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넓은 집 / 임정자
식구들과 북적거리며 살았던 기억이 이제는 희미해지고 있다. 동네에서는 우리 집을 감나무 집이라 했다. 단감, 대봉감, 땡감 등 많은 나무가 있었다. 형제들은 감나무 위에 올라가 홍시를 따 먹기도 했다. 난 덜 익은 떫은 감을 좋아한다. 감나무에 올라가 부러 떫은 감을 따서 쌓아놓은 볏단에 던져 놓고 뛰어내리곤 했다. 침대처럼 푹신하고 편했다.
아버지는 밭농사보다는 논농사가 많았다. 늘 일손이 부족했다. 초여름이면 아버지는 매일 삽을 들고 논으로 가 물꼬를 트고 닫고 적당한 물을 대주었다. 논에 모내기하거나 농약 할 때 논두렁에 서서 긴 줄을 잡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논에 익은 벼를 낫으로 베고 한 묶음씩 묶어 집으로 가지고 와 볏단을 쌓아놓는다. 탈곡기에 서너 번 돌려 탈곡을 끝내고 짚단을 모아 햇볕에 말려 묶어 놓으면 소밥에도 쓰고 가마니를 짤 때도 사용한다. 탈곡은 하루에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럴 때마다 사람들 손이 필요해 주로 일요일에 날을 잡았다. 아버지가 부르면 광주에 있던 언니는 집에 와야 했다. 일하는 사람들 밥이라도 해 집안일을 도와야 했으니까. 동네 사람들과 품앗이도 하지만 어쩌다 일손이 부족하면 살림꾼 셋째 언니는 학교도 못갔다.
자식들이 광주나 목포에서 학교에 다녀야 했기에 아버지 어머니는 등골이 빠지게 일했다. 농사로만 학비며 방값이며 7남매를 가르치려니 힘이 들었다. 웬만한 농기계를 다룰 줄아는 아버지는 쌀 찧는 기계를 마당에 들어 놓고 가을걷이할 때면 동네 방앗간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들면 난 좋았다. 잔심부름하고 받은 푼돈도 좋았지만, 친구들과 우리 집 마당에서 노는 게 더 좋았다. 이뿐이 아니다. 식구가 많아 가끔은 마당에서 밥 먹는 일도 있었다.
뜨거운 한여름 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가족이 빙 둘러앉았다. 멀찍하게 모깃불을 피워 연기가 나서 눈물 흘려도 누구 한 명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밥상에 김치 하나 올려놓고 두 상을 차려 놓았다. 한 상은 할머니 아버지 오빠가 다른 한 상은 다섯 언니들과 나 그리고 엄마가 앉아 팥죽을 먹었다. 8월 무더위에 선풍기도 없이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 한여름에 뜨거운 팥죽은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달콤했다.
어쩌다가 돼지라도 한 마리 잡는 날이면 마을 잔칫날이다. 전통혼례식이 흔하지 않은 70년대, 스물여덟 큰언니는 넓은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직장생활을 했던 큰언니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양산을 들고 다니는 멋쟁이였다. 고등교육을 받았던 언니는 요즘으로 본다면 공무원이었다. 면 소재 면사무소를 다녔으니 시골에서는 콧대가 높을 만했다. 언니는 시골이 싫다며 도시에서 살겠다고 입이 닿도록 말하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사는 형부를 중매로 만나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넓은 마당에 사람이 꽉 차고 넘쳐 담 넘어서까지 붐볐다. 큰언니 볼에 연지곤지 찍고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두 손 위에 길게 하얀 천을 덮고 신랑에게 절하는 모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마당에서 노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이 집에 오면 아버지가 방 안에서 나올 때까지 짖어대는 누렁이도 있었다. 아침마다 울어대는 수탉, 암탉에 병아리까지 마당에서 살았다. 어쩌다 돼지는 우리에서 나와 마당을 산책하다 아버지에게 잡혀 우리안으로 들어가는 우스운 일도 있었다. 감나무가 있는 정원에 듬벙(웅덩이)이 있다. 듬벙에서 놀던 오리가 마당으로 내려와 놀라치면 누렁이가 짖어댄다. 오리는 잽싸게 도망간다. 어디 그뿐인가. 토끼,염소들이 마당 한쪽에 있어 우리 집 마당은 마치 동물농장 같았다. 이곳은 아버지에게는 일하는 일터었지만 내게는 놀이터였다.
아버지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가신 지 오래되었다. 내가 태어난 금송리 금동 526번지, 지금도 마당은 그대로 있는데 그 많은 식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첫댓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나무도, 가족도 많은 선생님 너무 부러운데요. 재밌게 잘 읽었어요.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는 시조가 떠오릅니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며 사는 평화로운 시절이었네요.
마음 속 추억이 많으니 부자라고 하더이다.
임정자 선생님은 부자십니다.
마당에서 모깃불 피우고 멍석 깔고 저녁밥 먹는 풍경, 아련합니다. 미니스커트 입던 언니는 면사포 쓰고 결혼하고 싶었겠네요. 우리 엄마도 가마타고 족두리 쓰고 결혼했다고 합니다. 7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