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하늘마음 백일명상 99일차
종일 내리는 비를 창문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우산 쓰고 걸으며 맞아보기도 했습니다. 가방을 메고 한쪽 손에 짐을 들고 우산까지 받치고 걷는 동안 빗방울이 신발과 바지와 가방과 손까지 튑니다. 마스크를 쓴 탓에 안경에 김도 부옇게 서려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발걸음은 상쾌합니다. 봄의 나른함을 날리는 봄비가 대지를 적시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의 생명들에게도 단비가 되어주고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줍니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 옆으로 연두연두하던 이파리들이 초록초록하게 바뀌고 있는 정원에도 흠뻑 내렸습니다. 초록초록한 나뭇잎들이 빗물을 쭉쭉 빨아들이며 기지개를 켜며 꿈틀댑니다. 키 큰 나무 위쪽의 잎들부터 땅바닥의 냉이와 민들레, 살갈퀴 가느다란 풀잎들까지 온통 생명 가득한 세상입니다.
두 발로 직접 걸어 다니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입니다. 일 보러 다니더라도 걸어 다니면 훨씬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대도시의 어느 동네라도 사람이 살고 나무들이 살고 새가 삽니다. 운전을 하면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계절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기온과 바람에 따라 사람들의 옷차림이 달라지고 걸음걸이도 달라집니다. 특히 비 오는 날은 덧칠을 많이 하지 않은 수채화처럼 말갛게 씻겨진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방울방울 맺힌 빗방울들이 하늘에서 갓 도착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입니다. 약간 쌀쌀해져 더욱 청량하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인간들 사는 세상은 온통 시끌벅적하면서 후끈합니다. 말갛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때 비님이 오시면 마중 나가 반가이 맞아 잠시라도 먼지를 씻듯 내 마음도 씻어 봅니다. 하늘과 만나는 순간일지 모릅니다. 붉은 철쭉 꽃봉우리 위에서, 아기손 같은 단풍잎 사이로, 현관 지붕에서 일정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작은 웅덩이에서, 반짝거리게 닦아 놓은 내 구두 위로 튀는 작은 물방울에서, 콧속으로 싸 하게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만났습니다.
오늘 비님을 종일 만나며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저녁 식탁 위에 오른 부침개와 막걸리를 먹으면서 행복합니다. 하늘은 이렇듯 우리 곁에 가까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쁘게 살아라 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 모두 축복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