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
어떤 사람은 나에게 평생 소중한 반려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내가 맡은 일에 귀한 조력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힘들고 불편한 사람, 혹은 손해를 끼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마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라면 반드시 나에게 유익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건과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것이라면 나에게 유익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불만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육로로 가는 짧고 쉬운 길을 두고 홍해를 여시고, 식량이나 물이 부족한 광야의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이 불만스러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뒤를 따라올 애굽의 군사들을 알고 계셨고, 이스라엘은 그 군대와 마주치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할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들은 미래의 일을 보지 못하고, 당장의 편한 길을 좋은 길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미래까지 고려하셔서 우리에게 최고의 길을 여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시와 같은 길, 가시와 같은 사람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기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바울도 불만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큰 능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기도하면 병자들이 고침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고통스러운 육신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3번씩이나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답은 바울이 원한 것과는 달랐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 상황이 이미 은혜라는 것입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만일 바울의 삶이 완벽했다면 바울은 교만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바울에게 약한 부분이 있을 때 그의 교만이 제어가 되고, 그가 더욱 주를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는 ‘바울의 신앙을 본받자’고 말하지만, 실상 그도 사람이라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붙잡아주셨기에 그도 넘어지지 않고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앞의 가시를 제거해야 하는지, 감당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어떤 가시는 사탄이 우리 앞 길을 막는 것으로 뽑아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피하거나 감당해야 할 가시가 아닙니다. 싸워 승리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 앞의 대적들은 대부분 싸워 승리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감당해야 하는 가시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분별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윗에게는 사울이 큰 가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 사울을 죽였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호전적인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다윗을 적으로 여기며 다윗의 나라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이기는커녕 전쟁에서 죽은 사울과 그의 자녀들의 시체를 잘 수습해서 장례를 치러줍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가시를 고통스럽게만 여긴 것이 아니라 잘 감당했을 때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기도를 통해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더 이상 그 문제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가시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앞의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가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가시라고 해도, 우리의 의지와 지혜로는 그것을 참으로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미운 사람, 어려운 일, 우리가 다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죄와 관계가 있습니다. 나의 연약한 부분을 강하게 하고, 모난 부분을 깎기 위한 하나님의 작업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자기의 성장을 위해 고통을 당하지 않으셨고, 자기의 죄로 인해 죽음을 당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 하나님과 단절되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함으로써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생명까지 거두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주신 이 고통은 우리를 절망으로 내던지는 고통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 또한 우리를 사랑하사 허락하신 가장 좋은 길임을 믿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의 고통은 또 하나의 감사 조건이 될 것입니다.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일 하심을 바라보며 감사를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