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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총신대 선교대학원 유해석 교수가 주관하는 “토마스와 함께 하는 순례 여행” 모집에 참가하여 일행 30명과 함께 2026.6.23~7.2까지 10일간 영국 웨일즈,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3개국 개신교 부흥관련지역과 유적을 탐방하고 귀국했다.
제1일(6.23)
2026.6.23. 11:30 분경 집에서 여행 가방을 메고 택시를 잡아타고 12시 5분전에 춘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강원여객 버스에 탑승, 버스는 2시간 20여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 공항내 약속된 집결지를 찾아갔다. 서너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여행사 황인규씨를 만나서 비행기 탑승 보딩 패스를 받고 짐을 부치고, 16:30경에 에티 하드 항공사의 아부다비행 A350 EY823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비행기는 17:35에 출발, 9시간을 비행하여 아랍 에미레이트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하였다. 아부다비에서는 하루가 지난 새벽 1-2시였다(6.24)
제2일(6.24)
아부다비 공항에서 영국 런던행 A350 EY061 비행기에 탑승, 항공기는 6.24. 02:20에 출발하였다. 비행기는 7시간을 비행하여 07:20에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하였다. 여기서 08:20경에 미국에서 출발한 참가자 8명과 합류하여 런던 공항 집결지에서 한국인 사라(성미숙) 가이드를 만났고 운전기사는 클라우드씨, 여행사 버스를 타고 일행 30명은 먼저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사원에 있는 영국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웨스트민스터는 우리에게 소요리 문답서 제정으로 유명한 곳이다. 소요리 문답서는 1643~1649년 5년 8개월 동안 기도하며 제정한 신앙표준서이다. 제정될 당시 영국 교회는 무기력했고, 사회가 어지러웠으며 의식적인 예배와 교권주의적인 교회 정치가 팽배, 이러한 형식에서 벗어나 성경대로 하나님을 믿고 예배드리며 교회를 다스리기 원하는 개혁주의 신앙가들이 이 표준서를 제정하였다.
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사라 가이드는 영국 국회는 하원(녹색) 600여명과 상원(적색) 800여 명 총 1400여 명 정도가 된다고 하였다. 가이드는 영국 여행 중에 소매치기를 절대 조심하라고 여권 가방을 철저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런던시는 보통 1존, 2존, 3, 4, 5, 6존으로 구분하는 데 정치인이 모여 있는 가장 중요한 중심지가 1존, 경제 중심지가 2존, 이렇게 3, 4존으로 갈수록 덜 중심지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니까 5,6존은 한적한 도시 변두리 지역이었다. 우리는 버스로 6존으로부터 4, 5를 거쳐서 영국 런던의 가장 중심지인 국회 의사당과 수상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 10번지 1존 지역에 진입하였다. 영국은 일찍이 의회정치가 발달한 나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나라로 유명하다. 가이드가 버스를 타고 도시를 지나가면서 현대식 건물에서 오래 된 굴뚝 표시를 가리키면서 저것은 영국 국민들이 오래 전에 굴뚝 건물을 짓고 살아 왔기 때문에 굴뚝이 필요 없는 현대식 건물에도 옛날식 굴뚝 표지를 만든다고 설명하였다.
두번째는 영국의 자동차는 운전석이 모두 오른쪽에 있었다. 이건 자동차가 나오기 전에 마차를 몰 때 마부가 오른쪽에 앉았기 때문에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셋째로, 영국 런던 시내를 지나가는데 영국을 상징하는 3가지 빨간색이 있었다. 전화통, 우체통과 버스는 모두가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드디어 BBC TV 방송에서만 보던 영국 국회의사당을 보안 검색을 받고 입장하였다. 사전에 유해석 교수의 섭외에 의해서 영국 웨일즈 출신 하원 의원 두 분과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홍보가 있었다. 거기서 하원의원인 카마덴소(여자) 의원과 루스 존(여자) 의원을 만났다. 우리 일행 30명은 그 분들과 일일히 악수를 하였다. 나는 악수할 때 가지고 간 내 명함을 건넸다. 카마렌소 의원은 감리교 교인이고 루스 존 의원은 침례교 교인이다. 카마렌소 의원은 여러분들이 BBC TV 방송을 볼 때 영국 의원들이 일은 안하고 싸우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고 화기애애하게 의정할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하원 의원들 중에서 화요일에 1개 기도 모임, 수요일엔 2개 기도 모임에 여야가 함께 참여한다고 설명하여 주었다. 우리들에게 질문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하기에, 나는 영국의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이 최초로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는데 지금 그 영어선경을 보관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웨일즈 주민들은 웨일즈어를 따로 쓰기 때문에 그 영어성경을 웨일즈어로 번역한 것을 읽었다고 대답해 주었다.
우리는 의회 남자 직원의 안내로 영국 왕실의 찰스 3세(19848~현재)와 다이애나 왕비의 결혼식과 엘리자베스 2세(1926~2022) 여왕의 장례식 때 사용됐던 웨스터민스터 사원 내부를 둘러 보았다. 높은 천장에다 축구장 넓이의 통로 광장이었다. 시멘트 바닥이다.
우리는 국회 의사당 건물을 나와서 런던 시내에 있는 존 웨슬리 생가와 교회를 방문 둘러 보았다. 오래 전에 한국 광림교회의 김선도 목사가 방문하여 존 웨슬리 기념관 건립에 기금을 전달하였다고 해서 광림교회 이름이 영어로 적혀 있었다.
12시가 넘어서 점심 식사엔 피카데리 서커스 지역에서 유명한 피시 앤 칩스를 먹었다. 다음엔 대영 박물관을 가 보았다. 유물 수장에 있어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300만점, 대영 박물관은 800만점이라고 하니 유물 보관에 있어서 압도적이고 세계 제일이었다. 어느 사람의 기부금으로 그 박물관을 지었는데 그 분의 유언이 입장료를 받지 말라고 하여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박물관이 크지만 가이드는 그 중에서 중요한 로제탄 박물관과 파르테논 신전 박물관, 앗시리아 박물관, 이집트 왕족의 미이라 박물관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설명해 주었다. 시설이 장관이었다. 한국관도 있는데 한국 국립 박물관의 유물은 매년 전시물을 교체해서 전시하는데 시간 관계상 거기는 들르지 않았다.
사라 가이드는 한국이 영국에 알려지기는 10년 전쯤 박지성 선수에 의해서, 뒤이어 손흥민 선수에 의해서, 최근에는 가수 싸이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1시간 가량 연설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영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몰랐다고 한다. 조선 정조 때에 영국은 의회정치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이틀 전부터 폭염 더위가 계속되어 힘들게 한 시간 30분을 관람하였다. 저녁은 고기와 셀러드로 먹고 숙소인 런던시 레오나르도(Leonardo) 호텔로 향하였다. 호텔은 2인 1실로 넓고 깨끗했다.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는 바로 잠에 떨어졌다.
제3일(6.25)
아침 5시에 기상하여 6시에 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 30명은 버스에서 기도 후 고아의 아버지, 기도를 5만번 했다는 죠지 뮬러 기념관을 향하였다. 버스로 2시간 이상 걸리고 우리 일행 30명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차례로 자신을 소개하기로 했다. 내 순서가 되어 나는 나이 40이 넘어서 하나님을 믿게 된 동기와 성경을 알기 위해 발버둥친 일과 (사) 한미선 1년 과정 기독교 사이버대학과 1년 과정 바이블 아카데미를 수료한 것을 소개하였다.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이런 과정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였다. 부부는 가정교회의 제사장이고 자식은 교인이다. 현재 내블로그로 문서전도를 하고 있으며 혼탁한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게 좋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지난 날 위해를 당했는데 그때 지혜와 명철 분별력이 있었다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매주 기도 제목에서 첫 번째가 지혜와 명철과 분별력을 내려 달라는 기도 제목이라고 설명하고는 끝마쳤다. 10:30에 휴개소를 잠깐 들렸다.
이번 순례여행 일행 30명 중 내가 81세로 제일 연장자였다. 내 다음으로는 70세 중반이 두 명 정도 70세가 두 명 정도 그리고는 모두 60세 이하 40~50세가 다수고 20대도 한 두 명 있었다.
어느 덧 버스는 죠지 뮬러 기념관에 도착하여 30분 정도 1층 내부를 둘러보고 기념관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우리 일행은 다음 행선지인 존 번연의 무덤과 요한 웨슬리의 광야 설교지로 향하였다. 요한 웨슬리가 말을 타고 가서 설교를 했다는 Hanham Mount 지역을 버스로 찾아 가고 있었다. 버스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주변에는 영국 웨일즈 주민들의 전형적인 2층 구조 집들이 있었다. 요한 웨슬리가 설교했다는 야외 강대상에 가서 서 보았다. 가난하고 지친 민중이 운집한 가운데 요한 웨슬리는 천국을 힘차게 증거했을 것이다. 15분 가량 야산을 들러보고 12:21에 언덕을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1시산 30분을 달려 한식 식당에 도착하였다.
버스로 이동 중에 유해석 교수는 당시 설교자로 유명한 칼빈주의자인 죠지 휘트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와 감리교 알미니안 신앙의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만남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당분간 칼빈니스틱 메소디스트 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죠지 휘트필드는 부흥은 일반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보았고, 요한 웨슬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합작품이라고 보았다. 부흥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선물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강대상에서는 하나님 말씀만 선포돼야 한다,
둘째,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어야 된다,
셋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어야 된다,
넷째, ???
죠지 휘트필드는 born again(거듭남)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의 설교는 웨일즈에서 장로교를 형성하였다. 죠지 휘트필드의 설교에 영향을 받은 이반 로버츠는 회심하여 1904년에 웨일즈의 고향 교회로 돌아와서 24명의 청년들과 함께 열심히 새벽기도를 하였다. 이 새벽기도를 계기로 이 때 10만 명의 웨일즈 주민이 주께로 돌아왔다고 한다. 죠지 휘트필드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북장로교에서 설교를 하였다. 당시 조선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전도 전진기지였다.
당시 평양에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가 부흥 세미나에서 누가 자원해서 새벽기도를 인도할 사람이 없느냐고 질문을 던졌을 때 그때 길선주 목사가 손을 들고 자원했다고 한다. 1907년 1월 두번째 주일부터 수십명이 장대현 교회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를 하고 예배 후 헤어졌다고 했다. 그때 다섯번 부흥이 일어났다고 한다.
친송가 #305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작곡가인 죤 뉴턴(1725~1807)은 브리스톨에서 아프리카 노예를 싣고 와서 미국으로 파는 노예상이었다. 어느 날 그는 죠지 휘트필드의 설교를 듣고 회심, 노예상을 그만 두고 목사가 된다. 어느 날 회심한 청년 윌리엄 윌버포스가 뉴턴을 찾아왔다. 영국에서 가장 양심적인 사람이 누구냐고 상담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목사와 정치인 중 어느 것을 해야 하는지 상담하고 정치인이 되는 길을 걷는다. 그는 영국의 하원 의원으로서 많은 의원들을 회심시켰고 노예해방을 주장하여 죽기 3일전에 영국 의회에서 노예해방 법안이 통과되는 걸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18,19세기 대부흥을 이끌었던 영국이 20,21세기 들어서 서서히 성령이 침체되기 시작 오래 전에 미전도종족으로 분류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 역시 지금 눈에 보이지 않게 빠르게 영국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14:30 우리 일행은 한국 식당에 도착하여 나는 순두부 백반을 먹었다. 우리 일행은 15:00에 식당을 나와 브리스톨에 있는 죤 뉴턴의 선교센터를 찾아가서 거기서 5분간 머물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건물은 굉장히 컸고 너무 오랫 동안 방치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어제 만큼 폭염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웠다. 버스는 달려 16:00경에 숙소인 Holiday inn에 도착해서 호텔 컨퍼런스 룸에서 유해석 교수로부터 1시간 30분에 걸쳐서 토마스 선교사의 생애와 선교 신학적 유산을 스크린을 통하여 경청하였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부분이 있었다. 저녁은 17:00 경에 버스로 Toby family 식당에서 고기로 먹고 18:45에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토마스 선교사의 흔적을 보기 위하여 웨일즈로 간다. 버스에서 짐을 가지고 브리스톨시 Holiday inn 호텔에 배정된 room으로 가서 짐을 정리하고 샤워 후 잠을 청했다.
제4일(6.26)
6시에 아침 먹고 9시에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한 하노바 교회로 향하였다. 1시간 버스 이동 중에 유해석 교수는 현재 한국 국가경제가 발전하는데 공헌한 4개 집단을 선택 설명했다. 가난한 조국을 위해 달러를 벌어들인 집단들이었다. ① 월남전, ② 파독 간호사와 광부, ③ 외항선원, ④ 중동 근로자 들이다.
유교수는 잘못된 만남에 대해서 체험을 통해서 실례를 설명하였다. 이집트에서 복음 전도로 감옥에 갇히었는데 거기에 신체가 건장한 한국인 외항선원 한 명이 들어 왔다. 같은 한국인이라 그와 대화하게 되었다. 외항선원은 2년간 계약한 일을 마치고 라스팔마스에서 이집트를 경유하여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라스팔마스에서 한 한국 사람이 그에게 가방을 주면서 이걸 전달해주면 한국까지 비행기 값을 대납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 제안을 동의하고 가방을 들고 오다가 그는 이집트 세관에서 마약소지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유교수는 많은 사람들의 탄원으로 곧 풀려났으나 외한선원은 재판을 받고 종신징역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걸 참지 못하고 분노에 몸이 쇠약해져서 6개월 만에 감옥에서 죽었다고 한다. 잘못된 만남이었다.
유교수는 또한 미국 Fuller 신학교에서 10년간 이슬람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를 알려 주었다. 무슬림들이 집단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불가리아에서는 10만 명이 집단적으로 개종하였고 아프리카에서는 1년에 600만 명이 개종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① 선교사와 기독교인들의 헌신적인 생활, ② 능력대결에서 성령이 악령을 이기고 있고, ③ 이슬람에 대한 회의 (알카에다, 구란, ISS)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덧 토마스 부친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목회했던 대형 교회인 하노버 교회에 도착했다. 그는 부흥 목사였다고 한다. 하노버에서는 웨일즈어로 설교하였다. 당시 웨일즈 지방에서는 웨일즈어 80%, 영어 20%를 사용하였고 한다. 그는 부인이 몸이 아파 힘들어해 7년 만에 롸야다에 있는 Tabernacle 작은 교회로 옮겼다고 한다. 하노버 교회를 둘러보고 11:00에 버스에 탑승, 버스로 1시간 30분을 달려 롸야다에 도착하였다. 13:30에 Elan hotel 에서 점심으로 돼지 갈비를 먹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토마스 부친이 9년간 시무하던 교회에서 토마스가 태어났고, 토마스 선교사가 17살 때 설교를 했다는 롸야다에 있는 Tabernacle 교회는 1839년에 건축되었는데 현재 교인이 3명 뿐이라 노회에서 2026년에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교회 건물을 1억원에 팔아 돈은 목사님들 급여로 지급하는데 쓰인다고 한다. 용도는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다른 용도로 사용은 못한다고 들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 그런 소식을 들으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1800년대 웨일즈의 부흥(Wales of Revival)을 이끌었던 4만 개의 교회들이 지금은 모두 교회 문을 닫았다 한다.
토마스 선교사의 부친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토마스 선교사가 3살 때부터 런던선교회에 헌금을 보냈다고 한다. 토마스 선교사의 부친은 ① 복음주의적이고, ② 말씀만 전하고 부인 때문에 대형 교회에서 시골 작은 교회로 옮겼고, ③ 자식 교육을 잘 시킨, ④ 선교하는 목사였다고 한다.
14:35에 롸야다를 출발하여 웨일즈 국립박물관으로 향하였다. 유해석 교수는 영국 교회가 내리막 길에 들어선 이유를 ① 신학의 좌경화와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와 설교도 15분으로 짧아졌고, ② 부유해서 합리화에 빠져 신학을 떠나게 되었고, ③ 교회가 정치적으로 좌경화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목사들은 의무적으로 상원 의원이 되어 선지자적 예언자적 삶을 상실했다고 한다.
16:00 경에 웨일즈의 The National Library에 도착, 1시간 동안 토마스 선교사에 관한 전시품을 둘러 보고 설명도 들었다. 토마스 선교사의 부친, 로버트 토마스의 초상화도 있었다. 도서관은 1907년에 개관한 돌로 지어진 궁전과 같은 건물이었다. 직원만 수백명에 이른다고 한다. 18:25에 저녁을 먹고 에버리스트위스(Aberystwyth)시 Park Lodge 호텔에 짐을 풀었다.
제5일(6.27)
오전 5시 기상 30여 분간 Aberystwyth시 주위를 둘러보고 06:30에 호텔에서 아침을 먹다. 09:12에 버스를 타고 토마스 선교사가 공부했다는 곳으로 향하였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웨일즈의 스위스라고 부르는 웨일즈 중앙을 가로 질러 토마스 선교사가 졸업한 University of Wales에 도착하였다. 10:50에 토마스 선교사가 배웠다는 란도베리 칼리지를 방문하였다. 10:20에 버스를 타고, 찬송가 #376, 377을 작곡한 William Williams(1717~1791)의 고향을 향하였다. 버스 안에서 찬송가 두 곡을 합창하였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데 웨일즈 도로는 과거 마차가 달리던 길을 현대적으로 확장하지 않아 자동차가 다니기에 좁았다. 12:00에 점심을 먹고 13:00에 William Williams 작곡가의 무덤을 방문하고 13:25에 거기를 출발하여 1시간을 달려 대서양이 바라다 보이는 St.Elli’s Bay 카페에 도착, 여유 시간에 나는 걸어서 10분 걸리는 우체국 우체통을 찾아가 한국으로 우편카드를 넣었다. 17:00에 스완지(Swansea)시에 있는 식당에서 한식을 먹고 Village 호텔로 향하였다.
제6일(6.28)
05시에 기상하여 호텔을 나와 밖에서 일기를 살펴보니 바람이 불고 하늘에 검은 구름이 떠 있다. 비가 올 것 같아서 우산을 준비하고 옷은 트레이닝 바지에 긴 팔 상의를 입기로 했다. 오늘은 영국에서 맞이하는 주일이다. 주일 호텔 아침 식사 시간은 8시다. 호텔 세미나실을 빌려서 07:00에 유해석 교수의 인도로 Wales Swansea Village 호텔에서 우리 일행 30명은 예배를 드렸다. 시편 23편 낭독에, 찬송가 #376장을 부르고 대표 기도는 장봉원 장로, 성경 봉독은 삼상 17:45, 설교는 최광우 목사, 마지막 기도는 김영식 목사가 해주었다.
오늘 우리 일행은 웨일즈,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3국을 통과한다. 그간 교회사에서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오해가 있었는데 1867.10.26. Pauline Morche 편지에 의해서 토마스 선교사의 내륙 선교의 정신과 토마스 선교사의 재조명으로 오해가 풀렸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Swansea 시에 머물고 있다. 과거 한국의 기성용 축구선수가 Swansea 팀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08시에 호텔에서 뷔페 양식을 먹고 09시에 웨일즈 대부흥의 발원지였던 이반 로버츠 지역을 탐방하기로 했다. 이반 로버츠는 죠수아를 만나 뜨거운 기도를 느꼈다고 한다.
스완지는 석탄 생산으로 유명했고 공대가 있고 타락한 도시였다. 이에 이반 로버츠(1879~1951)는 26세에 웰즈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고 한다. 1904.10.4.에 부흥이 일어났다고 한다. 웨슬리가 사역한 감리교 박물관을 관람하고 브리스톨로 이동하여 브리스톨 공항에서 UZ219 항공기에 탑승 1시간 20분 비행하여 에딘버러(Edinburgh) 공항에 도착하였다. 에딘버러시 Holiday inn 호텔에 짐을 풀었다. 에딘버러시에서는 같은 호텔에 이틀 간 머문다.
제7일(6.29)
05시 기상하여 주차장으로 나가보니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가웠다.
오늘 복장은 긴 팔에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 06:30에 호텔에서 아침을 먹었다. 오늘부터 이틀간 같은 호텔에 머문다. 09시에 버스로 출발하여 09:40에 St. Gile 교회에 도착, 거기엔 1.8km 달하는 Royal Mile이 있었다.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의 동상도 있었다. 존 낙스(1513~1572) 무덤은 교회 주차장 23번에 묻혀 있는데 거기서 일행은 기념 촬영을 하였다. 500년 전에 존 낙스에 의해 스코틀랜드에서 개신교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한 사람이 바로 섰을 때 스코틀랜드 교회가 달라졌고, 세계 역사가 변화되었다.
11:30에 광장에 집결하여 구시가지 그라스 마켓과 기독교인 처형지를 둘러 보았다. 1650~1682년간 기독교인을 박해 살해했는데 18,000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Maggie Dickson’s 였다고 한다. 교회 입구에 있는 동판에 새겨진 문구에는 for the protestant faith on this spot many martyrs and covenants died 라고 적혀 있다.
12:00에 점심을 Howie 식당에서 먹고 13:10에 존 낙스의 하우스를 각자 관람하고 15:50에 생주얼 교회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존 낙스의 하우스는 수리 보수 중에 있었다.
우리 일행은 17:00까지 스코틀랜드 내쇼날 갤러리 관람을 마치고 식사하러 출발, 이때 다큐 촬영팀 유영수씨와 잠깐 대화를 나눴는데 그가 여기 오긴 전에 여의도 순복음 교회 소속 오산리 기도원에 갔었는데 교인들이 1989년 때보다 40년 전보다 100분의 1로 줄었다고 하였다. 한국 교회도 영국 교회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300년이 걸렸고, 미국은 200년이 걸렸는데, 한국은 100년 만에 너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촬영팀의 송섭 PD와 대화 중 옥한흠(1938~2010) 목사의 아들 옥성호 씨가 집필한 책에 대해서 얘기 끝에 그가 책의 인기에 걸맞지 않게 현재는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에 빠져 있다는 소식에 놀랐다. 실망이 크다. 나는 그의 저서인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교회”를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송섭 PD는 총신대 교수이고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18:45에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 호텔로 향하였다. 내일 아침엔 짐을 싸서 런던에서 한국으로 가기 위해 에딘버러시를 떠난다.
제8일(6.30)
아침 5시에 호텔을 나서기 위해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오늘은 유난히 벽에 쓰인 문구가 내 눈에 꽂혔다. Our commitment to you. We want you to stay with us again and again. Share your stay at Holiday inn Edinburgh. 아침 6시 반에 호텔 아침 식사를 마치고 9시에 버스를 탔다. 09:30에 Greyfriars Kirk(church) 개신교 최초 교회, 일명 지붕 벗는 감옥에 도착했다. 이 교회는1620년에 건축되었다. 여기서 신구교간에 싸움으로 50년간 18,000명이 죽었다고 한다. 교회 밖으로 나가면 죽으니까 교회에 머무르게 되어서 지붕 없는 감옥으로 불리웠다고, 11:15에 스코틀랜드 3인 작가들의 박물관에 도착하여 관람하였다. 작가들은 D.W. Stephenson, Sir Frances Chantry, Williams Brodie 이다. 12:10에 Royal Mile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 12:30에 Chanter 식당에 도착 점심으로 치킨과 감자 튀김을 먹었다.
1877년 한글 성경번역을 최초로 펴낸 로스 선교사는 한국에서는 유명하다. 로스 선교사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한다. 그는 중국 선교를 안하고 조선 선교를 한 이유로 교단과 고향에서는 푸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160년 전 조선에 토마스와 로스 선교사를 파송했던 영국은 오늘날 미전도 종족(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2% 미만) 국가가 되었다. 한국 개신교 교단에서 양국 교단 간에 협의에 의해서 스코틀랜드 교인 20명 정도 되는 존 로스 기념 교회에 박진수 목사를 파송하였다고 한다. 그는 스코틀랜드 신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 장로교 교단 출신 목사라고 한다. 목사 사례비는 한국 장로교 교단에서 지급한다. 인근 지역에 새로운 주택 단지가 있어서 앞으로 교인수가 들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15:00에 에딘버러 성을 걸어서 관람 후 16:15에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부치고 공항 2층으로 올라가서 17:40에 EZY817을 탑승하였다. 그러나 21:10에 비행기 고장 결함으로 모두 하차 가슴 졸이고 공항 대기실에서 항공사의 대체기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밤 12시가 지났다. 이 사건은 에딘버러 easy jet 항공사에 전적으로 보상책임이 있다.
18,19세기 복음의 전성기를 누린 영국 교회는 20세기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났고 노령화 되고, 6천만 인구에 예배 출석 120만명, 20, 30년 후에는 50만 명으로 진단, 원인은 목사들이 성경 공부를 멀리 했고 목숨 걸고 설교를 성경 말씀대로 하지 않았고 구수한 예화나 많이 해서 인기에 영합한 설교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제9일(7.1)
2-3시간이 지나도록 Easy jet 항공사에서는 아무 조치도 없었기에 결론은 우리 일행은 공항 대기실에서 각자 인터넷에서 에딘버러발 7.1.05:55 BA 1467 British Airways와 예약을 했는데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아슬아슬하게 예약이 되었다. 우리 일행 중 한 자매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예약을 대신 해 주었는데, 예약번호: X9TGW8-1석- 요금 1,054,651원이었다. 비용은 일단 자매가 자기 카드로 대납해 주었다. 우리 일행은 런던에서 EY062 비행기를 타야 한다.
07:30에 런던 공항에 도착하여 09:30에 런던발 EY062를 타기 위해 구내 트레인을 환승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어렵게 09:10경에 check in에 도착하니 08시 45분에 업무를 마감해서 우리 모두는 탑승할 수 없었다. 고로, 사라 가이드와 유해석 교수와 서울 여행사 황인규씨 간에 통화가 이루어졌다. 결론은, 각자 부담으로 예약을 하기로 했는데 18명 중에 11명이 16:35분 런던발 인천행 OZ522 아시아나 직항기로 예약 완료. 이번에도 한 자매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나의 예약을 도와 주었다. 이건 이기쁜 투어 여행사에서 보상 책임이 있다고 본다.
2026년 7월 1일, 주문번호: 1133-560-199, 16:35 런던 탑승, 12시간 45분 비행, 인천 7.2. 13:20에 도착, 요금 2,022,032원이었다. 비용은 내 카드로 결재하였다. 유구용 중국인 형제 혼자만 두바이 경유 에티하드 항공기를 탔다. 내 좌석은 27K 창문쪽이었다.
제10일(7.2)
아시아나기는 편안하고 좋았다. 비행 중 한식 기내식이 두 번 나왔다. 7.2. 13:20에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하여 각자 짐을 찾기 위해 Claim에서 오래 서서 기다리는데 한 여행가방 위에 영어로 Are you sure this is your bag? 이란 문구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짐을 찾아서 검색대 공항을 빠져 나와 여행사 황인규 팀장을 만났다. 지급받았던 리시버를 반납하고 두 개 예약된 비행기를 제 때 탑승 못한 것에 대해서 우리 일행은 조속히 관계 여행사와 접촉하여 환불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황팀장도 약속하였다. 우리 일행 10명은 마지막으로 김영식 목사의 기도로 이번 여행을 인천공항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무리하였다. 각자 헤어져 나는 춘천행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다 되었다. 여행 끝.
웨일즈,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10일간 순례 여행 요약:
① 강대상에서는 하나님 말씀만 선포돼야 한다(죠지 휘트필드, 요한 웨슬리).
② 나는 쇠하고 교인들은 흥해야 되겠다(죠지 휘트필드-교인들은 나를 짓밟고 올라서라)
③ 부흥은 한 사람의 위대한 회심에 의해서 시작(죤 뉴턴-청년 윌리엄-윌버포스).
④ 이반 로버츠의 웨일즈 부흥--미북장로교 선교사 경유--평양 대부흥회에 영향
⑤ 160년 전 전도국 영국이 오늘날 미전도 종족 국가가 되어 한국에서 목사 파송.
영국 3개국 순례 여행 소감과 희망사항
①영국이 미전도 종족으로 분류된 걸 듣고 한국 개신교가 각성 회개의 동기가 되기를 소망.
②영국은 160년 전 미전도 종족 조선에 토마스와 로스 선교사를 파송한 고마운 나라다.
③영국은 G7 국가로서 선진국, 도시와 농촌이 풍요롭게 잘 살고 있었다.
④영국은 과거 대영제국의 자부심과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대단한 나라다.
⑤마지막 날(2026.7.1) 에딘버러와 런던 공항에서의 갑작스런 출국 시간 변경은 옥의 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