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편의 사랑의 노래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그리고 우편 배달부
가끔은 동네 도서관에 가면, 시집 서가 사이를 사모하는 여인의 집 창가를 서성이듯 한다. 왜? 난 아직도 그녀를 첫사랑으로 간직하고 있으므로...
그녀의 집 앞, 문득 한 작가의 이름이 눈에 든다.
파블로 네루다
대단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태 읽어본 적이 없네.
시인의 자서전, 평전부터 여러 시집이 주욱 줄을 서 있다.
이때 가장 좋은 선택은 가장 얇고 고민없이 읽을만한 것을 고르는 것이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젊은 시절에는 약관도 못된 19세에 발표한 연시(恋诗)집
[스무 편의 사랑의 노래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 남미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고
나이 들어선 정치가이자 열렬한 공산주의자, 참여형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칠레 군부정권의 핍박으로 오랜 망명생활을 겪었으며, 말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집은 시인이 두 여인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것이다. 당시 시인이 이팔청춘이었으니 당연히 이성을 향한 끓어오르는 정열을 직설과 은유 그 사이의 외설을 교묘히 버무려 설파하였다.
참고로 네루다는 평생에 걸쳐 결혼을 세 번했고, 이외에 수 많은 여인과 연인관계였다. 그러니 양다리 정도는 그에게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번역을 통해서 시를 접하게 되면 감동이 반감되는지라 이 시집을 읽고 그닥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이백이나 두보의 시를 번역본으로보고 별 감흥이 없었지만, 대학에서 중국어를 익힌 다음 그들의 시를 조금이나마 원어로 감상할 수 있게되면서 왜 이들이 시선(诗仙)이고 시성(诗圣)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시집이 발표된 후 전 남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내가 스페인어를 못 해 원문을 읽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시집을 다 읽고 나니 '우편 배달부'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네루다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아서 찾아보니 맞았다.
영화는 원작 소설이 있고, 네루다가 등장하지만 시인과 우편 배달부와의 인연은 픽션이다.
다만 이 영화는 지중해의 한 섬에살고 있지만 고기잡이는 하기싫은 글을 겨우 익힌 젊은이가 네루다와의 인연을 통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사랑을 얻고 결국시인이 되었지만 허무하게 죽어간 이야기다.
군데군데 드러나는정치와 종교, 권위에 대한 비판적 유머가 탁월한,
시와 은유, 인생을수채화로 그려낸 영화이다.
다시말하면, 문학과 인생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사람에게 은유로써 정답을 알려주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94년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는데, 마땅히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어야했다. 주연남자 배우는 심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영화촬영이 종료되고 12시간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만다.
당분간 여운이 내곁에 머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