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선혜위광마후라가왕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 널리 일체 마후라가 무리들을 살펴 보고 게송을 읊었다.
그대들, 여래의 성품이 청정함을 보시오 널리 위엄 있는 빛을 나타내 중생을 이롭게 하시대 감로의 길을 보여 청정하게 해서 뭇 고통을 죄다 소멸, 의지할 것 없게 하셨네
일체중생이 유(有: 존재의 세계)의 바다에 머물러 온갖 악업과 미혹에 스스로 얽히고 덮여 있거늘 저들에게 행할 바 적정법을 보이시니 이진위음마후라가왕이 능히 잘 알았네
부처님의 지혜는 동등할 게 없어 불가사의함이여 중생의 마음 하나도 남김없이 아시고 저들을 위해 청정한 법 천명하시니 이러한 것은 승혜장엄계마후라가왕이 능히 깨달았도다
한량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셔 널리 중생 위해 복밭을 만드시니 복의 바다 넓고 깊어 측량하기 어려워라 묘목주 마후라가왕이 능히 다 보았도다
일체중생의 근심과 두려움의 고통을 부처님이 널리 앞에 나타나 구호해 주시되 법계와 허공계에 두루 하시니 이것은 등당마후라가왕이 행한 경계네
부처님 한 털구멍의 공덕을 세상이 함께 헤아려도 알 수 없는 것 끝이 없고 다함 없어 허공과 같으니 이와 같이 광대함을 최승광명당마후라가왕이 보았다네
여래는 모든 법을 통달하여 저 법성을 모두 밝게 비추시되 수미산과 같아 움직이지 않으니 이 법문에 들어간 이 사자억마후라가왕이라네
부처님이 지난 옛적 광대한 겁에 모아둔 기쁨의 바다는 한없이 깊어 보는 이가 기뻐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법은 중묘장엄마후라가왕이 들어갔도다
법계는 형상이 없다는 걸 잘 알아 바라밀의 바다를 모두 원만하게 해서 큰 광명으로 널리 온갖 중생 구호하시니 수미억마후라가왕이 능히 이 방편을 알았네
그대들, 여래의 자재한 능력을 보시오 시방에 골고루 강림해 나타나셔 일체중생을 다 비추어 깨닫게 하시니 이것은 가애락광명마후라가왕이 잘 들어갔다네
+++++++++++++++++++++++++++
강설 :
마후라가왕들의 앞에 붙은 이름의 말이 모두 모양이나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선혜위광마후라가왕의 선혜위광(善慧威光)은 훌륭한 지혜를 갖춰 위엄 있는 빛을 낸다는 뜻이고,
정위음(淨威嚴)은 맑고 위엄 있는 소리, 그리고 승혜장엄계(勝慧莊嚴髻)란 뛰어난 지혜로 장엄된 상투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말들입니다.
여러 신중들의 이름에는 이와 같이 각각의 특징이나 모습을 나타내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송(頌)에 ‘감로(甘露)의 길을 열어 보인다’ 는 말이 나왔습니다.
감로라는 말은 자주 쓰이는 불교 용어라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꿀처럼 달다는 뜻을 가진 말로 범어 암르타(amrta)를 번역한 말입니다. 원래는 신들이 마시는 음료수라는 뜻인데 불사(不死)의 신약(神藥)을 말합니다.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린다 합니다. 마치 중국의 도교에서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不老草)를 구했다는 설화와 비슷한 이야기라 볼 수 있지요. 진시왕(秦始王)이 불로초를 찾으려 사람을 봉래산으로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작 진시왕은 50세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부처님 가르침을 감로법(甘露法)이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면 한량없는 공덕과 이익을 얻는 것이 감로를 먹고 얻는 이익과 같다 하여 비유를 한 것이지요.
『법화경』<약초유품>에 “부처님이 중생들을 안은(安隱)하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와 중생들을 위해 감로의 정법(淨法)을 설하니, 이 법은 일미(一味)의 해탈 열반이다.” 하였습니다. 이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감로도(甘露道)라 합니다.
넷째 송구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셔 중생을 위해 복밭(福田)을 만드신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부처님이 중생의 복밭이 되어 주신다는 뜻과 중생이 이 복밭에 씨를 뿌리게 한다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불교신행에서 복전(福田)이라는 말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농사를 지을 때 농작물을 심어 놓은 밭을 작물의 이름에 따라 보리밭, 밀밭, 콩밭, 배추밭이라고 부른 것처럼 부처님을 중생의 복밭이라 하고 때로는 중생도 상호간에 복밭이 되기도 합니다.
이 복밭을 셋으로 구분하여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❶ 경전(敬田) : 공경(恭敬), 공양(供養)을 통하여 복을 성취하게 되므로 경전이라 합니다. 삼보(三寶)를 지극히 받들거나 부모나 스승, 어른을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 등이 모두 경전에 속합니다.
❷ 은전(恩田) : 은혜를 베푸는 것이 복을 짓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중생은 모두 은혜에 의해 살아가지요. 은혜는 남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만드는 인간적인 덕(德)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등지는 것을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 하지 않습니까?
❸ 비전(悲田) : 남의 딱한 처지를 보고 동정심을 일으켜 도와주는 것이 비전입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자비심을 실천하면 복덕의 과보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화엄경탐현기>에는 복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부처님, 탑, 보살, 선지식, 부모 등은 은전이면서도 또한 경전이다. 성승(聖僧: 문수보살)과 이승(二乘)인 성문, 연각은 덕전(德田)이면서 또한 경전이다. 그 밖에 걸식하는 자, 가난한 자 등은 비전이면서도 또한 고전(苦田)이다. 이것들은 모두 복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복전이라 한다.”
덕전과 고전이라는 말도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복전사상(福田思想)은 오늘날 불교의 대사회적 대비실천의 중심이 되는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을 짓는다’는 말이 자리이타의 공덕을 성취한다는 말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에는 비전원(悲田院)이 설치되고 송나라 때에는 복전원(福田院)이 설치되어 나라에서 이른바 복지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때 대비원과 보통원(普通院)이 설치되었습니다.
또 비전공덕을 널리 실천한 사람으로 조선조 후기의 만덕(萬德:1739~1812)비구니와 일제 때의 청호학밀(晴湖學密): 1875~1933)이 이름을 남겼습니다.
만덕 비구니는 제주도에 대기근이 일어나 도민들이 식량을 못 구하자 육지에서 쌀을 사들여 제주도민을 규휼 하였으며, 서울 봉은사의 학밀은 1925년에 한강이 크게 범람해 수해가 일어낫을 때에 절의 창고를 열어 수재민을 구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