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 14세가 파리와 베르사유를 오가며 프랑스를 다스리는 동안 독일에는 다시 불행이 닥쳤다. 오스만제국의 투르크족이 침입한 것이다 (투르크족은 200년도 훨씬 전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나, 소아시아, 그리스를 아우르는 광대한 이슬람제국을 건설했다) 투르크족은 도나우강 상류로 계속 진출, 1526년에는 헝가리 군대를 격퇴시켰다
1571년
오스만 제국 해군은 1571년 에스파냐의 펠리페2세와 베네치아 연합군에 의해 격퇴된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막강했다 (부다페스트는 오스만제국의 파샤라고 하는 장군, 총독이 통치하고 있었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오스트리아 파병 배경
* 헝가리인은 왕이 죽은 후 독일황제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들중 대다수가 프로테스탄트였기때문에 종교전쟁에서 황제에 맞섰다. 30년전쟁후 헝가리 귀족들은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고 마침내 이웃나라 오스만 제국에 원조를 청했다
1863년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헝가리 귀족들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여 1863년 각지에서 엄창난 규모의 군대를 모았다 나라안에 오래전부터 전사들의 세력이 너무 커져있어서 이들을 멀리 보낼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고 승리든 패배든 다 좋았다. 메소포타미나와 이집트의 파샤도 병사를 보냈고, 타타르족과 아랍인, 그리스인, 헝가리인, 루마니아인들도 콘스탄티노플로 집결했다
* 병사들은 대재상 카라무스타파의 지휘아래 오스트리아를 향해 진군했다 약 20만명의 병사는 각양각색의 터번을 두르고 이슬람의 상징 초승달 깃발을 들고 있었다 (빈을 포위하여 성벽에 대포를 쏘고 폭파시키며 공격, 빈 시민들르은 사력을 다해 성을 방어했다. 성이 곧 무너질 위기에서 마침내 황제의 원군이 도착했다. 원군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만 온 것이 아니고 폴란드에서도 보냈다. 결국 소비세스키의 지휘아래 빈근처 고지에 진을 쳤고 격렬한 전투 끝에 오스만 제국군은 막사도 챙기지 못한해 달아나 버렸다)
* 황제군은 오스만제국군을 계속 추격했고 폴란드 군은 고국으로 돌아갔다. 프랑스군의 사령관 외젠드사부아공은 오스트리아군의 유명한 지휘관이 되어 몇 년에 걸쳐 그동안 오스만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나라들을 하나둘 정복해 나갔다. 헝가리는 이제 오스트리아의 차지가 되었다. 빈의 황실은 엄청난 권력과 금을 획득했으며 오스트리아에도 화려한 궁전과 수도원들이 세워졌다. 이 화려한 새 양식을 바로크양식이라 불렀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은 점점 더 축소되었다, 또 다른 막강한 적 러시아가 배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