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기 / 재소자와의 조용한 만남
이상현
오늘 휴일이라 모처럼 집사람과 함께 무등산장에 올랐다. 며칠간 날씨기 안 좋더니 바람도 없고 화창한 날씨에 티 없이 맑고 고운 전형적인 봄날이다.
산과 들엔 온갖 꽃들이 피고 지며 초록의 싱그러움도 더해가고 ....
원효사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곱게 피어난 패랭이꽃, 혹 불어도 부러질 것만 같은 가는 허리에 수줍게 미소 띠고 방긋 웃으며 나를 반긴다.
원효사 일주문 지나 푸른 나무 숲길 들어서니 다람쥐 깜짝 놀라 자기 몸 숨기고, 이름 모를 산새들 푸드득 꼬리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원효사 회암루 단청에 연 꼬리처럼 매달린 연등, 불자의 간절한 염원이 살아 숨 쉬듯 바람에 흔들리고, 은은히 들리는 스님의 염불소리는 모든 사바세계에 부처님의 깨달음을 전해준다.
대웅전 뜰 앞에는 철쭉꽃 향기가 그윽이 배어나고 약수터 감로정에는 약수 뜨러온 사람들의 행렬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집사람과 함께 원효사 주지이신 ‘현지’스님을 찾아뵙고 녹차 향기 그윽한 선방에서 스님께서 직접 따라 주시는 녹차의 맛이란, 정말 찻잔 속에 달이 떠 오르듯 정취가 물씬 풍긴다.
신도라기보다는 집사람의 수행원으로 틈만 나면 집사람 덕분에 이렇게 원효사를 자주 들려 현지(玄旨)주지스님과 격의 없는 대화를 많이 나누며 많은 가르침을 받아 왔고 내가 처음 아파트 경비원의 애환을 그린 '새벽을 연다' 라는 책을 낼 때에도 현지 스님의 도움을 많이 받은게 사실이다.
스님과는 과거 판소리, 병신춤의 대가, 공옥진 여사님과의 인연으로해서 가까워지기 시작 했으며 고 공옥진 님의 외동딸인 김은희님과 집사람과는 의형제처럼 가깝기에 집사람에게 큰딸이라고 하며 사랑을 듬뿍 줘 왔다.
생명나눔실천 광주,전남 위원장이시며 광주교도소 불교 교정위원회 회장이신 스님께서 오늘 오후에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불교 봉축 행사에 참석하신다 하여 용기를 내어
“스님! 저도 어떻게 그 행사에 가볼 수 없을까요?”라고 간청하였더니 함께 가자고 쾌히 승낙하여 주신다. 스님과 동행하여 재소자들을 만나본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교도소 정문에서 신분조회를 한 다음에 교도소 1차, 2차, 3차 통용문이 열릴 때마다 덜커덩 덜커덩 하는 쇠문 여닫는 소리에 내 가슴도 덜컹 덜컹 내려앉는다.
교도소 경내는 삭막하기만 하고 낡은 콘크리트 건물에 쇠창살이 낮설기만 하다.
경비 또한 무척 삼엄하여 교도관들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이 나며 걸음걸이마저 각이 있어 힘이 넘친다. 행사장 가는 통로 천장에는 연등이 드문드문 걸려있고 특히 행사장 강당에는 시골 학교 운동회에 만국기가 펄럭이듯 연등이 즐비하게 걸려있어 이번 봉축행사를 위해 신경을 많이 쓴듯한데 놀랍게도 모두가 재소자들의 손에 의해 준비되었다 한다. 재소자들이 직접 연꽃을 접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꼈으리라!
스님 덕분에 귀빈(?)단상으로 안내되어 1천여 명 가까운 재소자들과 마주하게 되어 눈빛이 마주칠까 시선 관리에 애를 많이 먹었어도 푸른 죄수복을 입은 재소자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모두가 잘생긴 미남들이었다.
봉축 행사에서 광주 교도소 재소자들로만 구성된 불교합창단의 찬불가 노래 소리는 때론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게 울려 퍼지며 부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포교활동 그 자체였다. 가슴에 연꽃이 새겨진 가운을 입은 합창단의 표정에는 그늘은 찾아볼 수 없고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 서려 있는 듯하다.
함께 참석한 20년 가까이 불교합창단에서 활동한 공옥진 여사 외동딸 ‘김은희님도 교도소 합창단이 연습을 많이 한 것 같으며 어려운 찬불가를 쉽게 소화시키는 것을 보니 대단히 높은 수준이라고 극찬까지 한다. 이어서 향림사의 ‘천운’ 큰스님의 설법이 시작된다.
모든 중생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다. 단지 여기에 있는 재소자들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화(火)를 마음속으로 다스리지 못했을 뿐이며 모든 죄는 욕심에서 비롯되므로 ‘무소유’라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만 한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물건임)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나 "정성으로 대하라" 라고 하시며 과거는 역시 과거일 뿐, 미래를 약속하자고 하신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일부 재소자들은 눈을 지긋이 감고 참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다음 현지스님의 설법이 시작된다. 일체중생 모두가 윤회속에 살아가지만 날이 갈수록 삶의 가치를 실리로만 추구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산에서 고운 단풍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보았다면 가족들의 얼굴도 단풍 보듯 아름다운 마음으로 보아야 하고, 산에서 새소리를 아름다운 마음으로 들었다면 미운 사람의 싫은 소리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옳고 그름을 한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한결같은 우리네 마음이다. 구구절절 재소자의 가슴을 파고드는 따뜻한 설법에 실내가 숨소리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봉축행사가 끝난 후 재소자들이 정성껏 만든 사람 키 높이만한 연꽃 탑을 그 동안 재소자 교화에 힘쓰신 현지 스님께 마음의 선물이라고 전달하고 현지스님도 재소자들의 뜻을 기려 원효사에 정성껏 보관하겠다고 하시며 원효사에서 준비한 떡 등, 선물을 전해 주신다. 돌아오는 길, 스님께 살며시,
“스님! 교도소 재소자 합창단의 수준도 높은데 ‘원효사 합창단’도 교도소 문화행사가 있을 때 함께 참여하여 재소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을 한 번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스님께선 긍정도 부정도 않으시며 그저 빙그레 웃으시기만 한다. “스님! 우리가 준비해간 떡은 그들이 재소자에게 골고루 나눠줄까요?”
잠시 아무 말씀도 않으시다 “글쎄, 나도 그게 걱정이 돼요.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으니 한번 믿어 봐야지요!” 하시며 “나무 관세음보살” 합장하신다.
돌아오는길 스님 차안에는 침묵만이 흐를 뿐 아주 고요하다. 저 멀리에 저녁 예불을 알리는 원효사의 범종 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살짝 열린 차창 틈새로 꽃바람이 살포시 내 옷자락을 파고든다.
- 나의 일기장에서 이상현
첫댓글 특별한 사람들은 분명 아닐겁니다
우린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평가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인간 아니겠습니까
글쎄요! 경우에 따라서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만 죄값은 충분히 치뤄야죠.
이 시인님!
잘하셨습니다.
봉축행사도 행사이지만 형수님과 손잡고 나들이 하신것
아름답게 생각 됩니다.
더욱 끈끈한 정으로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홍회장님! 감사합니다.
좋은일 하시고 오셨었네요~
마음의 여유가 많아 보이십니다~
마음의 여유가 많은게 아니라
여유를 만들어야죠!
남실장님, 찾아줘 고맙습니다.
재소자들과의 만남.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만약 그 자리에 제가 있었다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게 나을지...
이선생님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현지 스님같은 훌륭한 스님과 광주교도소를 방문하신글 감동이었습니다.
무소유란 말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 아니고 불필요한 물건을 갖지않는다는 것을 새롭게 알수있었습니다.
산에 나뭇잎과 새울음소리도 미움을 버리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들어야만 아름다운 단풍이 되는것이요. 아름다운 음의 고운노래소리가 된다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강선생님, 고맙구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모든 중생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다. 단지 여기에 있는 재소자들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화(火)를 마음속으로 다스리지 못했을 뿐이며 모든 죄는 욕심에서 비롯되므로 ‘무소유’라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만 한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물건임)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나 "정성으로 대하라" 라고 하시며 과거는 역시 과거일 뿐, 미래를 약속하자고 하신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일부 재소자들은 눈을 지긋이 감고 참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돌아오는길 스님 차안에는 침묵만이 흐를 뿐 아주 고요하다. 저 멀리에 저녁 예불을 알리는 원효사의 범종 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살짝 열린 차창 틈새로 꽃바람이 살포시 내 옷자락을 파고든다.
이선생님의 훌륭한 일기를 통해, 좋은 글 잘 읽고, 교도소의 재소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감동어린 글 감사를 드립니다. 덕택으로 아직 가보지 못한 교도소의 정경과, 불교 행사의
이모저모 정경을 통해, 많은 것을 공부했습니다. 평안한 밤 되시고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