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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감추인 보화와 같다면
2019년 11월 3일 / 마 13:34, 딤후 2:23-21 / 찬송가 384장, 508장, 528장
마 13:44 /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흥분하여 그 밭을 사기 위해 있는 것을 모두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래서 밭을 살뿐만 아니라 보물까지도 얻는다!
♬ 528장 1.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후렴>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2.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받고 못들은 체 하려나
3.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랑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4.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집이 있어 죄 많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접해 주시겠네
이스라엘 땅은 무수히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아브라함 때로부터 그 지역은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출애굽한 후에 가나안 땅을 그냥 두 발로 편안히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숱한 전쟁을 치르고서야 그 땅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사사기는 온통 전쟁 이야기다. 기드온, 삼손,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도 다 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다윗은 자기 아들 압살롬과도 전쟁을 해야만 했고, 솔로몬 왕 이후에 이스라엘 땅은 앗시리아, 바벨론, 이집트, 로마 등 강대국들에 의해 빈번하게 침탈을 당하고 지배를 당했다. 끝내는 전쟁으로 패망한 나라가 이스라엘이었다. 이처럼 쉴 틈이 없는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산을 적에게 빼앗겼고 피난 중에 잃어버렸고 때로는 도둑을 맞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보화를 밭에 감추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자기만 아는 곳에 땅을 파고 보화를 묻어 놓았다. 그것만이 도둑이 와도 또 전쟁 통에서도 보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이 전쟁 중 죽어서 돌아오지 못했을 경우에는 보화를 어느 곳에 감추어 놓았는지 알 길이 없다. 가족에게도 비밀로 했을 경우 이 비밀은 밭에 묻힌 보화와 함께 영원히 땅에 묻히게 된다. 이러한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천국이 이처럼 감추어놓은 보화와 같다. 천국은 감추어져 있어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례 요한도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쳤고 예수님도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천국은 분명히 가까이에 있고 내 주변에 있다. 그런데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대인들이 그랬고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다. 천국이 가까이에 있지만 그들은 보지도 못하고 체험하지도 못했다. 천국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그러한 현상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눅 17:20-21 / 어느 날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시작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예수님 당시에 주인이 자기 밭을 직접 기경하는 경우보다 일꾼을 고용하거나 소작을 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 비유의 말씀 속에 사람도 그 밭에서 일하는 일꾼이거나 소작농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평소처럼 밭에서 일을 하다가 곡괭이 끝에서 뭔가 ‘탁’하고 걸리는 소리를 들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더 파보았더니 보물상자가 나왔다. 그는 평생에 그런 보화를 본 적이 없다. 그가 보았던 것 중에 가장 귀한 보화였다. 그는 보물상자를 다시 땅에 묻고는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왜 그가 기뻐했을까? 그는 즉각적으로 그 보화가 주인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만일 주인이 그처럼 귀한 보물을 밭에 감추었다면 그 밭을 결코 남에게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은 자기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 농부는 그 밭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밭을 살 수만 있다면 그 보화는 자기 것이 될 수 있었기에 너무도 기뻐했던 것이다. 그래서 농부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 이때도 주인이 순순히 그 밭을 판 것으로 볼 때, 주인은 정말 그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 사람은 보화가 자기 밭에 묻혀 있었지만 알지도 못했고, 다른 한 사람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고서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샀다. 그 당시는 자기 땅에서 보화를 발견할 경우 그 보화가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런데 남의 땅에서 보화를 발견하면, 땅 주인과 반씩 나눠가지게 되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이런 사실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귀한 보화를 발견했다면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그 보화를 내 것으로 만들라는 교훈으로 천국은 그 보화보다 귀하다는 것이다.
▶ 그렇다! 천국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가치 있고 귀한 것이 천국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열어주신 천국문이다. 그 천국을 값싼 은혜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생명을 걸었듯이 생명을 걸라도 천국을 사야 한다.
하지만 사실 집으로 돌아갔어도 농부에게는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밭을 살 돈을 마련하자면, 무엇인가를 팔아야만 할 것인데, 팔 물건이 없다.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 형편이다. 그렇다고 몰래 보물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것을 사용한 것을 혹시나 다른 사람이 알기라도 한다면, 당연히 땅 주인에게 그런 소문이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땅 주인에게 빼앗기는 것뿐만 아니라 주인의 것을 도둑질 한 도둑으로 몰리게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농부는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다가, 끝내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사기로 결단한다.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집도 팔고, 항아리도 팔고, 집안에 몇 마리밖에 없는 그동안 정들여 키우던 가축까지도 모두 과감하게 팔았다. 그래서 결국 그 농부는 보물항아리가 숨겨진 밭을 샀고, 보물 항아리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보다도 밭에 감추인 보화가 훨씬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천국이 이토록 소중한 것이다. 천국을 경험한 사람은 땅의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천국을 경험한 사람,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그때부터 천국을 위해 살아간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가 천국을 소유하려면 먼저 마음에 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만큼 그에 따르는 실제의 천국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절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에 악이 없고 비워진 선한 마음을 말한다. 죄악이 비워진 마음, 깨끗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지할 것이 없어 손들고 오는 탕자와 같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것은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들을 다 버리고 마음에 천국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곧 불신, 미움, 시기, 질투, 욕심, 사심, 탐심, 판단, 비판, 정죄, 분노 혈기, 간음 등 마음에서 죄와 악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장차 들어가게 될 아름다운 천국,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새예루살렘을 소유하려면 마음에 있는 악을 다 버리고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아끼고 사랑했던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천국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밭에 감추인 보화가 있다는 것을 믿고, 그 보화가 정말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분명히 그 사람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살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에 천국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믿고,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결코 죄악을 버리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죄를 버리며 마음에 천국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천국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인 새예루살렘의 가치를 알고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만일 밭에 감추인 보화가 있음을 믿지 못한다면 자기 소유를 다 버릴 수 없다. 마음에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열심히 죄를 버리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령 밭에 감추인 보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만일 자기 소유를 파는 것이 아까워서 팔지 못한다면 그 밭은 살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해도 자신이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죄를 버리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결코 새예루살렘과 같은 좋은 천국에는 들어갈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 얻기를 위해 기도하며 힘써야 한다.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렇게 표현을 했다.
히 11:1, 6 /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6) 여러분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이는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히 11:24-26 / 모세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애굽 왕의 손자로 불리는 것을 거절한 것도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잠시 동안의 쾌락을 위해 죄에 빠지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나누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26) 애굽의 모든 보화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장차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큰 상을 더 바란 것입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자가 되자
사도 요한이 쓴 마지막 성경은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은 책 이름 그대로 천국에 대한 계시의 말씀인데 그 계시록이 언제 어디서 쓰여졌는가? 바로 사도 요한의 인생의 마지막에, 밧모 섬에 유배 갔을 때였다. 그 때, 거기서 성령에 이끌리어서 천국을 보았던 것이다. 그 천국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는 당시의 보석들을 이용해서 수식할 수밖에 없었다(계 21:18-21).
▶ 이렇게 천국을 경험한 사람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천국에 들어가기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히 11:10 /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진 하늘의 도성으로 그를 데려다 주시리라는 확신 속에서 기다리고 산 것입니다. 그 하늘의 도성은 바로 하나님께서 설계하고 건설하신 곳입니다.
히 11:13-16 / 지금 내가 열거한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 얻은 뒤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그 약속이 자기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기쁨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참 고향이 아니고 다만 자신들은 잠시 이 땅에 나그네로 와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4)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으로 보아 하늘에 있는 참 고향을 그리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달콤한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했다면 언제든지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16)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고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역시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그들을 위해 하늘의 도성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이들의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말씀이 뒤이어 나온다.
히 11:35-40 / 그리고 어떤 여자들은 믿음이 있었으므로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차 더 나은 생명의 부활을 얻으려고 감옥에서 풀려나는 대신 매 맞고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유의 몸이 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36) 어떤 사람들은 조소당하고 매 맞고, 다른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37-38) 어떤 사람들은 돌에 맞아 죽고, 어떤 사람은 톱에 두 동강으로 잘려 죽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고 풀려나기 보다는 칼에 맞아 죽는 편을 택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변장을 하고 광야와 산을 방황하였고 동굴이나 토굴에서 숨어 살며 굶주림과 병과 학대에 시달려야 하였습니다. 39) 이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것을 전부 다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4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두신 것을 그들에게도 주시려고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지라도 천국을 얻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음을 외치는 것이다. 천국은 자신이 일평생 벌어들인 모든 소유를 다 투자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보물은 발견하는 것보다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자는 발견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사고 보화를 소유했다. 모든 것을 팔아 하나를 사는 희생이 보물을 가치 있게 하는 법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땅의 모든 여인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사랑이다.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더 이상 조약돌에 미련을 갖지 않게 된다. 태양을 발견한 사람은 더 이상 촛불에 연연하지 않는다. 과연 나는 감추인 보화, 천국을 발견하였는지?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는지? 그를 만나고 너무 기뻐서 잠 못 이룬 적이 있는지?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 흘린 적이 있는지? '오, 주님' 하고 소리친 적이 있는지?
■ 한 소년이 길을 가다 기진맥진한 흑인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숨을 불규칙하게 몰아쉬며 죽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집이 어디세요?” 소년이 묻자 노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힘없이 “나는 집도 자식도 없단다. 나의 고향은 있지만, 그곳에 가도 옛 친구들이 다 세상을 떠 만날 수 없지. 나의 갈 곳은 오직 천국뿐이야.”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되었을 때 흑인 노인을 회상하며 불후의 명곡을 작곡했다. 이 곡이 바로 미국 민요의 아버지인 포스터가 작곡한 ‘올드 블랙 조’이다. 이 세상은 나그네의 길이다. 돌아갈 우리의 고향은 하늘나라이다. 인생의 집을 짓기에 몰두하지 말고 천국의 집을 짓자.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자. 주님!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그는 땅의 것에 집착했던 사람이었다. 사울은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정통 유대인이었고,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왕을 배출해낸 왕족의 가문 베냐민 지파였다. 또 율법으로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바리새인이었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며 유대인들의 추앙을 받던 사람이었다. 또한 당시 최고의 학교라 불리던 가말리엘 학파 출신이었고, 권력의 핵심이었던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기도 했다. 사울은 실로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사람이었다. 사울은 성공을 굳히기 위해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 멀리 다메섹까지 쫓아가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사울이 그렇게도 증오하며 핍박을 하였던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한낮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빛으로 사울을 찾아오셨다. 그때 사울은 그 빛 가운데에서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했다. 그 빛 때문에 3일 동안 눈은 멀었지만, 감추어진 보화를 볼 수 있었다. 그 후 사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바울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겼다. 왜냐하면 참된 보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 생애 즉 생명까지 그 보화에 쏟아 부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베드로는 그물을 버렸고 야고보와 요한은 배를 버렸다. 어부들에게 그물과 배는 전 재산이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렸다. 이것은 1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값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물과 배를 버렸고 옥합을 깨트렸다. 예수님을 통해 감추인 보화, 천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추인 보화를 찾았는가? 예수님을 위해서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려본 적이 있는가? 예수님을 위해서 옥합을 깨트려 본적이 있는가? 예수님 생각에 잠 못 이루고 기뻐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커서 물동이를 버리고 뛰어다녀 본 적이 있는가?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 없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출발에 불과하다. 내 안에 풍성한 생명이 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고가 필요하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재론한다. 바울은 나사렛 예수님을 깊이 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기 부인과 수고를 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9)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을 얻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달려간다고 하였다.
빌 3:10-11 /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던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11)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이 가지는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바울은 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한 후에 자신의 모든 것 다 팔았고, 목숨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다.
행 20:24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롬 8:38-39 /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죽음도 그렇게 할 수 없고, 생명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천사들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옥의 모든 세력을 다 합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멀리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오늘에 대한 우리의 염려도 내일에 대한 우리의 공포도 39) 또는 하늘 높이 올라가거나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가거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간에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한번은 유대 지도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가지고 왔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네가 나를 선하다고 하였느냐? 그러나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하신 이가 없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알지 않느냐?”, “저는 그 모든 것을 어릴 때부터 지켜 왔습니다.” 청년의 이 말에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유심히 바라보시고 대견해 하시며,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그에게 조언을 해 주셨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만일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다가 네 재물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예수님이 대견스럽게 보시던 그 청년은 이 말씀을 듣자 침울한 표정으로 가버렸다. 그는 큰 부자였기 때문이다(눅 18:18-23).
눅 18:28-30 / 베드로가 말하였다. “저희는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주님만을 따라왔습니다.” 2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는 사람은 30)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의 보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을 빠뜨리지 말자.
많은 교회, 부흥강사들(?)이나 혹자들이 말하고 생각하듯이 헌신하여 물질(시간, 마음)도 드리고 온몸을 다해 교회를 위해 충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계명(敬天愛人)을 지키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라고 했고, 예수님도 첫 선교 여행 중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라고 하셨다. 제자들도 “회개하라”(막 6:12)라고 했고,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망하리라”(눅 13:5)라는 예수님의 경고도 있었다. 왜 이렇게 천국 가기를 원하면 회개하라고 하셨는지? 회개하지도 않고 갈 수 있는 천국이라면 그런 천국은 천국이 아니다. 천국은 죄인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거룩한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하여 메시아로 이 땅에 내려 오셨다.
요 3:16-18 /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보내셨다. 18) 그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어둠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인으로 판단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서 죄인으로 판단받았다는 것은 곧 빛이 하늘로부터 세상에 들어왔는데도 그들이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죄짓기를 즐기고 하늘의 빛을 싫어한다. 자기들의 죄가 드러나서 수치를 당할까봐 빛을 멀리한다. 그러나 올바른 행실을 하는 사람들은 즐겨 빛으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 회개란 마음을 바꾸고 돌아선다는 뜻이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로서 죄성을 갖고 태어났기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생각, 감정, 태도, 언어, 행동, 습관들이 발견되면 그것에서부터 돌아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라는 말씀처럼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서 자신과 주위에 고통이 시작되면 속히 깨닫고 돌아서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생명이 살아난다.
예를 들어 내게 나쁜 말버릇이 있음을 스스로 느끼거나 지적을 받으면 바로 돌아서서 좋은 말을 쓰는 습관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잘못에서 돌아서면 거기가 천국이 된다. 회개에는 두 가지가 있다.
❶ 큰 회개로서 죽음과 지옥으로 가던 발걸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단번에 돌이켜 천국과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다(요 5:24). 하나님을 계속 거부하고 무시하면 영원히 죽는다. 예수님은 죽음과 지옥으로 가던 죄인들을 살리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셨다. 빛과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큰 회개이다. 이 돌아섬은 한 번으로 족해야한다.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영적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큰 것은 ‘믿음+회개=거듭남’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고는 구원은 있을 수 없다. 기적을 베풀기 위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어드리는 것이다.
❷ 작은 회개들이다. 일상생활에서 저지르는 작은 실수들에서 늘 돌아서야 한다(요일 1:9). 작은 잘못들을 그냥 두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듯 결국 죽음에 이르는 파멸이 따라온다. 아무리 작은 잘못일지라도 즉시 회개해야 한다. 나쁜 태도, 습관적 반항, 무시하는 말과 행동, 미움과 질투 등에서 돌아서서 계속 가면 하늘나라가 있다. 우리에게 돌이켜야 할 것이 있으면 속히 돌아서야 한다. 하루라도 더 오래 두면 무너짐이 심해진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의 길이 시작되고 죄의식에서 벗어나 하늘나라를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말씀이 또 하나 있다.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다. ‘주님, 형제가 제게 죄를 지었을 경우에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아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어라.’(마 18:21-22)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로서 지키기 어려운 말씀일까? 다음 말씀을 보고 항변을 멈추자. 하나님께 용서와 사랑을 받았다면 어떻게 자기에게 용서와 은혜를 구하는 사람의 청을 모른 척할까?
마 18:23-35 / [무자비한 사람의 비유] 하늘나라는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정해진 날에 셈을 맞춰 보는 것에 비할 수 있다. 24) 셈을 하는 중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 나왔다. 25) 그가 빚을 갚을 돈이 없음을 알자 왕은 그의 아내와 자녀들과 그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는 왕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제발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빌었다. 27)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놓아 보내며 빚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사람을 만나자 멱살을 잡고 당장에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29) 그 사람이 엎드려 조금만 시간 여유를 달라고 빌었으나 30)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다른 종들이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고해 바쳤다. 32) 그러자 왕은 용서해 주었던 그를 불러서 말하였다. ‘이 악독하고 뻔뻔한 놈아! 네가 애걸하기에 불쌍히 여겨 내가 그 엄청난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33) 그러니 내가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남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왕은 몹시 노하여 그를 형리에게 보내고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게 하였다. 35)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진심으로 네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에서 기도를 이렇게 하라고 하시면서 재차 강조하신 말씀을 우리 역시 잘 알고 있다.
마 6:12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마 6:14-15 / 만일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멸망해 가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탄식의 말씀과 동시에 저들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길까지 제시하여 주셨다.
사 1:2-9 /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 기울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키우고 정성껏 돌보았던 자식들인데 바로 그것들이 나에게 반항하고 떠나 버렸다. 3) 나귀나 소 같은 짐승도 제 주인을 알아보는데, 자기를 보살피는 주인에게 고마워하는데, 이스라엘은 그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무슨 일을 해주어도 내 백성은 아랑곳없구나. 4) [유다 민족의 비가(悲歌)] 오 범죄한 백성아, 아 서글프구나. 죄짐에 눌리어 허리를 굽히고 걸어 다니는 족속아! 너희 조상들도 하는 짓마다 죄악뿐이더니 너희도 하는 짓마다 그뿐이로구나. 그저 주님에게 등 돌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우습게만 아는구나. 너희는 내게서 멀리 떠나 내 도움받을 생각은 하지도 않는구나. 5-6) 오 내 백성아, 너희가 그렇게 벌 받고도 아직도 부족하냐? 너희가 어찌하여 계속 벌 받을 짓만 하느냐? 끝끝내 반역할 수밖에 없더냐? 너희는 머리끝에서 발바닥까지 병들고 지치고 시들었으며 온갖 상처와 종기와 채찍 자국으로 뒤범벅이 되었으나, 약을 바르고 싸맨 곳이 하나도 없구나. 7) 너희 국토는 허허벌판이 되어 버렸다. 너희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이방인들이 닥치는 대로 파괴하였다. 다 털어가 버렸다. 수확철이 지난 다음 벌판에 홀로 남은 양 떼처럼 이방인들이 농작물을 다 털어 간 다음 들녘에 홀로 남은 망대처럼 너희는 쓸쓸히 버려졌구나. 8) 그래, 내 딸 시온만이 겨우 남았구나. 포도밭에 남아 있는 초막처럼, 참외밭에 남아 있는 원두막처럼, 적들에게 에워싸인 성읍처럼 그렇게 남아 있구나. 9) 만군의 여호와께서 간섭하고 나서서 우리들 중에서 몇 사람이라도 건져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우리가 고모라보다 무엇이 낫겠느냐?
그렇다면 저들의 하나님께 번제와 더불어 희생제를 드리지 않았다는 말인가? 누가 보더라도 그 당시의 종교적 행위는 지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종교적 행위는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에 불과한 거짓일 뿐이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의지가 빠진 상태에서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마음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 1:10-17 / [거짓 예배] 너희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아, 똑똑히 들어라. 너희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냐? 주님의 말씀을 똑똑히 들어라! 주께서 너희에게 하시는 말씀을 똑바로 들어라!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가 바치는 짐승의 제물이 역겨워 죽을 지경이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내게로 가져오지 마라. 너희가 바치는 살찐 숫양에 나는 질려 버렸다. 너희가 잡아서 바치는 제물의 피는 보기도 싫다. 12-13) 범죄한 것은 뉘우치지도 않는데 누가 너희의 희생제물을 달갑게 받겠느냐? 너희가 내게 살라 바치는 향불도 내 코에는 악취일 뿐이다. 너희가 거룩하게 지키는 초하루와 안식일과 특정한 날에 모이는 금식 기도회가 아무리 경건한 모임인 체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다 사기 행각이 아니냐? 나는 그런 것들과 더 이상 상관도 하기 싫다. 14)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미워한다. 나는 그런 것들을 보기만 해도 견딜 수가 없다. 15) 이제부터는 너희가 하늘에 두 손을 펴고 기도하더라도 나는 쳐다보지도 않을 뿐더러 아예 듣지도 않겠다. 너희가 수도 없이 기도한다 해도 나는 귀를 막아 버릴 작정이다. 수도 없이 사람을 쳐 죽이고도 그 손을 쳐들고 또 내게 기도드리다니! 16) 몸을 씻어라. 깨끗이 씻어라. 내 앞에서 못된 짓은 하지 마라. 그래, 이제는 악한 짓을 그만두어라. 17) 이제는 바른 일을 배워 행하여라. 정의를 실천하여라. 압제당하는 자들을 풀어 주어라. 고아들의 슬픔과 과부들의 한을 풀어 주어라.’
하나님께서는 멸망을 눈앞에 둔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셨다.
사 1:18-20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우리가 이 문제를 상의해 보자! 너희가 아무리 죄악에 찌들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너희의 죄악을 씻어 주리라. 금방 떨어진 눈송이보다도 더 희게 하리라. 너희가 진홍같이 붉게 물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너희를 양털처럼 희게 씻어 주리라. 19) 너희가 내 도움을 받으려고만 하면, 너희가 내 말을 듣기만 하면, 너희는 땅이 내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으리라. 20) 그러나 너희가 계속 내게 등을 돌리고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오히려 너희가 원수들에게 잡아먹히리라' 주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 계명을 지키라는 것은 괴롭히려는 것이라 풍성한 은혜를 주시려는 것이다.
신 28:1-13 /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한 주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세상의 모든 민족들보다 높여 주실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다음과 같은 복들이 모두 여러분에게 이르러 여러분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 13) 그러므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는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지켜 행하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을 귀히 여기고 생명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이다. 이에 사도 바울은 거듭난 골로새 교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매우 상세하게 설명했다. 먼저 거듭난 것을 강조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먼저 하늘나라의 것으로 생각을 채울 것을 말했다.
골 3:1-4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여러분도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니 하늘에 있는 풍부한 보화와 기쁨에 눈을 돌리십시오. 그곳에는 그리스도께서 영예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2) 하늘나라의 것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채우십시오. 이 세상일을 염려하느라고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3) 마치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도 이 세상에 조금도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참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4) 우리들의 참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빛나며 그분의 모든 영광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 즉 하늘나라 백성으로서의 생활 원칙]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골 3:5-17 / 그러므로 죄에 가득 찬 세속적 욕망을 버리십시오. 여러분 속에 파고드는 악한 욕망을 죽이십시오. 성적인 죄, 부정, 정욕, 수치스러운 욕망을 끊어 버리십시오. 이 세상의 금전과 쾌락을 흠모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릴 것입니다. 7) 여러분이 이 세상에 속해 있을 때는 여러분도 그런 생활을 해왔습니다. 8) 그러나 지금은 분노와 증오와 저주와 더러운 말과 같은 때 묻은 옷을 벗어 버릴 때입니다. 9) 거짓말로 서로 속이지 마십시오. 거짓말은 모든 악행만을 일삼던 여러분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10) 여러분은 완전히 새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새사람은 계속해서 옳은 일을 더욱더 배우려 하고 여러분 속에서 새 생명을 창조하여 주신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11) 이 새 생명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국적이나 인종이나 교육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 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12)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새 생명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배려를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겸손하게 온유와 인내로 13) 관용을 베풀어 언제나 남을 용서하고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고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14)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모두를 완전하게 하나로 묶어 주는 띠입니다. 15) 그리스도께 받은 평화가 항상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에 깃들이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여러분의 책임이며 특권입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교훈을 마음에 간직해 그분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풍부하게 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지혜롭게 되어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17)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간에 주 예수의 대리인으로 행동하고 주 예수와 함께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를 드리십시오.
■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 / ‘천국’하면 사람들은 저 높은 하늘 끝 우주 어디 엔가 있는 줄 알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런데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 눈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눈썹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천국도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너무 가까워서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내 안에 즉, 내 마음 안에 천국이 있다. ‘내 안에 천국이 있다고요?’ ‘예... 마음을 뒤덮고 있는 검불을 걷어내면 거기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85%는 과거의 추억, 한, 설움, 원망, 지식, 선입견, 경험 같은 잡동사니로 채워져 있고, 약 10%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 두려움, 불안함이 차지하고 있고, 현재, 지금의 의식은 5%정도라고 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안 가본 곳에 가면 왠지 낯선 느낌이 드는 것은 '현재의 의식'이 5%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평상시에 우리의 마음의 95%는 걷어내도 되는 것들로 덮여있다는 것이지요.’ 어떤가? 걷어낼 것을 걷어내면 그 뒤에 뭔가 있을 것 같지 않을까?
■ 조지 베벌리 쉐어(George Beverly Shea)라는 캐나다 출신의 복음성가 가수가 있었다. 그는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의 일원이 되어 전도하는데 앞장을 섰다. 그는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굵고 아름다운 바리톤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라디오의 전속 대중가수가 될 행운의 기회가 와서 그 길로 나가려고 할 때 어머니(뤼 밀러 목사의 부인)성경책에서 쪽지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금이나 은보다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리. 큰 재물 갖느니보다 차라리 주 예수의 것 되겠네. 큰 집과 넓은 땅 갖느니보다 차라리 주 예수 가지리. 못 박힌 손에 이끌림이 차라리 나으리라.” 조지 베벌리 쉐어는 이 글에 은혜를 입어 단숨에 곡을 붙였습니다. 찬송가 94장에 이렇게 의역되었다.
♬ 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2절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3절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못해
■ 성자 프랜시스의 제자들이 빙 둘러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이제 막 숨을 거둘 때가 되자 갑자기 프랜시스가 어린 아이와 같이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성 프랜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지금도 창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엄숙한 순간에 좀 더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시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 소리를 듣고서 성 프랜시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책을 떨었지. 미안하네. 그러나 내가 이제 곧 천국에 가서 꿈에도 그리던 예수님을 만나 뵌다는 사실을 생각하니까 너무나도 기뻐서 그 감격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천국의 기쁨을 소유한 자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 최근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천국에도 전화가 있고 지옥에도 전화가 있어서 좌석 예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천국의 전화번호는 66-3927이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11-1111이란다. 그 이유는 구약성경의 권수 39와 신약성경의 권수인 27을 합한 66이 천국의 국번이 되고 39와 27이 그 고유번호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최고라는 일류의식 등 자기만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합쳐서 11-1111이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천국의 전화번호보다는 지옥의 전화번호가 훨씬 외우기가 쉽고, 따라서 지옥의 좌석 예약자들이 천국의 좌석 예약자들보다 더 많다는 정보는 이해가 간다. 천국 좌석을 예약하려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지옥 좌석을 예약하려면 자기가 최고라는 주장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당연히 천국 좌석 예약은 어렵고 지옥 좌석 예약은 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로 목회자였던 마빈 감독이 내란으로 인하여 그의 가족과 집을 떠나 아캔자스 지방의 황야를 홀로 헤매고 있을 때였다.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실망과 고독스런 마음으로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을 때에 한 여인의 찬송 소리를 듣게 되었다. "천국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와 같은 찬송 소리에 이끌려 발길을 그곳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찾아 들어간 곳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낡은, 가난한 과부가 홀로 살아가는 집이었다. 뜰에 앉아 무슨 일을 하면서, 낡은 쌤을 입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행복에 쌓여 그 여인의 얼굴은 소망의 빛으로 가득해 보였다. 한참 동안이나 넋을 잃고 여인이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듣고 있던 마빈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오! 나의 하나님! 나도 주께로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나를 주께로 가까이 이끌어 주옵소서!"하고 외친 다음 여인과 함께 찬송을 불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마빈 감독은 그때의 경험을 기록했다. "세상의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지독한 가난함 속에서도 주와 함께 사는 한 여인이 부른 찬송은 수만 명의 설교자들보다 더 분명하게 나의 심령을 울려주었다." 이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서 부르는 찬송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 것임을 알게 하는 말이다.
■ 영적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어떤 것보다도 천국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얼굴을 갈망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만족을 얻을 수 없어 탄식하며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 즉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보기를 간절히 사모했다. 18세기 미국의 청교도 설교가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 영혼을 만족게 하는 유일한 행복이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온전한 기쁨을 누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좋다. 아버지, 어머니, 남편과 아내, 자녀들, 또는 세상 친구들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18세기 북미 인디언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역시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1742년 6월 15일 화요일, 내 생애에서 가장 간절하게 하나님에 대해 갈망했던 날이다. 정오 경에 나는 외딴 곳에서 달콤한 적막 가운데 나의 주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주님, 제가 오직 당신만을 갈망하며, 오직 거룩하기를 갈망한다는 거 아시지요. 당신이 저에게 이런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제게 그런 마음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 에드워즈, 브레이너드처럼 우리 보물이 천국에 있을 때, 우리 마음은 다른 어떤 것보다 천국을 애타게 사모할 것이다. 성숙의 과정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천국의 거룩함에 대한 열망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 당신의 영적 건강을 진단하라 / 도날드 휘트니
■ 2001년 9월 11일, 테러사건 전의 뉴욕 세계무역센터는 110층이었다. 독일의 건강한 청년이 1층에서 110층까지 계단을 이용,올라가는 데 소요된 시간은 1시간 40분이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했으나 30층쯤 올라가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숨을 헐떡거렸다. 그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20개 층을 오르고 다시 쉰 뒤 10개 층씩 올라갔다. 그는 마지막 층에 오르자 기진맥진해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1층에서 110층까지 오르는 데 28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다. 체력 재능 지혜 지식은 언젠가는 소진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다. 천국은 사람의 행함으로 가는 곳이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간다. 믿음은 맡김이다. 죄와 염려, 행사를 모두 맡기는 것이다. 주님께 우리의 몸과 생애를 맡길 때 주님은 천국의 엘리베이터가 되신다. 가고자 하는 층의 버튼을 믿음으로 누르기만 하면 주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 지옥과 천국의 차이 / 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도착했는데 베드로에게 지옥의 모습을 한번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베드로는 그를 데리고 지옥으로 갔다. 마침 그때가 점심시간이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식탁에 진수성찬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다. 지옥사람들의 손에는 모두 1미터가 넘는 긴 젓가락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그것으로 음식을 집어 자신의 입에 넣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긴 젓가락에 매달린 음식은 자신들의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옥은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로 아비규환을 연출하고 있었다. 천국에 와보니 그곳에서도 똑같은 식탁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천국사람들의 손에도 1미터가 넘는 긴 젓가락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천국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천국사람들은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상대방에게 먼저 먹여주고 있었다. 지옥은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곳이다. 천국은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곳이다.
■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무엇보다도 먼저 최고의 사랑을 요구하실 것이다. 우리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그는 우리의 지상의 가장 귀중한 관계들을 배제하시고 “너는 이 모든 것들을 미워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인상적인 말씀을 하신다. ‘미워하다’라는 용어는 상대적인 용어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용어는 아니다. 그는 여러분과 나에게서 우리가 최초로 느끼는 사랑, 즉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우리의 가장 귀중한 사랑 즉 우리 자신의 생명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요구하신다. W.Y.플러튼
■ 율법의 정신 / 굉장히 가난한 아주머니 한 분이 슈퍼마켓에 갔다. 그녀는 빵과 우유를 샀지만 고기를 몇 근 훔쳤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할 때 그녀는 빵값과 우유값만 지불했다. 그런데 계산하던 아가씨가 “아줌마, 그 가방 좀 열어 보세요.”하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열지 않겠다고 우겼으나 경찰이 왔을 땐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가방에서 고기가 나왔다. 그녀는 당연히 경찰서로 끌려갔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재판관만이 형법을 사용하여 선고를 내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법을 만든 사람들이며 법을 잘 알 뿐만 아니라 그 법의 뒤에 있는 정신까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관은 그 가난한 아주머니를 부드럽게 심문했다. 그러다가 그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현재 다섯 명의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것, 집도 없으며, 몇 달 동안 기름진 음식이라곤 한 번도 입에 대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정을 알게 된 재판관은 그 아주머니를 감옥에 보내는 대신 그 가족이 살기 적절한 집을 제공해 주고, 연금을 지급받도록 해주었다. 이 재판관에게는 법의 정신이 법조문보다 더 중요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하다 붙잡혀 온 어떤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 하는 형식에 치우친 사람들의 행위를 저지하셨다. 예수님은 율법의 제정자인 동시에 남자와 여자의 마음을 잘 아시는 분이었다. 예수님은 그 연인의 주위 환경을 아셨으며, 그녀가 지금 회개했다는 사실도 아셨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 율법 그 자체보다 율법의 정신이 예수님께는 더 중요하다. - 인간 심성의 외침,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
■ 친절은 가장 큰 무기이다 / 어느 내무반에 한 믿음 좋은 병사가 있었는데 그 병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늘 놀림을 당했다. 어느 날 저녁 한 상사가 병사의 오른 뺨을 군화로 힘껏 후려치고는 ‘너희 기독교에서는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민다면서’라고 조롱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날 아침 상사는 자신의 군화가 반들반들하게 닦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상사는 누가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주변에도 우리를 괴롭히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럴 때 쓸데없는 감정 소비하기 보다는 친절을 베풀자. 친절 이상으로 힘 있는 무기는 없다.
■ 죄에 대해서는 민감하라 /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란히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이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너무 아픈 나머지 그리스도인은 불평 섞인 욕을 해댔다. 그러나 잠시 후 욕을 했던 것을 회개하면서 “주님,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때로는 너무 힘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비그리스도인이 입을 열었다. “여보게! 뭘 그런 걸 다 회개하나? 삶을 좀 자유스럽게 살게.” 순간 우리는 비그리스도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그만 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죄를 짓고도 자신이 지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 마르틴 루터의 변화 / 마르틴 루터의 고민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근본적인 죄의 문제였다. 지금까지 범한 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결하게 충성하려는 그에게 끊임없이 찾아와 그의 정결을 깨뜨리며 주님께 충성하기보다는 썩어질 정욕을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끊임없는 죄의 도전이었다. 과연 이렇게 본질적으로 썩어버린 인간에게도 소망이 있을까? 이러한 인간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을까? 마르틴 루터는 죄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서 기도도 많이 했으며 말씀 묵상 연구도 많이 했으며 저 유명한 28계단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것도 시도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샘솟는 죄의 정욕은 결코 이러한 루터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로마서를 연구하다가 드디어 이러한 죄인에게 비추는 하나님의 빛을 발견하였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정욕의 사람, 죄악의 사람, 더러운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그들의 죄를 예수님의 몸에 담당시켰다. 불꽃같은 눈으로 인간을 살피시고 인간의 죄악을 미워하며 불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차라리 그 모든 심판을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께 내리시고 그 대신 심판받아 멸망 받았어야 할 인간도 용서하시고, 받아들여 자녀로 삼으시려는 놀라운 결단을 내리시고 그 일을 행하셨음을 몸으로 깨달아 알았을 때에 루터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후 루터는 하나님 외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았다. 인간의 죄는 인간의 공로나 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다. 교황청이 죄의 용서를 빙자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면죄부를 판매한다는 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다. 루터는 드디어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城)교회의 정문 앞에 걸어 놓았으며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기게 된 것이다. 이것은 그의 삶을 통하여 얻은 몸의 진리요 말씀에서 발견한 것이다. 어느 누가 이 진리를 취소하라고 할 수가 있을까? 이때 루터는 담대히 외쳤다. “나는 지금 여기 왔소. 이외에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소. 하나님께서 나를 도울 것이요.” 루터는 힘 있게 거절을 하고 종교개혁을 위해서 생명을 다하여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였다.
♬ 384장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2.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마귀들 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찬송은 루터파 교회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모든 교단에서 애창한다. 그리고 독일 국민들은 국가(國歌)보다 더 애창한다고 한다. 이 찬송은 1529년 비텐베르크에서 출판된 독일찬송가에 ‘시편 46편’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이 최초이다. 1529년 로마공교회에 대한 이단자라는 심판을 받기 위해 ‘웜스 의회’에 올라갈 때에 많은 지인들이 올라가면 순교당할 것이라고 만류했지만 루터는 목숨을 걸고 올라갔다. 루터는 “웜스에 모여드는 악마의 수가 그곳의 기왓장만큼 많을지라도 나는 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웜스 의회에서 루터가 말하고 저술한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공민권을 박탈하여 보호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 위협했을 때 루터는 성경과 자기 양심으로 주장한 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하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Here I stand. God help me!)라는 기도를 올렸다. 이 찬송은 시편 46편의 말씀으로 영감을 받아 작사했다고 한다. 루터는 신학교에서 시편에 대하여 강의도 하여 그 내용이 루터전집에 기록되어 있다. 루터는 로마공교회의 성가대만 부르던 찬송가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평생 38편의 찬송가를 써서 불렀다. 그 중에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가장 유명한 찬송가이다. 토마스 카라일(Thomas Carlyle)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감격 중에서 영어로 번역하면서 “이 찬송은 알프스산의 눈사태 치는 소리나 가까와 오는 지진 소리와 같다.”고 격찬했다. 바하(J. S. Bach)도 평생 이 찬송을 좋아하여 애창했고, 이 곡조로 ‘칸타타’를 만들었다. 콜리지(Coleridge)는 “루터가 그의 성서번역으로 종교개혁을 추진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찬송으로 그것을 추진시켰다.”라고 말했다. 루터 자신은 물론 그와 함께 극심한 핍박 중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개혁가들이 이 찬송을 부르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찬송은 영적인 군가라 하겠다.
독일어로 되어 있는 마르틴 루터 작사 작곡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A Mighty Fortress is our God.)를 직역(直譯)하면 이렇다
우리 하나님은 강한 성이요 우리 하나님은 강한 성이시요, 결코 실패하지 않는 보루이시네;
홍수 같이 창궐하는 치명적인 병 중에도, 그는 우리의 도움이시라:
아직도 우리의 옛 원수는 우리를 해치려고 찾고 있다;
그의 계략과 힘이 크고, 잔인한 미움으로 무장했으니, 땅에는 그를 당할 자가 없구나.
우리가 우리의 힘을 의뢰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이 택하신 사람, 그 사람이 우리 곁에 계시지 않으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 세세에 동일하시도다, 그는 반드시 그 전쟁을 이기십니다.
마귀들로 가득 찬 이 세상이 우리를 파멸한다고 위협하여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진리가 우리를 통하여 승리하기를 원하시네;
무서운 어두움의 왕을, 우리는 두려워 떨지 않네;
그의 분노를 우리는 견딜 수 있네, 왜냐하면 보라, 그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도다,
한 작은 말씀도 그를 넘어뜨릴 것이다.
그들에게 감사한 일은 아니지만, 이 땅의 모든 권세보다 그 말씀이 살아 있도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예수)를 통하여 성령과 그 은사가 우리의 것이네:
재물과 친척과 이 육체 역시 없어지게 해보라;
그들이 몸은 죽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는 여전히 살아 있도다, 그의 왕국은 영원하리라.
결 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성찬을 나누시며 긴 말씀을 하셨는데, 그중에 눈여겨 볼 말씀이 있다.
요 14:23-24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실 것이고, 아버지와 나는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내 말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기억하라. 너희 질문에 대한 이 대답은 내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일러주신 것이다.
요 15:7 /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 안에 살며 내 말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거든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서 수가성 여인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생수를 얻고자 원한다면 먼저 회개할 것을 지적하셨다.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요 4:16) 그러자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말이 옳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너와 같이 사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한 것이다.’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는 예언자이십니다. 그러니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조상들은 이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왜 유대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유일한 예배 장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여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온다. 예배는 어디서 드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하다. …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버지께서 이런 예배를 우리에게 원하신다.’ 여자가 말하였다.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모든 일을 우리에게 다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다.’ …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세요. 나의 지난날을 낱낱이 알아맞히신 분이 계십니다. 와서 그분을 만나보세요.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보려고 동네에서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다(요 4:17-30).
딤후 2:20-21 /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이 말씀의 요점은 이것이다. “네가 금그릇이냐? 은그릇이냐? 질그릇이냐? 나무그릇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네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먼저 불의한 일에서 떠나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그런 사람은 누구든지 금 그릇처럼 귀하게 사용될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는 달리 자기를 깨끗하게 한 사람이 제일 귀한 그릇이라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있다. 사람들은 무턱대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했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모르고 있다. 목사나 장로는 귀하게 보고 집사나 일반교인은 낮게 보는 것은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 귀한 그릇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직분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쓰임 받느냐?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하느냐?” 이다.
자기를 깨끗한 사람은 어느 위치에 있든지 하나님이 쓰시고자 할 때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하인들처럼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이웃에게는 기쁨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들을 귀한 ‘복음의 편지, 섬김의 향유, 주님의 기쁨, 사랑의 샘물, 은혜의 통로, 축복의 통로, 복 있는 사람, 순백의 영혼, 맡은 일 충성, 행복한 전도자, 기적의 통로’로 쓰실 것이다. 그리고 저들로 하여금 범사에 감사하며 쉼 없이 기도하며 주님 뜻대로 살게 하실 것이며, 정직한 예배자로 하늘에 속한 자로 평생을 살게 하실 것이다.
♬ 508장 1.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세 <후렴>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2. 주 예수 말씀이 온 세상 만민들 흉악한 죄에서 떠나라 하시니 이 말씀 듣고서 새생명 얻으라 이 기쁜 소식 전하세
3. 영생의 복락과 천국에 갈 길을 만백성 알도록 나가서 전하세 주 예수 말씀이 이 복음 전하라 우리게 부탁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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