이중 부분과 연관되어 있다. 성경에서 우리는 언약의 두 돌판, 육 일째 되는 날에 이틀 분량을 취하는 만의 이중 부분, 그리고 하나님께서 남녀를 창조하시거나, 제자들을 짝지어 보내시는 것, 즉 상대와 짝에 대한 하나님의 질서를 생각해 본다(눅10;1).
신명기 19장 15절에서 숫자 2는 법률문제에서 증인 2명의 역할이 하나님의 질서와 연관이 있음을 보여 준다. 베트(2)는 창조 그 자체로 하나님의 복을 땅에 부으신 것이므로 우리의 복과 연관이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여 그분과 관계를 맺고, 사람 사이에도 관계를 맺는 것이 창조의 이유이다. 두 사람이 하나의 살이 되는 혼인의 언약은 베트, 2의 결합을 의미한다(창2:24).
분할의 개념은 둘째 날(욤 쉐니-월요일)부터 둘(두 개)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물을 나누어 하늘과 바다를 이루셨다. 실제로 둘은 갈등과 죄로 인한 분리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2에 대한 결합과 분열의 이중성은 아마도 인류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은 거룩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도, 죄를 통해 하나님과 분리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잘 설명된다. 관계가 진실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관계에 충실하거나 혹은 반역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죄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으로부터 갈라놓으며 예슈아는 우리 아버지와 화해를 위해 일하신다(엡2:16). 게다가 그는 모든 곳의 믿는 자들이 그와 연합할 수 있도록 한다(요17;22~23).
두 당사자가 언약을 맺으면 융합되어 하나의 실체가 된다.
법전의 두 돌판은 서로 간의 혼인 언약에 비유된다.
이스라엘 자손과 하나님 그들은 계약 조건을 담고 있었다.
※ 3 부터 7까지는 내일 이어집니다.
자료: Messianic Bible.com
글: <월간샤밧> 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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