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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게르마니아 발표 내용입니다.
[독일 이데올로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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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엥겔스의 글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이야기하려 들면 ‘아직도 맑스냐’라는 소리를 환청으로라도 듣게 될 것 같다. 반면에 니체나 칸트, 심지어 고대로 돌아가 플라톤을 상대한다고 해서 ‘아직도’라는 비난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맑스와 엥겔스의 글들에는, 또 레닌, 트로츠키, 룩셈부르크, 스탈린, 마오쩌둥 등의 글들에는, 차분한 독서와 교양 쌓기의 재료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사회적 관계 내지 지배체제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만 아니라 변혁전략 문제와 직접 얽혀들게 만드는 불편함이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글은 진지한 독자들에게 맑스주의자 혹은 레닌주의자 등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럴 수 있는 힘은 무엇보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구조로 인한 문제들을 은폐⋅회피하지 않고 그들 나름으로 설득력 있게 그 실체를 밝히며 해결책들을 내놓았다는 데에 있다. 이 해결책들에는 문제의 주원인이 되는 지배계급을 상대로 한 다각도의 전쟁이 포함되며, 그로 인해 이들의 이론은 특히 지배자들의 근거 있는 불안과 편집증적 반응을 야기한다.
오늘의 자본주의가 인류문명의 최종판이며, 인류가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질서라면, 그래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기본적으로 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서로 대등하게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가 이미 이루어지고 현재의 물적 조건을 바탕으로 누구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면, 적어도 그러한 본질적 경향이 있다면, 구태여 불편하게 맑스의 유령을 다시 불러내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99%가 개돼지 소리를 들어가며 언제어디서든 졸지에 갑을관계의 쓴맛⋅매운맛을 볼 수 있는 사회, 가파른 서열구조와 노동-자본의 극단적 양극화 속에서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나날이 자연질서처럼 굳어가는 현실, 이런 사회현실이 꼭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점을 장황하게 논증해야 하는가? 직접적인 전쟁위기는 당분간 넘겼다 하더라도,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전쟁만 보아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뿌리 깊은 적대관계를 실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는데, 그렇다면 이제 자본주의의 근본경향인 양극화가 해소되고 민중이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되었다거나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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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지배체제에 기인하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자본가들 및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 스스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해결책은 대체로 지배체제의 불변성을 전제로 지배의 효율성과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에 국한될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지배관계로 괴로움을 겪는 피지배자들의 위치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일찍부터 자본주의적 대립관계 내지 적대관계 속에서 사적 소유자들은 보수파, 프롤레타리아트는 파괴파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전자로부터는 대립을 유지하려는 운동이 발생하며 후자로부터는 대립을 폐기하려는 운동이 발생한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사회에서 아무런 이익도 누리지 못한 채 사회의 모든 짐들을 도맡아야 하고, 사회에서 밀려나 다른 모든 계급들과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계급”이라고 규정한다. 나아가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계급으로부터 근본적인 혁명의 필연성에 대한 의식, 곧 공산주의적 의식이 생겨난다”(독일128)고 단언한다.
그러나 ‘관리되는 사회’나 ‘일차원적 사회’ 등의 신좌파적 문제의식만 아니라, 자생성과 조합주의에 대한 레닌의 비판 혹은 오늘날 노동운동을 저주하는 데에 빠지지 않는 ‘노동귀족’이나 ‘조직 이기주의’ 등을 떠올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성격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단언에 대해 그것은 맑스 시대의 이야기라고 반박할 수 있다. 이 경우 루카치처럼 프롤레타리아 개개인의 의식이 아니라 생산관계 속의 위치라는 객관적 조건에 근거하여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을 파악하고, 사물화된 의식을 극복하고 총체성의 관점을 취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객관적 가능성을 감안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아가 오늘날 자본을 영구불변의 상수가 아닌 변수로 놓고 미래사회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세력이 어디에 있을지 냉정히 따져보면, 맑스와 엥겔스의 주장은 여전히 원론적 타당성을 지님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다시 맑스나 엥겔스부터가 프롤레타리아트 출신이 아니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또 이때 사회주의 의식이 노동자계급 외부로부터 들어온다는 레닌의 구체적 상황인식을 형이상학적 원리로 만들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나름의 답을 내놓고 있다.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지위에 대한 직관 덕분에 ‘다른 계급들’ 가운데서도 공산주의 의식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독일128) 맑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지위에 대한 직관을 통해 공산주의 의식을 갖게 된 ‘다른 계급’에 속하는 인물인 셈이다. 이때 그들이 이 ‘다른 계급’ 출신들에게 부여하는 비중은 레닌이 전위 직업혁명가들에게 기대했던 바와 다르다. 후자의 경우 운동을 주도(지도?)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면 전자의 경우에는 동참의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그처럼 ‘다른 계급’ 출신이라고 해서 맑스와 엥겔스가 현실의 적대관계 외부에서 그저 관심을 두고 적대관계 전체를 조망하며 논평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이론은 대립관계 내부의 프롤레타리아 위치(내지 관점)에서 지배체제 자체의 근본적 소멸을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이론적 위치는 이론가의 출신성분이나 경력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 출신인 이론가가 혁명에 대해 반혁명적인 관점에서 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론 자체가 실제로 어느 계급의 관점에서 전개되고 있느냐에 있다. 맑스 자신도 이미 청년기부터 자신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에 서 있음을 의식했다고 여겨진다. 맑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에서 ‘천상의 비판’이 아닌 ‘지상의 비판’으로, ‘신학의 비판’에서 ‘정치의 비판’으로 전환하고 “비판의 본질적 파토스는 분노이며 비판의 본질적 작업은 탄핵”이라고 명시할 때, 또 “철학이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그 물질적 무기를 발견하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무기를 발견한다”(법철학15)고 선언할 때, 이미 맑스의 몸속에서는 ‘분노의 자본론’이 움트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것이 “몇 마디 분노에 찬 상투어들의 중얼거림”(법철학8)에 머물지 않고 철저한 자본주의비판의 무기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장구한 연구과정과, 특히 그 출발점으로서 근본적 시선전환 내지 과거 이론들의 무의식적 전제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전제의 정립, 즉 전제변환이 필요했다. 근본적 시선전환 혹은 전제변환이라는 말은 우선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로 집대성되는 관념론에 맞서 유물론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포이어바흐로 대표되는 ‘구태의연한 유물론’ 내지 ‘직관적 유물론’에 맞서 ‘실천적 유물론’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선전환은 ‘실천적’ 유물론이라는 명칭이 말해주듯이 철학 내부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지배관계의 근본문제들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 극복을 위한 실천 차원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즉 사적 소유 내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를 신성불가침한 자연상태라고 전제하지 말 것, 나아가 인류사회에는 형태만 다를 뿐 언제나 지배관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부정할 것, 그리고 지배관계의 궁극적 소멸을 위한 현실적 방법을 찾을 것 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배관계의 소멸이라는 궁극 목적을 고려하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의 절대적 측면으로 되는 것”(신성103), 혹은 새로운 지배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맑스와 엥겔스가 제시하는 방법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내지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머물지 않고, 국가 사멸이라는 장기과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현실사회주의 운동이 이룩한 성과 및 그 패배의 역사, 노동운동을 비롯한 인간해방투쟁의 역사를 평가하는 과제와 더불어,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만들어가는 이 시대의 실천에서 망각 속에 묻어둘 수 없는 과제로 남아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가 제공하는 뜨거운 미래진행형 사유 속으로 한걸음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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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내지 사적 소유를 자연상태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 시선전환의 출발점이 자신들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프루동은 국민 경제학의 토대인 사적 소유를 비판적 시험, 그것도 결정적이며 무자비한 동시에 과학적인 최초의 시험에 들게 한다. 이것이 그가 이룩한 거대한 과학적 진보요, 국민 경제학에 혁명을 일으키고 국민 경제학을 하나의 진정한 과학으로 만드는 진보이다.”(신성97-98)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는 프루동의 한계도 분명히 한다. 즉 “헤겔이 종교, 법 등등에 대해서 행했던 것을 프루동 씨는 정치 경제학에 대해서 행하고자 한다.” 이때 프루동은 “헤겔의 변증법을 너무도 보잘것없는 규모로 축소한다.”(철학272) 그 결과 “과학은 보잘것없는 규모의 정식으로 환원된다.”(철학288) [독일 이데올로기]의 주요 비판대상은 프루동이 아니라 헤겔의 관념론에 맞서 유물론을 내세운 포이어바흐, 헤겔주의의 테두리를 한발도 벗어나지 못한 브루너 바우어와 막스 슈티르너, 그리고 칼 그륀과 게오르크 쿨만 등의 ‘진정 사회주의자들’이다. 헤겔조차 존재감이 사라져가는 오늘날 이들에 대해 상론하는 것은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지만, 맑스와 엥겔스의 비판 논지는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들은 우선 현실과 분리된 사고 혹은 이념이 현실을 지배한다고 보는 관념론적 역사관을 비판한다. “일단 지배적인 사상들이 지배적인 개인들로부터, 특히 주어진 생산양식의 단계에서 생겨나는 관계들로부터 분리되고 이로써 역사에서는 언제나 사상이 지배한다는 결론이 나온 다음에는, 이 다양한 사상들로부터 역사에서 지배적인 힘으로서 ‘사상 자체’, 이념 등을 추상하고, 이에 따라 이 모든 개별 사상들과 개념들을 역사 속에서 발전하는 개념의 ‘자기규정’으로 파악하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이다.”(독일96-97)(48) 나아가 “이 ‘자기규정하는 개념’의 신비로운 외관을 감추기 위해서는 이 개념을 하나의 인격−‘자기의식’−으로 전환시키거나,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역사에서 ‘개념’을 대표하는 일련의 인격들, 곧 ‘사상가’, ‘철학자’, 지배자로서 파악한다. 이렇게 해야 역사에서 모든 유물론적 요소들이 제거되고, 이제 그들의 사변적인 말(馬)들이 마음대로 달릴 수 있게 된다.”(독일97-98) 그리하여 바우어는 “한편으로 현실적인 사람들 대신에, 또 외관상 자립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사회관계에 대한 그들의 현실적 의식 대신에, 단지 추상적인 문구 즉 자기의식만을 갖는다. 현실적 생산 대신에 자기의식의 독립적인 활동을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현실적 자연과 현실적으로 존립하는 사회적 관계들 대신에, 그는 모든 철학적 범주들의 철학적 요약이나 그 관계들의 명칭만을 실체라는 문구에 담아 놓았다. 이는 그가 모든 철학자들이나 이데올로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자립하게 된 현존 세계의 사고표현인 사상들과 관념들을 이 현존 세계의 기초라고 오해하기 때문이다.”(독일150-151)(82-83)
이러한 사변적 특징은 ‘자기의식’을 내세우면서, “낡은 헤겔 철학이라는 자신의 말을 타고 아직도 의기양양하게 호령하며 누비는”(독일149) 바우어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일적 과학’의 대표자를 자처하는 ‘진정 사회주의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우선 한 가지 사실로부터 하나의 추상을 만들어낸다. 그러고 나서 이 사실이 바로 이 추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렇듯 가장 널리 유포된 저질의 방식이 독일식의 심오하고 사변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사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다. 반성: 자연, 쥐−자연, 고양이에 의한 쥐의 소모 = 자연에 의한 자연의 소모 = 자연의 자기 소모. 사실의 철학적 서술: 쥐가 고양이에게 잡아먹힌다는 것은 자연의 자기소모에 기초를 두고 있다.”(독일243) 그런데 이처럼 사실을 확인한 후 이를 추상해낸 개념이나 정식을 사실의 기초 내지 근거라고 선언하는 심오한 사변의 수법이 오늘날 우리와는 무관한지 수시로 자문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아도르노의 ‘동일성 사유’ 비판을 고려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 문제를 회피하거나 초월하려는 논의들에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
맑스와 엥겔스의 헤겔주의 비판은 현실을 추상적으로 단순화하는 도식주의 비판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특히 슈티르너를 겨냥한다. 비판에 따르면 슈티르너의 경우에도 “사변적 이념, 추상적 관념이 역사의 추진력이 되며, 이로써 역사는 그저 철학사로 된다.”(113) 그에게 인류사는 물질에 의존하는 소년기(현실주의), 정신에 의존하는 청년기(이상주의), 양자의 부정적 통일인 성년기(이기주의)로 진행되며, 각 시대를 상징하는 인간은 흑인, 황인, 백인이다. 이는 다시 현실주의적 이기주의자(흑인), 이상주의적 이기주의자(황인), 진정한 이기주의자(백인, 유일자) 등으로 변형되기도 한다.(114-115) 슈티르너는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교양을 쌓지 못한 비-헤겔주의자를 교양을 쌓은 헤겔주의자가 지배하는 위계질서를 상정한다. “그리하여 슈티르너는 역사 속의 사변적 이념의 지배라는 사변적 관념을 사변적 철학자들 자신의 지배라는 관념으로 바꾸어놓는다.”(116) 이 사변가들 혹은 이데올로그들의 지배는 궁극적으로 1) 사물들에 의존하고 인물들에 의존하지 않는 ‘정치적 자유주의’(현실주의, 유년, 흑인, 교양 없는 상태, 주인 없는 상태), 2) 사물들로부터 독립하고 정신에 의존하는 ‘사회적 자유주의’(이상주의, 청년, 황인, 교양 있는 상태, 소유 없는 상태), 3) 주인 없고 소유도 없는 상태이자 신도 없는 상태 혹은 사물과 사상의 세계에 대한 지배이며, 완성된 이기주의 내지 완성된 위계질서이기도 한 ‘인간적 자유주의’(완성된 성년, 백인적 백인, 진정한 이기주의자)로 발전한다.(116-117)
맑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관념철학조차 이런 식의 단순화된 도식주의에 빠지지는 않았다고 보았다. 헤겔의 경우처럼 전체적인 역사와 현재의 세계 전체에 대한 체계를 구성하는 것은, “포괄적인 실증적 지식들 없이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경험적 역사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엄청난 에너지와 통찰력 없이는 불가능하다.”(159-160) 헤겔 자신도 형식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철학에서 ‘지에 대한 사랑’이라는 명칭을 떼어버리고, 철학을 ‘현실적인 지’로 만들고자 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 있다. 그런데 슈티르너에게는 “헤겔의 역사철학을 제대로 살펴볼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153) 그 결과 “성 막스는 우리에게 세계사 대신 독일 신학과 철학의 역사에 관한 몇 가지 주석들, 그것도 극히 빈약하고 왜곡된 주석들을 제공한다.”(167) 이러한 평가와 별도로 슈티르너의 ‘유일자’ 철학에서 실존주의나 무정부주의의 단초를 찾을 수도 있고, 심지어 ‘유물사관’과의 연관을 감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천적 관점에서는 도식에 근거해 역사기술을 단순화하고 싶은 유혹을 경계하고, 맑스와 엥겔스의 도식주의 비판을 유물사관 자체에도 적용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여겨진다. 도식주의를 의식적으로 비판한다고 해서 도식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면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독일 이데올로기]가 지적하는 헤겔주의의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실의 구체적 지배관계에 대한 실질적 인식으로부터 멀어짐으로써 변혁적 실천을 방해하는 데에 있다. 이는 바우어나 슈티르너에게 한정되지 않고, ‘진정 사회주의자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독일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진정 사회주의의 본질은 “독일 이데올로기의 언어로 프랑스의 이념을 번역하는 것과 자의적으로 설정된 공산주의와 독일 이데올로기 사이의 연결”(독일195)이다. 진정 사회주의자들 역시 헤겔 관념론의 영향권 속에서, “문제는 사회의 ‘이성적’ 질서이지 특정 계급과 시대의 필요가 아니라는 환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독일194) 그들은 개념의 위력을 신봉하여 “모든 현실적 분열들이 개념적 분열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믿으며, “세계를 세웠다 넘어뜨렸다 할 수 있는 개념의 위력에 관한 이러한 철학적 신념을 기초로, 몇몇 개인들이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개념을 ‘폐지’함으로써 ‘삶의 분열’을 폐지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모든 이데올로그들과 마찬가지로 진정 사회주의자들은 문헌상의 역사와 현실의 역사를 등위의 것으로 혼용한다.”(독일216) 나아가 그들은 자연에는 분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인간도 역시 자연물이며 물체의 보편적 성질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분열 역시 인간에게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독일227) 진정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추상적 인간 일반에(실질적으로는 소시민계급과 그 이데올로그들에) 기반을 두고 “모든 혁명적 열정을 잃어버린 대신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선포”(독일196)한다.
진정 사회주의자 쿨만은 현실 사회를 이념들의 사회로 변조하듯이, “모든 문명국들에서 이미 두려운 사회변혁의 선구자로 등장한 현실적 사회운동을 기분 좋고 고요한 교화로, 조용한 삶으로 바꿔 놓는다. 이런 삶에서 세계의 소유자와 지배자들은 아주 편안하게 잠잘 수 있다.”(529) 쿨만은 “활동과 노동의 상이성이 가치와 축복(혹은 향유, 벌이, 만족 등등)의 상이성을 근거 지으며, 따라서 각자가 자신의 노동만큼의 행복을 결정하므로, 예언자인 그는 −이것이 그가 설교하는 계시의 실질적 핵심이다− 미천한 노동자보다 더 나은 삶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다.”(528) 이에 맞서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를 모든 형태의 반동적 사회주의와 구분해 주는 가장 본질적인 원칙들 가운데 하나가, “인간 본성에 근거하는 경험적 견해, 즉 머리와 지적 능력의 차이가 결코 위장(胃腸)과 신체적 욕구의 차이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견해, 아울러 기존 상황에 근거하는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라는 원칙은, 그것이 좁은 의미의 향유와 관련되는 한, ‘각자 필요에 따라서’라는 원칙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견해, 달리 말해 활동과 노동의 상이성은 소유와 향유의 불평등⋅특권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견해”라고 본다.(528) 진정 사회주의의 길은 진정한 사회주의로 향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헤겔적 관념론의 전제를 버리지 않고 있는 바우어와 슈티르너, 그리고 진정 사회주의자들은 변혁을 위한 구체적 현실 연구 없는 거창한 개념의 유희와 추상적 도식 구성으로 현실변혁을 대신했다. ‘지적 능력의 차이가 신체적 욕구의 차이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기 위한 조건이 무엇일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지식노동자와 육체노동자 사이의 위계질서를 설정하려는 관념론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결정적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유물론자 포이어바흐도 현실변혁과는 거리가 있었다. 포이어바흐가 헤겔 관념론의 마법을 깨는 데에 본질적으로 기여한 점은 맑스와 엥겔스도 적극 인정한다. 포이어바흐는 사유의 객체 대신 감성의 객체에 주목했다. 그는 인간을 짓누르는 “망상과 이성과 도그마와 비실재적 존재들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이러한 사상의 지배에 대한 반란을”(독일43) 일으키고자 했다. 그러나 맑스의 비판에 따르면, 포이어바흐도 “대상, 현실, 감성을 단지 객체 또는 직관의 형식 하에서만 파악하고, 감성적인 인간의 활동, 즉 실천으로서, 주체로서 파악하지 못했다.”(독일35) “그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오직 이론적인 태도만을 참된 인간적 태도로 본다. 반면에 실천은 단지 저 불결한 유대적 현상형태 속에서만 파악하고 고정시킨다. 그래서 그는 ‘혁명적’, ‘실천적-비판적’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독일35) 맑스는 인간의 활동적 주체적 측면을 강조한 것은 유물론이 아니라 오히려 관념론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독일35)
또한 포이어바흐는 인간의 본질을 현실적인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보지 않고, 고립된 추상적 개인을 전제로 단지 ‘유’로서만, “다수의 개인들을 자연적으로 결합시켜 주는, 내적이고 침묵하는 보편성으로서만”(독일37)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포이어바흐는 인간을 ‘감성적 활동’으로서가 아니라 ‘감성적 대상’으로서만 파악하고, 인간을 사회적 연관 및 생활 조건 속에서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현실적으로 실존하고 활동하는 인간에 도달하지 못하고 ‘인간’이라는 추상물에 머물러서 ‘현실적, 개별적, 육체적’ 인간을 단지 감각 속에서만 인정하는 데 그쳤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인간적 관계’에 대해서는 연애와 우정, 그것도 관념화된 형태로서의 그것만 알고 있었다. 거기에는 현재의 생활관계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다.”(독일90) “감성적 세계에 관한 포이어바흐의 ‘파악’은 한편으로는 단순한 직관 자체에,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한 발견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현실의 역사적 인간’ 대신에 ‘인간 자체’라는 것에 대해 말한다.”(독일87) “포이어바흐가 유물론자인 한 그에게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며, 또한 그가 역사를 고찰하는 한에는 결코 유물론자가 못 된다.”(독일91) 포이어바흐는 “공산주의적 유물론자가 산업 및 사회조직의 변혁 필연성과 동시에 그 조건을 파악하는 바로 그곳에서 관념론으로 돌아간다.”(독일91)(45) 이런 형태의 유물론이 변혁적 실천에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별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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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어바흐의 ‘직관적 유물론’에 맞서 맑스와 엥겔스가 표방하는 ‘실천적 유물론’ 혹은 ‘공산주의적 유물론’에서는 세계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변혁이 관건이다. “현실적으로 실천적인 유물론자, 즉 공산주의자들에게는 현존의 세계에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즉 기존의 사물을 실천적으로 파악하여 변혁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독일87) 그러나 변혁에서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인간과 역사를 어떻게 파악하는가는 여전히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포이어바흐의 ‘직관적 유물론’을 비판한다고 해서 유물론 자체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헤겔의 관념변증법을 비판한다고 해서 변증법 자체를 버렸다고 할 수도 없다. 이 시기 맑스와 엥겔스에게는 과도한 헤겔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했던 까닭에 변증법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실천적 유물론’에서도 변증법적 사유는 강력히 작동하고 있다. 현실의 모순과 적대를 인류애 따위의 추상적 관념으로 얼버무리지 않고, 현존 인간관계 내지 지배관계를 변혁하기 위한 구체적 조건들을 밝힘으로써 변혁의 무기를 만들고자 하는 주체적 적극적 자세가 그 요체다. 물론 이때의 변증법은 관념변증법이 아니라 유물변증법이다. 동일한 ‘실천적 유물론’이 포이어바흐의 유물론과 맞설 때에는 변증법에, 헤겔의 관념론과 맞설 때에는 유물론에 강세를 둔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원리로서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그 응용으로서의 사적 유물론으로 구분하는 것은 강세의 차이를 부각시키거나 설명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넘어설 수 없는 경계설정이 아니다. 변증법 자체가 이미 본질적으로 역사적 운동과 사유를 함축하기 때문이며,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 역시 역사적 변화 속에서 운동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역사적 사유가, 사적 유물론에서는 변증법이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실천적 유물론’에서 의식과 존재와 관련한 유물론적 전제전환은 현실변혁을 위한 구체적 현실인식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전제는 자의적인 것도, 도그마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상상 속에서만 도외시될 수 있는 현실적인 전제이다. 그것은 현실의 개인들 및 그들의 행위이며, 또한 이미 존재하는 것과 그들의 행위를 통해 산출된 것을 비롯한 그들 생활의 물질적 조건이다.”(독일52-53)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독일 철학과는 정반대로 우리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다. 즉 우리는 인간이 말하고 상상하고 관념화시킨 것으로부터 출발하거나 또는 말해지고, 상상되고 표상된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로부터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현실적으로 활동하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하며, 또한 그의 현실적인 생활 과정 속에서 이 생활 과정의 이데올로기적 반영과 반향을 서술하려고 한다.”(독일61)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 첫 번째 고찰 방식에서는 살아 있는 개인으로서의 의식에서부터 출발하지만, 현실 생활에 상응하는 두 번째 고찰방식에서는 현실 속의 살아 있는 개인 자체에서부터 출발하며, 의식을 단지 그러한 개인들의 의식으로서만 고찰한다.”(독일62)(27) “의식은 의식된 존재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독일61) “의식은 처음부터 이미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다.”(독일68) 또한 이제까지의 사회가 지배관계를 청산하지 못해온 한에서, “어느 시대에나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다.”(독일92)
이처럼 현실의 개인과 그들의 행위 그리고 생활의 물질적 조건에서 출발하여 ‘활동적인 생활과정’이 드러나게 되면, “역사는 추상적 경험론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죽은 사실들의 집적물이 아니며, 또한 관념론자들의 경우처럼 상상된 주체의 상상된 행위도 아니게 된다.”(독일62) 이런 전제 위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새로운 과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변이 멈추는 곳, 즉 현실적인 생활에서 실제적이고 실증적인(positiv) 과학, 인간의 실천적 활동 및 실천적 발전 과정에 대한 기술이 시작된다. 의식에 관한 공론이 사라지고, 현실적인 지식이 이것을 대신해야 한다.”(독일62) 이제 자립적 철학의 자리에는 “인간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대한 고찰로부터 추상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결론들의 요약”이 등장하는데, 이 추상들도 “결코 역사적 시대를 정돈할 수 있게 해주는 처방전이나 도식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독일63)(27) “인간은 실천을 통해 진리를, 즉 그의 사유의 현실성과 위력 및 현세성을 증명해야만 한다.”(독일36)
이러한 유물론적 전제전환을 출발점 삼아 맑스와 엥겔스는 생산양식, 생산력, 교류형태, 분업, 사적소유, 혁명과 공산주의 등의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전개한다. MEW 3권 서문에서 보는 것처럼 [독일 이데올로기]의 가장 중요한 성과를 ‘사적 유물론의 완성’이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독일25) 그렇다고 이러한 주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맑스와 엥겔스를 통해 유물론과 변증법의 주요 문제가 완전히 해명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시 헤겔식의 완결된 체계를 꿈꾸는 관념론으로 돌아가는 셈이 된다. 오히려 그들의 주장이 촉구하는 사유과정을 좀 더 밀고 나가는 것이 변증법적 독서에 합당할 것이다. 예컨대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맑스와 엥겔스의 정식은 유물변증법의 기초로 여겨진다. 또 이 테제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의 서문에서 더 구체적인 형태로, 즉 “인간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는 테제로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이 테제를 말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사회적 존재와 의식, 혹은 삶과 의식은 분리된 별개의 영역에 위치한다고 여기는 환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유물변증법이 존재와 의식을 분리하고 존재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일보다 존재와 의식의 실질적 관계를 밝히는 데에 더 관심을 둔다면, 그 관계는 위의 테제들처럼 단순화되지 않는다. 사회적 존재 혹은 삶에는 의식도 빠질 수 없으며, 따라서 ‘의식을 포함하는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의식이 의식을 규정하는 몫에도 주목할 수 있고, 의식을 규정하는 제반 조건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함께, 관념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의식(상부구조, 주체)의 적극성에 대한 논의의 불씨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의 인식을 발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필요성은 그들의 이론이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사변이 멈추고 실제적이고 실증적인 과학, ‘인간의 실천적 활동 및 실천적 발전 과정에 대한 기술’이 시작될 때, 이 ‘현실적 지식’은 현실의 변화와 더불어 완성될 수 없는 무한한 과정에 들어선다. “인간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대한 고찰로부터 추상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결론들의 요약”을 과학적 인식이라고 부르든 법칙이라고 보든 그것이 “역사적 시대를 정돈할 수 있게 해주는 처방전이나 도식”을 제공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엥겔스는 인식의 이러한 과정적 성격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변증법적 철학은 종국적 의의를 가지는 절대적 진리라든가 이 진리에 상응하는 인류의 절대적 상태라고 하는 따위의 일체 관념을 타파한다.” 이 점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구체적 조건 속에서 얻어낸 인식 성과들을 절대화하는 것만 아니라, 그 부분적 오류나 결함을 근거로 맑스주의 자체를 폐기하려는 것도 모두 노골적인 정치적 의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생산적인 독서방식은 그들의 주요 인식들이 주는 자극을 이 시대의 실천적 문제 해결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실천을 통해 진리를 증명해야 한다는 테제 역시 독자들이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는 기성품은 아니다. 적대관계가 지배하는 실천의 영역에서는 대체로 어떤 증명에 대한 재론의 여지 없는 확인과 동의보다 적대적 갈등과 충돌이 좀 더 큰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힘들게 이루어진 확인과 동의가 다시 실천의 역류에 휩쓸리는 일도 특별한 예외 현상이 아니다. 특히 현실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문제들에 대한 논의일수록 증명과 논박의 격렬한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또 이로 인해 진리의 지위가 실천 속의 역학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로 격하될 수 있다. 이 경우 타당한 사실 인식에 근거해 실천하기보다, 주관적인 실천적 의도에 맞춰 사실 인식을 만들어내는 논리가 작동할 수 있다. ‘죽은 사실들의 집적물’과 ‘상상된 주체의 상상된 행위’ 사이에서, 단편적 인식들의 나열상태와 주관적 도식들의 체계 사이에서, 전자가 야기할 수 있는 수동적 방관적 냉소주의와 후자가 부추기는 위태로운 주의주의 사이에서, ‘실증적인 과학’ 혹은 ‘현실적인 지식’이 전개되는 행로는 그리 평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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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지식’ 내지 ‘실증적인 과학’이 ‘죽은 사실들의 집적물’이나 단편적 인식들의 나열상태를 넘어서는 데에는 실천이라는 해독제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증주의가 고수하는 보수적 실천과 ‘실증적인 과학’의 혁명적 실천을 구분할 장치가 필요하며, 실천의 부단한 역동성 자체도 새로운 인식들의 생산과 나열을 요구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맑스와 엥겔스는 나름의 처방을 제시한다. “모든 역사적 파악 중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이 근본 사실을 전체적인 의미와 전반적인 영역에서 고찰하고, 그것에 정당한 위치를 부여하는 일이다.”(독일64)(28) 어떤 사실(인식)을 그 전체적 의미와 그것이 처한 맥락 속에서 합당하게 고찰하기 위한 반성은 사태 자체에 충실하면서도 실증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한 변증법적 사유의 핵심 장치라 할 수 있다. 생산양식, 협업과 분업 그리고 사적 소유, 생산력과 교류형태 등에 대한 독일 이데올로기의 서술들은 단순한 사실 확인과 나열의 산물이 아니라 그러한 반성을 거친 추상의 결과물들이다. 물론 그것은 공허한 추상이 아니라 현실적 전제에서 출발하는 추상이다.
그 전제는 인간이 역사를 만들 수 있으려면 먼저 생활할 수 있어야 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음식, 주거, 의복 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단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생활수단의 생산양식은 개인들의 육체적 생존을 재생산하는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활동방식, 삶을 표현하는 방법, 생활양식이기도 하다.(독일54) “일정한 방식으로 생산활동을 하는 특정 개인들은 특정의 사회적 정치적 관계들과 연관되어 있다. 경험적 관찰은 각각의 개별 경우에서조차 사회적 정치적 조직과 생산의 연관을 경험적으로, 그리고 신비화나 사변 없이 보여 주어야만 한다. 사회적 조직과 국가는 항상 특정한 개인들의 생활 과정에서 비롯된다.”(독일60)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것은 생산이 어떤 조건하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갖고 이루어지든 간에 다수 개인들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로부터 특정한 생산양식 또는 산업적인 단계들은 항상 특정한 협업 양식이나 각 사회적 단계와 결합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협업 양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생산력’인 만큼,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생산력들의 양은 사회적 상태를 조건지우고,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산업 및 교환의 역사와 관련지어 연구하고 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끌어낼 수 있다.”(독일66) 한 국민의 정치, 법률, 도덕, 종교, 형이상학 등의 언어 속에 표현된 정신적 산물도 물질적 활동과 교류의 발현이다. “인간의 두뇌 안에서 형성된 환영들도 마찬가지로 인간이 물질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물질적인 전제들에 연결된 생활 과정의 필연적인 승화물이라고 할 수 있다.”(독일61) 이러한 역사관에 근거해 맑스와 엥겔스는 “종교와 철학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종류의 이론을 포함한 역사의 추진력은 비판이 아니라 혁명”(독일79)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혁명에 대한 논의가 당위론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조건에 대한 ‘현실적인 지식’의 뒷받침이 필요한데, 이는 생산양식의 변화, 특히 생산력의 발전 문제를 기초로 한다.
생산력의 발전에서는 분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 국가의 생산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분업의 발전 정도에 따라 가장 명백히 드러난다.”(독일54) 분업은 생산과 욕구의 증대, 그 근저가 되는 인구 증대를 통해 발전한다. “그것은 원래 성적 분업에 불과하다가 다음에는 자연적 소질(예를 들면 체력), 욕구, 우연 등에 의해 저절로 또는 자연스럽게 발전한 분업이다. 이 분업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화가 나타나면서부터 진정한 분업이 된다.”(독일69)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화는 도시와 농촌의 분리로 극대화되는데, 양자의 대립은 “문명사 전체를 관통해 왔다.” “도시는 이미 인구, 생산도구, 자본, 향락, 욕구 들이 집중된 곳이었으나, 농촌은 이와 정반대의 현상, 즉 고립화와 개별화를 보이고 있었다.”(독일99) 도시와 농촌의 분리 과정에서 농업노동으로부터 공업노동과 상업노동이 분리된다.(독일54)
맑스와 엥겔스는 분업을 생산력의 증대라는 측면 이상으로 사적 소유 문제와의 관련 속에서 파악한다. “도시와 농촌 간의 대립은 사적 소유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을 분업, 즉 규정된 강제적 활동으로 포섭시킨다는 것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 준다.”(독일99) 분업은 “노동과 그 생산물의 양적⋅질적으로 불평등한 분배이며, 그에 따른 소유이기도 하다. 이 소유의 싹 또는 최초의 형태는 처와 자식이 이미 남편의 노예로 되어 있는 가족 내에서 이루어졌다.”(독일70) 이 ‘소유의 싹’에서 시작되는 불평등한 노동 분배 내지 분업과 소유형태들을 독일 이데올로기는 크게 부족 소유(가부장제), 고대적 공동소유 및 국가소유(노예제), 봉건적 소유(신분제), 자본주의적 소유(계급제) 등으로 구분하며, 그 각각의 본질적 특징들을 개관한다. 이 설명은 슈티르너의 도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현실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각 시대와 사회에 대한 세부 연구들을 통해 얼마든지 보완되고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업의 발전이 사적 소유의 발전이기도 했고, 이는 곧 사회적 모순의 첨예화과정이기도 하다는 그 핵심 문제의식은 중요하다. 나아가 현재의 지배관계를 영구불변의 자연상태로 받아들이지 않고 대안 사회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분업이 시작되면서 정신적 활동과 육체적 활동, 향유와 노동, 생산과 소비가 서로 다른 개인들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 아니 그러한 현실성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세 가지 계기, 곧 생산력⋅사회상태⋅의식은 모순에 빠질 수 있고, 또 반드시 빠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모순에 빠지지 않게 될 유일한 가능성은 분업을 재차 지양하는 데 있다.”(독일70)(32) 자연발생적 사회 속에서 인간의 활동이 자유의지에 의해 분배되지 않을 때, 인간 자신의 행동이 인간에게 대립하는 낯선 힘으로 나타나고, “인간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구속한다는 사실”(독일71)의 첫째 사례가 분업인 것이다. “노동이 분화되자 각 개인은 하나의 일정한 배타적 영역을 갖게 되고, 이 영역이 그에게 강요되기 때문에 그는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독일71) 이러한 상태와 대립하는 사회상태로서 [독일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 사회를 제시한다. “반면에 아무도 배타적인 영역을 갖지 않고 각자 임의의 분야에서 스스로를 도야(ausbilden)할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회가 전반적인 생산을 규제하기(regelt) 때문에 사냥꾼, 어부, 양치기 혹은 비평가가 되지 않고서도 내가 마음먹은 대로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곧 아침에는 사냥을, 오후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목축을, 밤에는 비평을 할 수 있게 된다.”(독일71)
이 대목에서 오늘의 독자들은 맑스와 엥겔스가 그리는 공산주의의 이미지가 너무 목가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생산력 발전을 위한 분업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사회가 전반적인 생산을 규제하는 문제 역시 역사적으로 실패를 맛보지 않았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맑스 자신도 [자본론]에서는 매뉴팩처 및 기계를 통한 공장생산에서 분업이 야기하는 극단적 비인간화를 신랄히 비판하면서도 기계의 폐지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용과 전혀 다른 공산주의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언급한다. 아마 분업의 폐지보다는 노동시간의 획기적 축소(예컨대 보편적 4시간 노동제)와 주택, 교육, 의료 문제의 사회적 해결에 근거한 개인들의 다양한 활동 가능성 확대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 의한 생산의 전반적 규제 문제도 간단히 폐기할 수는 없다.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 패배가 주는 교훈은 새로운 도전의 불필요성이나 불가능성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기보다, 실패하지 않을 방법을 만들어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본축적을 절대화할 것이 아니라, 범지구적 차원에서 생태, 자원, 에너지, 대중들의 문화적 삶에 대한 기본 욕구 등을 감안한 생산의 전체적 효율성과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끊임없이 사회가 생산 문제에 관여할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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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엥겔스도 공산주의가 목가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그 실현의 구체적 방법이나 세부 지침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실현의 조건들에 대한 원론적 인식들과 논쟁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공산주의의 절대적 필요조건으로서 우선 고도로 발전된 생산력을 들 수 있다. 고도의 생산력 발전 없이는 “결핍이 일반화될 뿐이며, 그럼으로써 궁핍과 함께 필수품을 둘러싼 투쟁도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체의 해묵은 오물이 필연적으로 재발생하기 때문에 생산력의 발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하나의 전제이다.”(독일73) 이는 또 다른 조건을 끌어들인다. 대공업을 통한 보편적 생산력 발전이 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의 보편적 교류’가 그것이다. “이것 없이는, 1) 공산주의는 단지 하나의 지역적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2) 교류의 위력 자체도 보편적인 것으로, 즉 견딜 수 없는 힘으로 발전할 수 없을 것이며, 향토적이고 미신적인 ‘허례’에 그칠 것이다. 3) 교류의 확장은 각기 지역적인 공산주의를 폐지시킬 것이다. 경험적으로 공산주의는 오로지 ‘단 한 번에’ 그리고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지배적인 민족들의 행위로서만 가능하며, 이것은 생산력과 그와 연결된 세계적 교류의 보편적 발전을 전제로 삼는다.”(독일74)
이러한 공산주의의 필수 전제들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할 수 있다. 우선 일정한 생산력 발전 없이는 결핍의 일반화와 필수품을 둘러싼 투쟁이 예상되며, 이 문제는 현실사회주의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체험한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생산력 발전은 어느 수준까지 도달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가들은 현재의 생산력이면 지금 이 자리에서 지구가 낙원으로 바뀔 수 있으며, 문제는 생산관계라고 외쳐왔다. 맑스도 [경제학⋅철학초고]에서 “현재의 생산 단계에서 사회의 모든 물질적인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 1인당 하루 5시간의 평균 노동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계산했다”는 연구보고를 소개한다. 현재로서는 그 필수 생산력 수준을 평가하는 데에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생태적 조건과 함께 인간욕구들의 조절방식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답 정도가 가능할 것이다. 이는 ‘경제결정론’이나 ‘생산력주의’라는 말로 생산력과 경제문제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일과 상관없다. 경제결정론이라는 말이 살아 있는 비판용어가 되기 위해서는, 삶의 전 영역에 스며들어 있는 경제적 요인들의 실제 비중을 따지는 현실적 연구와 현실적 지식이 나와야 할 것이다.
둘째 조건과 관련한 논쟁은 특히 일국사회주의론과 영구혁명론 사이의 생사를 건 정치투쟁으로 표출된 바 있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유럽 선진국들의 연이은 혁명에 러시아 혁명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고 본 데에 반해, 그들의 예상과 달리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체제는 상당기간 제국주의세력들과 힘을 겨룰 수 있었다. 이 경우 스탈린 체제의 문제나 성과에 대한 평가는 논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윤색될 수밖에 없지만, 거시적으로는 [독일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조건이 아직 살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한국사회의 근본변화는 미국과 중국 등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를 떠나 생각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미래의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구상하는 데에는 국제 역학관계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필수적이며, 그 관계변화의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위의 두 조건보다 좀 더 본질적인 공산주의의 실현 조건은 사적 소유 자체를 폐지하는 실천적 행위, 곧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대공업이 대부분의 인간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들고 이들로 하여금 부의 세계와 문화적 세계와 모순을 이루게 한다고 본다.(독일73) 또 좀 더 일반적으로 역사상 모든 충돌은 “이미 질곡이 되어 버린 과거의 교류 형태가 더욱 발전된 생산제력, 즉 더욱 진보된 개인의 자기실현 방식에 상응하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독일133) 과정 속에서, “생산력과 교류 형태의 모순 속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독일135)고 본다. 생산력과 교류형태의 모순은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의 모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적대관계 등으로도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대다수 대중의 빈곤과 불행의 사회적 원인인 이러한 모순과 적대관계를 은폐하지 않고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그 극복을 촉발하는 것은 맑스와 엥겔스의 기본논리에 포함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론적 대변자는 문필 활동을 통해 어떤 일을 수행할 경우, 우선 이렇듯 첨예한 대립에 대한 의식을 약화시키는 모든 문구, 즉 이러한 대립을 얼버무리고 심지어 부르주아들에게 박애주의적 몽상에 근거해 안전을 위해 공산주의자들에게 접근할 기회를 주는 모든 문구들을 멀리해야 한다고 촉구한다.”(독일220)
그러면 그러한 적대관계를 조정할 장치, 예컨대 국가의 역할은 없는가? 맑스와 엥겔스의 답은 단호하다. 그들은 근대국가를 근대적인 사적 소유에 조응하는 지배기구로 파악한다. “근대국가는 조세를 통해 점차 사적 소유자들에게 매점되고, 국채를 통해 완전히 그들의 수중으로 떨어지며, 그 존재는 증권거래소에서 국채 가격의 오르내림에 따라 사적 소유자인 부르주아지가 거기에 부여하는 상업적 신용에 전적으로 의존하기에 이르렀다.”(독일117) “그것은 안과 밖의 목적이라든가 자기들의 재산과 이익의 상호 보장을 위해 부르주아지가 채택해야만 하는 조직 형태 그 이상은 아니다.”(독일117) 엥겔스는 이런 입장을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좀 더 확장된 자료를 끌어들여 근대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화한다. 국가가 늘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앞으로도 늘 존재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그 요지다. 이런 관점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국가는 타도 대상이라고 본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인격으로서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존 생존 조건임과 동시에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생존 조건이기도 한 노동양식을 지양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이제까지 사회를 이루어 온 개인들이 그 안에서 자기에게 하나의 공적 표현을 부여해 주었던 형태, 즉 국가와 직접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자신의 인격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타도해야만 한다.”(독일140-139)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은 지금까지의 활동양식에 맞서 노동을 제거하고 계급 자체와 아울러 모든 계급지배를 폐지한다.”(독일129) “이 혁명을 통해 한편으로는 기존의 생산 및 교류 양식과 힘과 사회구조가 타파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보편성과 그 전유에 필요한 에너지가 발전하며,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이전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 자기에게 남아 있던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게 된다.”(독일127)
기존의 국가를 타도한다고 해서 어떤 무정부상태나 무질서를 만들어내자는 것은 아니다. “지배권을 노리는 모든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우와 같이 그 지배가 낡은 사회형태와 지배 일반을 완전히 폐지하는 데까지 도달한다 하더라도, 그 정치권력을 획득하여 그 이익을 일반적인 것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그것은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만 하는 일이다.”(독일72) 이처럼 ‘지배 일반을 완전히 폐지하는’ 데에 이르러야 하면서 또한 ‘정치권력을 획득’해야만 하는 공산주의 혁명의 모순적 과제를 레닌은 엥겔스를 끌어들여 명쾌하게 정리한다. “엥겔스에 의하면 부르주아국가는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폐지’된다. 이 혁명 후에 사멸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국가 또는 반(半)국가이다.” [독일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공산주의 사회는 국가가 사멸한 상태와 프롤레타리아국가 사이의 중간단계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는 종래의 모든 생산관계와 교류 관계의 기초를 변혁하고, 처음으로 의식에 의거해서 자연발생적인 모든 전제들을 지금까지 존재했던 인간의 창조물로 취급하며, 그 전제들에서 자연발생적인 성질을 박탈시킴으로써 단결된 개인들의 힘에 복속시킨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운동들과 구별된다. 따라서 공산주의적 조직은 본질적으로 경제적이며, 이러한 단결 조건을 물질적으로 산출해 낸다.”(독일131) 국가로 대표되는 기존의 공동체들이 피지배계급에게 ‘환상적인 공동체’이자 족쇄였다면, 이제 “진정한 현실적 공동체 속에서 각 개인들은 지배계급에 맞선 결사 속에서, 그리고 그 결사를 통해 자유를 획득한다.”(독일136) “이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기실현은 물질적 생활과 합치되는데, 이는 개인이 총체적인 개인으로 발전하는 것과 모든 자연발생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에 조응한다. 그때야 비로소 노동이 자기실현으로 전환되고, 이제까지 제한되었던 교류가 개인들 사이의 교류로 전환된다.”(독일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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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인용문들은 몇 가지 핵심어들로 공산주의 사회의 모습을 구성하고 있다. 자연발생적 전제들과 대조되는 의식적 통제, 통제의 주체인 단결된 개인들, 지배계급에 맞선 결사 및 개인들 사이의 교류, 이를 통한 자유, 노동의 자기실현으로의 전환 등이 그것이다. ‘지배계급에 맞선 결사’ 내지 ‘정치권력 획득’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떠올릴 수 있고, ‘개인들 사이의 교류와 자유’에서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생각할 수도 있다. 맑스와 엥겔스가 생각하는 공산주의에는 그 두 가지가 불가분의 성분으로서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이념들은 현실사회주의체제의 운명과 별도로, 인류의 오랜 투쟁 성과들로서 이미 부분적으로는 실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의 시대보다 훨씬 유연하고 교활해진 자본 권력은 아직 단결된 개인들의 통제 밖에서 개인들의 삶을 위축시키고 필요하면 말살하기도 한다. 분할통치, 매수, 이데올로기장치들을 총동원한 대중의 의식⋅무의식⋅욕구 조작은 자본권력이 구사하는 기본기다. 생태위기는 물론 전쟁도 자본축적의 주요 원료로 쓰이고 있다. 이에 맞선 대중들의 투쟁은 꾸준히 선수를 빼앗겨 왔고 아직 작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도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역학구도 속에서 거대자본은 이 시대의 신성가족으로 둔갑했다. 그 후광 앞에서 정치권력만 아니라 지식사회조차 얌전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현명함의 징표처럼 되고 있다. 여전히 문제는 세계의 변혁인 것이다.
변혁의 지난한 과정 속에서 무수한 난관들에 부딪칠 때마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다음 테제를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우리에게 공산주의는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 또는 현실이 따라야 할 하나의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을 공산주의라고 일컫는다.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존하는 전제들로부터 생겨난다.”(독일75) 이 ‘현존하는 전제들’ 가운데에는 청년 맑스와 엥겔스가 그려낸 이상들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시대의 변혁운동은 그것들에 이 시대의 새로운 조건들과 욕구들을 결합시켜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예컨대 보편적 4시간 노동제를 관철하는 데에는 이미 충분한 기술적 조건이 이루어졌거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구현되기까지는 8시간 노동제를 위한 100여년의 투쟁에 맞먹는 장기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 과정은 자본권력 및 그 대리인들과의 전쟁일 뿐만 아니라, 주체들이 전면적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혁명이 필요한 것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지배계급은 타도되지 않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타도하는 계급이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모든 낡은 오물을 말끔히 씻어 버리고 새로운 사회의 기초를 세울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독일129-130) 이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에는 대중적으로 설득력 있는 미래 사회의 청사진이 필수품인데, 이를 만드는 데에 독일 이데올로기에 담긴 청년 맑스와 엥겔스의 실천철학이 빠져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2018. 9. 28. 중앙게르마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