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골 다랑이논/이성부
이 마을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이 깊은 곳에 어떤 사람들이 흘러들어와
마을을 만들었는지
나는 굳이 알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빈 산골짜기로 올라와서
비탈에 하나씩 둘씩 돌을 쌓고 땅을 고르고
마침내 씨앗 뿌려 질긴 목숨 끌어갔음을 본다
참으로 사람이야말로 꽃피는 짐승
가슴 가득히 불덩이를 안고
피와 땀을 뒤섞이게 하는
그것이 눈물겨워 나도 고개 숙인다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피아골 들머리
아침 햇발에 층층 쌓인 다랑이논들
거친 숨결 내뿜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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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부시인의 시집<지리산>에 실린 시입니다.
지리산 "피아골" 명칭은 골짜기가 깊은 만큼 간직한 이야기도 많네요. 스님들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피(기장)를 심어 유래됐다는 말도 있고 임진왜란,구한말의 의병,6.25전쟁과 빨치산 등을 거치면서 피로 물들인 골짜기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있지요.
이유야 어찌됐든 시인은 그 유래보다 첩첩산중에 들어와 경사가 심한 그곳에 다랑이논을 만들고 씨앗을 뿌려 목숨을 이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물겨워 고개를 숙이지요.
산자락에 몸을 다닥다닥 붙인'다랑이논'은 멀리서 보면 유연한 곡선으로 아름답지만 가까이 보면 가파른 직선이 아슬아슬 긴장감을 주지요.
어떤 여행 작가는'오랜 시간 자연과 사람이 밀고 당기며 빚어낸 조화의 결정체'라고 했지요.
이 시를 읽으며 피아골의 핏빛 단풍과 계단식 다랑이논을 떠올려봅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거친 숨결이 와닿아요.저도 마음 비탈마다 다랑이논 층층이 올려봅니다.(감상/어향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