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46] 사초(史草)는 조선 시대에 공식적인 역사서인 실록 편찬에 사용되었던 자료이다. 조선 시대에, 사관(史官)은 왕이 참석하는 행사에 모두 동행하여 사실 있는 그대로 기록하여 사초를 만들었으며 기록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사관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임금이라도 사초의 내용을 볼 수 없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47] 카카오환단원류사는 그런 성격의 기록은 아니지만 어째거나 환단원류사를 집필하는 과정에 초본 같은 역활을 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48] 여기서 공부해가지고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48] 제가 첨부터 다 알고 더드는것이 아니거든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48] 우리는 한 배를 탓고 같이 공부하고 잇는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48] 다만 조정간을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이고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49] 우리배를 안전하게 환단피아로 인도하는 역활을 맞고 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0] 카카오환단원류사가 환단토피아가 되는 나라지 한 분도 뛰어 내리지 말고 무사히 함게 가기를 기원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2] 지난 시간에 공부한거 다시 정리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4]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이미 무학이라는 도사를 가깝게 두고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4] 무학이 어떤 도인인지는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가가고 생략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5] 이걸 가지고 해설하면 또 이야기는 옆으로 빠지고 길어집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5] 전편의 이야기를 보충하는 차원에서 조선 초기 성립부터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5] 세조때 수서령이 내려진 배경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7] 무학대사가 사님이라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師壬사님은 스승사 북방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7] 산스크리트 이며 오늘날 스님의 어원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7] 僧승 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6:59] 무학은 절에서 공부나 할 것이지 이성계의 부름에 한양도성 터나 잡으러 다니고 이방원 심부름이나 다니고 왜 그랬을 까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0] 그것은 스님이란 것이 당시에는 부처님을 뫼시는 것이라는 강박 관념보다는 도를 닦아야한다는 견지에서 수도를 목적으로 수행한 것이지 꼭 부처가 되겠다고 부처님 공부만 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엇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1] 요즘도 스님이랍시고 불교 이론에만 매달리는 그런 쫌생은 별로 없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2] 그러나 탄허스님 처럼 주역에 발가 道統도통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3] 부천에도 그런 사님이 잇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4] 조선시대 초기 그러니까 고려말에는 도참설이 널리 퍼져 있었고 도선비기 격암유록 통천록 지화록 무슨 비기 같은 책들도 상당히 많이 돌아다니던 시절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6] 이런 도참류 사서는 중굯의 역대신선 통감과 비교 될 정도이며 도참류 중에서는 역대신선통감만한 사서는 없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6] 그것은 청나라에서 장계종이 얼마나 신임을 받고 있엇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한데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7] 장계종은 고려말로 보면 도참설의 최고 교주 였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8] 정일파라는 교단을 이끌고 있엇는데 이게 도교를 숭배하는 몇대 교주 이런 식으로 물려가면서 도교를 받드는 교단이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8] 정일파 교주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09] 정일파 교주 생활하면서 청나라황제 (누군지 기억이 안 남)에게는 대단한 일 같아 보이는데 고민거리를 해결해버려서 신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0] 이를 나쁘게 말하자면 종교로 황제를 등쳐 먹는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0] 이래도 청나라는 세계를 제후국으로 보고 강대국으로 지탱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1] 당시 조선 초기도 대륙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3] 전통신앙이 무교이며 무교는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고 제사를 철처하게 지내는 등 환단의 맥을 이어가고 있었지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3] 무학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4] 무슨 비기 이런 류의 책도 많이 읽었던 사람이고 그 자신도 풍수지리에 통달했잖아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5] 무학은 불교 교리를 뛰어 넘은 사람이고 수행자로서 세속에 간여하였지만 그것 조차도 불교의 교리를 어기는 행위로 생각하지 않앗던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6] 그런 측면에서 보면 환인 환웅 시대에 정치에 적극 참여했던 巫人 같은 사람이엇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6] 즉, 신선 도인 같이 살던 사람을 스님으로 포장해 버린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7] 태조인 할아버지부터 절에 열심히 다니고 왕비들은 점이나 보고 그랬어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8] 그런데 신하들은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 불교를 배척하고 그 당시 불교는 바로 도참설을 포함하는 것이었으니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8] 바로 환단 사상을 짓밟아야하는 상황이엇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8] 조상도 유교의 틀에서 모시겠다는 각오엿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8] 개혁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19] 오앙들은 안그랬어요. 신하가 압박을 해도 들은척 만척하면서 부경도 공부하고 절에도 다니고 산스크리트공부하고 그렇게 살앗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0] 심지어 어 던 공주는 산스크리트에 븡통하여 불경을 번역하기도 하는 등 정말 개국 정국 신하들의 유교정신과는 정 반대로 가고 있엇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1] 그렇잔아요 신하들이야 명나라를 형님으로 모시고 유교를 숭배하는 정책을 펴기 위해 조선을 건국햇으니 직무에 충실할 ㅜ 밖에 없었지만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3] 그 당시는 좀 심하게 말하자면 북한의 5호 담당제 처럼 상하 좌우 없이 심하게 견제하고 서로 눈치 보먄서 아주 완벽 추구 적인 정치 제도하에 있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3]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나라는 아니었거든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4] 그래서 신하들은 유교를 잘 지키는데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5] 고려말부터 선도 사상 환단 사상 무교 정신에 물들어 있었던 태조를 비롯해서 이방원세조까지 는 하루아침에 공자를 맹자를 모시고 배향하고 하는 일을 교쳐 먹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5] 너그들이나 열심히 해라 나는 우리 할아버지 대부터 하던 대로 하겠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6] 그런데 소격서 폐지하라고 직언이 들어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7] 그런 폐지론이 줄기차게 제기 되면서 조선의 님금은 신하라고 깔보기 어려웠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7] 그 때 왕권은 강력하지 않았어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7] 신하가 나라를 세웠고신들이 정치를 주도해 나갔으니까여.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9] 왕이 무슨 짓을 해도 신하들은 그거야 엤날부터 습성에 젖어있었으니 하면서 눈감아주는 형국이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9]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소격서 문제가 불어집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29] 그거야 당연한 이치지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1] 왕이 나서서 너그들 입닥치라 하면서 조선의 국시를 유고가 아닌 환단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신하들은 할 일을 다해야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조선이 유토피아로 가는 이상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정부에서도 그렇게 되도록 대학교 설립해가지고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가지 인재 양성에 전력을 기우ㅠㄹ였던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1] 성균관 제도가 그런 것이었는데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2] 이게 결국은 왕의 뒷 통수를 대리고 말앗으니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2] 세조는 마지못해 수서령을 내리게 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3] 세조 자신의 마음이 아니고 신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서 수서령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4] 세조 또한 쿠데타로 왕위를 빼앗았으니 여론이 악화 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 신하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마지 못해 내린 결정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5] 그후 예종 때도 수서렬ㅇ이 내려지고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5] 예종은 세조 다음 분이시자노아요.
[김태수] [오전 7:36] 아예 계속 이어주세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6] 또 성종때도 수서령이 내려집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6] 그래요. 지난 시간 장리하면서 계속 갑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7] 세조,예종,성종 수서령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7] 세조 7권 3년 5월 26일 (무자)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諭八道觀察使曰 古朝鮮秘詞, 大辯說, 朝代記, 周南逸士記, 誌公記, 表訓三聖密記, 安含老元董仲三聖記, 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文泰山王居仁薛業等三人記錄 修撰企所 一百餘卷 動天錄, 磨蝨錄, 通天錄, 壺中錄, 地華錄, 道詵 漢都讖記 等文書 不宜藏於私處 如有藏者 許令進上 以自願書冊回賜 其廣諭公私及寺社 팔도 관찰사에게 유시하기를, “고조선 비사,·대변설,·조대기,·주남일사기,·지공기,·표훈삼성밀기,·안함노.원동중 삼성기,·도증기, 지리성모, 하사량훈, 문태산.왕거인.설업 등 삼인 기록 수찬기소의 1백여권과 동천록,·마슬록,·통천록,·호중록,·지화록,·도선 한도참기 등의 문서는 마땅히 사처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하도록 허가하고, 자원하는 서책을 가지고 회사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에 널리 효유하라.”하였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8] 여기서 보면 앞에 거론된 책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책일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8] 인간의 두뇌는 가장 충격적인 것부터 먼저 기억하게 되있으니까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9] 그래서 고조선 비사,·대변설,·조대기,·리 세 책이 당시에는 가장 골때리는 책이엇다고 보여지는 군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0] 삼성기기 그 뒤에 있는 책들은 유가사상으로보면 바람잡고 구름 땡기는 혹세무민하는 사서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1] 역사서가 아니고 도참설에 의거 뻥 튀기하는 그런 류의 설들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1] 예종 7권 1년 9월 18일 (무술)
예조에 명하여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수집하게 하다
○傳于禮曹曰 周南逸士記, 志公記, 表訓天詞, 三聖密記, 道證記, 智異聖母河沙良訓, 文泰玉居仁薛業三人記 一百餘卷, 壺中錄, 地華錄, 明鏡數, 及凡干天文地理陰陽諸書家藏者, 京中限十月晦日, 呈承政院, 外方近道十一月晦日, 遠道十二月晦日, 納所居邑. 納者超二階, 自願受賞者及公私賤口, 賞綿布五十匹, 隱匿不納者, 許人陳告, 告者依上項論賞, 匿者處斬. 其速諭中外 예조에 전교하기를, 주남일사기·지공기·표훈천사·삼성밀기·도증기·지이성모하사량훈, 문태·옥거인·설업 세 사람의 기록 1백여 권과 호중록·지화록·명경수 및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서울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한정하여 승정원에 바치고, 외방에서는 가까운 도는 11월 그믐날까지, 먼 도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되, 상받기를 원하는 자 및 공사...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2] 이번에는 고조선 비사,·대변설,·조대기가 빠졌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5] 그것이 모두 수거 되어 빠졌는지 아니면 봐준건지 알 수 없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5] 하지만 성종 때 관련 내용이 나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6] 아마도 예종 때 무슨 똥줄타는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8] 사서가 걷어지지 않고 자꾸 돌아다니니까 이번에는 안내놓다가 걸리면 사형이고 내 놓으면 품계를 2단계올려준다. 노비나 일반인이 내놓으면 면포 50필를 상 준다고 포상끼 내걸었다는 것은 조정에서 꼭 뭔가를 해결해야하는 소위말해서 똥줄타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8] 성종 1권 즉위년 12월 9일 (무오)
여러 도의 관찰사에게 천문·음양·지리에 관한 책을 수납하는 것에 대한 글을 보내다
○下書諸道觀察使曰 前者, 周南逸士記, 志公記, 表訓天詞, 三聖密記, 道證記, 智異聖母, 河少良訓, 文泰王居仁薛業三人記一百餘卷, 壺中錄, 地華錄, 明鏡數 及凡干天文.地理.陰陽諸書 無遺搜覓上送事 曾已下諭. 上項 明鏡數 以上九冊, 太一金鏡式道詵讖記, 依前諭上送, 餘書勿更收納, 其已收者還給. 여러 도의 관찰사에게 교서를 내리기를, “전일에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천사, 삼성밀기, 도증기, 지리성모, 하소량훈, 문태.왕거인.설업 삼인기 1백여 권과, 호중록, 지화록, 명경수와 무릇 천문·지리·음양 등 여러 서책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서울로 올려보낼 일을 이미 하유했으니, 상항 명경수 이상의 9책과 태일금경식, 도선참기는 전일의 하유에 의거하여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하지 말도록 하고, 그 이미 수납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하였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8] 수서령의 배경 마지막 인데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9] 고조선 비사,·대변설,·조대기,는 예종 때 바졌고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9] 상항 명경수 이상의 9책과 태일금경식, 도선참기는 전일의 하유에 의거하여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하지 말도록 하고, 그 이미 수납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하였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49] 아니 이젠 그 책을 돌려주라고라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0] 천문·음양·지리에 관한 책만 수거한다고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1] 이 때 말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1] 이 맥의 태백일사가 들통 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2] 그러나 이 맥이 탄핵을 받았으며 조정에서 중론화 된 정황들이 있었던것은 지난 시간에 자료를 참고해 주시기바랍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3] 그러니까 조광조 일파의 복권이 이루어지면서 금서들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4] 아마도 이맥은 태백일사를 벽 속 깊숙이 감추었을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4] 그리고 훗날 해학 이기 선생에게 까지 전해졌으며 계연수선생이 환단고기로 편집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엇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6] 태백일사의 맨 첫머리를 장식하는 삼긴오제설 만 봐도 역대신선 통감에서나 다루는 내용이었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사상 철학이 없엇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7] 그것은 환단원류를 지켜온 우리 배달 민족이 만든 역사에서 기록되어 우리 환단민족에게 전해져 온 것입닏.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7] 그걸 이어주는 나라가 발해였으며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7] 신라는 징심록을 남겼으며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7] 또 표훈삼성밀기 와 표훈 천사를 남겼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8] 표훈이란 사람은 스님이 아니라 스님으로 포장한 마지막 巫人이었을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59] 천기를 감히 누설하고 그 후로는 무인시대가 끝났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0] 표훈삼성밀기 와 표훈천사 이 두책도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0] 지금 우리가 알 수 잇는 원전은 환단고기에 수록된 것만 알 수 잇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1] 하지만 그거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미해가 환단하다는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1] 황당이라고 장난 말 하지마세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1] 저는 이런 장난으 ㄹ아주싫어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2] 감히 거룩한 환단의 명칭을 가지고 황당 이라고 놀리는 것은 죄악을 넘어서 무식하고 ....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2] ㄸ따라서 환빠 나 황당고기 라는 말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3] 농담이라고 그런 류는 해서는 안되요.
[김태수] [오전 8:03] 감사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3] 우리의 미래가 환하게 밝다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4] 태백일사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5] 대변경(大辯經)에서 이르기를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서 우사를 지냈고 신룡
(神龍)의 변화를 보고 괘도를 만들었으며 신시의 계해(癸亥)를 고쳐 갑자(甲子)
로 한 해의 머리로 삼았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이었고 주양(朱襄)은 옛문자
그대로 육서(六書)를 전하기 시작하였다. 복희의 능은 지금 산동(山東) 어대현
(魚臺縣) 부산(鳧山)의 남쪽에 있다. 신농(神農)은 열산(列山)에서 일어났는데 열
산은 열수(列水)가 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少典)의 아들이고 소전은 소호
(少皞)와 더불어 모두 고시(高矢)씨에서 나온 자손이다. 대저 당시의 백성들은
정착하여 생업을 가졌는데 점차로 언덕을 이루기에 이르고 곡(穀), 마(麻), 약
(藥), 석(石)의 기술도 또한 이미 점점 갖추게 되어 낮 동안에 시장에 나가 교역
을 하고 돌아왔다. 곧 유망(楡罔)이 정치를 함에 이르러 급속히 여러 읍(邑)을
묶어 둘로 구분하니 많은 백성들이 떠나고 흩어져 세상의 도가 매우 어지러워졌
다. 우리 치우천왕(...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6] 대변경(大辯經)에서 이르기를 신시씨는 전인(佺)로써 계율(戒)을 닦아 사람을
교화하고 하늘에 제사하였다. 이른바 전인이란 사람의 연유한 곳에 따라 스스로
완전해지고 진리를 이룸으로써 능히 성(性)에 통하는 것을 일컫는다. 청구(靑邱)
씨는 선인(仙)으로서 법(法)을 설치하여 사람을 교화하고 경계를 관리하였다. 이
른바 선인(仙)이란 사람의 연유한 곳에 따라 스스로 산(山)이 되어 (산을 낳아)
선(善)을 넓힘으로써 능히 명(命)을 아는 것이다. 조선씨(朝鮮氏)는 종인(倧)으로
서 왕(王)을 세워 사람을 교화하고 재화(禍)를 책임지게 하였다. 이른바 종인(倧)
은 사람의 연유한 곳에 따라 스스로 종(宗)이 되어 아름다움(美)을 구함으로서
능히 정(精)을 보전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고로 전인(佺)이란 비게 함(虛)으로
서 하늘에 근본을 두고 선인(仙)이란 밝게 함(明)으로서 땅에 근본을 두고 종인
(倧)이란 강건하게 함(健)으로서 사람에 근본을 둔다고 하였다.
주(注)에서 이르기를 ...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7] 대변경(大辯經)에서 이르기를 오직 천일신(天一神)께서 아득하게 위에 계시면
서 삼대(三大), 삼원(三圓), 삼일(三一)로서의 영부(靈符)가 되어 이것이 만만세의
만만 백성에게 크게 내리고 내린다. 일절 오직 삼신께서 심기신(心氣身)을 조화
하시는바 반드시 모름지기 서로 믿으나 아직 반드시 영겁토록 서로 지키지 못한
다. 영지의(靈智意) 삼식(三識)이 곧 영각생(靈覺生)의 삼혼(三魂)이 되고 또 그
요소에 연원함으로서 능히 형연혼(形年魂)을 성하게 한다. 일찍이 경계에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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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일사
감촉식(感觸息)이라는 것이 있는바 이것이 진(眞)과 망(妄)이 되어 서로 당기고
삼도(三途)가 이에 갈라진다. 고로 말하기를 참이 있으면 생하고 망령됨이 있으
면 멸한다고 하니 이에 인물(人物)이 균등하게 생겨나고 이것이 일(一)이다. 그
참됨의 근원은 성명정(性命精)으로 삼관(三關)이 되고 관(關)은 신의 정수(要會)
를 지키게 된다. 성은 명을 떠나지 아니하고 명은 성을 떠나지 아니하고...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0] 대변경(大辯經)에 전하기를 단군 구물(丘勿)이 국호를 고쳐 대부여(大夫餘)이
라 하고 도읍을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 지금의 개원(開原)이며 역시 평양이
라고 칭한다. 삼조선의 명칭은 단군 색불루(索弗婁)에서 시작하였으나 미비하였
고 이에 이르러 완비되었다. 삼한은 분조(分朝)를 두어 영토를 관리한다는 뜻이
고 삼조선은 분권(分權)을 두어 영토를 관리하는 제도이다. 이보다 앞서 대교(大
敎)에 단서(端)가 많아 사람들이 능히 그것을 행할 수가 없었다. 연(燕)나라 침
입 이래로 전쟁의 화(禍)는 거듭되어 닥치고 해마다 흉년이 들었으며 또 치화
(治化)를 잃어 국력은 갈수록 쇠하여졌다. 어느날 제왕께서 천제의 꿈으로 가르
침을 얻은 연유로 정치를 새로이 크게 고치고자 명하여 천제의 묘(廟) 정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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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경전본훈 제5
큰 나무를 세워 북을 달고 삼칠일(三七)을 기한으로 치아의 순서에 따라 서로
마시며 부지런히 힘써 책(冊)을 완성하였는데 이것이 9서(九誓)가 되고 모임때...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0] 대변경(大辯經)에 이르기를 고주몽 성제께서 조서에 이르기를, ‘천신께서
만인을 하나의 모습으로 만들어 세 가지 참됨(三眞)을 고르게 부여하니 이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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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일사
람 그것이 하늘을 대신하여 능히 세상에 서게 되었다. 하물며 우리나라의 선조
들이 북부여로부터 나와서 천제(天帝)의 아들이 되었음에랴. 철인(哲人)은 비움
(虛)과 고요함(靜)과 계율(戒律)로 사악한 기운을 영원히 끊어버려 그 마음이 편
안하고 태평하니 스스로 무리들과 더불어 인사(人事)의 일마다 옳음을 얻는도다.
군사를 사용하는 것은 이로써 침략과 정벌을 완화하는 바이고 형벌을 행하는 것
은 이로써 죄와 악이 없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고로 비움의 극에서 고요함이 생
기고 고요함의 극에서 지식이 충만해지고 지식의 극에서 덕이 융성해진다. 고로
비움으로써 가르침을 듣고 고요함으로써 남의 처지를 헤아리고 지식으로써 만물
을 다스리고 덕으로써 사람을 구제하리라. 이것이 곧 신시(神市)가 만물을 개화
하여 교화한 것이니...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1] 환국본기(桓國本紀) 제2(弟二)
조대기(朝代記)에서 이르기를 옛적에 환인(桓仁)이 계셨는데 하늘에서 내려와
천산(天山)에 살면서 천신(天神)께 제사지내는 일을 주관하였다. 명령을 정하여
백성들을 지도하시고 많은 사무를 두루 다스리시니 들에 있어도 곤충과 짐승의
해독이 없었고 무리와 함께 행차하여도 원한이나 반역의 우환이 없었다.
친소(親疎)를 구별하지 않으시고 상하의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 남여가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늙은이와 젊은이가 구분하여 역(役)을 담당하므로 비록 당시에
이 세상에는 법규나 호령이 없어도 스스로 화락(和樂)과 순리(循理)를 이루었다.
그들의 병을 없애고 그들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그들의 부족함을 도와주고 그들
의 약함을 구휼하니 한 사람도 불안해 하거나 또 괴이한 자가 없었다.
그때에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감군(監郡)으로 환(桓)이라 하고 인(仁)이라 하
였는데 인이란 임(任)이란 말이다.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구제하고 광명으로 세
상을 다스리는데 그로 하여금 그...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1] 조대기(朝代記)에서 이르기를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다. 백성들은 부유하고
또 번성하였다. 처음에 환인께서 천산(天山)에 거주하시며 도(道)를 얻어 오래
사시고 몸을 다스려 병이 없었다. 하늘을 대신하여 교화를 일으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병역(兵)이 없게 하시니 사람들 모두가 경작하는데 힘써 근면하므로 스
스로 굶거나 추위에 떠는 일이 없었다. 혁서(赫胥) 환인(桓仁), 고시리(古是利)
환인(桓仁), 주우양(朱于襄) 환인(桓仁), 석제임(釋提壬) 환인(桓仁), 구을리(邱乙
利) 환인(桓仁)에 전하고, 지위리(智爲利) 환인(桓仁)에 이르렀는데 혹은 단인(檀
因)이라고도 한다. 7세(世)를 전하였고 역년은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도 한
다.
환국에는 5훈(五訓)이 있고 신시에는 5사(五事)가 있다. 소위 5훈이라는 것은
첫째 성실하고 믿고 거짓이 없을 것(誠信不僞), 둘째 공경하고 근면하고 태만하
지 않을 것(敬勤不怠), 셋째 효도하고 순종하고 어김이 없을 것(孝順不違), ...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2] 국주(桓國注)에서 이르기를 환(桓)이라는 것은 전일(全一)이다. 광명(光明)이
다. 전일은 삼신(三神)의 지능이고 광명은 삼신의 실덕이니 곧 우주의 만물보다
앞선 것이다고 하였다.
조대기에서 이르기를 옛풍속은 광명을 숭상하여 태양(日)으로 신(神)을 삼고
하늘로서 조상을 삼아 만방의 백성들이 이를 믿고 서로 의심하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경배함으로서 항상의 의식(恒式)이 되었다.
태양이라는 것은 광명이 모인 곳이고 삼신이 유거(攸居)하는 곳이다. 사람은
빛을 얻어 이로서 짓고 함이 없이 스스로 화한다. 아침이 되면 제(齊)를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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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일사
동산(東山)에 올라 해에게 절을 하고 삶을 시작하고 저녁이 되면 제를 지내고
서천(西川)에 나아가 달에게 절을 하고 삶을 시작하였다.
이보다 먼저 환인(桓仁)이 나서 스스로 화함을 아시고 다섯가지 물건(五物)을
기르시고 다섯가지 교훈을 펼쳐 강연(敷演)하시고 다섯가지 일(五事)를 주관하여
다스리시니 오가의 무리들이 모두 부지런히...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3] 조대기(朝代記)에서 이르기를 때에 사람은 많고 물자는 모자라서 그 살아갈
길의 방책이 없어 걱정이었다. 서자부(庶子部)에 대인(大人) 환웅이라는 분이 있
어 무리들의 사정을 깊이 듣고 그때 하늘을 내려와 하나의 광명세계를 지상에
열고자 하였다. 그때에 안파견(安巴堅)이 금악(金岳), 삼위(三危), 태백(太白)을
두루 살펴보니 태백이 가히 이로써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만 하였다. 이에 환웅
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이제 인물(人物)의 업(業)이 이미 조성되어 완성된 것
같다. 그대 임금(君)은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몸소 스스
로 아래 세상(下界)에 내려가 하늘을 열고 교단(敎)을 설치하여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天神)제사를 주관하여 이로써 아버지의 권위(父權)를 세우라. 부양하고 보
살피고 평화로 귀일하여 이로써 스승의 도(師道)를 세우라. 이치대로 되어가는
세상을 만들어 자손 만대(萬世)의 홍범(洪範)이 되게 하라.” 하셨다. 이에 천부인
(天符印) 세 개를 주...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3] 조대기(朝代記)에 이르기를 해모수는 하늘을 따라 내려와 일찍
이 웅심산(熊心山)에 거주하다가 부여의 옛도읍지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무리들
에게 추대된바 마침내 나라를 세우고 왕으로 칭하니 이가 부여의 시조로 일컬어
진다.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용광검(龍光劍)을 차고 오룡차(五龍車)를 타고 시종
하는 자들이 백여명이었다. 아침이면 정사를 듣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랐다. 명령
하는바 없어도 관경이 저절로 교화되어 산에는 도적이 없고 곡식이 들판에 가득
하고 나라에는 큰일이 없고 백성 또한 근심이 없었다. 단군 해모수가 처음 내려
와 존재한 것은 임술년 4월 8일이었는데 곧 진(秦)나라 왕(王) 정(政)의 8년이었
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3] 조대기에 이르기를 동천제 또한 단군이라 칭하고 매년 한맹(寒盟)때 마다 평
양에서 삼신께 제사올리고 추앙하였는데 지금의 기림굴(箕林窟)은 바로 그 제사
올린 장소이다. 크게 맞이하는 제전(祭典)을 수혈(隧穴)에서 행하기 시작하였는
데 구제궁(九梯宮)과 조천석(朝天石)이 있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모두 가리키기
가능한 지점이다. 또 삼륜구덕(三輪九德)의 노래가 있어 이를 권장하였는데 조의
선인이 모두 그렇게 선발된 것이며 나라 사람들(國人)이 의식을 거행하는 자를
자랑스럽게 여기는바 되었다. 그러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영예를 베풀고 그와
더불어 왕의 사자와 대등하게 되었겠는가.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4] 조대기에 이르기를 연개소문은 일명 개금(蓋金)이라고도 하는데 성은 연씨(淵
氏)이고 그의 선조는 봉성(鳳城) 사람이다. 아버지는 태조(太祚)이라 하고 할아
버지는 자유(子遊)이라 하고 증조할아버지는 광(廣)이라고 하는데 모두 막리지
(莫離支)가 되었다. 홍무(弘武) 14년 5월 10일에 태어났고 나이 9살에 조의선인
(皂衣仙人)에 선발되었다. 모습(儀表)이 영웅처럼 위대하고 의지와 기상이 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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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일사
처럼 뛰어나며 항상 병사무리와 더불어 섶을 깔고 자고 손수 바가지로 마시며
무리속에서는 자기의 온 힘을 다하고 혼란 속에서도 징후를 파악해 내었다. 상
을 내릴 때에는 반드시 나누어서 지급하고 정성과 믿음으로 주위를 보호하며 마
음을 미루어 속에 참아두는 아량이 있었다. 땅을 씨줄(緯)로 하고 하늘을 날줄
(經)로 하는 재주에 까지 이르러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여 한 사람도 딴 마음을
품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법을 집행함에는 엄하고 명백하고 귀한 자든 천한 자
든 동일...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4] 이상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5] 오늘 아침을 여는 환단한 設 마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4] 大辯經(대변경)이란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4] 大辯經(대변경) 이란 책은 “고려” 시대 서운관에 보관되어 있었던 책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4] 삼신(三神)으로 대변되는 우주정신과 역사정신의 대의(大義)를 대변(代辯)한 경전(經傳)이란 뜻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5] 3수 원리와 관련된 다양한 시대의 사상들을 총 집대성하여 역사와 정신을 3수 원리로 통일시킨 역사 경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5] 大辯經(대변경)이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실리기까지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5] 고려를 멸망시키고 성리학을 계승했음을 주장하던 조선에 의해 “금서”로 지정 되었다. 조선 세조 3년에는 전국 수서령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던 책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5] 중종 때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담당하시던 찬수관 (편수관)이었던 “일십당 이맥” 선생. 글을 모아서 엮어서 편찬한다는 “찬수”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록을 적기 위해 수많은 고대 문헌 data base 구축 작업 (주로 고대 원문 필사와 명구 추출 작업) 을 하시던 중 수서령으로 수거 되어 보관 되 있던 책 “대변경”을 열람을 하게 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6] 훗날 “태백의 역사와 관련된 금서 data base 모음집 - 태백일사”를 찬수 하실 때 3번째 챕터 “신시본기”에 “대변경” 에 실려 있던 원문을 이기작업을 해 두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6] 大辯經(대변경) 주(註) 저작 시대 추측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6] 대변경(大辯經) 주(註)는 대변경(大辯經) 책 원문에 달은 주석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7] 대변경(大辯經) 주(註)
입니다. 대변경하고 헷갈리지 말 것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7] 대변경(大辯經) 보다 후대의 글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7] ‘3수’ 원리를 설명 하면서 vs ‘음양’론적 문장 배열 방식이 나오고 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8] 음양론은 유학이 고려 중엽에 들어 와서 고려 말에 자리 잡는다. 예를 들어 단군세기를 이기 작업하신 행촌 이암선생의 글은 3수 논리를 설명 할 때에도 철저히 ‘음양’적 사고로 설명하고 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8] 사문란적으로 책을 소지 하는 자를 참수 하던 조선 시대에는 절대 쓸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글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8] 대변설(大辯說) 주(註)는 고려 말에 주석을 달은 글로 추측할 수 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8] <결론>
대변설(大辯說) 주(註)에 나오는 고구려 선조님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바라 본 “환”과 “단”의 단어에 대한 “고려시대 조상님”들의 인식이라 보면 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9] 대변경 大辯經 은 어떤 책인가
대변경(大辯經)은 ‘환국-신시-삼한’에 유래한 고유 3수 원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자 고대 역사를 3수 원리로 설명을 하고 있는 역사 경전이다. “심경(心經)” 이나 “명심보감(明心寶鑑)” 처럼 문체가 완전히 다른 15권 이상의 책 핵심 문장을 추려서 모아 놓은 형태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39] 그런데 이 책. 주자 이상의 강박관념이랄까? 정말이지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정치, 종교, 역사 전반에 대해서 큰 틀은 철저하게 3수 원리로만 설명이 하고 있다. 경전으로서의 의미로 보자면 갑골 문자의 사상이나 동이족과 관련된 사상 이해 기부터 ‘단군세기’에서 ‘태백일사’ 까지 나오는 3수와 관련된 사상을 이해하는데 더 이상이 없는 최고의 경전으로 보인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0] 大辯經(대변경)에 담겨져 있는 내용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0] 1) 정신문화적 차원
(1) 삼신 (조화신,교화신,치화신)
(2) 삼진 (성,명,정),
(3) 삼망 (심,기,신),
(4) 삼도 (감,식,촉)
(5) 삼식 (영,지,의)
(6) 삼혼 (영혼,각혼,생혼)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0] 2) 역사 현상 분석
3수 원리에 입각하여 고대 역사를 분석을 하고 있다.
(1) 환(桓),단(檀),한(韓),
(2) 신시씨(神市氏), 청구씨(靑邱氏), 조선씨(朝鮮氏)
(3) 전(全),선(仙),종(宗)의 천도(天道), 지도(地道) 인도(人道)의 원리등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0] 3) 고조선 3왕조 시대 분석
(1) 1세 단군 왕검부터 21세 단군 소태 까지를
수도는 송화강 아사달,
나라 이름 3한(三韓),
(2) 22세 색부루 단군부터 43세 물리 단군까지를
수도는 백악산 아사달
나라 이름 3조선(三朝鮮),
(3) 44세 구물단군부터 47세 단군 고열가 까지를
수도는 장당경 아사달
나라 이름 대부여 시대로 보고 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0] 4) 고조선의 제도 원리 분석
(1) 고조선 1왕조였던 삼한(三韓)은
조정을 3으로 나누어 통치하는 분조관경(分朝管境),
(2) 고조선 2왕조였던 삼조선(三朝鮮)
권력을 3으로 나누어 통치하는 분권관경(分權管境)
(3) 고조선 3왕조였던 대부여 시대는
마한 진한 번한이 완전히 다른 나라로 분리 되었다고 분석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1] ☞ 담고 있는 철학적 사상의 연대를 유추 해 보면 3수 원리이기에 음양 사상 보다 고대 사상에 해당한다. 음양론을 바탕으로 한 격물치기의 현실주의 중용(中庸) 보다도 더 형이상학적인 부분이 강조 되어 있어서 담겨져 있는 내용은 중용 보다 훨씬 더 고대의 사상임을 알 수 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1] <大辯經(대변경)의 최초의 저본의 저자의 주체와 시칭>
1) 환국(桓國), 신시(神市), 삼한(三韓)에 대한 역사서이다.
(1) 고조선은 수도를 3번 천도한 3왕조 시대로 분석하고 있다.
(2) 조정을 3개로 나누어 통치한 광대한 제국으로 보고 있다.
2) 고구려 개국 고주몽에 대한 내용 까지 나온다.
3) 고구려 초기 사관들이 3성조(三聖祖)시대 역사를 분석한 시각으로 적혀져 있다.
☞ 고구려 역사서가 大辯經(대변경)의 저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이때 책 이름은 大辯經(대변경)이 아닌 經(경) 또는 단음절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2] ☞ 고구려 역사서가 大辯經(대변경)의 저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이때 책 이름은 大辯經(대변경)이 아닌 經(경) 또는 단음절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2] 그런데 대변경 원문을 보다 보면 이 책을 편집한 사람이 고대서적을 엄청 많이 읽고 연구한 학자의 느낌이 난다. 문장 마다 나타나는 문체와 문법이 다 다르고 설명하는 방식과 설명하는 사상이 다르다. 거대한 나무의 나이테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면서도 3수 원리와 관련된 다양한 사상과 주석들을 총 집대성 하여 사상적 통일을 이룬 거의 완벽에 가까운 3수 철학 경전으로의 모습도 보인다. 이 부분에서는 대변경(大辯經) 고대의 문헌이 아니라 후대의 문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고대의 저본을 바탕으로 주석들을 모아 놓은 듯한 느낌의 책이다. 그래서일까? 주자가 중용(中庸) 원문에 주석을 달은 집주(集註)와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3] 대진국(발해) 시대에 사상적 통합이 된 흔적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3] 1) 통일 신라는 불교 중심의 문화권에 있었던 시기였기에 환단의 사상을 집대성 할 수 있는 문화 여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4] 2) 고려는 왕건이 고려를 개국 하던 시절부터 문화는 당나라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현제 대한민국이 미국의 문화 영향권에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4] 3) 大辯經(대변경)의 저본이 되었을 고구려 역사 문헌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권은 고구려 유민의 나라 대진국(발해)이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44] 4) 환단(桓檀)으로 대변되는 민족의 정체성, 그리고 동이족 고유의 3수 원리와 관련된 다양한 사상과 주석들을 총 집대성 하여 사상적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문화적 여건이 조성 되었던 시기는 대진국(발해) 시기였다.
☞ 朝代記 (조대기)처럼 대진국(발해) 시대의 여러 문헌들이 하나로 편집되었을 가능성이 보인다. 책 이름도 여러 문헌이 하나로 되었다는 뜻에서 클 대(大)자가 붙었을 것이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대변설(大辯設)이 혹시 大辯經(대변경)의 저본이 되는 책이 아니었을 까 추측해 보기도 생각해 본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52] 발해가 망할 때 황태자 대광현은 고려로 망명하게 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52] 그 때 발해에서 발간 했던 역사서를 가지고 망명하게 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52] 대광현(大光顯,)은 발해의 마지막 태자다. 대한민국의 태씨(太氏)와 대씨(大氏)는 대광현을 시조(始祖)로 본다.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할 즈음에,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大光顯)이 장군 신덕(申德), 예부경(禮部卿) 대화균(大和鈞), 균로사정(均老司政) 대원균(大元鈞), 공부경(工部卿) 대복예(大福譽),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 대심리(大審理), 소장(小將) 모두간(冒豆干), 검교(檢校) 개국남(開國男) 박어(朴漁), 공부경(工部卿) 오흥(吳興)이 그 남은 사람을 거느리고 수만 호가 도망하여 고려로 귀부하였다. 태조 왕건(太祖 王建)은 후하게 대접하여, 대광현에게 왕 성과 계(繼)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종적(宗籍)의 반열에 들게 하였다. 또, 원보(元甫)의 벼슬을 받아 백주(白州)를 지키면서 집안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협계 태씨, 영순 태씨의 족보에서는 태조가 그에게 태씨(太氏) 성을 하사했다고 전한다. 남원 태씨, 나주 태씨, 밀양 태씨 모두 그에게서 분파된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54] 朝代記 (조대기)가 그 책입니다ㅓ.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54] <朝代記 조대기 원문>
明年에 立太學하여
敎 以“天經 神誥”하고
講 以 <桓檀古史> 하고
又命文士하여
修“國史”一百二十五券하니
<원문해석>
(대진국 발해 4세 문황제 737년 도읍을 동경 용원부에서 상경 용천부로 옮기시고)
이듬해 738년 “태학”을 세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고
<환단의 옛 역사>를 강론하시고
또 학자들에게
“국사” 125권을 편찬하도록 명하셨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55] 환단고기에 수록된 5번째 역사서 태백일사. 그 중 7번째 대진국본기 편에 인용된 글은 원문 이해를 위해 후대 사람들이 달아 놓은 “주석”이 아니고 대진국 역사서 朝代記 (조대기) “원문” 그대로이다. 따라서 조선시대나 고려 시대가 아닌 “대진국(발해)” 시대 원문 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55] <朝代記 (조대기)에 대하여>
1) 대진국 (발해) 황태자 “대광현”이 고려에 망명할 때 가지고 온 역사서이다.
2) 고려 태조 천수 8년 (925)에 재 편찬되었다.
3) 환국 - 신시(배달) - 삼한(조선) - 북부여 - 고구려 - 대진국 의 역사를 적고 있다.
4) 고려 말 “이명”이 지은 “진유역기” 의 저본으로 추측되는 책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56] <朝代記 (조대기) 원문이 태백일사에 실리기 까지>
1) 고려를 멸망시키고 중국 사대주의 성리학을 지도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왕조에게 이 책을 금서로 지정된 것은 시대적인 요구요 필연적 과정이었다.
2) 조선 세조 3년 8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고려”의 정체성과 관련된 모든 고서들을 모두 거두어 들이도록 하였다. 이 때 “조대기” 또한 대표적인 책 20권 중 한권으로 분류 되었다.
3) 세월이 지나 조선 중종 때 찬수관이었던 “일십당 이맥” 선생이 세조 때 수거되어 보관 되 있던 “조대기” 원문을 직접 보고 이기작업을 했다.
4) 뒤에 귀양 가서 “태백 역사와 관련된 숨겨진 역사 : 태백일사” 찬수 작업을 할 때 환곡본기 ~ 대진국본기 까지 <역사> 관련 부분은 “조대기” 원문을 main text 주-교재 삼아서 기록하였다.
5) 고종황제 대한제국 선포를 기념하여 1897년 해학 이기 선생이 소장하던 조상님 저작 “태백일사” 와 백묵관, 이형식 집안 소장 “단군세기”를 합본...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8:57] <역사적 의미>
“환단고기”의 어원은 <桓檀古史 환단고사> 에서 시작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현제 우리나라에서 쓰는 <국사> 단어의 어원이 “환단의 옛 역사”가 중심이 된 역사서 125권을 부르는 책 이름 이었음을 알 수 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9:02] 조대기(朝代記)는 발해(渤海)의 유민들에의해서 고려(高麗)에 전해졌으며 발해왕자 대광현(大光顯)이 비장(秘藏)했던 삼국시대 이전 고대 우리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었다는 것이다.
고려말에 청평산인(淸平山人) 이명(李茗)은 이 책을 보고 진역유기(震域遺記) 3권을 저술하였을 정도로 한민족사의 핵심을 담았던 내용으로 추정이 되지만 이책도 조선초에 수서령(收書令)이 내려져 사라지고 말았다.
그 때 사라졌던 秘書들이 표훈천사(表訓天詞), 대변경(大辯經),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 조대기(朝代記), 밀기(密記), 진역유기(震域留記), 삼성밀기(三聖密記), 삼한비기(三韓秘記) 등이라고 환단고기에서는 말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9:05] 고려시대 조대기(朝代記) : A.D. 926. 발해멸망시 君子 대광현(大光顯) 등 유민들이 고려에 망명 귀화
할 때 가지고 온 고조선역대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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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05] 재미 있는 부분 발췌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05] 후에 비류가 몽어하시니 그 신민(臣民)들이 그 땅을 가지고 부속하였다.
사로(斯盧)의 시조왕(始王)은 선도산(仙桃山)의 성모의 아들이다. 옛날에 부여(夫餘) 제실(帝室)의 딸 파소(婆蘇)가 있어 남편없이 잉태하자 사람들이 의심하는 바가 되었다. 눈수(嫩水)에서 도망하여 동옥저에 이르고 또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진한의 내을촌(柰乙村)에 도달하여 이르렀다. 그때에 소벌도리(蘇伐都利)라는 사람이 있어 이 소문을 듣고 가서 거두어 집에서 길렀는데 나이 13세가 되자 높이 성숙하고 빨리 성장하여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 이에 진한 6부(六部)가 함께 받들어 거서간(居西干)으로 삼고 서라벌(徐羅伐)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
이름을 진한(辰韓)이라고 칭하였는데 또한 사로라고도 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06] 아유타(阿踰佗)는 삼국유사에서 서역(西域)으로 전해지나 이제 여러 옛기록(古記)를 고찰한즉 아유타는 지금의 섬라(暹羅)라고 전한다. 그런즉 아유타 사람들은 혹시 대식국(大寔)의 침략으로 쫓긴바 되어 이곳에 도착하여 사는 것인가. 이명(李茗)의 유기(留記)에 전하기를 옛적에 백제 상인들이 있어 바다로 아유타에가서 재물과 보화를 많이 구하여 돌아왔다. 그 사람들은 우리를 따라 오고가면서 날이 갈수록 더욱 교제가 밀접하여졌다. 그러나 그들의 풍속이 나약하고 군대에 익숙하지 않아서 자주 타인의 통제를 받는 바가 되었다고 하였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11] 아유타(阿踰佗)는 삼국유사에서 서역(西域)으로 전해지나 이제 여러 옛기록(古記)를 고찰한즉 아유타는 지금의 섬라(暹羅)라고 전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11] 그럼 조대기가 쓰여진 년대는 삼국유사 이 후 라는 말인데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12] 섬라는 현재 태국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13] 아유타 사람들은 혹시 대식국(大寔)의 침략으로 쫓긴바 되어 이곳에 도착하여 사는 것인가.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14] 전근대 동양사회에서는 오늘날 동남아시아에 해당하는 국가들을 총칭하여 남만(南蠻)이라고 불렀다. 한편 당송대에는 현재의 아라비아에 해당하는 대식국(大食國)도 남만에 포함되었고, 명대에 이르러서는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서양 국가들에 대하여도 남만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그들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경유해서 내항하거나 무역을 했기 때문이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17] 자료 게시ㅠㅏㄴ에 올렸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17] 휴대폰으로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18] 조대기 와 대변경 공부 열심히 하세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19] 사로(斯盧)의 시조왕(始王)은 선도산(仙桃山)의 성모의 아들이다.
이 문구가 바로 금서로 지정되었던 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그 책하고 상관이 있을 것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20] 내용이 사뭇 궁금해집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20] 오늘 공부 끝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11:20] 안능쉬야
2019년 4월 19일 금요일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4] 북애자(北崖子)는 효종 ~ 숙종 시대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선비라고 스스로 소개한다. 붓을 던지고 전국을 방랑하던 중 산골에서 청평 이명이 저술한 진역유기를 얻어 역사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청평 이명(淸平 李茗)은 고려 말에 청평산에 머물렀던 도인으로 추정되고 '선가의 말이 많은(도교 용어가 많이 사용된)' 《진역유기》 3권을 지어 산골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여적의 《청학집》에 도인의 계보를 설명하는 중에 간단하게 언급되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5] 《규원사화》는 산속의 바위굴에 보관한 《진역유기(震域遺記)》를 주로 참조하였으며 《진역유기》는 고려 말기 사람인 청평 이명(淸平 李茗)이 저술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진역유기》는 다시 발해의 역사서인 《조대기(朝代記)》를 참조하여 저술되었으므로, 《규원사화》는 《조대기》의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5]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5] 고려 말의 이명(李茗)이 지은 『진역유기 震域遺記』인데, 이 책은 고려 초 발해의 유민이 쓴 『조대기 朝代記』를 토대로 한 것으로 『삼국유사』보다 훨씬 씩씩하게 쓰여진 사서이다. 『조대기』가 실재했던 고기임이 『세조실록』을 통해서 확인되므로, 『진역유기』라는 책도 실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7:36] 청평 이명(淸平 李茗)
생몰년 미상. 고려 말기에 청평산에서 살았던 은사(隱士).
두류산에서 수도하던 *최당(崔당)·*한유한(韓惟漢)과 같은 차원의 인물로 대세구칠(大世仇柒)의 일파이다. 단(丹)을 연마하여 자신을 수양하고, 과일과 나물을 먹고 화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때때로 깊은 산속에 들어가 희귀한 약초를 찾고 바위에 앉아 천지자연의 기(氣)를 마셨다.
동료인 최당·한유한과 함께 자취 없이 사라져서 수개월 동안 물외(物外)에 노닐고, 때로는 벗들과 술을 마시며 도를 의논하였다. 병자를 만나면 단약(丹藥)을 주어 생명을 구하고, 인재를 만나면 선도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뜰에는 기화요초를 심고 선학을 길렀으며 가시나무로 삽작을 만들었다. 천길의 절벽이라도 힘들이지 않고 올랐으며, 몸은 솜털처럼 가벼웠다고 한다. 지금도 청평산의 골짜기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靑鶴集(趙汝籍). 〈權五虎〉
*청평 이명의 행적에 대한 사료가 별로없어 그의 친구들의 ...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1] 조대기의 백미는 바로 대진국본기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2] 대진국본기 전체가 조대기에서 그대로 인용되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3] 그러면 대징국본기를 쓰기 위해 조대기를 썼다는 심정이 든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3] 그것은 조대기가 바로 발해유민이 가져온 역사서에 근거하여 써여졌다는 결론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4] 발해의 역사서는 고구려사에 근거하여쓰여 졌으니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4] 고구려 유기 1배권이 소실 되었다고 하였으며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4] 대야발은 단기고사를 저술하여 바쳤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6] 조대기는 고려에 망명한 대광현과 그 유민들이 가져온 책을 다시 재편성하면서 만든 책으로 보인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8] 대진국본기를 보면 내용이 알차게 꾸며진게 아니고 급한 마음에 중요한 내용만 골라서 조속히 쓴 것으로 보인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9] 그러니 고려에 망명한 유민의 입장에서 고려 조정의 도움없이 역사서를 제모습 제대로 위용을 갑추어 편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09] 고로 고구려국본기또한 그런 차원에서 써여 졌다고 보여진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1] 다만 다행인 것은 선도산 성모가 부여의 제실 여인으로 아비모르게 임신하여 진한으로 망명하고 신라시조를 낳았다고 기록하므로서 지금까지 알에서 태어났던 것으로 알고 있던 박혁거세는 바로 환잔됴오선의 후예임을 증명하였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2] 옛 사서에 은유적 기록으로 닭이 알을 낳았다고 한 것은 여자가 몰래 임신하여 낳은 것을 말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3] 아유타국에 대한 설명은 즉, 섬라 운운 한 것은 청평산인 이 명의 말도 아니고 태백일사 저다인 이 맥의 주장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4] 그리고 삼국유사으를 보았다는 주장 도한 태백일사를 쓴 이 맥의 생각이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5] 그러므로 조대기의 편찬 년대는 고려 중기 이상으로 소급되며 망명자들이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급하게 만 든 사서로 보여진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5] 내용이 정사 만큼 알차지 않기 때문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6] 그러나 조대기의 일부만 본 필자로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가 없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6] 아마도 조대기 원본이 발견 된다면 나의 오해가 조금이라도 해소 될 것이다ㅓ.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7] 조대기와 대변경은 같은 역사서 성격이기는 하지만 철학적으로 대단한 차이를 보이는데 대변경이 한 수 위이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7] 대변경은 확실히 고수의 작품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9] 두 저작의 공통점은 바로 삼성인을 시조로 기록한 것인데 세조 때부터 수서령을 내리고 역사서를 탄압한 이유의 포인트는 바로 삼성인을 시조로 모시는 일 때문이었다고 보여진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19] 유교에서는 공자 맹자를 성인으로 받들어야하는데 서로 상충되는 것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이엇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1] 신들의 파워가 왕권까지 억제하는 상황에서 오앙은 수서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율며 겨자를 씹었던 것이더.그렇게 3대까지 수서령을 내리고 탄압하였지만 그 후로는 봉합 되엇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1] 이미 유교 세상이 되었고 신하들르이 승리고 끝났다고 보여진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2] 그후로 임진난이 터진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2] 자고로 환부역조하는 놈은 꼭 역사의 심판을 받게 돼잇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3] 조선 후기에 유교의 폐단이 심각해지자 다시 야소교를 믿고자 하는 일파들이 조선 초기와 같은 양상으로 번져 일어났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3] 또 환부역조하는 놈들이 일어난 것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4] 이 놈의 나라는 무슨 조상을 그렇게 바꾸기를 좋아하는지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4] 조선 초기 유교가 그랬듯이 야소교 또한 그렇게 나라를 말아 먹으려고 작정하고 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6] 조대기나 대병경의 내용이 유교와 상충되는 바가 없지 않지만 그렇게 탄압하게 된 것은 삼성을 파괴하려는 목적에 있었고 물론 불타도 없애기 위함이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7] 요즘 단군상 목자르는 것과 다른저미 하나도 없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7] 못난 씨부렇 씨발 쌔끼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8] 학문이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둥 미신을 타파 한다 등등 운운 하면서 잘난체 하는 것이나 유교를 국교로 정했으니 선가 도가 무교를 미신처럼 취급하고 말살하려는 저의 와 다른게 없엇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8] 그렇게 중국 종교가 좋은가 !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9] 국조가지 말살하려고 했던가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9] 꼭 그렇게 해야만 했던가 말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29] 한심한 양반들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30] 결론하여 두 책의 내용은 오늘날 분석해보니 아주 훌륭하며 철학도 그런 책 이상의 책은 없으며 흠잡을 것이 없고 역사 도한 최고 의 저술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31] 그런데 개뿔 탄압의 이우가 없는데 탄압한 것은 이기주의적 발상 대문이 아닌가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31] 왜 공존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31] 공조니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이엇을 것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34] 이러한 사실른ㅇ 오늘날 여야가 싸우는 것이나 종교계가 서로 아웅다웅하는 것이나 이웃간에 다툼이나 보면 대국적이지 못하고 옹졸한 우리의 옹졸함 때문이라는 거을 명심해야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34] 크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8:34] 오늘 공부 끝
[김태수] [오전 8:41] 팔공산
난 오늘 말로만 듯던 팔공산을 가기로 했다.
신라를 대표하는 대구 경북 중심부에 들어가니
제일먼저 전두환.노태우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이 역사는 천년 만년 흘러 그날은 증언될것이다.한숨속에 찌뿌둥한 날씨 만큼 무겁다.낙동강을 가로질러 퇴계와 남명선생들로 대표되는 천년 실라는 아득하게 멀러져 간다.다시 수원객이 나와서 역사를 심판하니 따르는 무리들이 많다.특명이여라. 역사전쟁을 벌리고만다.향촌에 뜻있는 화랑은 많은데 군복입은 화랑은 빛을 발했다.저멀리 울산에 욱곡에는 토민 선생이 계시고 창녕에는 나도 있다.나라 사랑하기를 부모 되하듯 하고 신라 사랑 하기를 대청(청나라)이 하였듯이 우리는 학문을 따라 욕지도에 율곤을 뵈려가자.사랑하는 조국이여.분발해서 통일 합시다.
[이수우] [오후 2:07] 仁者樂山(인자요산) 知者樂水(지자요수)를 떠올려 봅니다.
登山名醫(등산이 명의)-이토민
천하의 좋은 명의는
오히려 산을 오르는 일
乾坤善醫猶登山
(건곤선의유등산)
인간이 산다는 것은
마땅히 식단에 있는데
守歲人間宜食單
(수세인간의식단)
혼탁한 세상 병이 생기는 것은
스트레스에 있어서
濁世病因有氣鬱
(탁세병인유기울)
새로 오는 건강 이기는 일은
자연을 온전하는 길이다.
新來健勝全自然
(신래건승전자연)
[이창원법성] [오후 2:12] 사진
[김태수] [오후 5:51] 답시: 유람
하루 햇살은 편한듯 귀찮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공기는 우리를 만들어 간다.
미워하며 사랑하는 핏물은 고약한데
차 안에서 담소는 시간 가는줄 모를소냐..
여기 저기 오고가는 세월 흔적은 갈피를 못잡아도
이 사람 저 사람 걸음걸이는 서로를 표현하네.
해는 저물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것은
내일을 준비하는 거룩한 풍경화 같다.
이 시간 고단한 몸둥이는 지칠때도 되엇거만
고향의 이부자리는 만상의 시름을 감돌고 간다.
2019년 4월 20일 토요일
[소유섭] [오전 8:06] 주무시다 어원이 참으로 궁금하게 만듭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27] 사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28] jha-o-dha - mev-ishiya
자하 뫼시야 : 주뫼시야.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29] 사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29] 사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29] 사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43] 선도산성모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46] 박혁거세의 모신(母神)이자 경상북도 경주시 선도산의 여산신인 선도산성모에 관한 신화.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46] 선도산성모는 신라의 시조모로 알려졌으므로 신라 건국 시기에 출현한 존재로 볼 수 있다. 김부식이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접한 성모 숭봉(崇奉)의 일을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한 것이 최초의 자료이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그녀는 선도산의 여산신으로 신라 삼사(三祀)의 대상이었으며 신사(神祠)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사람들이 성모의 일을 익히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제왕운기(帝王韻紀)』 기록도 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47] 줄거리
진평왕 때 비구니 지혜의 꿈에 선도산성모가 나타나 자신의 신사 밑에 있는 황금으로 안흥사의 불전을 수리하라고 일렀다. 지혜는 성모가 시킨 대로 따랐다. 성모는 원래 중국 제실의 딸로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해동으로 왔다. 부황이 보낸 솔개가 선도산으로 날아가 머무르자 성모도 선도산에 머물러 지선(地仙)이 되었다. 성모가 선도산에 오래 살면서 신이한 일이 많이 있어 나라에서 이 산을 삼사의 하나로 삼았다. 성모는 사냥 중에 매를 잃어버린 경명왕의 매를 찾아 주고 ‘대왕’을 봉작받기도 했다. 그녀는 또 진한에 처음 왔을 때 두 성군인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 하늘의 선녀에게 비단을 짜게 해서 남편의 조복을 만들어 주기도 했으니, 나라 사람들이 그녀의 신비한 영험을 알게 되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48] 변이
현몽을 통한 수희불사(隨喜佛事) 등의 신화적 모티프는 『삼국유사』에만 있다. 또 일연은 선도산성모가 낳은 해동의 시조가 박혁거세와 알영이라고 했지만, 김부식은 그에 대해 구체적 실증을 하지 않았다. 또한 『삼국유사』 외의 다른 기록들은 지아비 없이 잉태하여 남에게 의심을 받게 되자 해동으로 이주한 것이라고 성모를 폄하했다. 이는 신화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변이이다. 조선조 이후에는 성모 전승 자체를 괴설시하고 그 변증을 추구하는 유학자들의 탈(脫)신화적 언술이 늘어나는 한편, 난생설을 버리고 오히려 성모 탄생을 천명으로 강조하는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유교적 합리주의와 함께 가문 선양의 이데올로기가 작용한 결과였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49] 분석
<선도산성모신화>는 남편이 부재한 ‘불부이잉(不夫而孕)’의 출산과 모자의 이주(移住)가 중심이다. 성모가 남편 없이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내용은 천강과 난생을 부각하는 신라국조 신화와는 모순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도산성모의 실체와 아울러 신라에서 두 유형의 국조신화가 전승된 배경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50] 특징
선도산성모는 여산신이자 시조모라는 특징을 지닌 점에서 가야산 정견모주, 지리산성모와 유사하다. 동신성모 유화는 시조모이지만 산신으로 좌정하지 않은 차이가 있다. 여산신 신앙이 국조신화와 연계되는 것은 대체로 남방계 신화의 특징이다. ‘부계(父系)’의 탐색과 계승을 강조하는 다른 국조신화들과도 대조적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50] 의의
<선도산성모신화>는 신라 시조 <혁거세신화>의 이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불부이잉’의 모티프는 대모신(大母神)의 신화와도 닿아 있는 것으로, 일연의 자료는 그 신화적 의미를 담아낸 의의가 있다. ‘수희불사’ 등의 에피소드는 그 신화에 수반되는 영험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51] http://folkency.nfm.go.kr/kr/topic/detail/5361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54] 한국사 데이타 베이스
삼국유사
卷 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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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卷 第一
제1 기이(紀異第一) 신라 시조 혁거세왕(新羅 始祖 赫居世... 이름을 혁거세왕이라고 하며 광명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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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 第一 > 제1 기이(紀異第一) > 신라 시조 혁거세왕(新羅 始祖 赫居世王) > 이름을 혁거세왕이라고 하며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리다
이때에 모두 높은 데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註 417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우더니 웬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거기를 살펴보니 보랏빛 알 한 개 또는 푸른 빛 큰 알이라고도 한다.가 있고 말은 사람을 보자 울음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쪼개 보니 형용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54]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선도산 신모에 대한 기사가 전해진다.
삼국사기의 기사에 의하면 본래 중국 제실(帝室)의 딸로, 이름이 사소(娑蘇)였는데, 신선술을 얻어 해동에 와서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니 부황(父皇)이 솔개의 발에 편지를 매어 보내면서, 이 솔개가 멈추는 곳에 자리잡아 살라고 했다. 사소는 솔개를 날려보내고, 솔개가 멈춘 한 산에 머물러서 지선(地仙)이 되었다. 그 산의 이름은 서연산(西鳶山)이 되었고, 신모는 오랫동안 살면서 나라를 도와 신이한 일을 많이 일으켰다. 이 산은 신라의 세 산신제를 모시는 산의 하나이고 여러 산의 우두머리로 여겨졌다.
신라 54대 경명왕이 산에 매사냥을 나왔다가 사냥매를 잃었는데, 신모상에 빌어서 사냥매를 찾아주면 작위를 주겠다고 하자 과연 사냥매가 책상 위에 날아와 앉았으므로, 왕이 신모를 대왕(大王)으로 봉했다고 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9:56] 그 외에 김부식이 남송에 사신으로 갔을 때, 우신관(佑神館)에서 한 여선상을 보았는데 안내자 왕보(王黼)가 이 여선은 당신 나라의 신으로, 옛날 중국 제실의 딸인데, /남편 없이 임신해 의심을 받아/[1] 바다를 건너 진한으로 가서 아이를 낳은 것이 해동시조가 되고, 지선(地仙)이 되어서 오랫동안 선도산에 살고 있는데 그 여선상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부식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기이하게 여겼고 못마땅했는지 "그 아들이 어느 때 왕 노릇을 했는지 알 수 없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또한 이는 중화주의와 관련있다는 비판도 있다.
또 송나라 사신 왕양(王襄)이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동신성모녀(東神聖母女)'에게 제사지내는 제문에, "현성(賢聖)을 임신해 나라를 세운"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동신성모란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등장하는 당시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있던 동신사(東神祠)를 의미하는데, 재미있게도 고려도경에서는 동신사에 모신 신은 유화부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애초에 처녀잉태라는 점과성모 ...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01] 태백일사에는 부여 제실의 딸이 유화이고 사소라고 하였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02] 옛날 중국 제실의 딸 이라고 한 것은 부여라는 명칭을 숨긴 것.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27] 삼한비기(三韓秘記)’<구지(舊誌)>에는 “박혁거세의 생모는 본래 부여제실(扶餘帝室)의 여자(공주)다”고 했다. 즉, “사로(斯盧: 신라)의 시왕(始王)은 선도산(仙挑山: 경주) 성모(聖母)의 아들인데, 옛 부여 제실(왕궁)의 여자 파소(婆蘇)가 남편 없이 처녀 잉태하여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게 되자 눈수(嫩水: 흑룡강성에 인접한 강, 송하강의 지류)로부터 동옥저에 이르러 또 다시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내을촌(柰乙村)에 이르러…거서간(임금)이 되고, 서라벌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진한 또는 사라(斯羅: 신라)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28] 김교헌(金敎獻)의 ‘신단실기(神壇實記)’에는 “부여제실의 여자 동신성모(東神聖母)인 파소(婆蘇)가 남자와 혼인하지 않은 채 잉태하여…진한 땅에 와서 혁거세를 낳았다.…계림서악(鷄林西岳)에 성모사(聖母祠)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성모는 지선(地仙) 되고 혁거세는 천선(天仙)이 되었다고 한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28] 동국여지승람,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이적에도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경우 파소성모의 잉태지역이 부여가 아닌 중화(中華) 또는 한실(漢室)로 적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오기(誤記) 아니면 왜곡이다. 즉, 당시 우신관(佑神館)에서 관반학사(館伴學士)로 위장한 북송(北宋) 제6대황제 신종(神宗)의 대신 왕보(王輔)의 흉계에 의한 왜곡날조 일 수 있다는 말이다. 왕보는 김부식이 접한 인물이다. 사학계에 연구과제로 넘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28] http://www.whantimes.com/sub_read.html?uid=1289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31] 신라新羅 강역疆域의 위치
⑴ 1대 거서간居西干부터 16대 글해이사금訖解尼師今 때까지의 강역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32] 사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32] ⑵ 17代 내물이사금奈勿尼師今부터 19代 눌지마립간訥祇麻立干 때까지의 강역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32] 사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32] ⑶ 20대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부터 22대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때가지의 강역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32] 사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32] ⑷ 23대 법흥왕法興王부터 26대 진평왕眞平王 때까지의 강역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0:32] 사진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33] 삼국사기를 쓴 고려인 김부식이 송나라에 조공(1111~1117년)을 갔는데
중국인 왕보라는 사람이
“중국 선도산의 동신성모는 고려의 신인데 아시오?”라고 질문하자
김부식은 모른다고 하였다
이 동신성모가 신라시조 박혁거세를 낳은 어머니이다
그런데
1111년 ~ 1117년 사이에 송나라에 갔던 김부식이 몰랐던 이 “동신성모상”을
1123년 고려에 왔던 중국 송나라 사신이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
동신성모지당(東神聖母之堂)이 개성에 모셔져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부식이 송나라에 다녀온 이후 개성에 사당를 새로이 모셨다는 뜻 아닌가 ?
환단고기 태백일사와 한단고기의 내용을 비교분석해 보면
“동신성모”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1) 고려인 김부식은 박혁거세의 어머니 동신성모를 몰랐다
(2) 따라서 선도산은 중국에 있었으며 동신성모상은 이 선도산에 있었다
(3) 동신성모가 박혁거세를 나은 곳은 중국이다
(4) “사로”는 중국에서 출발 하였...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34]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내용중 일부
사로의 시왕은 선도산의 성모의 아들이다.
☞ 사로는 신라를 의미한다
☞ 시왕은 박혁거세를 의미
옛날 부여제실의 딸 파소가 있었는데 남편없이 아이를 배었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눈수로부터 도망쳐 동옥저에 이르렀다.
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나을촌에 와 닿았다.
때에 소벌도리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집에 데려다 거두어 길렀다.
나이 13세에 이르자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고 성덕이 있는지라, 진한 6부의 사람들이 존경하여 거세간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에 세우고 나라를 진한으로 하고, 또한 사로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를 쓴 고려인 김부식이 송나라에 조공(1111~1117년)을 갔는데
중국인 왕보라는 사람이
“중국 선도산의 동신성모는 고려의 신인데 아시오?”라고 질문하자
김부식은 모른다고 하였다
이 동신성모가 신라시조 박혁거세를 낳은 어머니이다
그런데
1111년 ~ 1117년 사이에 송나라에 갔던 김부식이 몰랐던 이 “동신성모상”을
1123년 고려에 왔던 중국 송나라 사신이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
동신성모지당(東神聖母之堂)이 개성에 모셔져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부식이 송나라에 다녀온 이후 개성에 사당를 새로이 모셨다는 뜻 아닌가 ?
환단고기 태백일사와 한단고기의 내용을 비교분석해 보면
“동신성모”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1) 고려인 김부식은 박혁거세의 어머니 동신성모를 몰랐다
(2) 따라서 선도산은 중국에 있었으며 동신성모상은 이 선도산에 있었다
(3) 동신성모가 박혁거세를 나은 곳은 중국이다
(4) “사로”는 중국에서 출발 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5) 송나라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 제 17권 동신사(東神祠)가 개성에 있다는 기록은
김부식이 송나라에 다녀온 이후에 새로이 모셔진 것이다
(6) 지금 경주에도 선도산 성모사에 파소성모(혁거세의 어머니)가 지선으로 모셔져 있다한다
(7) 송나라에 있었던 선도산, 경주의 선도산, 개성의 동신사 어느 것이 진짜인가 ?
(8) 아니면 후대에 후손들이 조상을 모시기 위해 새로이 만든 사당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
아래에서 원문을 차례대로 비교해 보자
(1)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12 경순왕 편 마지막 부분
사론(史論)
☞ 아래의 동신성모(東神聖母)는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를 이름이다
(중략)
정화(政和) 연간(1111년 ~ 1117년)에
우리 조정에서 상서(尙書) 이자량(李資諒)을 송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는데,
신(臣) 부식(富軾)이
문한(文翰)의 임무를 띠고 보좌하여 따라갔다가
우신관(佑神館)에 나아가 한 집에 선녀상을 모셔둔 것을 본 적이 있다.
관반학사(伴學士) 왕보(王)가 말하기를
“이는 그대들 나라의 신(神)인데 공들은 그것을 아는가?”
하고는 마침내 일러주었다.
“옛날에 황실의 딸이 남편 없이 임신하게 되었으므로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 건너 진한(辰韓)에 이르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해동(海東)의 첫 임금이 되었고
황제의 딸은 지선(地仙)이 되어 오래도록 선도산(仙桃山) 있었으니
이것이 그의 상(像)입니다.”
나는 또
송나라 사신 왕양(王襄)의 동신성모(東神聖母) 제문(祭文)을 보았는데,
『어진 이를 낳아 나라를 처음 열었다.』
는 구절이 있었으므로
동신(東神)은 곧 선도산의 신성(神聖)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 아들이 어느 때 왕노릇을 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2) 한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내용중 일부
사로의 시왕은 선도산의 성모의 아들이다.
☞ 사로는 신라를 의미한다
☞ 시왕은 박혁거세를 의미
옛날 부여제실의 딸 파소가 있었는데 남편없이 아이를 배었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눈수로부터 도망쳐 동옥저에 이르렀다.
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나을촌에 와 닿았다.
때에 소벌도리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집에 데려다 거두어 길렀다.
나이 13세에 이르자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고 성덕이 있는지라,
진한 6부의 사람들이 존경하여 거세간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에 세우고 나라를 진한으로 하고,
또한 사로라고도 하였다
(3) 고려도경 제 17권 동신사(東神祠)
동신사는 선인 문안에 있다.
☞ 동신성모지당(東神聖母之堂)이 개성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도경”은
김부식이 송에 다녀온 이후 고려에 왔던 사신 서긍이 지었는데
1123년(인종 1) 송나라 휘종(徽宗)의 명에 따라
한달 남짓 개성(開城)에 머물면서 체험한 견문을 바탕으로
송나라에 돌아가 편찬한 사서임
삼국사기 사론(史論) 원문
政和中
我朝遣尙書李資諒 入宋朝貢
臣富軾以文翰之任輔行 詣佑神 見一堂設女仙像
伴學士王曰
“此貴國之神 公等知之乎”
遂言曰
“古有帝室之女 不夫而孕 爲人所疑 乃泛海抵辰韓生子
爲海東始主 帝女爲地仙 長在仙桃山 此其像也”
臣又見大宋國信使王襄祭東神聖母文
有娠賢肇邦之句 乃知東神則仙桃山神聖者也
然而不知其子王於何時
(고려도경 동신사 원문)
절강성에는 선도산(仙都山)이 있다.
절강성 일대는 신라 명이 많다. 신라산 도 있음.
절강성 임해현에는 "신라산"이 있다
“삼국유사” 권 5 감통(感通) 제7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隋喜佛事)'
“선도산 성모(仙桃山 聖母) 설화”
진평왕 시절에 한 비구니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지혜(智惠)라 하였으며 어진 행실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거처하는 안흥사(安興寺) 불전(佛殿)을 새로 수리하려고 했으나 힘이 모자랐다.
그 때 꿈에 모양이 예쁘고 구슬로 머리를 장식한 한 선녀가 와서
"나는 선도산 성모인데, 네가 불전을 수리하려는 것을 기뻐해서
금 10근을 주어 그 일을 돕고자 한다.
내 자리 밑에서 금을 꺼내어 주불삼상(主佛三像)을 장식하고,
벽 위에는 53불(觀樂王樂上二菩薩經에 나타나는 53분의 부처)과
6류성중(六類聖衆) 및 여러 천신(天神)과 오악(五岳)의 신군(神君)을,
그리고 해마다 봄과 가을 두 계절의 10일에 남녀 신도들을 많이 모아
널리 모든 중생을 위해 점찰법회(占察法會)를 베풂으로써 일정한 규정을 삼아라."
고 말했다.
지혜는 놀라 깨어 무리들을 데리고
선사(仙祠)의 자리 밑으로 가서 황금 160량을 파내어 불전 수리를 이루었는데,
모두 성모가 한 말에 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