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두려움
글 / 김진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연구원)
누구나 한번쯤은 삶이나 죽음과 같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그냥 지나가는 생각으로 잊혀질 수도 있지만 어떤 이는 잠재의식 속에 가두어 놓고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프로이트는 심적 현상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고, 후자를 다시 전의식(前意識)과 본래의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무의식은 정신분석(精神分析)의 수법에 의해서 비로소 의식화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였다.
이 글에서 소개할 작가 서희수는 무의식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활동의 제약을 받으며 자랐다. 그 결과 죽음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그가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유학시절 서희수는 낯선 환경에 대해 몹시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꾼 후 전해들은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이 사건을 통해 그녀는 "불안"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겼고 이것은 <배개>, <전화기>, <붕대>라는 상징적인 형상을 통해 의식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녀는 늘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들은 대부분 불쾌한 일들을 예견하는 것들이다. 서희수는 여러 개의 배개시리즈 제작을 통하여 무의식의 의식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찢기듯 뚫려있는 배개의 구멍은 불안과 고뇌가 그대로 나타나는 듯 하다. 전쟁 중에 무수히 총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의 이 작품 이후 제작된 것들은 구멍이 뚫려 있진 않지만 또 다른 불안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배개 위에 놓여있는 조기, 이빨, 수채구멍 등이 그것이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본래 가지고 있는 표면적인 의미와는 다른 잠재의식에 근거한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은 구체적인 상징물로서 나타나는 그녀의 무의식임과 동시에 꿈의 내용과도 연관되어 있다. 수술용 가위, 메스, 핀셋 등은 앞에 제시한 불안요소와 맥락을 같이하기는 하지만 열쇠와 함께 또 다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이 금속오브제들은 계속되는 악몽과 불안 속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를 해소시키기 위한 도구들이다.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꿈이나 무의식의 세계를 중요시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은 의식의 세계에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잠재의식을 끌어내어 작품으로 표현한다. 서희수는 이러한 면에서 초현실주의를 표방하는 것처럼 보인다.


흔히 전화는 문명의 이기(利器)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서희수에게 있어서 전화기는 오히려 불안이나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도구일 뿐이다. 전화를 통해 전해오는 나쁜 소식과 외국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커뮤니케이션의 불안 등이 다이얼이 없는 전화기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다이얼이 없으므로 전화를 걸 수는 없다. 그래서 잘려나갔거나 천으로 감겨져있는 수화기들을 통해 걸려오는 전화를 피해보려 한다. 그야말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불안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자세이다. 반대로 검은 색의 전화기들이 군집해 있는 모습에서는 자신에게 닥치는 지속적인 충격을 포용해보겠다는 적극적인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두려움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행위는 오히려 자신은 물론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사고까지도 망각해버리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의식은 의식의 영향을 받으면 변할 수 있다. 특히 불안이나 공포 같은 무의식은 그것에서 탈피하려는 의식에 의해 여러 가지 방어체제를 마련하게 된다. 최근에 보여지는 서희수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과정을 찾아볼 수 있다. 날카로운 의료도구들을 붕대로 감는 행위는 꿈이나 강박관념 같은 불안요소들을 의식적으로 억제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과정은 상징화를 통해 나타난다. 천에 감겨진 도구들은 소성이라는 프로세스를 거침으로서 자체의 성질이 바뀌게 된다. 이것은 단지 물성의 변화뿐만 아니라 작가의 의식까지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를 통하여 외적인 치유뿐만 아니라 내적인 치유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희수가 선택한 프로세스는 가압성형과 이장주입이다. 석고틀을 사용하여 실제의 모습과 똑같은 사물을 제작하는 것은 회화에 있어서의 극사실적인 표현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그로테스크한 사물들의 조합으로 이어져 마치 달리의 그림처럼 초현실적이다. 이 제작과정들은 작가의 비현실적인 세계를 표현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딘가 미진해 보이는 형태의 구성과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물체의 등장은 몽환적인 전체 분위기를 다소 흐리고 있다.
그녀가 관객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도입한 방법은 인스톨레이션이다. 이것은 하나의 개체가 가지지 못하는 집중된 힘을 보여준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작품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여지는 느낌은 이보다 강하다. 뿐만 아니라 설치는 다양한 공간의 해석이 가능하다. 서희수가 사용하는 가위와 붕대, 혹은 검은 색의 전화기가 이루고 있는 공간들은 현실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의식과 무의식이 일치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불안과 그것의 치유라는 공간의 구성에 있어 하나의 단일한 공간구성이 되지 않고 후자의 입장에 편중된 설치는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는 조금 미흡한 감이 있다.
의식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복잡하고 불안한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서희수는 독특한 사물의 상징화와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유리한 프로세스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파괴하고 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녀가 자신과 같은 무의식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관객들의 잠재의식까지도 치유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