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0일 금요일
세컨드 하우스
김미순
세컨드 하우스가 있는 집이 얼마나 부러운지 나는 날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동산을 들러서 가까운 시골을 알아 보았다. 솔직히 돈이 있어서라기보다 폐가라도 있으면 빨리 매입해서 사두면 좋을까 싶어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기 위한 거다. 큰아들로서 어머니를 모시고 좁은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저녁마다 붉게 달아오른 거시기를 잠재울 수가 없다. 어머니가 밤에 물소리가 나더라 하고 이상하다고 말했을 때 아내가 더듬더듬 거짓말읆 찾을 때 정말 아내에게 미안했다.
내가 건축회사에서 이십 년이나 근무했고, 관리직이지만 집 짓는 것은 대충 잘 안다고 자부한다. 좋은 지역에 터만 있으면 딱인데~~
신록이 무성한 5월, 엄마께 어버이날 선물로 세컨드 하우스 부지를 보여 주었다.
아파트 부동산에서 싼 한옥이 하나 났다는 전화를 해 주었다. 공인중개사 고향인데 우리집과 차로 20분 밖에 안 걸린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주인 할머니가 사위의 성화로 시내로 나간다는 것이다. 같이 살던 두 명의 손자랑 가니까 학비로 2천 만원만 주면 땅값과 집값을 다 하겠다는 거다. 그 좋은 조건이면 거저다 싶어 당장 퇴직금을 미리 정산했다. 대지는 80평이고 집은 15평이라 뒷뜰도 있고 그곳에는 우물도 있었다. 마당에는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철쭉꽃이 색색이 피었고 벌써 달맞이 꽃도 노랗게 정원을 밝히고 있었다. 다만 차를 댈 곳이 없었고 걸어서 5분 정도에 대로변 한쪽에 대야 했다.
내부는 꽤 넓었다 방 두 개와 식당, 넓은 화장실이 실내에 있었다. 실내 화장실이 딸린 방에는 옷을 넣을 만한 서랍장과 작은 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다.
다시 지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1억은 있어야 하는데, 저금해 놓은 돈은 아내에게 이천 만원 밖에 없다
외벌이에 어머니까지 모시고 아들까지 건사해야 하니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낡지만 예쁜 집을 소유한 게 누구보다 부자라는 생각에 뿌듯했다.
" 아야, 다시 지어야겠다."
" 다음에 돈 모으면 예쁘게 지을께요. 어머니"
그 때부터 나는 주말마다 1박2일로 모임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것을 할 때 마음껏 소리 질러도 되고 수돗물도 콸콸 세게 틀어 놓고 씻어도 되었다. 오후 여섯 시가 되면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마을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긴간이 고양이 소리만 외로움을 달랬다. 가까운 시내에서 저녁 밥을 먹고 다시 세컨드 하우스에 올 때 무척 행복하게 느껴졌다.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집 내부의 열쇠가 끌러져 있었다. 들어와도 가져갈 물건은 없었다. 아직 내 짐은 하나도 없었으니 단지 기분이 나쁠 뿐이다. 그리고 천장에서 쥐가 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바닥에는 쥐똥도 있었다. 마당에는 쓰레기도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처음엔 좋은 것만 보였는데 막상 살려고 생각하니 괜히 샀다 싶었다. 싼 값을 햤다.
이 주쯤 지났을 때다. 집에 도착하니 여러 개의 신발이 마당에까지 벗겨져 있었다.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젊은 애들이 마루와 두 방, 주방에까지 자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널부러진 아이를 발로 건드려 깨웠다.
" 씨발, 누구야?"
" 일어나요. 누군데 남의 집에서 대낮까지 자요?"
" 대진이 집인데 아저씨는 누구요?"
" 대진이가 누군지 냐는 모르는데 이 집은 내가 오월 달에 샀소"
" 아이 씨발, 가자"
잠에서 깬 아이들은 나가면서 옆에 비켜선 아내를 힘껏 밀었다. 힘이 없는 아내는 달맞이꽃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뛰이가 아내를 일으키고, 돌아서는 아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나를 뿌리치는 녀석들이 얼마나 힘이 셌는지 나는 일어나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어디가 다쳐 상처났는지도 몰랐다.
급히 부하직원에게 전화했다. 그래서 무사히 그 일은 아무리 돠었다.
그 이후 세컨드 하우스는 제 횬자 비에 맞고, 눈에 묻히고, 꽃은 졌다 피고
더 낡아갔다.
3년인가 세월이 흘렀다..
직장에서 신입사원을 뽑는 일이 있었다. 나는 꽤 높은 자리에 있다보니 심사위원 자리에 앉았다. 필기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원들 열 명이 긴장해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장대진이라는 이름에 집중하게 되었다. 예전에 들어본 이름이었다.
나는 장대진이에게 상사면에 산 적이 있느나,혹시 할머니는 계시냐고 물었다. 맞았다. 그 녀석이었다.
실무직에 합격시켰다. 일단 대출을 받아 세컨드 하우스를 짓기 시작했다. 나는 대진이를 보조로 투입시키고 매일 현장으로 감독을 갔다. 대진이는 별 탈없이 시키는 대로 일을 잘했다. 말도 없고 빙긋이 웃곤 했다.
집이 완성되고 축성식도 거나하게 했다. 회사, 친가는 몰론이고 장인 장모도 초대하였다. 특히 엄마는 당신이 일 주일씩 오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모종의 안좋은 마음으로 대진이를 집 짓는 일을 하게 했는데 대진이는 그 일이 끝나자마자 회사를 그만 두었다.
어머니가 관절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세 주를 간호를 하다보니 서컨드 하우스엔 전혀 못 갔다.
어머니가 퇴원을 하고 여동생 내외가 집에 왔다. 잘 됐다 싶어 세컨드 하우스에 갔다. 훌훌라랄 아내와 나는 예전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꿈꾸며 도어락을 눌렀다. 안에 소파에 두 명의 남녀가 누워 있었다.
"누구예요?"
" 대진이집인데 당신들은 누구예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