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말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Ecce agnus Dei, ecce qui tollit peccatum mundi(에체, 아뉴스 데이, 에체 퀴 톨리트 페카툼 문디) ‘아뉴스’는 ‘어린양’을 뜻하고, ‘데이’는 Deus(데우스, 하느님)의 소유격으로 ‘하느님의’라고 번역합니다.
우리는 영성체 직전에 요한의 이 외침을 네 번 반복합니다. 신자들이 세 번 환호하고 사제가 한 번 더 외웁니다. 성체를 모시기 전에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사제가 성체를 나누고 그 조각을 성작에 넣는 동안, 신자들은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이 노래는 7세기경 동방 교회에서 도입되었는데, 처음에는 축성된 빵을 나누는 동안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 8~9세기 작은 제병이 등장하면서 빵을 나눌 필요가 줄어들자 세 번만 반복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빵을 나누는 동안 계속 반복할 수 있는데, 다만 마지막 구절은 “평화를 주소서.”로 해야 합니다.
사제는 성체의 작은 조각을 성작에 넣은 다음, 혼자서 조용히 “영성체 전 기도”를 바칩니다. 두 가지 양식이 있는데, 사제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해 바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이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로 모든 죄와 온갖 악에서 저를 구하소서. 그리고 언제나 계명을 지키며 주님을 결코 떠나지 말게 하소서.”
첫째 양식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찬미하고 죄의 용서와 주님과의 일치를 청하는 내용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이 제게 심판과 책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제 영혼과 육신을 자비로이 낫게 하시며 지켜 주소서.”
둘째 양식은 영성체에 앞서 사제 자신의 부당함을 자각하고 치유와 보호의 은총을 청하는 내용입니다.
미사 경문에는 사제가 미사 주례자가 아닌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위해 바치는 기도들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 봉독 전과 후, 예물 준비 다음, 손을 씻을 때, 성체와 성혈을 영하면서, 성반과 성작을 닦으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영성체 전 기도”도 이런 기도 중 하나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어떤 뜻일까요? 구약성경에서 ‘어린양’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구약의 히브리 백성이 이집트 탈출 전날 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집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놨고, 그 집은 하느님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어린양의 피는 하느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 제물을 의미합니다.
어린양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두 번째 장면은 바빌론 유배 이후입니다.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바빌론 유배는 매우 치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배라는 사건을 겪은 이후 적잖은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멀어지기도 했지만, 예언자들의 외침에 따라 다시 하느님 백성으로 제대로 살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 역시 유배 이후입니다.
유배 이후 이스라엘은 하느님 백성답게 살기 위해 크게 3가지 노력을 합니다. 첫째, 성전을 재건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성전이란 계약의 궤를 보존한 곳이고,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상징하는 직접적인 표상이었기에 성전 재건은 중요합니다. 둘째, 성경을 정리하고 편집합니다. 유배 이전 구전으로 전해지고, 파편적으로 보유했던 구약성경이 본격적으로 집필되고, 정리됩니다.
셋째, 성전 속죄 예식이 정립됩니다. 구약의 믿음에 따르면 죄란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을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백성 전체의 죄를 용서받기 위한 속죄 예식이 형식을 갖추고 거행됩니다. 1년에 한 번 모든 백성은 성전 앞에 모여 죄 사함을 위한 예배를 바쳤고, 대사제는 백성을 위한 기도와 예물을 바쳤는데, 이때 속죄 제물로 송아지와 어린양을 바쳤습니다. 어린양의 피를 통해 하느님 백성은 용서를 받았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어린양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세 번째 대목은 이사야서 중 ‘주님의 종의 노래’입니다. 주님의 첫째 종부터 넷째 종의 노래는 사순시기 성주간 중 독서 말씀으로 봉독됩니다. 특히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주님의 넷째 종의 노래는 성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거기서 주님의 종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53,7).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는 어린양, 즉 ‘대속적’ 죽음을 맞이하는 주님의 종을 어린양의 모습으로 비유해 묘사합니다. ‘대속’(代贖)이란 대가를 치르는 것, 즉 남의 죄나 고통을 대신하여(代) 자기가 당하는(贖) 것입니다. 속죄, 속량, 구속 등의 표현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 대속적 죽음을 선택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은 남을 위한 희생, 즉 대속적 죽음을 선택하셨을까요? 당연히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성심에서 우러나오는 물과 피가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하느님 말씀이 몸소 인간이 되셨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기꺼이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파스카의 어린양이시며, 성체는 하느님의 어린양의 희생이 현재화된 표징입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의 절정은 성체를 내 안에 모시는 시간입니다. 성체를 모시기 전 사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예수님은 참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죄가 없어지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이 세상에 죄가 줄어들고, 없어지길 바라면서 이 세상을 위해 보속하고, 대속하겠다고 다짐하며 함께 이 믿음을 고백하면서 성체를 영합시다. “하느님의 어린양”
대속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를 ‘대리하는 속죄’이지만,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A가 B를 대체할 경우, B는 더 이상 권리가 없지만, 대리할 경우에는 B의 자유와 권리가 보존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리하셔서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하느님과의 화해,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품위를 얻어 주셨는데, 그 품위에 맞게 생활할 우리의 의무와 권리, 자유를 보존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우리가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예수님이 ‘다 알아서 책임지시고 구원하신다’는 생각은 예수님의 대속을 ‘대리’가 아닌 ‘대체’로 알아들은 것이지요. 이런 태도를 사도 바오로는 강하게 꾸짖으십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우롱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갈라 6,7) 성경은 곳곳에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에 부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성도들에게 걸맞게, 여러분 사이에서는 불륜이나 온갖 더러움이나 탐욕은 입에 올리는 일조차 없어야 합니다.”(에페 5,3) 그리스도인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 2,9)으로서 그에 걸맞은 처신을 하면서 살도록 요청받습니다.(1베드 2,9-1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