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아공 월드컵이 100년 축구전쟁의 끝이 되었으면...
"영어학교 학생들이 오후면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데, 달리거나 이기고자 투쟁심을 내는 활달한 거동이 일본 학생들보다는 백 배 낫다." 지금부터 백년하고도 월드컵 경기가 한번은 더 열렸을 만큼 오래 전인 1896년 <독립신문> 기사다. 그렇게 한일양국의 축구전쟁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막이 올랐다. 그리고 ‘영원한 숙명적 라이벌’인 한일 양국은 나란히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 진출하며, 아시아 축구의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지난 2002 한일월드컵에 이어 아시아 축구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200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이미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일본 축구계는 패닉상태였다. 남아공 월드컵을 한달 앞두고 벌어진 한일 평가전 때도 그랬고, 한국이 남아공 월드컵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완벽하게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여전히 신공한증에 주눅 들어 있었다. 그런데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4-1로 대패하고, 그 사이 일본은 강호 카메룬에 이기고, 네덜란드에 0-1로 패하는 등 선전을 하면서 일본 언론은 기고만장했다. "한국 축구는 없다, 그래 가지고 16강에는 가겠냐"는 식의 어찌보면 컴플렉스를 한껏 발산하는 비아냥이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은 나이지리아에 2-2로 비기면서 먼저 16강을 확정했을 때 또 한 번 그들은 주눅 들어야 했다. 자신들조차 덴마크에 비기는 것조차 수월찮을 것으로 봤던 것이다. 한국 팬들도 말로는 아시아가 같이 올라가야 한다면서도 은근히 일본이 떨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3-1로 완벽하게 덴마크를 제압하면서 아시아의 맹주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포효했다. 이번에는 한국 축구계가 주눅 들 차례지만 일본과 다른 점은 컴플렉스가 없었다. 역설적으로 한국이 8강에 먼저 올라간다면 전세 역전인 셈이라며 애써 자위하는 정도가 한국 축구계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위기감에 대한 표현인 셈이다.
그렇게 축구 백년전쟁을 치르고 있는 숙명의 라이벌은 서로 갈구며 커가는 지도 모른다. 그 이면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의식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완패했던 일본이 180도 변신해서 세계적인 팀처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오카다 감독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2년에 만개했던 압박을 강조하는 히딩크식 한국축구가 모델이었다. 기술축구를 지향해왔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기술로는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체력을 키워 온 셈이다.
일본은 효과적인 수비전술로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공을 가진 상대를 순간적으로 에워싸는 부지런함이 돋보였다. 이런 협력수비를 위해서 일본은 그 어느 때 보다 많이 뛰어야 했다. 마치 2002년의 한국을 연상하듯이... 그러면서도 일본은 지금까지 신봉해 왔던 기술축구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한국보다 2% 나아 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일양국의 축구전쟁이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며, 그렇게 쉽게 끝날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 축구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양국 간 라이벌 의식이 양국 축구를 발전시켜 온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한발 앞서 온 한국... 그러나 독주는 허용되지 않고
양국의 경쟁에서 한발 앞서 간 것은 언제나 일본이었지만 그래서 늘 앞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 한국이었다. 1954년 일본보다 먼저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이후 다시 월드컵 본선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무려 32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 동안 먼저 일을 낸 것도 역시 일본이었다. 1966년 북한의 월드컵 8강 진출에 이어지는 1968년 일본의 올림픽 축구 동메달 획득은 한국 축구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서슬이 퍼렇던 박정희 정권이 축구에 손을 댄 것이다. 개도국에서 순식간에 중진국으로 들어선 경제와 마찬가지로 축구에서도 압축 성장 계획이 추진됐다. 그 첫 단추가 이른바 박스컵 축구 대회의 창설이었다.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진출도 한일 양국의 자존심 대결의 결과였다. 한국 축구의 첫 세계적 스타라 할 수 있는 차범근에 앞서 분데스리가에 먼저 진출한 것은 일본 축구 스타 오쿠데라였다. 1978년 소속팀 FC 쾰른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함께 자주 독일 언론에 오르내리던 오쿠데라의 대항마를 찾고 있던 재독한인축구협회는 차범근을 끌어들였다. 재독한인축구협회는 차범근이 독일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독일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결정적 역할을 해줬다.
그렇게 준비한 한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예선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일본을 잡고 다시 월드컵에 나갔다. 일본에서 열린 최종예선 1차전에서 한국은 2-1로 승리했다. 야구의 나라 일본이 저팬시리즈와 일정이 겹쳤음에도 요요기 국립경기장을 7만 관중으로 꽉 채우면서 타도 한국을 외쳤지만 정신력에서 졌다. 그리고 서울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현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허정무 감독이 골을 넣어 일본 축구에 좌절을 안겼다.
이제는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일본이 대대적인 반격을 가했다. 한국 축구를 이기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한 일본은 93년 J리그를 전격 출범시켰으며, 많은 유소년 선수들을 주로 브라질에 보내 탄탄한 기본기도 쌓게 했다. 이른바 기술축구로 대표되는 일본의 축구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9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맺을 뻔했다. 일본의 브라질 유학파 미우라 카즈요시가 결승골로 한국을 제압했을 때 우리 언론은 이 날을 한국 축구의 '국치일'로 표현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그러나 마지막 날 일본이 이라크와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한국이 월드컵에 나가게 됐다. 동점골을 넣은 이라크의 자파르는 한국 축구의 구세주가 됐다.
이 '도하의 기적'은 그 때까지 월드컵 유치경쟁에서 앞서가던 일본을 한국이 따라잡는 계기가 됐다. '일본이 단 한 번도 월드컵에 나간 적이 없는 국가'라는 점을 내세우는 한국에 일본은 저주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게 된 한일 양국의 경쟁은 누가 16강에 갈 것 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개최국은 예외없이 16강에 진출했었음에도 아시아 축구의 수준으로 보아 둘 다 16강에 진출한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하나만 올라간다면 나머지 한 나라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땅에 처박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축구의 신은 늘 한일양국에 독주를 허용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마치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처럼 양국이 똑같이 16강에 올랐다. 이제는 8강 경쟁이었다. 특히 한국이 8강, 4강에 간 것은 세계 축구전문가들이 언론들의 폄하와 달리 운이 좋았다거나 홈 그라운드의 이점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경쟁심이었을 것이다. 일본보다는 더 나은 성적이 필요했던 한국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앞두고숙적 일본이 터키에 패해 8강이 좌절됐다는 소식 때문에 긴장감이 다소 풀어졌다. 하지만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히딩크는 선수단에 "일본이 졌다고 우리가 져도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는 한일 축구의 라이벌 의식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의 4강 신화에는 이처럼 일본 효과가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도 한일 양국이 나란히 나갔다. 한번 동반진출한 이후 일본도 이제는 월드컵 단골 손님이 된 것이다. 그때도 한국인들은 일본과 경기를 펼치는 호주를 응원했다. 히딩크가 호주의 감독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우리보다 더 나은 성적을 내는 것이 실었던 탓이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 전 "일본을 이겨 한국에 기쁨을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호주는 일본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히딩크 감독은 "일본이 넣은 첫 골은 파울이었다. 이 경기는 정의가 승리한 경기"라고 규정했다. 한국인들이 호주의 승리에 우리 팀 승리 이상으로 기뻐했던 이유다.
그렇게 이어져온 백년 전쟁이 남아공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각각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치명상을 주었던 양국 감독이 진검승부를 겨루는 형국이다. 86년 멕시코 월드컵 최종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일본을 무너뜨린 허정무 감독 얘기는 이미 한 바 있고, 일본의 오카다 감독 역시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한국과의 예선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1-2로 져서 예선 탈락했는데, 수비수 출신인 오카다 감독이 대표선수로 뛰는 동안 유일하게 기록한 골이 바로 그 골이었다.
그리고 이제 남아공에서 대회전이 벌이지고 있다. 분명 남아공에 가기 전까지는 한국과 허 감독의 일방적인 독주 태세였는데 예선을 거치는 동안 일본의 압도적 우세로 바뀌었다. 그러나 아주 끝난 것은 아닌, 지금도 진행 중인 대회전인 셈이다. 아무튼 2010 남아공월드컵은 2002 한일월드컵과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의 탈락, 우승 후보의 조별리그 진출 실패, 미국의 16강 진출, 한국과 일본의 동반 16강 진출 등 2002 한일 월드컵 때와 유사하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는 24일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2무1패, F조 최하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전 대회 우승팀이 2라운드에 오르지 못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2002 한일월드컵 때 역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프랑스가 대회 개막전서 첫 출전국 세네갈에 당한 패배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전 대회 준우승팀 프랑스의 탈락 역시 2002년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의 탈락에 비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조별리그 전적 1무2패를 기록한 지난대회 준우승팀 프랑스는 경기장에서의 졸전 뿐 아니라 감독에 욕설 섞인 항명, 팀 훈련 보이콧, 경기 출전 거부 등 '막장의 끝'을 보여주며 온갖 비난을 받았다.
한국과 일본의 16강 동반 진출, 미국의 8년만의 결승 토너먼트 진출도 2002년 한일월드컵과 비슷한 모양새다. 특히 한일 양국의 16강 진출은 그때나 지금이나 충격 그 자체로 세계 축구계에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나마 2002년에는 공동개최국이라는 프리미엄이라도 있었지만 이번 대회 16강 진출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몰락 속에서 아시아의 웅비를 상징하는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대회 1, 2위 팀이 동반탈락했던 사례는 사실 월드컵 대회 사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래저래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2002년 한일월드컵의 재판인 듯하면서도 더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셈이다.
세계축구사를 바꾼 2002년, 그리고 반복되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무튼 나란히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의 위업을 달성한 `아시아축구의 양대산맥` 한국과 일본은 2002년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것 같다. 월드컵 개막 직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축구 선진국의 내로라하는 일류 선수들도 혀들 내두르는 자블리니를 완벽히 다루며 아름다운 세트피스 골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양국 모두 자국에서는 인기가 없던 국내파 지도자들에 의해 16강을 달성했고, 똑같이 남미의 다크호스들과 16강 대결을 펼치게 됐다.
우루과이와 16강을 다투는 한국이나 파라과이와 16강을 다투는 일본의 상황 역시 닮은꼴이다. 우루과이와 파라과이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우승후보로 평가받지는 못하지만 탄탄한 전력을 자랑하는 남미의 다크호스다.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디에고 포를란과 로케 산타 크루즈라는 간판 골잡이가 버티고 있다는 것도 닮은 점이고 디에고 루가노와 데니스 카니사가 이끄는 포백의 깊이도 두텁다. 특히 이번 대회 들어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며 프랑스, 이탈리아라는 우승후보들을 넘어 각 조 1위로 16강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한 팀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한일 양국이 닮았듯 그 상대팀조차 어쩜 그리 닮았는지, 그래서 아시아의 닮음꼴 한일 양국이 남미의 닮음꼴 양국과 펼치게 될 대회전은 최고의 8강전 흥행카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두 팀 모두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토너먼트 경험이 부족하고 스타플레이어의 이름값도 덜하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충분히 해볼 만 한 상대라는 평가가 중론이며, 한일 양국 모두가 사상 첫 원정 16강을 넘어 8강으로 가는데 긍정적인 대진운이라며 고무돼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일 양국은 숙명의 라이벌답게 예선과 1라운드 경기 결과뿐만 아니라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지나치게 닮아 있다. 특히 월드컵 3회 연속 한일 양 팀 감독들만 닮은 게 아니라 3회 연속 출전 과정에서 팀을 맡았던 역대 감독들마저도 공통점이 많다. 2002년 양 팀은 최초로 외국인 감독 체제로 월드컵을 맞이했다. 대한민국은 거스 히딩크 감독을 중심으로 강한 체력과 중앙 압박으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우승 후보들을 차례로 꺾으며 4강 신화를 썼다. 일본 역시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 와이 조별 예선에서 당당히 조 1위를 차지했으며 터키와의 16강전에서 0-1로 패하며 16강에 만족해야만 했지만 하여튼 최초의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일 양국이 똑같이 16강을 진출했지만 한국은 4강까지 치고 나간 반면 일본은 16강에 그치면서 한국이 일본에 압승한 셈이었다. 그러나 히딩크와 트루시에 감독 모두가 승리자로 남았던 대회였다. '오대영'이라는 별명까지 따라붙으며 고전을 면치 못했던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팀을 4강에 올려놓으며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이름을 올렸으며, 트루시에 감독도 일본에 월드컵 무대 첫 승리와 16강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명감독으로 그 이름을 남겼다. 두 감독으로 인해 한일 양국은 이후 계속 외국인 감독에 사령탑을 맡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두 팀은 비슷한 길을 걸었다. 대한민국은 히딩크 감독 이후 핌 베어백, 조 본프레레 등 여러 감독을 거친 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 일본 역시 2004년 아시안컵에서 일본에 우승을 안기며 큰 기대를 모았던 지코 감독을 영입했다. 양팀 모두 똑같이 외국인 감독으로 독일 월드컵에 나섰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공교롭게 예선 탈락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역시 2002년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양국 간의 맞대결에서는 한국이 근소한 우세를 보였다. 지코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호주, 크로아티아, 브라질을 상대로 1무2패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고, 지코 감독은 1승도 거두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만 했다. 히딩크 이후 맞이하는 독일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한 한국의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 1승 1무 1패로 조별 탈락에 그쳤지만 대한민국에 원정 월드컵 첫 승이라는 선물을 안겼고 16강 탈락도 운이 없었던 탓이라는 평을 받았다.
100년 전쟁의 끝은 결승전... 허황된 꿈도 이뤄지는 법?
그렇게 길게 이어져온 한일 양국의 100년 축구전쟁의 마침표 내지는 반환점이 이번 2010 남아공 월드컵인 셈이다. 그리고 한일 양국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이번에는 국내파 감독 체제로 월드컵을 맞이했고, 25일 현재, 두 팀 모두 원정 첫 16강이라는 목표를 국내파 감독과 함께 이뤄내는 쾌거를 올리며 아시아 축구사를 다시 썼다. 허정무 감독은 1승 1무 1패 승점 4점으로, 오카다 감독은 2승 1패 승점 6점으로 각각 조 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일본의 중간 성적이 앞선 느낌이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이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두 팀 대한민국과 일본,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두 팀이 국내파 감독을 중심으로 어떠한 성적을 거둘지 양국 축구팬들 뿐 아닐 세계 축구계 역시 흥미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 과연 한국과 일본이 남미 다크호스의 벽을 넘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의 위업을 이룰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2002년과 달리 이번에는 한국이 먼저 8강전에 나서는 것이 어떤 바람을 일으킬 지도 관심꺼리다.
너무 김칫국을 마신다고 나무랄 수 있고 지나친 ‘설레발’이라며 우스워할 수 있지만 8강전만 넘어서면 4강까지는 쉬울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갖게 하는 대진표다. 오는 26일 오후 11시(한국시각) 16강에서 우루과이와 대결하는 한국은 이 경기에서 이기면 8강전에서 가나와 미국전의 승자와 맞붙는다. 반면 일본은 오는 29일 파라과이와 16강전을 치르는데, 여기서 이기면 H조 1위 스페인-G조 2위 포르투칼의 승자와 8강에서 대결한다. 일단 8강전은 일본이 다소 유리해보이지만 둘다 8강전을 넘어선다고 가정할 때는 한국의 4강전 대진표가 훨씬 유리하다. 스페인과 포르투칼 중 어떤 국가가 상대로 정해지든 일본으로서는 힘든 경기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일본의 국민들은 16강을 넘어 8강, 4강 그리고 결승까지 진출하는 꿈을 꾸고 있다. 대진표 상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예정된 모든 토너먼트 경기를 이기고 결승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 결승까지 가기 위해선 명실공히 최고의 축구강호들을 넘어뜨려야하는 건 불문가지다. 8강전에서 이겨 4강에 안착하면 한국은 세계최강 브라질과 대결할 가능성이 크고 일본은 아르헨티나와 대결할 공산이 크다. ‘꿈의’ 가상 시나리오 상에서 4강전은 한국-브라질, 일본-아르헨티나가 맞붙는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4강전까지 이긴다면 최초의 월드컵 한일 결승전마저도 가능하다. 물론 두 팀 다 우승후보를 넘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한국과 일본이 결승전까지 지지 않고 간다고 했을 때의 시나리오이다.
아무튼 아시아의 축구를 대표하면서도 숙명의 라이벌인 두 나라 모두 월드컵 16강에 진출했고 꿈은 계속되고 있다. `꿈`이라 치부되는 가상이지만 한일 네티즌들은 양국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기뻐하며 이왕에 “결승전에서 만나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박지성 혼다가 결승서 맞붙는다? 꿈이 이루어질까. 여기다 꿈을 더 보태면 물론, 우승이다. 꾸고 있는 허황된 꿈까지도 똑같으니 닮아도 너무 닮았다. 지독한 악연인 셈이다. "꿈은 이뤄진다'고 했는데...
첫댓글 휴~우...
이젠 저들의 경기를, 우리 경기못지 않은 심정으로
숨죽여 보아야만 하는 신세(?)지만...
너무 잘한 우리 태극전사들의 선전에 아낌없는 찬사의박수를 보내고,
싫지만(?) 그들 또한 잘 했지만 거기서 끝내기를 바라는(?) 마음...
백년 악연의 연속이겠지요?
그들이 너무 오만방자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맘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