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요, 아가씨. 사랑해!” 손녀와 오늘의 Zoom 수업을 마쳤다. 한 타임, 40분. 여러 번 하니 마니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가슴에 안고 있는 손녀에게 기본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구실 아래 강제로 수업을 진행해 온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든 것과 다름없었다.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항상 가지고 수업을 해 왔다. 몇 번이나 기약 없이 빠지고 반항하며 뻗대기도 했었다. 다행히 여름 방학 기간 대구에서 지낸 며칠, 비록 다투고 삐쳤지만 서로 이해하였고, 다독인 결과 나름 이젠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었다. 먼저 대화방에 입장하기, 반드시 숙제하기, 하루 40분만 하기. 마치고 나면 반드시 ‘고맙다’ 인사하기 등 손녀와 할아버지 사이를 다정하게 유지 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였다.
“아빠! 새 차 뽑으세요” 시집가기 전날 첫째가 봉투를 내민다. 대구에서 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임용고시를 치러 발령을 받고, 집 떠나 객지에서 고생하며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애비 차 바꾸라고 준다. 시집가면 제 살기 바쁘니 그땐 마음이 있어도 하질 못한다며 억지로 손에 쥐어준다.
심청이가 제 아비 눈뜨게 공양미 3백 석에 몸을 던진다. 어린 나이에 아비의 처지를 알게 되었으니 내심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기 전에 제 아비의 처지가 먼저 떠오르고, 결국엔 스님에게 3백 석을 약속하고 아비의 눈을 떠도록 비는 행위를 하였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 부모화라 한다. [‘부모화(父母化:Parentification)-자녀가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는 현상. 자신의 발달 단계를 능가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양식.’ 김호현, ‘청소년 자아 성장을 위한 문학치료’ 학지사. 2023. 43쪽.]
첫째가 제 부모의 고된 삶을 보고 자랐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고3 담임교사 생활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리고 집 장만을 위하여 제 엄마가 3남매를 알뜰살뜰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지 등 고단한 제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어린 나이에 보고 느꼈다. 어린 맏이가 일찍부터 자신의 처지를 알아버렸다. 무언가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이 결국엔 이렇게 제 아비 손에 열쇠를 지어주었다.
과도한 책임감의 발로다. 이제 심리학 이론을 접하고 나니 효도라고 생각한 그때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미안한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진 빚은 갚아야 한다, 비록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모와 자식 간에 무슨 빚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늘도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가르치고 다독였다. 초등학교 과정의 구멍 난 부분이 아직도 한 번씩 놀라게 한다. 수업을 한 지 6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문득문득 나타나는 구멍은 메꾸어지지 않았다. 가장 기본을 다루었는데도 그리고 몇 번이나 설명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모르겠다는 표정이라든지 엉뚱한 답을 할 때는 가슴이 답답하다. 참을 인(忍)을 몇 번이나 새긴다. 귀여운 손녀에게 성질을 낸다는 것은 할비의 자격이 없다. 수양 부족이다. 조용히 웃으며 손녀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친구들은 얘기한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버지의 무관심과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다고. 할비가 가르치면 ‘손녀와 관계만 나빠진다.’ 의를 상하기 전에 돈으로 학원을 보내고, 전문가에게 맡기라고도 한다.
맞는 말이다. 경험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무리한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 문제를 안다는 것은 쌓이고 쌓이면 3년, 6년 후에는 1,000문항, 100개 이상의 이론과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Slow and Steady. 수학이든 영어든 만고의 진리로 통한다. 시간이 지나고 때가 되면 사랑하는 손녀에게 더 이상의 수학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사는 게 바빠 첫째에게 다해주지 못했던 사랑을 손녀 통해 되돌려주고 싶다. ‘부모화’한 첫째의 마음을 치유해 주고 싶다.
첫댓글 조손간에 수학을 가르치기가 어려운데 줌을 통해서 가르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가정의 화목이 돋보입니다.
부모화란 뜻을 알았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부모화심리~아들이 결혼하기 전에 내가 남편에게 받지 못한 다이아반지를 선물로 해준 일이 생각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