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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장애인들은 거리에서 '이동권 쟁취'를 외쳐왔습니다. 이에 따라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저상버스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장애인 이동권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듯합니다. 몇 시간씩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저상버스와 장애인콜택시. 안전을 위협하는 장애인 리프트와 지하철 승강장의 단차 등은 오늘날 장애인 이동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비마이너는 '2014 장애인 이동권 실태 보고서'를 통해 장애인이 이동할 권리는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봅니다. 또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한지도 함께 짚어봅니다. _ 편집자 주 |
'시각장애인 변호사' 김재왕 씨(37)를 만난 건 아침 9시 40분경, 공덕역 4번 출구 앞이었다. 그는 오전 10시 있을 재판을 위해 서부지법으로 향할 참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법원까지 동행을 청하고, 왼팔 끝을 살짝 잡았다. 그는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바로 법원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는 얼마간 걷다가 "여기쯤이지 않나요?"라고 말할 만큼, 법원의 위치를 몸으로 익히고 있었다.
김 씨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장애인권 등을 전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은 지난 세월호 집회와 장애인 집회 때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된 인권활동가의 변호를 위해 법정에 섰다. 변호사인 만큼 외부활동도 많고, 하루 이동 범위도 꽤 넓은 그가 이동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을까?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의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시각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김 변호사와의 동행에 나섰다.
▲공판이 끝난 뒤, 김재왕 변호사가 의뢰인과 함께 역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의뢰인은 세월호 집회 등에서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된 인권활동가 명숙 씨였다.
그의 이날 동선은 광화문광장에 들렀다가 충정로에 있는 사무실에 들른 뒤, 오후 3시 서대문구청을 가는 것이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짧은 일정을 마친 그는 충정로까지 사무실 동료와 함께 걸어간다. 산책을 좋아하는 그는 바쁘지 않은 날엔 이렇게 종종 걸어간다.
서대문을 지났을 때쯤 인도 한복판은 공사 중이었다. 인도 위로 공사 중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콘이 세워져 있었고 콘과 콘 사이는 얇은 막대기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넘어야만 지나갈 수 있었다. 그와 동료는 잠시 그 앞에서 머뭇거렸다. 동료가 먼저 넘어간 뒤 그에게 상황 설명을 한다. 설명을 들던 그도 잠시 후 바리케이드를 아슬아슬하게 넘는다. 만약 그가 혼자 가던 중이었다면 이곳을 어떻게 지나갔을까?
사무실에 도착하여 점심식사 후 업무를 보던 그는 3시에 서대문구청에서 있는 회의에 가기 위해 복지콜에 전화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아래 한시련)에선 시각장애인들의 생활·이동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 민간 위탁으로 복지콜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콜은 연결되지 않았다. 콜 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 당장 그가 탈 수 있는 차량이 없다는 의미다. 상담원과 전화 연결 후 콜 연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선 한 콜 당 20분가량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콜을 시도해본다. 연결을 기다리다 2시 30분이 넘었을 때,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출발하기로 한다. 그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현관을 나서려던 순간, 복지콜이 연결됐다는 연락이 온다. 그러나 콜이 연결된 후에도 콜이 이곳까지 오는 동안 기다려야 한다. 나가려던 발걸음을 거두어 다시 의자에 앉는다. 2시 45분, 콜이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온다. 3시 약속까지는 조금 늦겠으나 어쨌거나 콜을 탈 수 있게 됐다.
# 버스는 승하차 어렵고, 지하철엔 스크린도어가 없고
김 씨가 복지콜을 이용하려 했던 이유는 서대문구청까지 지하철만으론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촌역에서 내려 서대문구청까지 마을버스를 한 번 타야 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에게 버스는 ‘이용불가능한 것’에 가깝다. 대외 활동이 활발한 그이지만 버스 이용을 묻는 말엔 “거의 이용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 7월 한시련이 ‘교통약자의 버스 승하차 개선을 위한 국가표준 공청회’에서 회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시각장애인 10명 중 7명은 버스 이용 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며, 10명 중 4명은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불편한 이유로는 버스 승하차(47%), 급출발(24%), 운전자의 불친절(22%) 등을 꼽았다. 특히 버스 승차 시, 버스가 제 위치에 서지 않거나 도착한 버스의 번호와 행선지를 알 수 없는 것에 큰 불편함을 드러냈다. 이들은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대중교통수단으로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고 답했다.
현재 버스정류장에 나오는 버스 도착 음성 안내도 시각장애인에겐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잘못 나오는 경우는 물론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설령 나온다고 해도 승차 위치를 알 수 없으니 사실상 버스 승차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혼란은 여러 대의 버스가 도착할 때 더욱 극심해진다. 또한 버스마다 다르게 설치되어 있는 교통카드 단말기와 하차벨 위치도 시각장애인의 버스 승차를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택하는 지하철은 시각장애인에게 안전하고 편리한가. 이 또한 시각장애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언론에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시각장애인의 선로 추락사고가 보여주듯, 스크린도어가 없는 지하철 역사는 시각장애인에겐 결코 안전치 않다. 여전히 지하철 3개 당 1개꼴로 스크린도어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지난 국감 때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지하철·국철 승강장 821개 역사 중 564곳(68.7%)에만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등과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는 곳과의 설치율도 극심한 차이를 보인다.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등을 포함해 전국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하철과 경전철엔 전국 576개의 역사 중 478곳(83%)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는 국철엔 전국 228개 역사 중 69곳(30%)만이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선, 경춘선, 수인선의 경우엔 설치율이 ‘0’이다.
또한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이 이동 시 타인의 보조를 필요로 하나 현재 활동지원제도는 판정 기준이 지체장애인 중심으로 되어 있어 타 유형의 장애인들에겐 적합하지 않다. 김 씨도 시각장애 1급의 전맹이지만 그가 한 달에 받는 활동지원시간은 70시간에 불과하다. 시간제로 임금이 책정되는 활동보조인으로서는 하루 1, 2시간만을 일하려 하진 않으니 김 씨로선 안정적인 활동보조인을 구하기 어렵다. 현재 김 씨는 가까운 지방을 갈 때에만 활동보조를 이용한다.
# 시각장애인 복지콜, 장콜과 같은 수준으로 대책 필요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복지콜은 어떠한가. 복지콜 또한 위의 김 씨의 사례에서 보듯 이용하기 쉽지 않다. 복지콜은 장애인콜택시와 다르게 분류된다. 장애인콜택시는 교통약자편의증진법 상에 규정된 특별교통수단으로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장착된 차량이고, 복지콜은 휠체어를 타지 않는 이들이 사용하는 택시로 외관은 일반 택시를 닮았다.
복지콜은 시각장애인 1~3급, 신장장애 1~2급이면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에 등록된 시각장애인 1~3급은 9681명, 신장장애인 1~2급은 1만 660명으로 복지콜 이용 대상은 2만 341명이다. 그러나 현재 복지콜은 142대만이 도입되어 있다. 이 숫자는 2010년 이후로 고착되어 있다. 도입 이후 꾸준히 증차되어 온 장애인콜택시와 비교해도 열악한 수준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으니 이용자들의 원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부족한 차량 대수와 함께 복지콜의 또 다른 문제점은 비싼 요금이다. 장콜은 서울시교통약자의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 개정으로 도시철도 이용요금의 3배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요금을 다른 대중교통 수준으로 제한한 것이다. 이에 비해 복지콜은 기본요금 5km는 2000원, 주행요금 500m당 100원, 100초당 100원이 책정된다. 일반택시 요금의 35% 수준이다. 장콜이 최대 4000원 미만으로 적용토록 한 것과 달리 복지콜은 상한선이 없어 장거리 이동을 할수록 높이 책정된다.
이에 한시련 측은 “이동제약이 큰 시각장애인에게 복지콜은 가장 보편적인 대중교통 수단이다. 최소한 100대 이상의 증차와 139명의 운전원을 증원해야 현재 장애인콜택시와 같은 수준의 콜을 처리할 수 있다”라면서 “요금 또한 장콜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하하기 위해 연간 7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