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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이혼이 웬 말이냐?
목 차
<이혼(離婚)이란?>
<이혼했지만 우린 매일 만나요>
<이혼제도>
<이혼의 아픔을 극복하는 법>
<이혼에 대한 나의 소견>
제10장 이혼이 웬 말이냐?
<이혼(離婚)이란?>
부부 한쪽 혹은 양쪽 모두의 잘못으로 인해, 또는 단순히 서로 잘 맞지 않아 부부가 혼인 관계를 해소하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흔히 법적인 혼인 관계를 종료시키는 행위만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으나, 법적으로 이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혼한 것과 다름없이 남남처럼 사는 것을 사실상 이혼이라고 하며, 법적으로는 이혼하였으나 사실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서류이혼 또는 위장 이혼이라 합니다.
이혼은 크게 협의이혼이거나 재판상 이혼입니다. 쌍방 간에 이혼 여부 및 자녀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면 별도의 소송과정 없이 이혼이 되며, 이것을 협의이혼이라 합니다. 재판상 이혼은 별도의 절차를 밟아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청구하는 방식입니다. 이혼 여부에 대해 협의가 되지 않거나, 이혼에 대해서는 협의가 돼도 친권이나 양육권에 대해 협의가 되지 않는 경우 등에는 재판상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혼에 대해 2016년 통계에 의하면, 배우자 부정(7%), 정신적, 육체적 학대(3.6%), 가족 간 불화(7.4%), 경제문제(10.2%), 성격차이(45.2%), 건강문제(0.6%), 기타(19.9%), 미상(6.2%)으로 집계되어 있습니다.
이 결과를 믿는다면 성격 차이가 가장 일반적인 이혼 사유라 할 만합니다. 하지만 협의상 이혼과 재판상 이혼을 뒤섞은 통계인 데다가 왜 이혼했냐? 라는 질문에 상대와 성관계를 가져도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식으로 응답을 하는 것, 폭력, 돈 문제를 남들한테까지 직접 말하기가 힘들기에 가장 무난한 대답인 성격 차이를 선택한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통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성격 차이라고 응답하는 경우는 경제력 부족이나 성적인 문제인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혼인이 파탄된 이유가 복합적인 경우가 일반적이며, 달랑 딱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혼하는 경우는 매우 적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남편의 경제력에 따라 이혼율이 급격히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남편의 월 소득이 1,000만 원 이상이면 남편이 원해야지만 이혼이 발생할 정도로 이혼율이 낮습니다. 반면 남편이 실직할 경우 2년 내 이혼할 확률이 급격히 올라갔습니다.
아내가 실직하는 것은 이혼율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여성은 전업주부일 때 이혼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제력 부족이 실제 대부분의 이혼 사유이지만 이혼서류에 경제력 부족을 이혼 사유로 기재하지 않는 이유는
첫째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체면 때문에 남들에게 속물로 비치지 않기 위해서이며
둘째로는 자신들의 이혼 사유가 경제문제에 있음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단순히 경제력 상실이 일어나자마자 이혼하는 경우는 크게 많지 않고 대부분은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부부 간 갈등의 증가로 이어져 가정 관계가 파탄이 나기 때문에 이미 당사자들은 경제력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잊거나, 다른 원인을 찾기 마련입니다.
경제적 이유로 이혼하게 되는 경우는 생활고보단 배우자가 사치, 도박, 사채 등 씀씀이가 헤프거나 혹은 자신도 모르게 배우자가 빚을 만들어서 이혼하게 된 사례가 많습니다. 심할 경우 배우자가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게 밝혀져 이혼하는 사례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경제적 위기는 잘 살다가 못 살게 되는 경우를 의미하므로 기본적으로 못 사는 상태에서 결혼하는 경우, 속도위반으로 결혼한 게 아닌 이상 이혼율이 되려 잘 사는 사람들보다 낮습니다. 물론 이혼하기 전에 일가족 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경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불륜으로 인한 이혼은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연애행위를 하는 것으로. 전화나 편지를 주고받는 것부터 성관계를 가지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이에 포함됩니다. 즉, 간통과는 달리 성행위가 없어도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경우에는 이혼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은 가부장적 가치관과 남녀 간의 기본적인 완력의 차이 때문에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인데 남편이 가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내가 가해자인 경우는 그 반대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혼수, 예단, 봉채비 등 결혼 관련 비용을 어느 쪽이 부담하는 가로 갈등을 겪다가 혼인 후에도 그 앙금이 남아 자녀의 배우자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저지르기에 이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가나 처가의 갑질로 고통받는 사위와 며느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며느리가 겪는 정서적 학대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또한, 명절증후군 끝에 이혼하는 경우가 자주 언론에 오르내립니다.
정견의 차이로 인한 이혼도 있습니다. 정치성향의 차이는 인간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고, 부부관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회주의가 한참 발호하던 시절에는 운동권 자식이 부르주아 부모와 의절하고 공격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종교적 차이로 인한 이혼, 종교는 신자들의 삶의 양식이 되는데 보통 비신자에게 신자의 이런 모습은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같이 지낼 수야 있지만, 갑 짝이 출가를 한다고 한다든지, 가족을 교회에 무조건 데리고 가려 한다든지, 종교 공동체의 일이 가족보다 우선이 된다든지 하게 되면 비신자, 심지어는 같은 종교 신자라도 못 참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과 그 가족들이 개신교를 믿는다며 매일 교회에 가게 되면 그 사람의 배우자와 그 가족들은 불교를 믿는다면서 매일 절에 가게 되는 차이를 보이게 되고 성격도 다른 종파 문제 때문에 부부가 말다툼을, 하거나 상대방 종파를 모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종교적 사유로 제사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교적 이혼 사유의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심지어는 같은 종교를 믿어도 싸움이 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한 명은 그냥 적당히 믿거나 나이롱신도인 반면 다른 한 명이 광신도급으로 믿어 종교 활동이 가정보다 우선시 될 경우, 그러합니다. 가장 황당한 케이스로는 가정 잘 꾸려나가던 아내가 뒤늦게 만학도의 길을 걷겠다고 해서 대학 지원을 해 줬더니 불교 대학에 가서 결국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출가해버린 사례도 있습니다.
성격 차이로 인한 이혼은 법원에 제출된 이혼신고서 통계 중 가장 많은 이혼 사유로 뽑힌 것이 성격 차이입니다. 실제로는 배우자 부정이나 경제문제에서 온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성격 차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그럴듯하니까. 이쪽으로 기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부부가 갈등을 참지 않고 이혼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져 실제로도 경제력이나 다른 핑계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성격 차이에 따른 이혼이 상당수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성향이나 가치관, 생활습관 차이에 따른 충돌과 다툼이 불가피 해집니다. 이게 반복되고 당사자들이 이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판단하면 이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불륜 또는 경제문제가 아니라면 정말로 부부간의 성격이 달라 생기는 갈등이 이혼의 실제 이유입니다.
특히 황혼이혼이 증가하는 것과도 관련이 큰데, 과거에는 기왕 지금껏 살아온 거 조금만 버티면 누구 하나는 가겠지 하고 참고 사는 추세였다면, 오늘날에는 의학이 발달하여 평균 수명도 늘어났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들고 성격도 안 맞는 배우자와 수십 년을 더 살라고? 라는 식으로 인식이 변화한 측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결벽증인 사람과 다소 털털한 사람이 결혼한 경우 서로 사랑해서 결혼까지는 했는데, 정작 살다 보니 성격이 극과 극이라 계속된 다툼 끝에 이혼까지 오는 경우입니다.
이혼하게 되면 모든 이혼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애먼 자녀에게 큰 피해가 가게 됩니다. 부부싸움에서 이혼으로 연계되는 과정은 자녀의 정서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아이를 위해 이혼을 안 하다가 매일 부부싸움 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노출해서 자녀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너희들 때문에 참고 사는 줄 알아 라는 식으로 자신이 이혼을 못 하는 스트레스를 애들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절대로 할 짓이 못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소리를 듣고 사는 자녀들은 당연히 자신이 부모 불행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큰 문제를 안게 됩니다.
천주교는 이러한 문제를 근거로 이혼하는 가정의 자녀가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에 큰 패널티를 준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 자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같이 살 사람을 직접 고르라고 하는 일만은 절대적으로 피하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자녀에게 자신이 한쪽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게 크나큰 고통을 준다고 하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대체로 나이가 어릴수록 타격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유일하고 위안을 찾는 하나의 세계인데 그 세계가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반 토막 나는 셈이니 상처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외로움이나 생활 스트레스도 크며, 가출, 공격적인 행동 등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6세 미만일 때 부모가 이혼한 경우는 그 이상의 나이보다 3배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가출청소년, 비행청소년, 범죄자가 되는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소년범의 대부분은 이혼·사별·가출 등으로 인한 한 부모·조손 가정입니다. 이혼은 아동학대의 위험을 엄청나게 높입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맡겨질 경우는 방치의 형태로. 아내에게 맡겨질 경우는 물리적 학대와 상실감에서 비롯한 자녀에 대한 비상식적일 정도로 강한 통제의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불행한 결혼으로 얻는 스트레스도 크지만, 이혼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절대, 못하지 않습니다. 남편의 경우에는 가사 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고 전업주부의 경우 일상가사를 그대로 하면서 일자리를 얻어야 합니다. 일자리가 있었다 할지라도 수입의 급격한 감소를 피할 수 없고 근무시간을 늘려야 하기에 가사에 투입할 시간이 줄어들어 가사부담이 가중됩니다.
전남편이 가족 경제에 마이너스 구멍을 내고 있던 망나니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성적 욕구를 집 외부에서 풀어야 하기에 시간적 압박도 훨씬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결혼이 어느 한쪽의 문제라면 문제없는 쪽에 자녀가 맡겨지면 좋겠지만 누가 문제인지는 이혼당사자 양쪽 다 모르며 재판관이 정해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생활이나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배우자에게 전가하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사람에게 양육권이 맡겨지는 재앙이 발생하면 주된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 자연스럽게 자녀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아동학대 수준까지 가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전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자식에게 푸는 경향이 높아지므로 아동 입장은 양친 모두 자신을 학대하는 배신자로 여기게 됩니다. 이혼으로 얻는 스트레스를 자녀에게 돌리게끔 유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모두에게 좋은 해법이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더구나 이혼에 부부 일방의 책임만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이혼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오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통계적으로는 경제적 궁핍, 외로움 등으로 이혼 후 불행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이혼 후 자살 시도율은 남성이 5.9배, 여성은 2.3배 올라가서 이혼이 여성에게 좋다는 말도 있지만, 양육권이 불균등하게 나누어진다는 것을 간과한 것으로 양육권이 남성에게 간 경우 남성의 자살률이 3.4배로 감소하고 여성은 7.9배로 폭증한다고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자살을 막는 기제가 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긍정적인 것 같지만 자녀를 스트레스 해소의 도구로 삼는다는 관점에서 이 통계를 본다면 섬뜩한 통계 결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녀는 거의 반드시 이혼의 무고한 피해자라는 것을 잊어 서는 안됩니다. 특히나 아동학대는 고위험군으로 들어가게 되는 상황에서 부모에게 이런 것을 인지시키지 않으면 이혼의 책임과 일상생활의 불행을 자녀에게 묻는 최악의 상황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므로 자녀에 대한 죄책감을 희석, 시키는 조언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널 위해서,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산다, 내 아이는 유독 별나게 사람을 괴롭힌다. 라는 말은 이혼가정이나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매우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인데 이 표현 자체부터가 강한 수준의 아동학대를 암시하는 징후이므로 이혼의 아동학대성향을 더욱 키우게 되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경우 이혼 인을 면밀하게 관측하고 아동학대 방지 교육을, 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혼했지만 우린 매일 만나요>
우리는 고교 동창입니다. 이혼하고도 여전히 친구로 지냅니다. 시끌벅적한 놀이동산. 40대 김희애 씨가 막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와 솜사탕을 먹으며 깔깔거리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한없이 다정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동갑내기 한종수씨가 있습니다. 누가 봐도 다정한 부부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가을 9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낸 사이입니다.
부산시, 광안동에만 줄곧 살아온 김씨는 남편 한종수씨와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17살부터 교제를 시작해서 대학교를 졸업하던 29살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20여 년이 넘는 긴 인연을 뒤로하고 이혼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서로에 대한 권태감 때문이었습니다. 2012년에 딸을 출산하면서부터 둘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연애 시절의 설렘은 차치하더라도 서로 존중하지도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긴 연애 기간을 거치면서 서로 누구보다도 상대를 잘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배우자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듯, 제대로 된 대화 한 번을 나눈 적이 없는 날이 늘어났습니다. 집 안에서 타인보다도 못한 관계로 지냈습니다. 대출금과 육아 문제 빠듯한 살림과 고부 갈등까지 폭풍처럼 다가왔습니다. 위기가 다가올 때마다 서로 폭언을 일삼는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이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김씨는 설명합니다. 모두의 축복 속에 한 결혼과는 달리 이혼 과정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막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 문제부터 양육비, 공동명의의 주택과 양가 부모의 반대까지, 결혼은 환상이지만 이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부부는 이별을 분노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보단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분리의 과정으로 삼았습니다.
우선 이혼에 앞서 별거를 통해 상대방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습니다. 연애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낳기 이전까지의 관계와 현재의 관계를 고려해본 뒤 차분하고 정확하게 이혼을 준비했습니다. 육아 문제를 최우선으로 놓고, 부부로서는 실패했지만, 아이의 부모로서는 각자 최선을 다하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남편 한씨가 아이를 보살피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부인 김씨가 육아를 전담하는 것으로 규칙을 정했습니다. 공동 소유였던 주택은 소유권을 그대로 두되 임대 수익이 발생할 경우, 절반씩 나누기로 했습니다.
주택을 정리해 절반으로 나눌 수도 있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생길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고자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납득 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고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설명하는 장기적인 계획도 세웠습니다. 지금은 남남이지만, 청소년기부터 지금까지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료였던 두 사람이기에 놀이동산이나 공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도 갑니다.
가끔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등산 등 운동을 함께할 때도 있습니다. 함께한 세월과 추억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전남편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내 아이의 아버지잖아요.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불행하게 함께 살며 서로에 대한 미움을 쌓았던 과거보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현재가 훨씬 행복합니다.
또 다른 사연 하나는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동에, 위치한 작은 카페는 늘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저렴한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30대 주인 커플의 친절한 서비스가 인근의 사람들을 단골로 끌어들였습니다. 이곳을 자주 드나드는 주민이라면 아내 정 0영씨와 남편 남 0원씨가 이혼한 사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는 대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얘기해온 덕분입니다. 부부가 결혼을 한 2013년에 카페는 문을 열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정씨와 남씨는 결혼하면서 자영업을 해 보기로, 결심했고 그동안 모아놓았던 자산과 은행 대출을 합쳐 카페를 차렸습니다.
월급을 주기적으로 받는 안정적인 직장인과 달리 자영업자에게 수입은 가장 신경 쓰이는 생활 요소입니다. 손님이 많은 달과 그렇지 않은 달의 수익 차이에 불안을 느낀 남편 남씨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카페 인근에 저녁 손님을 겨냥한 와인 바를 열면서 부부의 사이는 서먹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애초 와인 바를 반대했던 아내 정씨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강행한 탓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와인 바는 카페와 달리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했습니다.
수익이 떨어지고 대출 이자에 대한 압박까지 겹치며 다투는 날이 잦아졌고 부부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서운함이 겹쳐 서로 원망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적 절차 등 여러 가지 과정을 겪으면서, 이혼은 긴 인생에서 하나의 과정이자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아내 정씨는 고백했습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해 벌어졌던 오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부부는 이혼 뒤에도 카페를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비슷한 금액을 투자했으며, 같은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이기에 이혼했다는 이유로 놓아버리기엔 아까운 가치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카페에서 낸 수익을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누는 것이, 분쟁을 피하는 첫 번째 방법이었습니다. 재료나 비품 구매 등 운영에 필요한 모든 금액은 미리 일정 금액을 넣어둔 공동통장에서 사용했습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할 법도 한데, 공동투자자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남편 남씨는 말을 합니다. 하루 대부분을 카페에서 보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상생활을 공유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헤어진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담백하고 깔끔하게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투자자이자 친구가 된 셈입니다.
<이혼제도>
이혼한 당사자들끼리는 서로 남남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실제로는 이혼을 한다고 부부관계가 두부 자르듯 끝나지는 않습니다. 특히 자식이 있는 경우, 이혼하고 나서도 왕래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이혼이 이미 만들어진 여러, 사람들의 관계들은 여전히 남아 있어 이를 정리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만 법적 이혼으로 인해 인척 관계는 일거에 해소됩니다. 민법 제775조 제1항에 따라 이혼을 하게 되면 인척 관계는 모두 종료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애매한 관계가 될 뿐입니다.
과거에는 이혼을 금지하는 분위기가 강했으나 현대에는 의외로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살기 싫은 사람이랑 계속 같이 살라고 하는 게 더욱 가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대한민국은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혼했다고 하면 이유에, 관계없이 주로 여자 쪽에 손가락질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혼 사유가 되는 가정폭력이나 시가 친정의 횡포 같은 건 아내가 그냥 참고 살았을 뿐, 그 당시라고 없었던 건 아닙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종교, 윤리의 힘이 강한 사회일수록 이혼율이 낮은데, 종교, 윤리의 이름으로 개인을 찍어 누르는 사회일수록 즉, 정서적으로 봉건주의에 가까운 사회일수록 이혼율이 낮다는 뜻이므로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한 시각은 거의 사라졌으며, 이혼율도 높아지는 경향이며, 황혼이혼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사회적 여건 때문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 황혼이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이 황혼이혼은 현재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소한 문제로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사회에서는 이혼이 합법적인 행위임에도 그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겨 쉬쉬하거나 그냥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관념은 거의 사라진 편입니다.
한국의 사회문화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서구화된 편이기 때문에 미국, 유럽, 한국의 생애 이혼율은 1970년대 이후 세대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결혼율도 그에 비등하게 상당히 감소하고 있는데 동거율은 그다지 높지 않아 1인 가구의 비중이 세대를 불문하고 상당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중, 후기 사회에서는 이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칠거지악이라 하여 7가지 사유 중 하나가 있어야, 이혼이 가능했습니다. 설령 칠거지악 중 하나가 있다 해도 삼불거 중 하나가 있을 시 이혼이 금지되었습니다.
칠거지악이란?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아들이 없고, 음탕하고, 질투하고, 나쁜 병이 있고, 말이 많고, 도둑질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삼불거란? 내쫓아도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 함께 부모의 삼년상을 치른 경우, 전에는 가난하였으나 혼인한 후 부자가 된 경우를 말합니다.
미국의 경우엔 일부 주에서는 재산분할을 할 때 혼인 기간, 동안 발생한 재산뿐 아니라 모든 재산을 나누기도 합니다. 1명은 일하고 1명은 집안일만 했어도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재산분할 받아서 벼락부자가 된 이혼녀는 드라마, 특히 미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됩니다. 재산분할은 공정하게 하는 게 원칙이지만, 서로 합의를 봐서 분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 미리 프리넙 이라는 결혼계약서를 쓰기도 합니다. 계약서에 기제 된 한계에서 이혼할 때 재산분할에 대해서도 적혀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법은 아직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서양에서는 오랜 기간 이혼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면서 결혼 자체를 임의적 계약관계로 보는 현상이 강합니다.
그렇기에 결혼과 이혼을 여러 번 반복해도 개인의 품성 문제가 되지 않고 법률도 그러한 연장 선상에 존재한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젊은 세대일 경우 결혼을 서양처럼 가벼운 관계로 보는, 반면 아직도 오래된 세대는 결혼을 파기할 수 없는 결합으로 보는 관념이 잔존 합니다.
따라서 만약에 이혼이 발생할 때 혼인 기간, 동안에는 배우자끼리 가벼운 계약관계라기보다는 파기할 수 없는 결합이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혼이 지속으로 증가하고 결혼에 대한 사회 관념이 바뀌면서 결혼하는 커플들이 결혼한다고 해서 꼭 어느 일방이 상대방이 필요 없어지는 노년까지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졸혼이나 황혼이혼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사회현상도 이러한 사회 관념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정된 혼인 기간을 계산한 혼전계약서 도입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급격한 가치관 변화로 인해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사는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법률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결혼을 신성하게 생각하는 세대의 대다수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아직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법률적 문제는 늘 현실의 문제를 반영하기 때문이고 한국의 결혼 관련 법률들은 매우 역동적으로 변하는 추세입니다.
사실 결혼 관련 문제는 미국에서도 복잡한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는 이혼 수당이라는 게 있는데,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다른 쪽에 매달 돈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실 여부와 상관이 없이 이혼 상대보다 경제력이, 딸리기만 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12세기에 아내를 버려도 생계는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로 생겼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재혼하면 그 재혼한 배우자의 수입까지 합산해서 이혼 수당을 물린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결혼과 이혼이 여러 번 반복되면 계산이 매우 복잡해지므로 각주마다 구체적인 적용이 달라서 엄격하게 적용하는 주가 있고, 상당히 완화된 주도, 있습니다.
이혼한 노년층이 유독 많은 플로리다주에서는 지속적으로 사문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주법으로 개정되기까지 했었는데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해서 겨우 무력화한 일도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엔 협의이혼이 1950년도에 폐지되고, 재판상 이혼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정치범 수용소에 부부 중 한 사람이 들어가거나, 탈북할 경우 그 귀책자의 동의 없이 상대방 의사만으로, 이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혼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수용소에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혼에 동의한다고 합니다.
<이혼의 아픔을 극복하는 법>
이혼의 아픔을 딛고 나아가려면 절벽에서 떨어진 듯한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남편이 우리 딸뻘밖에 안 되는 여자와 바람을 피웠습니다. 이혼했을 때는 걸핏하면 화를 내는 남편에게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치스러웠고 내가 무가치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 나은 삶을 바라고 이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싶지만, 배우자가 원해서 어쩔 수 없이, 이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이든, 이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혼 후의 삶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인생을 살면서 이혼만큼 큰 스트레스를 주는 일도 흔치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이혼에 따르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성서의 실용적인 조언 몇 가지를 올려봅니다.
먼저 부정적인 감정정리입니다. 돈 문제, 자녀 양육문제 등 외로움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엄청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주디스 월러스타인에 의하면, 어떤 사람은 이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나고도 인생이 불공정하고 실망스러우며 외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배신당하고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잃은 것에 대해 지나친 감정을 억누르지 마십시오. 당신은 아직도 전 배우자를 사랑하고 그리워할지 모릅니다. 배우자와 아주 힘든 생활을 해서 그런 감정은 없다고 하더라도, 결혼 생활에 대해 기대했던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 때문에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고립시키지 마십시오. 혼자서 슬퍼할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오랫동안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은 지혜롭지 않습니다.
벗들과 대화를 나눌 때 긍정적으로 말하십시오. 이전 배우자에 대해 불평하는 말을 자주 하면 그것이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당신 곁에 있기를 꺼릴 것입니다. 이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당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도움을 구하십시오.
건강을 돌보십시오. 이혼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고혈압이나 편두통과 같은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균형 잡힌 식사와 운동을 하고 충분하게 수면을, 취하십시오. 이전 배우자에 대한 분노가 되살아나게 하는 물건을 없애 버리십시오. 필요 없게 된 물건도 없애 버리십시오. 하지만 중요한 서류는 잘 보관해야 합니다. 결혼사진과 같은 물건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면 그냥 버리기보다는 박스에 넣어 자녀들을 위해 보관해 두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을 물리치십시오. 간음을 범한 남편과 이혼한 한 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여자보다 못한 게 뭐냐고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후에 그 부인은 깨달은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하면 마음이 상하게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노트에 적어 보면 생각을 정리하고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버리고 새롭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상처가 되는 말은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십시오. 좋은 의도를 가진 벗이나 친족이 상처가 되거나 당신에게는 해당 없는 말을 할지 모릅니다. 성서에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주지 말라고, 조언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혼한 지 2년 된 마르티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숭배자들에게, 특히 그들이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에게 염려를 모두 내맡기라고 권하십니다. 결혼한 지 11년 되었던 줄리아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에게 제발 떠나지 말라고 사정했지요. 그런데 남편이 떠난 뒤에는 남편과 그이와 함께 살게 된 여자에게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혼을 한 많은 사람이 이전 배우자에 대해 오랫동안 심한 분노의 감정을 갖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 경우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이전 배우자와 정기적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전 배우자를 대할 때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십시오. 대화할 때는 중요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요점을 간단하게 말하십시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많은 사람이 평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상처를 주는 말을 피하십시오. 공격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야말로 말을 억제하는 자에게는 지식이 있다는 성서의 지혜로운 말씀을 적용할 때입니다. 무의미한 대화가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한 말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이전 배우자와 관계되는 것들을 최대한 분리하고 정리하십시오. 그중에는 법적 문서나 재정 기록이나 의료 기록 등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해 보십시오: 다음번에 대화할 때는 당신이나 이전 배우자에게서 방어적이, 되거나 완고해지는 조짐이 나타나는지 잘 살피십시오. 필요하다면 대화를 잠시 중단하자고 요청하거나 문제를 이메일로 논의하자고 제안해 보십시오.
자녀가 적응하도록 돕는 일에 대하여, 마리아는, 이혼한 뒤에 상황이 어땠는지 이렇게 회상합니다. 작은딸은 쉴 새 없이 울었고 다시 이불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큰딸은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예전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혼을 한 사람은 시간이 없거나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자녀에게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데도 도움을 베풀기가 어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당신에게 이야기하도록 권하십시오. 자녀의 말이 거칠어질 것 같더라도 그렇게 하십시오. 합당한 역할을 유지하십시오. 당신이 감정적인 도움을 간절히 원할 때, 자녀가 그러한 도움을 베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녀에게 어른들의 문제에 대한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부당할 뿐 아니라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자녀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는 일을 피하고 자녀를 당신과 이전 배우자 사이의 중재자나 의사 전달 통로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자녀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가능하면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같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교양서적 읽기와 가족 숭배와 같은 영적인 일과를 잘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시간을 내서 당신이 자녀를 사랑하며 자녀 때문에 이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시켜 주십시오. 이전 배우자를 탓하지 않으면서 자녀의 질문에 대답해 주십시오. 당신은 이혼의 아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16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던 멜리사는 남편과 이혼했을 때 내가 이렇게 살려고 한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재 멜리사는 자신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해 졌다고...
<이혼에 대한 나의 소견>
이혼이란 말이 왜 생겼나. 쓸데없는 말이 생겨 나와 건전한 부부생활을 갈라놓게 만드는가? 이혼의 사유로는 흔히들 성격 차이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격 차이로 헤어진다는 말은 자신의 그릇이 작다는 것을 포장한 말일 뿐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온 남녀가 어찌 성격이 서로 같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성격이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두 결혼한 부부들은, 전부 이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이혼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이 더 많습니다.
이혼하는 부부들은 대부분 상대를 수용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자신을 결코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을 고집하는 완고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결국,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없습니다.
부부간의 사이란? 가장 가까운 사이도, 가장 먼 사이도 될 수가 있습니다. 가정의 평화와 복을 위해서 서로가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 때, 그들 사이는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됩니다. 반대로, 가정의 화목과 행복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욕심이나 편함만을 위해 희생은 커녕, 상대만을 탓하는 부부들은 아주 먼 사이가 됩니다.
그들은 법정에서 나올 때 서로를 향해 웬 수! 라는 말 만 되, 뇌입니다. 부부의 인연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입니다. 사랑을 터득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그 누가 이 둘 사이보다 더 깊게 마음속을 헤집어 놓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의 가족, 그중에서도 부부 사이입니다.
그 고통 속에서 자신의 참된 자아인 사랑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경험 속에서 만들어온 자신의 껍질인 에고입니다. 그러나 그 에고를 존재케 한 사랑은 그 모든 고통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부부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성격 차이도 모두 포용하여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유를 터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바늘구멍처럼 작아질 수도, 하늘처럼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하늘처럼 커지려면 가짜 나인 에고를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 고통의 과정에서 진정한 사랑이 꽃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생긴 상처에는 말끔히 치료해주는 약이 없습니다. 칼에 베이면 상처가 밖으로 남지만, 사랑에 베이면 보이지 않는 상처가 가슴에 남아서 그냥 끊어버리는 전화 한 통에도 함께 들었던 유행가 하나에도 그 상처가 건드려져 평생 아물지 않게 됩니다.
시간이 상처 난 곳의 흉터까지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 상처의 아픔을 점점 무디게 해줄 뿐입니다. 그리움이라는 흉터는 계속 남아있게 마련입니다. 산다는 것은 소멸로 가는 아름다운 의식입니다. 고통 없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요. 사랑의 고통은 살아 있는 자들의 공통된 고통입니다. 그것은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영원한 상처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이 고통이 아닌 줄로 알지만, 사랑하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소유하겠다는 것이고, 구속이고, 고통입니다.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마는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은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을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놓았는지, 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마땅해, 하고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들, 비싼 차와 풍경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들.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어느 날 몸살감기라도 호되게 앓다 보면 빗길에 달려 나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 지겨운 남편인 것을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서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익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상(喪)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 바라보며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것 같아 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그래서 양보하며 살자고, 아! 고통을 사랑이라 착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쓰기다시 처럼 깔아주는 연인들이 얼마나 흔한가요,
낙엽은 날리고 불덩이가 쏟아지는 듯 뜨거운 햇살과 광풍을 동반한 소낙비를 반복하는 여름을 밀쳐내고 가을인가 싶더니 슬며시 겨울이 숨어들었습니다. 지난, 가을 많이도 힘들었습니다. 그전에도 힘들었던 때야 있었지만 늦게 철들어서 그렇게 힘들은 적은 없었는데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고 글로써 좋은 사람 알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부족함 때문에 모두 떠나보내야 했기에 가을 속에 겨울이 숨어들었습니다.
그 알싸한 겨울을 느끼며 다시 힘들어, 하는 나를 돌아봅니다. 경험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위로되었던 그 마음들을 이제 다시 품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