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노트 54.
3. 질문 : 마음과 몸이라고도 하고 정신과 물질이라고도 하는데 같은 말인가요?
답변 : 마음과 몸이나 정신과 물질이나 같은 말이다.
< 참고 >
마음과 몸이나 정신과 물질은 같은 뜻이지만 쓰임이 다릅니다. 불교에서는 일관되게 한 인간을 정신과 물질로 분류합니다. 정신과 물질을 빨리어로 나마(nāma) 루빠(rūpa)라고 합니다, 나마(nāma)는 정신(精神)이며 한문으로는 명(名)이라고도 합니다. 루빠(rūpa)는 물질(物質)이며 한문으로는 색(色)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몸을 물질로 사용하신 것은 매우 깊은 뜻이 있습니다. 몸을 하나의 물질로 볼 때 객관화가 되어 비로소 몸이 가지고 있는 법의 성품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마음과 몸이라고 할 때는 마음은 찌따(citta)라고 하며 한문으로는 심(心)이라고 합니다. 몸은 가야(kāya)라고 하며 한문으로는 신(身) 또는 신체(身體)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물질을 몸이라고 하는 경우는 오직 사념처(四念處) 수행에서만 사용합니다. 부처님께서 수행은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경전이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경’입니다. 이때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대상이 네 가지인데 몸, 느낌, 마음, 법입니다. 이때 몸이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이것을 한문으로 사념처(四念處)라고 합니다. 네 가지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방법이 바로 사마타와 위빠사나입니다. 그러므로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만 물질이 아닌 몸, 신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부처님이 직접 사용하신 언어는 빨리(pāli)입니다. 빨리는 인도에서 주로 서민이 사용하던 언어로 문자가 없고 말만 있습니다. 이것을 영국인이 로마자로 표기한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로마자 빨리어입니다. 원래는 발음이 빨리(pāli)인데 일부에서는 빨에 장음표시가 있어서 ‘빠알리’라고 읽기도 합니다. 또 ‘빨리’라고 하면 뜻이 분명하지 않을까봐 일반적으로 ‘빨리어(pāli語)’라고 사용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빨리어 경전이 바로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가르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한 빨리어 경전은 한글 빨리어입니다. 빨리어 경전이 아니면 부처님께서 직접 설한 경전이 아닌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경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서민들이 사용하는 빨리어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빨리어로 법을 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기에 빨리어 법문은 문자가 없기 때문에 오직 암송으로만 전해졌습니다. 문자가 없는 빨리어 경전을 최초로 기록한 것이 스리랑카에서 자국어인 싱할리로 야자수 잎에 기록한 것이 최초의 빨리어 경전입니다. 이것이 패엽경입니다. 싱할리어로 기록된 빨리어 경전은 뒤에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번역을 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산스크리트어는 귀족이 쓰는 언어로 문자가 있습니다. 이 산스크리트어를 범어(梵語)라고 합니다. 다시 이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한역 아함부 경전입니다.
최초의 빨리어 경전이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상당부분이 다르게 첨가되었으면 다시 산스크리트의 경전이 아함부 경전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상당부분이 다르게 첨가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문으로 기록되어 남아 있는 아함부 경전은 빨리어 경전의 원형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만들어진 대승경전은 빨리어 경전과 전혀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문화는 계속 새롭게 변하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역사적 지역적 환경의 차이와 개인의 다른 사상과 견해가 곁들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대를 뛰어넘어 완성된 것이므로 원형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최고의 지혜를 얻으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 나은 발전이라는 것은 없으며 만약 발전이라고 한다면 그만큼 왜곡될 위험이 필연적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뜻을 정확하게 알려면 빨리어의 원래의 뜻에 기준해야 합니다. 빨리어 단어 하나도 매우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어서 빨리어를 전공한 전문가가 아니면 정확하게 표현하거나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치유의 목적을 두고 존재에 대한 분석을 자세하게 하셨습니다. 이 치유는 어리석음에 대한 치유입니다. 그래서 매우 다양한 빨리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같은 단어라도 미세한 차이로 뜻이 다르고 쓰임새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오류를 막기 위해서 반드시 주석서가 필요합니다. 상좌불교의 주석서는 청정도론을 기본으로 합니다.
실제로 부처님의 빨리어 경전이 한문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다르게 오역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나마도 최근에 우리나라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빨리어 경전이 이천 오백년 만에 번역되었다는 것은 크나큰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위빠사나 수행도 늦게나마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 역시 크나큰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연이 늦었지만 늦은 만큼 더 열심히 정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