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행하는 믿음.
롬4:21-22절,399.379.439장.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믿음이 신앙인의 내적 원리라고 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관, 그리고 세계관에 이르는 삶의 전반적인 원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그러한 삶의 원리는 반드시 행위로써,
그 실제적인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말로만 하고 행위가 뒤따르지 아니하면 거짓 믿음이 됩니다. 행하는 믿음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믿는 것과 행하는 것입니다. 약2:14-16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1)경계해야 할 외식주의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도 먹어야 몸을 건강하게 하는 약효를 나타내게 되는 법이며, 훌륭하고 완벽한 이념이나 사상도 그것이 구체화될 때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요 보배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형식과 외식이라는 옷을 입게 될 때 믿음은 그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맙니다. 유대 경건주의자들이 지닌 최대의 약점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그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들의 경건이라는 것이 마음이나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겉모양을 꾸미는 데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식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2)유익을 끼치는 신앙생활입니다. 주린 자에게 필요한 것은 말에 그치는 위로가 아니라 먹을 것을 주는 행동이며, 이것이 우리의 신앙 언어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많다고 구원에 참예 할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같은 밭에 심겨졌다고 모두가 알곡이 아니듯이 교회 안에는 생명이 없는 믿음, 구원에 이를 수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단히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여 우리의 신앙이 자신에게는 물론 전체에게도 유익을 끼치는 것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2.믿음으로 행하는 생활입니다. 약2:17-19절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1)의로운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세 가지 차원에서 의로워야 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로워야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의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도 의로워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내 자신이 알고, 믿고 행하는 일에 있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즉 양심에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가 생활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의롭게 사는 길이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고 또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의로운가에 대해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는 생활이 곧 의로운 생활이며 의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2)믿음이 강한 자의 태도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를 이해하고 그를 보호하여 귀한 믿음으로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즉 믿음이 강한 자는 진리로 자유인이 되었지만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해 스스로 진리로 인해 누리는 자유를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상 제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며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질 것은 믿음이지 종교적인 금기나 가책이 아닙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비밀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강자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도 못할뿐더러 충성스런 종이 될 수도 없습니다. 강자의 믿음은 확신을 소유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먹어야 하는지 안 먹어야 하는지 또는 이것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의 신앙의 자기 결단이 세워져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믿음의 행위는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3.믿음과 행위의 일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약2: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1)행위의 원리로서의 믿음입니다. 야고보는 본문에서 믿음과 행함을 별개의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에 대하여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라고 하는 사람에 대하여,
야고보는 믿음과 행위는 따로 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과 보이는 행위가 하나라는 것은 믿음이란 행위로써 그 실체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바로 외적 행위를 주관하는 내적 원리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믿음은 영적이고 행위는 육적인 것이며 따라서 이 영적인 믿음은 행위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마7: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될 때 믿음과 행위는 별개가 아닌 하나로 조화된다는 것입니다.
2)믿음과 행위의 일체성입니다. 행위로 증명되지 않는 믿음이란 이미 그 자체로 죽은 것이라고 할 때 행위는 곧 믿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그것은 바로 믿음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행위는 신앙이 없는 불신자의 행위가 되고, 그것은 바로 죽은 행위인 것입니다. 계3:1절에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 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행위 없는 믿음 또한 죽은 믿음이므로 믿음과 행위는 역시 하나라는 것입니다. 행위의 원리로서의 믿음, 그리고 믿음의 표현으로서의 행위란 명제를 야고보는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받은 인간의 내적 실상과 외적 실상을 말하는 것으로 한 나무에 있어서의 뿌리의 열매와 같이 이 믿음과 행위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약2: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4.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도들은 주일이나 혹 그 밖의 다른 모임에서 기독교회들이 채택한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합니다. 이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문제는 신앙 고백이 단지 입술에만 붙어 있어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가장 힘 있고 확실하게 나타내는 언어는 행동이며, 이 언어로 고백되어지는 신앙을 통해서 어떤 역사를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말만 하고 행치 않는 신앙은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직장 속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직장에서 단체 회식자리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면 고의적으로 먹이려고 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직장 상사들은 그 직위를 이용해서 믿음의 사람에게 협박을 하듯이 공격합니다. 거기에서 한번 문어지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심지어 군부대 지휘관은 군목님에게도 술을 먹이려고 하는 사람을 저는 보았습니다.
담대하게 나는 그리스도인기 때문에 술을 먹지 않습니다. 라고 밝힘으로 다음부터는 회식자리에서 술을 권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이 있는 척하다가 직장에서는 세상 사람보다 한술 더 뜨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잠15:3절에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행동은 노출되어 있습니다. 어느 장소 어느 모임에서도 믿음의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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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으신 하나님아버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행하라고 명하셨지만 외식적인 생활을 취한 적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는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믿음의 담대한 행동을 함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