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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제8회 지리책읽기대회 수상작 - 더불어사는세상
수상자: 경기 현화고등학교 2학년 곽혜*
참가도서: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결과물 종류: 소설
<결과물 소개>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독서 후, 돌고래의 입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돌고래가 바다에서 수족관으로, 수족관에서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느꼈을 감정들과 고통도 담아내고 싶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돌고래)으로 소설을 작성하면 아무래도 인간 사회에 대한 설명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설정했다. 소설 작성 중 과학적이거나 생물에 관한 부분은 전문 지식이 필요해 책이나 인터넷에서 기사 등을 참고하였다. 소설의 수미상관 구조는 바다에서 살던 돌고래가 드디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의 쾌감을 드러낸다. 후기에선 나의 경험과 관련지어 느꼈던 것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회색 포물선, 파란 나선
푸른 바다가 있다. 끝없이 뻗은 푸른 바다가 있다.
지느러미에 패인 흉터 두 개가 있는 이 돌고래는 매끈하고 굴곡 있는 몸으로 바닷속을 유영했다. 옆에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얼핏 다른 지느러미 모양을 가진 돌고래의 동료들이 주변을 헤엄치고 있다. 물의 저항을 받지 않는 것처럼 유연하게 물살을 가르는 이들은 따뜻한 온도를 만끽하는 남방큰돌고래들이다. 병 모양의 주둥이에 맑은 눈을 가진 이 돌고래들은 저 먼 건너 바다에도 동료들을 가지고 있다. 이 무리는 인간들과 접하는 일이 건너 바다의 동료들보다 많았다. 윤슬을 깨부수고 뛰어오르면 조금 멀리 형형색색의 집들이 보였다. 육지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인간들은 그들을 가리키며 희미하지만 놀라운 자태에 감탄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돌고래들은 자신들의 집을 누빌 뿐이었다. 저들끼리만 들리는 초음파를 주고받으며 오늘도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돌고래들은 단순 호기심에 그 조그마한 인간들이 사는 육지 쪽에 조금 더 다가가게 되었다. 돌고래들의 앞에는 인간들이 줄지어놓은 크고 작은 배들이 넘실넘실 흔들리고 있었다. 돌고래들은 조금 더 그곳에 머물렀지만 별로 특별한 것이 없어 다시 육지에서 먼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음 날, 돌고래들은 다시 그곳을 방문했다. 돌고래들은 잠시 한 번 들렀던 그곳을 자신들의 생활 반경에 들였다. 바다라면 돌고래들은 어디든 자신의 터로 삼을 수 있었다. 바다가 그들의 집이고, 바다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며, 바다가 그들의 길이었다. 소유권과 사유 재산을 주장하며 네 집 내 집을 따지는 인간들과는 다르다. 그냥, 그것이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며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돌고래들은 매일같이 헤엄치며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인간들은 더 가까워진 그들과의 거리에 들떠 세워놨던 보트 중 한 대를 끌고 바다로 향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다를 가르는 보트 옆에서 돌고래들의 지느러미들이 수줍은 아이처럼 모습을 살짝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보트 위 인간들은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댔다. 돌고래들은 인간들이 탄 보트를 무리에 합류시켜 주는 듯 보트의 앞머리에서 함께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수면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뛰면 인간들은 감탄을 표하며 호응과 박수를 보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쇼를 관람한 관객들은 그들을 구경하다 이내 부둣가로 돌아갔다. 돌고래들은 기쁨의 메시지를 주고받고는 또다시 멀어져갔다.
어느덧 돌고래의 뜀박질에 사람들이 익숙해졌을 무렵, 한 가지 사고가 발생했다. 물속을 누비던 순진무구한 돌고래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버린 것이다. 돌고래는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그물이 몸에 감겨 더 꼬일 뿐이었다.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한 사람들은 배를 끌고 가 돌고래를 풀어주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돌고래가 사람들이 설치해놓은 그물에 걸리는 일이 종종 발생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돌고래의 그물을 풀어주느라 진땀을 뺐다.
한편, 이제 막 오픈 준비를 하는 마린 수족관에선 신기한 해양 생물을 모으기 위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예쁜 물고기, 사납게 생긴 상어, 우스꽝스럽게 생긴 것들까지 전부 모았지만, 사람들을 끌어모으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도 이 수족관에 찾아오게 할 궁극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저기 옆에 일본에서는 돌고래가 점프도 하고 후프도 넘고 온갖 재주를 다 부린다면서요? 우리도 하나 들여오면 크게 되지 않겠어요?"
그 말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확실히 그때까지 그들은 '돌고래'란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지 못했다. 고래 종류는 크기만 커서 수족관만 차지하고 먹이는 물고기의 배로 먹기 때문에 차라리 거대한 물고기 몇 마리를 풀어놓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고래요? 그럼 돌고래를 들여와서 쇼를 시키자는 말인가요?"
"네, 그렇죠. 꽤 똑똑한 것 같던데. 일본도 훈련 시키고 돌고래쇼로 사람을 엄청나게 쓸어모으고 있다던데요."
나이 든 남자가 말했다.
"돌고래라, 특이하긴 한데 돌고래는 어디서 얻어올 거죠? 훈련은 또 누가 시키고요…."
아까보다 한층 들뜬 목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흠, 훈련은 일본인 중에 이미 조련사가 있으니 그 쪽한테 한 번 부탁해보는 게 어떨까요. 큰 건이니 새로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겠지요. 돌고래는 일본 쪽에서 사 오거나.“
남자는 살짝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뭐, 제가 좀 들어둔 게 있습니다.“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동자를 굴렸다. 머릿속에는 큰 단위의 숫자들이 착착 나열됐다.
마린 수족관은 며칠 뒤, 일본에 있는 수족관에 연락을 취했다. 본인들이 돌고래쇼를 기획하고 있고, 아무래도 돌고래를 다루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도움을 줄 수 없겠냐는 내용이었다. 눈웃음을 띄운 것 같은 공적인 말투 뒤에, 양쪽은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마린 수족관은 돌고래쇼로 벌 입장료를, 일본은 조련사 파견과 돌고래에 관한 비용을.
낡아빠진 야구모자를 쓴 남자는 차를 몰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짭짤한 바다 내음이 느껴지는 상쾌한 바람은 차창 안으로 들어오며 굉음을 냈다. 남자는 운전에 주의하면서도 눈은 흘끔흘끔 바다를 향했다. 특히 물결이 일렁이는 부분을 주시하며 자신이 기대하는 생명체가 나타나 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별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돌렸다. 남자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돌릴 때마다 ‘그 아이들의 주파수는 라디오로 들을 수 없는 걸까.’라는 어린아이 같은 상상을 했다. 세월이 깃든 허름한 식당들이 즐비한 도로 쪽에 차를 세우고 남자는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 돌고래를 관찰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나온 남자는 뜨거운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걷기 시작했다. 남자는 바다가 잘 보이는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걸었다. 차를 끌고 다니다 내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번거로웠고 육안으로 직접 그들을 보는 경이로움을 그는 최대한 느끼고 싶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그들을 볼 때면 남자는 곧장 바다로 뛰어들어 그들과 헤엄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자연의 산물에 둘러싸여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는 건 과연 어떤 느낌일까. 당장 바닷가에서 발만 담가도 몸에 전율이 흐른다. 그들의 옆에서 헤엄을 치고, 그들의 옆에서 숨을 쉬고…. 그런 망상을 하며 걸을 때쯤, 아주 멀리서 돌고래의 움직임을 발견했다. 보통은 서너 시간은 돌아다녀야 실루엣 하나 볼까 말까인데 오늘은 아주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 기회는 절대 놓치면 안 됐다. 지금을 놓치면 또 몇 시간의 모험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남자는 급한 대로 주변의 배를 빌려서 아까 봤던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돌고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종종 있었기에, 남자는 혀를 차며 배를 빌리며 건넸던 십만 원을 아까워했다. 막상 이대로 돌아가기엔 다소 찝찝한 마음이 있었기에 배를 조금씩 움직이며 바다를 둘러보았다. 돌고래를 보자마자 온 것이기에 별로 멀리 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남자의 예상대로, 돌고래의 지느러미와 등 부분이 몇 미터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남자는 재빠르게 카메라를 들고 돌고래의 지느러미를 찍었다. 사진이 담긴 카메라를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남자는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이제 센터로 돌아가 이 녀석을 기억해둘 차례다.
”아이고, 저거 또 저러네.“
뜨거운 햇볕을 피해 천막 그늘에 더위를 피하던 슈퍼 주인이 말했다. 신문으로 부채질하며 멀리 바다에서 돌고래로 무언가를 하며 힘쓰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니 본인도 더워지는 느낌이었다. 옆에 앉아있던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놈은 힘들지도 않나 봐. 만날 싸돌아다니다가 저래 걸려.“
”우리랑 쟤랑 같나. 원래 쟤네는 저래 사는 거야.“
”겁도 없어. 먹을 수 있는 거였어 봐. 걸리는 족족 잡아다 팔았지.“
”잡아 판다는데.“
”뭐?“
모자를 쓴 여자가 크게 놀라며 물었다. 슈퍼 주인은 뚱한 얼굴로 답했다.
”저거가 계속 걸리니까 어디서 산다고 했나 봐. 만날 걸리던 거 풀어주기만 했지, 잡아다 판다고 할 줄 누가 알았겠어.“
”저거를 어디다 쓴다고 사 간대? 진짜 먹으려는 건 아닐 테고…. 수족관에서 데려가려나?“
”몰라. 돈만 많이 받으면 된 거지. 빨리 데려가 버리라 해. 저거 풀어주는 거 보는 것도 내가 다 더워서 지겨워 아주.“
여자의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흘렀다.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물에 걸리면 바다로 다시 돌아가는 게 당연했던 돌고래는 이번엔 불행하게도 예외를 맞았다. 사람들은 그를 풀어주지 않았고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하였다. 배 위에는 원래 돌고래를 풀어주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마린 수족관의 관계자들이었다. 종종 이곳에서 돌고래가 그물에 걸린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돌고래를 사 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비싼 돈 주고 훈련된 돌고래를 받아오는 것도 괜찮았지만, 애초에 일본은 훈련된 돌고래라는 귀중한 자산을 주려고 하는 마음이 없었을뿐더러, 훈련 안 된 녀석들도 값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마린 수족관이 생각해낸 대책이 일본 돌고래에 비하면 훨씬 적은 돈을 이곳 주민에게 주고 돌고래를 사 오는 것이었다. 돌고래는 마린 수족관이 준비한 기다란 수조에 넣어졌다. 마린 수족관 관계자는 마리당 천만 원 정도를 주고 돌고래를 데려갔다. 이렇게 해서 얻은 돌고래가 2마리였다. 꽤 좋은 결과를 가지고 관계자들은 돌고래들과 함께 마린 수족관으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에 그들이 남긴 말은 죽으면 안 되니 신중히 다루라는 언성이었다.
돌고래들은 수송 차량에서 내려지자마자 마린 수족관의 수족관으로 옮겨졌다. 자기 몸에 꼭 맞는 비좁은 수조보다는 넓은 수족관이었기에 돌고래들은 찬찬히 움직이며 수족관 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수족관의 물은 나름 돌고래를 위해 바다와 비슷하게 이뤄져 있었다. 따뜻한 바다를 좋아하는 녀석들의 특성을 고려한 물, 하지만 그곳은 진짜 바다가 아니었다. 탐색을 끝낸 돌고래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좁다. 우리가 살아온 바다에 비하면 너무나 좁은 곳이다. 마치 인간에게 작은 욕조를 주고 수영해보라고 하듯 말이다. 돌고래들은 영문도 모른 채 두꺼운 유리로 둘러싸인, 바다를 흉내 내고 있는 곳에 갇혀 버렸다. 수족관 적응을 최대한 빨리 끝낸 후에는 먹이 적응 훈련이 시작됐다. 본래 살아있는 싱싱한 물고기를 사냥하며 살아왔던 녀석들이지만, 여기 마린 수족관에서는 죽은 생선을 먹이로 삼아야 했다. 활어는 비싸고 조련사가 손쉽게 주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조련사는 죽은 물고기 더미에서 한 마리를 꺼내 물속에서 살살 흔들었다. 움직임과 비린내에 돌고래들이 다가오나 싶었지만 이내 머리를 휙 하고 돌려버렸다. 하나 조련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뭐라도 먹게 되는 게 짐승이다. 이튿날이 되어 갈 무렵, 돌고래들은 자신의 처지를 수긍한 듯 조련사가 주는 죽은 생선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먹이 적응 훈련도 끝났으니 마지막 훈련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일본에서 돌고래 한 마리와 조련사가 한국에 도착했다. 돌고래 세 마리에게는 각자 이름이 붙었다. 그중 처음 그물에 걸린 돌고래의 이름은 ‘해양이’였다. 세 마리 중 그나마 활발한 녀석이었다. 덕분에 해양이를 중심으로 세 마리는 순조롭게 합사가 진행되었다. 일본에서 온 조련사는 마린 수족관의 조련사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돌고래쇼 훈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야생에서 자란 녀석들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을 거란 말도 덧붙였다. 훈련은 돌고래들에게 어떤 행동을 유도하고, 그 행동에 가까운 행동을 하거나 순순히 따랐을 때 먹이를 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돌고래들은 조련사들을 따르지 않았다. 평생을 자유롭게 살아온 이들이 누군가에 명령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조련사들도 훈련 초기에 그렇게 전해 들었고, 돌고래들이 쉽게 명령을 따라주지 않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돌고래는 매우 영리한 동물이었다. 조련사들의 말을 따랐을 때 수족관 안에의 유일한 먹이인 생선이 주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즉시 조련사들이 지시한 동작을 해내며 생선을 받아 갔다. 조련사들은 훈련이 꽤 잘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돌고래들이 자신의 말을 따른다는 신기함에 가슴이 들떴다. 이후로도 일본 조련사에게서 여러 교육을 받고 돌고래들에게 훈련을 시키는 나날이 지속됐다. 돌고래들은 영리한 탓에 금방 동작에 성공하곤 했지만, 반대로 영리한 탓에 동작을 대충 하고 생선을 타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마린 수족관은 훈련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신문과 텔레비전 광고는 물론, 돌고래 인형 탈을 쓰고 길거리에서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돌고래쇼’라는 단어에 크게 관심을 보였다. 평소에 보기 힘든 생소한 동물에, 그 동물이 기상천외한 묘기들을 선보인다니. 특히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은 이미 마린 수족관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바쁘게 홍보 전단지를 받고 가방 한구석에 구겨 넣어놨던 사람들도 존재를 잊고 있던 그 종이를 발견하곤 다시 읽어보았다. 이리하여 마린 수족관의 돌고래쇼 홍보는 대성공으로 끝난 것이었다. 마린 수족관은 오픈과 동시에 굉장히 바쁜 나날을 맞게 되었다. 돌고래쇼가 주였지만, 돌고래쇼 이외에 일반 수족관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돌고래쇼로 끌어들여 일반 수족관 입장료까지 가져갈 전략이었다. 따라서 돌고래쇼 시작을 개장 한두 시간 후로 잡았다. 사람들은 돌고래쇼 입장권을 얻기 위해 개장 시간 전부터 마린 수족관 앞에서 줄을 섰다. 이렇게 개장 후 건물 안에 들어간다 해도 돌고래쇼까지는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반 수족관 입장권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린 수족관은 오로지 돌고래쇼를 바라보고 온 고객들을 위해 돌고래 훈련에 더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조련사는 귀찮음에 대충 묘기를 부리는 돌고래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더 엄격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동작을 제대로 할 때만 생선을 주었고, 명령을 거부하고 행동하지 않는 녀석에겐 생선을 주지 않았다. 정말 말을 잘 들은 날에는 특별히 생선을 두 마리씩 주기도 했다. 돌고래들은 이러한 엄격함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돌고래쇼가 시작하는 날. 크고 좌석이 빼곡히 들어찬 돌고래쇼장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조련사들도, 돌고래들도 밖에서 들리는 수많은 사람의 웅성거림에 긴장했다. 시작 시간이 되자, 조련사가 사람들 앞에 섰다.
”여러분, 돌고래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모두 즐길 준비되셨나요?“
작은 아이의 목소리부터 어른들의 목소리 모두 크게 ‘네!’하며 대답했다. 신나는 멜로디와 함께 물보라를 일으키며 돌고래 세 마리가 등장했다. 동시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돌고래쇼의 시작을 화려하게 기뻐했다. 코앞에서 본 그 바다 생물체들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제격이었다. 돌고래들은 조련사의 손동작에 따라 높은음의 소리를 균일하게 내거나, 후프를 통과하며 높게 점프했다. 조련사는 동작이 끝날 때마다 양동이에서 생선을 꺼내 주었다. 꼬리로 물장구를 치며 묘기를 해낸 돌고래들에게 환호뿐만 아니라 음식이 날아오기도 했다. 물론 돌고래가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거라지만 수족관의 자산인 돌고래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그 행동은 조련사에 의해 금방 제지되었다. 쇼가 끝나면 사람들은 ‘재밌었어?’라는 말과 함께 쇼장을 나갔다. 돌고래들은 삼삼오오 모여 쇼에 대한 보상으로 생선을 먹었다. 늘 하던 대로 수면 위로 점프하고, 생선을 사냥하고, 인간들 근처에서 같이 헤엄만 쳐도 박수와 환호를 받던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해양이는 눈꺼풀을 느리게 끔뻑였다. 솔직히 평가하자면 훈련했던 만큼 실전에서 잘하지는 못했다. 자신의 손짓에 돌고래가 움직이지 않을 때마다 조련사는 목덜미에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돌고래가 묘기를 부린다’라는 사실 자체에 크게 놀라워했고 그것만으로도 금방 입소문을 탔다. 어떻게 보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첫 돌고래쇼를 기점으로 마린 수족관에는 매일같이 많은 양의 인파가 몰렸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몇 년 후, 돌고래들이 단체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마린 수족관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해양이와 함께 잡혀 온 아이는 림프육종이 생겼고, 일본에서 온 아이는 패혈증 증세를 보였다. 무슨 행운인지 해양이는 세 마리 중 건강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먹이를 먹다가 뱉어내거나 전보다 살짝 무기력해지긴 했지만 심각한 건강 이상 증세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 달 뒤, 마린 수족관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해양이를 제외한 돌고래 두 마리는 폐사했다. 마린 수족관에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돌고래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다른 돌고래를 어디서 데려올지, 훈련 기간은 얼마나 잡아야 할지 내부에서 소란이 일었다.
한편, 해양이는 자신만이 몸 담그고 있는 텅텅 빈 수족관을 바라보며 두 친구를 찾았다. 수족관 내부를 빙글빙글 돌거나 육성으로 끼룩끼룩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물속에서 초음파를 쏴보았지만 수족관 유리벽에 반사되어 다시 돌아올 뿐이었다. 해양이는 수족관 속 다른 수염고래 종은 약 15~20헤르츠의 초음파를 내지만, 이 고래는 그에 약 2배 이상에 달하는 52헤르츠의 초음파를 낸다. 따라서 다른 고래들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로도 불린다. (Nelson, Bryan “52 Hertz: The Loneliest Whale in the World(2012.05.20))
52헤르츠 고래였다.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수족관 안에서 해양이의 우울함은 점점 퍼져갔다. 마린 수족관이 다른 돌고래에 대한 대책을 찾는 동안에도 해양이는 조련사가 주는 생선을 거부했고, 오랫동안 수족관 밑바닥에서 잠수한 채 수면 위로 나오지 않았다. 생선을 먹기 위해서 매일 엄청난 기술을 해냈던 녀석은 이젠 제발 먹으라고 생선을 입 앞에 건네도 먹지 않았다. 아주 오래 슬픈 눈동자로 물속을 떠다니던 해양이는 숨구멍을 열기 위해 가끔 수면 위로 올라오곤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점점 횟수가 줄어갔다. 일주일 뒤, 해양이는 폐사한 두 친구를 따라갔다. 해양이를 옆에서 가까이 지켜보던 조련사들은 마음속에서 슬픔을 느꼈다. 동시에 사람도 아닌 돌고래가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품었다. 해양이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의 모조품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마린 수족관은 세 돌고래의 사체를 조용히 폐기 처리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린 수족관이 돌고래쇼를 하는 몇 년 동안 다른 수족관들도 가만히 지켜보다 망할 수는 없었기에 돌고래를 들여온 것이다. 그중 블루오션 아쿠아리움은 마린 수족관보다 규모가 작았다. 더군다나 예산도 적었다. 하지만 오픈 며칠 만에 대박을 터뜨린 마린 수족관을 보고는 돌고래로 떼돈을 벌 생각을 했다. 블루오션 아쿠아리움도 돌고래를 가져올 곳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은 당연히 일본이었지만, 값이 너무 비쌌기에 국내로 눈을 돌렸다. 그러다 수소문 끝에 도달한 곳이 마린 수족관이 해양이를 데려왔던 그곳이었다. 마린 수족관이 돌고래를 사간 뒤에도 한두 번 정도 돌고래가 그물에 걸리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구매하겠다는 곳이 없어 그냥 풀어주었다. 아마 돌고래 관리가 힘들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라고 주민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돌고래를 살 테니 그물에 걸리면 연락 달라고 한 수족관이 또 나타났다. 주민들은 이게 또 무슨 횡재냐며 녀석들이 그물에 걸리는 날만 기다렸다. 그리고 한 마리가 그물에 걸린 날 헐레벌떡 아쿠아리움에 전화를 걸었다. 아쿠아리움은 기뻐하며 돌고래를 아쿠아리움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아쿠아리움은 큰 문제를 간과한 채였다. 바로 돌고래를 훈련 시키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마린 수족관처럼 일본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해 받았다면 모를까, 블루오션 아쿠아리움은 무턱대고 돌고래와 돌고래를 넣어둘 수족관만 준비해둔 것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자 결국 아쿠아리움은 돌고래쇼 대신 울며 겨자 먹기로 일반 해양 생물과 다를 것 없이 돌고래를 전시했다. 돌고래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아쿠아리움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떼부자가 될 거란 꿈은 일찍이 포기한 채 어떻게든 아쿠아리움은 간간이 버티는 중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마린 수족관은 블루오션 아쿠아리움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희귀한 해양 생물을 여러 마리 보낼 테니 돌고래와 맞교환하자는 내용이었다. 아쿠아리움은 고민했지만, 그곳에서 딱히 돌고래가 큰 수입원도 아니었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었기에 거래를 수락했다.
마린 수족관은 만족스러운 거래에 돌고래 삼인방을 훈련 시켰을 때를 떠올리며 다시 귀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대중들에게 세 돌고래가 확실히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린 수족관은 좀 더 새롭고 특별한 돌고래쇼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한물간 돌고래 삼인방의 쇼 대신 한 마리의 돌고래와 한 명의 사람이 서로 교감하며 이뤄지는 쇼. 그게 마린 수족관의 ‘더 새로워진! 더 재밌어진 마린 돌핀 쇼!’ 계획이었다. 기존 돌고래쇼는 사람의 명령을 따라 돌고래만 움직이는 방식이었다면, 새 돌고래쇼는 돌고래가 조련사를 밀어주거나, 조련사를 등에 태우고 공중에 튕겨 주는 등 겉모습만 보면 확실히 전보다 돌고래와 사람과의 교감이 잘 드러나는 돌고래쇼였다. 하지만 이러한 새 돌고래쇼는 돌고래의 체력적 부담만 더해줄 뿐이었다. 그렇게 ‘파도’는 마린 수족관의 새로운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다.
네모난 책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책상에는 여러 돌고래 사진과 복잡한 자료들이 나뒹굴었다. 사람들 속에는 야구 모자를 쓰고 돌고래 지느러미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남자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마린 수족관의 돌고래에 관한 얘기를 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마린 수족관이 돌고래쇼를 한다고 한창 홍보하던 때에, 남자도 그 홍보를 보게 되었다. 그걸 보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건 ‘저 아이들은 어디서 온 걸까?’라는 의문이었다. 돌고래는 물고기처럼 쉽게 들여올 수 있는 생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런 생물을 훈련 시켜서 쇼까지 시키다니. 불길함이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남자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남자는 언론 쪽에 연이 있었다. 전화를 걸자, ‘여보세요?’라는 뚜렷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혹시 마린 수족관의 돌고래에 대해 취재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인터뷰든 조사든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넸다. 휴대전화 너머 남자는 몇 초간 정적을 유지하더니 일단 알겠다는 답을 남겼다. 한창 관심의 정점을 찍은 마린 수족관의 비밀을 기사로 내면, 그건 본인에게도 이득이었다. 그렇게 안경을 쓴 풋내기 기자는 인터뷰를 요청하고 마린 수족관으로 향했다.
기자가 도착하자 관계자는 웃으며 사무실 같은 곳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관계자는 ‘사람들이 마린 수족관에 하도 떠들어대니 이젠 뉴스까지 돌고래쇼 홍보해주려나’하는 망상에 빠져있었다. 물론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기에 인터뷰의 자세한 내용은 묻지도 않고 수락해버렸다. 기자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설치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네, 일단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감사하죠.“
”그럼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우선, 마린 수족관이 대대적인 홍보로 돌고래쇼를 앞세우셨는데 돌고래쇼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아, 그건 저기 옆 나라 일본에서도 돌고래쇼를 하고 있길래…. 저희 수족관도 오픈하면서 뭔가 강하게 인상을 남길만한 그런 게 필요했거든요. 거기에 돌고래쇼가 아주 제격이지 않습니까? 가족들도 많이 보러 올 수 있고, 또 돌고래들이 워낙 똑똑하기도 하고.“
”돌고래들을 훈련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진 않으셨나요? 아무리 그래도 야생에서 살던 생물이다 보니 많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우리 조련사들이 아주 열심이었지요. 방금 말했듯이 돌고래들이 똑똑해서 금방 적응하고 동작도 척척 알아서 하고…. 생선만 주면 말을 아주 잘 들었거든요. 일본에서 온 조련사가 알려준 대로 하니까 꽤 쉬웠죠, 뭐.“
기자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일본에서 온 조련사요?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배우신 건가요?“
관계자는 뭔가 꼬리가 잡힌 것 같은 기분에 입술을 달싹였다. 이래서 기자 앞에선 입조심 해야 하는데. 마른침을 삼키더니 관계자가 말했다.
”아, 그게…. 우리가 뭐 아는 게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원래부터 하고 있던 일본에 돌고래 훈련 방법도 좀 알려주고 돌고래도 좀 주면 안 되겠냐 그런 거죠.“
”돌고래 세 마리 전부 일본에서 온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 기자님, 알려는 드릴 텐데 좀만 저기 해주시면….“
관계자는 양손으로 무언가를 누르는 동작을 보이며 부탁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자는 알았다는 반응과 함께 카메라의 버튼을 눌렀다. 녹음기는 계속 작동되고 있다. 관계자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카메라를 살피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세 마리 중에 한 마리는 일본에서 사 온 거고요. 웃돈 얹어주고 조련사도 보내달라 한 겁니다. 근데 이게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말이죠. 저희 중에 누가 소문을 들었는지 저기 밑에서 그물에 돌고래가 자주 걸린다 해서 거기서 두 마리 사 온 겁니다. 그게 훨씬 싸고 빠르니까요.“
그 말을 듣자, 기자는 직업 정신보단 충격에 휩싸였다. 먹을 물고기를 잡아 판다는 건 알았어도 그물에 걸린 돌고래를 판다는 건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떨떠름함에 입술을 살짝 떨며 ‘아, 그렇군요.’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기자는 남자가 알고 싶어 하던 비밀을 알아냈다. 원하는 것을 얻은 기자는 형식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자를 배웅하는 관계자는 자기 입을 원망하며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했다. 기자는 운전석에 앉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거 일이 꽤 크게 될 수도 있겠는데.’
기자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의 말을 들은 남자는 자신이 느꼈던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단 사실에 머리를 짚었다. 혼획된 고래는 풀어줘야 하는 게 보호법상 맞는 일이다. 하지만 마린 수족관은 혼획된 돌고래를 물건 사듯이 사서 돌고래쇼에 세웠다. 남자는 고래를 연구하고 관찰하는 일을 했다. 어떤 때는 그들은 자기 자식과 같이 여길 때도 있었다. 남자는 이를 가만히 볼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는 연구소의 동료들과 더불어 동물보호단체를 포함한 여러 곳에 연락을 취했다. 상황을 설명하자, 도움을 주겠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이들은 돌고래들을 마린 수족관에서 빼내기 위한 노력을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녹음본을 바탕으로 열심히 증거를 모았다. 돌고래를 샀다던 그 마을로 가서 주민들의 말을 듣고, 돌고래가 수송된 경로를 조사했다. 남자는 돌고래에 관한 국내 법률을 싹싹 긁어모으기 위해 허구한 날 자판을 두들기며 인터넷을 뒤졌다. 읽다가 법조인에 대한 존경심이 번쩍 생길 정도로 많은 법률 속에서 돌고래에 관한 법은 고작 몇 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문장 몇 개가 남자에게는 희망을 심어 주었다. 남자는 이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밤잠을 설치는 날이 허다했고, 부족한 법적 지식을 하나하나 머리에 때려 박느라 책상에서 책을 베고 잠드는 날도 있었다. 고래를 연구하면서 돌고래를 풀어줄 궁리까지, 남자는 머릿속이 온통 고래들로 가득 찼다. 너무나 힘든 날에는 돌고래와 함께 바닷속을 헤엄치는 상상을 했던 그 날의 꿈을 꾸며 잠을 청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마린 수족관 앞에서 돌고래를 자유롭게 풀어주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어린 학생들도 참여할 때는, 사람들의 이목이 더 집중됐다. 그 때문에 인터뷰했던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여러 통 걸려 오긴 했지만 기자는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두꺼운 종이 더미와 음성 파일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나서야, 드디어 이 돌고래 사건을 재판까지 넘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시점엔 마린 수족관을 알리던 돌고래 세 마리는 이미 죽어 폐기 처리된 뒤였다. 대신 블루오션 아쿠아리움에서 맞교환해 얻어온 ‘파도’라는 이름의 돌고래만이 존재했다. 법원도 조금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돌고래는 생물이지만 어떻게 보면 돈이 오간 거래가 있었기에 재산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일단 마린 수족관은 이미 폐사한 세 마리의 돌고래에 대해선 집행유예 및 벌금형을 받았다. 남은 건 파도를 몰수해서 야생으로 방사하느냐 마느냐가 제일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이들의 노력 덕에 대중들에게도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여론이 갈라지는 일이 생겼다. 야생 방사에 반대하는 이들은 멀쩡히 잘 보호하고 있는 돌고래를 왜 굳이 야생으로 되돌려 보내냐는 입장이었다. 지금은 잘 살아있다가 바다에 적응 못해 죽으면 어떡할 거냔 소리였다. 남자는 기가 찼다. 물론 그것에 대해 예상하고 과학적인 근거는 마련해놓은 뒤였다. 원래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던 아이에게 다시 자유를 준다는데 인간의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건 정말이지 오만한 짓이었다. 인간들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자유를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피라미드 상부에 반항하고, 수많은 피를 흘리며 투쟁하지 않았는가. 돌고래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수족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서 수족관 유리를 깨고 싶어 수없이 머리를 박았을 것이다. 그물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생채기 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러니 남자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자신은 무조건 파도를 바다로 돌려보낼 거라고. 파도가 죽으면 내가 전부 책임질 테니 그런 말 말라고. 분노로 가득 찬 성대로 공기를 떨리게 한 그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그의 연설 덕분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어쨌든 다행히도 여론은 점차 돌고래를 야생 방사하자는 의견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마린 수족관은 어떻게든 남은 한 마리의 돌고래를 지켜내려 애썼지만, 결국 대법원까지 간 이 대장정은 돌고래의 자유에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은 돌고래에 대해 몰수형을 내렸다. 몰수 대상이 생물이고, 보호 대상이며, 국민 정서를 고려해 야생 방사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내용이었다. 남자와 동물보호단체 사람들은 대법원의 판결이 나자 미친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법원에 있지 않았다. 대법원 앞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해냈다며, 지금까지의 노력을 축하했다.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돌고래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기쁜 것도 잠시, 대법원이 아닌 마린 수족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와 사람들은 급히 파도에게 향했다. 최대한 빨리 파도에게 바다를 돌려주고 싶었다. 파도를 신속히 수송 통에 넣었다. 수송 통에 넣는 것조차도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보통 돌고래들은 수송 중에 스트레스나 쇼크사로 죽는 경우가 아주 많았기에 매분 매초 돌고래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온도 조절을 위해 온도계와 얼음도 잔뜩 준비하고, 만약을 위해 파도에게 신경안정제를 주입했다. 몸에는 화상을 입지 않도록 연고를 잔뜩 발라주었다. 또한 숨을 쉴 수 있게 몸 밑에 스펀지를 넣어 몸을 고정해주었다. 물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여러 기계도 설치했다. 복잡한 단계를 걸쳐서, 드디어 파도는 바다로 간다.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간다.
오랜 시간에 걸쳐 도착한 바다엔 가두리가 있었다. 야생 방사를 위해선 바다에서 잘 움직이는지 보고, 활어 사냥 훈련을 해야 했다. 파도를 바다에 풀어주자 몸을 양옆으로 흔들더니 이내 자유롭게 헤엄쳤다. 불쾌한 담수에서 상쾌한 해수로 감싸진 몸은 바다를 잔뜩 만끽했다. 배에는 살아있는 고등어가 양동이에 잔뜩 담겨 있었다. 사실상 돌고래 재판, 그리고 돌고래 수송까지 많은 예산이 들었기에 파도에게 매일 공급할 활어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동물보호단체의 몇 명과 남자는 물고기를 취급하는 식품 기업과 연락이 닿아 정말 기적적으로 국내산 고등어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서이건, 파도를 위해서이건 그때만큼은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그저 안심과 의지만이 가슴속에서 흘러넘쳤다. 가두리 안에 양동이 하나를 쏟아붓자 고등어 떼가 자유자재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파도는 고등어 떼를 보며 도망치기 바빴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탄식했다.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먹었던 살아있는 생선을 보고 도망가다니. 움직이지 않는 죽은 생선에 익숙해진 파도가 가여웠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도는 이내 조금씩 고등어와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옛날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일까. 입질하며 고등어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성공이었다. 파도는 금세 빠르게 헤엄치며 고등어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예전의 너로 돌아오렴. 옛날의 너를 떠올리렴.’ 하고 주문을 외웠다. 그에 부응하듯 파도는 야생, 자연의 그 자체였다.
활어 사냥 훈련이 끝난 날,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들었다. 오늘이다. 파도가 넓은 바다로 향하는 날. 가두리 양쪽의 밧줄을 끊어내고 서서히 걷어냈다. 파도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사람 소리가 나는 곳에 머물러있다. 헤엄치면서 몸을 한 바퀴 돌리는 순간, 파도는 보았다. 가두리의 밧줄이 없어진 것을. 하지만 그걸 보고도 단숨에 저 멀리 헤엄쳐나가지 않았다. 파도는 수면 위로 머리를 살짝 내보였다. 그러고 몇 초를 유지하고는 드디어, 가두리 범위 밖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카메라들의 셔터 소리,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도 남자는 마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저 파도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코 먹는 소리로 ‘다음에 보자.’라는 말실수를 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남자는 그 말을 반박하듯 큰 소리로 외쳤다.
”잘 가라, 파도야! 저 멀리 가서 친구들이랑 행복하게 살아라!“
그렇게 돌고래 야생 방사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웅장한 음악이나 화려한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배 위의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파도는 자신이 오래전 지났던 길들을 하나둘씩 훑었다. 와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마치 처음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파도는 무리를 찾아야 했다. 돌고래는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친구를 찾아야 했다. 연안을 빙빙 돌며 길을 익히고, 바다를 느끼고, 수면 위에서 공기를 들이켰다. 숨구멍을 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파도는 발견했다. 저 멀리 자신을 부르는 회색 포물선을, 그들이 돌며 만들어낸 파란 나선을.
푸른 바다가 있다. 파도의 눈앞엔 끝없이 뻗은 푸른 바다가 있다.
-후기
내가 초등학생 때 가족들과 함께 아쿠아리움에 갔었다. 푸른 빛으로 물든 건물의 내부와 생전 처음 보는 해양 생물들은 나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리고 마침 그날은 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쇼가 열리는 날이었다. 나와 가족은 돌고래쇼 표를 구매해 반원 형태로 뻗은 좌석에 앉았다. 조련사의 목소리와 웅장한 음악과 함께 돌고래 3마리가 등장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돌고래쇼가 시작하고 돌고래들은 조련사의 신호에 맞춰 점프하거나, 뒤로 헤엄을 치거나, 조련사를 앞으로 밀어주는 묘기를 선보였다. 묘기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감탄하며 연신 박수갈채를 보냈다. 돌고래들은 중간중간 조련사가 양동이에서 꺼낸 생선을 받아먹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나는 약 10분 정도 되는 그 짧은 돌고래쇼를 관람했다. 쇼가 끝나고, 사람들은 웃는 얼굴, 신나는 얼굴로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여전히 돌고래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매끈하고 굴곡진 몸매에, 신기한 기술을 할 수 있는 영리한 그 동물은 내게 큰 전율을 선사했다.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쯤, 나는 쇼가 끝난 뒤의 돌고래들과 조련사의 모습을 조금 볼 수 있었다. 돌고래 세 마리는 조련사 앞에 모였다. 그리고 조련사가 손을 뻗자 차례로 튀어 올라 조련사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훈련의 일종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조련사는 양동이에서 돌고래에게 생선을 주었다. 그러나, 한 마리는 생선을 먹지 못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족들의 뒤를 따라갔다. 어린 마음에 그런 거라지만,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런 거라지만, 나는 그날의 나를 증오한다. 바다에서 그 좁은 곳으로 끌려와 매일 훈련을 받았을 돌고래를 보며 기뻐했던 나를. 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쇼가 끝나고 죽은 생선조차도 먹지 못했던 돌고래를 외면했던 나를.
나는 이제 너무나 증오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야 증오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