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가래 장병, 살려달라 비명..문무대왕함은 지옥 같았다"
임장혁 입력 2021. 07. 23. 00:03 수정 2021. 07. 23. 01:13
청해부대 승조원 당시 상황 첫 증언
"감염자 구분이 안돼 격리 무의미
아파도 전우에게 미안해 계속 일
귀국 전 확진자도 동원해 배 소독"
"40도 열 환자 하루 10명씩 쏟아져
완치 안된 환자들이 의무실 비워줘"
“지옥이 따로 없었다.”
청해부대 34진(문무대왕함)의 승조원 A씨는 지난 2일 함내 첫 코로나19 유증상자가 발견된 시점부터 귀국 때까지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지난 20일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KC-330) 편으로 성남 서울공항에 귀국한 청해부대 승조원 301명 중 현재까지 27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자 중 한 사람인 A씨는 현재 수도권 소재 군 시설에 격리돼 있다. 군 당국은 승조원에게 언론 접촉 금지령을 내렸지만, A씨는 “상황 발생 후 내려오는 상부 지시는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느껴져 답답했다”며 22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Q : 첫 유증상자 발생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됐나.
A : “지난 7월 2일 조리병 중 1명이 의무실에 입원했고, 그 뒤로 다른 조리병들이 줄줄이 증상을 호소했다. 이전에도 감기 걸린 사람은 종종 나왔기 때문에 미처 코로나19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숫자가 늘어나자 간이 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했지만, 모두 음성으로 진단됐고(※국방부는 지난 16일 함내 유증상자가 40명을 넘긴 10일께 간이 검사를 했지만 음성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후론 일파만파였다.”
Q : 원인은 뭐였다고 생각하나.
A : “승조원은 부두 정박 상태일 때는 마스크를 쓰지만, 파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항해 중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마지막 정박은 지난 6월 말 부식 적재 때였다. 그때 들어온 물품 중에 바이러스가 묻어 있지 않았나 싶다.”(※다만 질병관리청은 반입 물품에 바이러스가 묻었을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Q : 왜 급속히 배 전체로 퍼진 것인가.
A : “환자가 급증하자 그때부터 격리한다고 환자를 한쪽으로 몰고, 침대를 바꾸고, 이불로 침대를 가리고, 배식과 화장실을 분리했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함내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여서 어차피 마주칠 수밖에 없다. 흡연도 같은 공간에서 한다. 승조원 전체가 어디 있더라도 같은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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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병들 기침하면서도 밥 만들어, 타이레놀 먹으며 버텼다”
Q : 지휘부는 어떻게 대처했나.
A : “의무실에선 열만 내리고 심한 증세만 없다면 완치 판정을 내고 일과로 돌려보냈다. 열이 완전히 내리지 않은 환자도 체온이 40도 가까운 환자가 하루 10명씩 쏟아지자 의무실을 비워줘야 했다. 나중엔 누가 환자이고 아닌지 구분도 안 되고 격리 기준도 무의미해졌다. 피 가래가 나올 정도로 증세가 심해 여기저기 살려달라는 사람이 속출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Q : 언제 코로나19인 걸 알았나.
A : “임무 수행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자 증세가 가장 심한 6명을 상륙시켜 검사를 받았다. 전원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제야 다들 ‘이게 코로나19 였구나’라고 알게 됐다.”
Q : 환자는 제대로 치료받았나.
A : “승조원들은 모두가 맡은 일이 있고 한 명이 빠지면 남은 사람은 일이 배로 늘어난다. 비록 자신이 아파도 다른 전우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그냥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처음 증세를 보인 조리병도 기침하면서도 계속 일했다. 다들 타이레놀이나 테라플로를 복용하며 버텼다.”
Q : 어떤 지시가 힘들었나.
A : “확진자·미확진자 가릴 것 없이 비행기 탑승 전날에도 방역하느라 밤을 새웠다. 알코올 묻힌 걸레나 물티슈로 배를 닦고 물품을 소독한 후 10m에 하나씩 ‘방역 완료’라고 써 붙였다. 다음에 오는 강감찬함 승조원들을 위한 방역이라는 명목으로 실시됐지만, 아무래도 상부 보고용이 아니었나 싶다. 인수인계할 물품을 소독한다고 했지만 결국 확진자들이 소독한 셈이다. 88%가 확진자니까. 오염돼 버려야 할 물건이 많았지만 다 치우지 못해 일부는 쓰레기 봉투에 담아 배 위에 올려 뒀다.”
A씨는 “다들 건강만 회복하면 이마저도 언젠가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A씨는 “완벽한 방역이 불가능한 함 내 생활의 특성을 고려했다면 정부가 백신 보급을 서둘렀어야 했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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