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활동 / 서순희
대학 4 학년 가을쯤이었다. 친구가 학교 중앙도서관에 가자고 했다. 친한 친구라서 함께 갔다. 그곳에서 전국 대학 미술대전 수상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서예 부문 쪽에 왔다. 대상은 친구 작품이었다. 친구는 웃으며 이번에 상을 타게 되었다고 말한다. 깜짝 놀랐다. 친했지만 붓글씨를 잘 쓰는지는 몰랐다. 도서관에서 내려올 때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친구들이 물어 볼 때 ‘특기, 취미, 좋아하는 것은 먹기’라는 농담을 즐겨 썼을 뿐이었다
결혼하고 3년 뒤에 특수학교에 근무했다. 이 지역에서 정신 지체 영역으로 처음 문을 열었는데, 가르치는 내용도 많이 생소했다. 3년에 접어들었을 무렵 교사의 양심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과연 이렇게 근무해도 되는가?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어떠한 순간에도 죄를 짓지 말자는 결심이 섰고, 특수교육 연수를 열심히 받아 좋은 선생님이 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특수 교육의 중심지는 대구 서울이었고, 방학 때마다 공부했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명제를 안고, 열심히 했다. 특수교육의 연수 내용을 보면 단순한 것이 복잡하게 소개되는 것이 많았고, 어떤 연수는 60시간 중 한두 구절만 내게 유익함을 주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다녔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의 명제는 내 생활로 자리 잡았고 다양한 연수를 위해 어느 곳이든지 찾아갔다. 국민 인구 2%도 안 되는 정신지체 특수교육을 위하여 작은 아파트 한 채 값 쯤 공부하는데 썼다.
특수교육이란 작은 단계를 더욱 작게 나누어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헛다리만 잡고 있을 뿐이다. 가르칠 때 작고 더 작은 단계로 지도하기 때문에 학습부진아. 지진아. 학령기교육을 놓친 사람, 다문화 부인,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 좋은 교욱 효과를 낼 수 있다. 나는 자면서도 좋은 수업을 위해 궁리했다 정신 지체 학생의 경우 뚜렷한 성과가 없어서, 내 속을 태우는 경우도 많았지만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학교를 그만둔 후 영암다문화지원쎈타에서 한국어 토픽 시험 준비반 지도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다문화 부인 열일곱 분이 희망 하에 가정 형편상 힘들게 시작하여 10개월 정도 모두가 너무 열심히 공부한 결과 토픽 1,2,3,4급을 12분이 제각각 땄다. 여기에서 두 분의 부인을 소개하자면 한 분은 토픽 공부를 하지 말고 시어머니가 ‘고추를 따야 한다’고 성화를 낼 때 새벽 1시에 일어나 5시까지 고추를 따놓고 공부하러 왔다고 말한다. 또 한분은 센터에 차를 세 번 바꿔 타고 공부했는데 마을 사람이 10명이라고 한다. 토픽에 합격해서 남편이 치킨을 사서 동네 어른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토픽에 참가했던 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선생님 한국에서 잘살게요, 그리고 우리 아이를 잘 키울게요,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도 잘못 배웠는데, 이렇게 열심히 가르쳐 주어서 고맙습니다’히고 나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선물도 주었다. 중국 하열삔 연길, 신장에서 온 부인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선글라스, 목이버섯, 마른과일열매를, 중국 남부 하이난에서 온 부인은 남편이 키운 알타리 무 한 단을 주었다.
장애학생, 다문화 부인, 나이드신 어른, 학습지진아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가르쳐 줄 수 있는 용기를 나는 갖고 있다. 소외된 이웃에게 용기와 희망을 나눌 수 있는 명제는 내 인생의 가치관이다. 지금 83살 드신 분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다문화 가정 어린이에게 학습 봉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