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02) 진궁의 최후
조조는 여포와 장요를 심문할 때와 달리, 패전한 여포의 모사 진궁(陳宮)은 자신이 직접 데리고 백문루(白門樓)로 올라왔다.
그곳에는 유비가 앉아 있다가 진궁을 맞아 두 손을 모아 읍하며 예를 표하였다.
조조가 진궁을 붙잡고 말한다.
"어서 자리에 앉읍시다."
그리고 이어서 진궁에게,
"공대 형, 중모현(中牟縣)에서 나를 구해준 은혜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진궁은 쌀쌀맞은 어조로 조조를 바라보며 말한다.
"조맹덕도 속이 꽤나 깊어졌군! 후회스럽구나. 성고현(成睾縣)에서 묵던 그날 밤, 내가 당신을 단칼에 베었어야 했는데...."
"음!... 이해 하오, 나도 이해 해!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오. 허허..."
"정말로 간교하고도 뻔뻔한 소인배! "
"하하핫, 공대 형! 그래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소. 대업을 달성하려면, 나를 찾아 왔어야지 왜, 여포에게로 간 것이오? 여포는 당신의 재능과 포부에 안 맞는데 말이오?"
그러자 침통한 얼굴의 진궁이,
"여포가 내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게야... 여포가 무지하긴 해도, 당신처럼 간교하지는 않지!"
그러자 조조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음! 그렇지! 여포가 너무 단순해서 문제지... 하하하핫!..."
조조는 웃고 난 뒤 다시 말한다.
"공대 형, 하나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데...."
"해 봐라!"
"내가 당신을 죽여야 하오? 아니면 살려둬야 하오?"
그러자 진궁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한다.
"흥! 그건 쉽지. 지금 당장 죽여라!"
하고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러자 잠시 말을 멈추고 진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조가,
"아까워, 정말 아까워!"
하고 한탄조로 말했다.
그러자 진궁이,
"그럼 나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지..."
"말해 보시오."
"나 진궁이 살아 있는 한, 과거 조맹덕이 행했던 추악한 행동을 입에 담고, 매일 같이 떠들고 다닐테니 말이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아서 조맹덕이 영원히 욕을 먹게 말이지."
이렇게 말한 진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큰소리로,
"모두들 들어라! 조맹덕이 과거 성고현에서 도주할 당시, 백부인 <여백사(呂伯奢)>의 도움을 받고도, 조맹덕은 은혜를 원수로 갚아, 여백사와 그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다! 그건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는 배은망덕 하게도 자신의 백부를 죽여버린 간사하고도 뻔뻔한 패륜아다!"
하고 손가락으로 조조를 가르키며 소리쳤다.
그러자 단하에 있던 조인이 휘하 병사들에게 명한다.
"끌고 가라!"
"옛!"
그러자 진궁의 외침을 아무런 표정없이 숙고하며 듣던 조조가 진궁에게 달려드는 병사들을 향하여,
"무엄하다!"
하고 말하자, 진궁에게 달려 들던 병사들이 행동을 멈추고 뒷걸음으로 단하로 내려갔다.
조조의 말이 이어진다.
"공대 형이 누구더냐? 내 생명의 은인이다. 내가 욕 좀 먹었다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지! 더구나 공대 형 말에도 일리가 있어, 옳은 말이야! 계속하시오, 계속. 마음껏 욕하고 한잔 합시다."
조조는 휘하 병사들과 진궁을 향하여 번갈아 말했다.
그러자 조조를 쳐다보던 진궁이 긴 한숨을 내쉬며,
"휘유~... 조맹덕! 이 정도 까지 철면피인 줄은 몰랐다!"
하고 경멸하는 어조로 말하자, 조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진궁을 향해.
"하!... 나 조조는 철면피가 아니라, 이 세상에 모든 고고하고도 세속적인 일을 마음 속에 두고 있지 않을 뿐이오. 모두들 나를 간웅이라고 하지만, 나를 어쩌지 못 하고 있지 않소? 당신처럼 자칭 군자란 자들도 나 같은 간웅에게 패하지 않았소?
만약 군자가 되는 댓가가 모욕당하고 짓밟히며 사라지고 죽는 것이라면, 차라리 난, 내 포부로 실현할 수 있는 간웅이 되겠소. 예로부터 천하의 간신은 충신과도 같다고 했소.
충의와 간의는 겉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니,어쩌면 당신들이 나를 잘못 봤을 수도 있소.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난, 여전히 나 일 뿐이며, 사람들의 생각 따위는 두렵지 않소. 공대 형, 말씀해 보시오. 내 말이 틀린 것이오?"
진궁이 대답한다.
"흥! 궤변은 그만두고 술이나 내오지!"
하고 퉁겨 말했다.
그러자 조조가 조인을 보고 말한다.
"내오라."
"넷!"
병사 하나가 즉시 소반에 술 두 잔을 받쳐들고 나타났다.
"드시오."
조조와 진궁이 각각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술잔을 내려 놓은 진궁이 단하를 향하여 명한다.
"도부수(刀斧手)는 어딧냐? 어서 이 진궁을 보내줘라!"
그 말을 듣고 조조가 진궁에게 다가가 손을 잡는다.
"공대 형, 마지막 길 배웅해도 되겠소?"
그러자 진궁이 조조를 바라보며,
"가지..."
하고, 쓸쓸한 대답을 하였다.
조조는 진궁의 손을 잡은채 백문루 단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 산위로 향했다.
산의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자 조조가 진궁을 부른다.
"공대 형! 집에 칠십이 넘은 노모가 계시지 않소? 당신이 죽으면 어찌하라고... 괜찮겠소?"
"음... 내가 알기로는 인의군자는 죄를 물을 때에도 부모에게는 묻지 않으니, 조맹덕 자네가 내 어머니를 죽이기야 하겠나? 오히려 양식과 은량을 주어서 평생을 돌봐주겠지."
"그렇소. 공대 형, 노모 외에도 아이가 둘이 있질 않소? 딸이 일곱 살, 아들이 다섯 살, 아직 어린데 당신이 가면 애들이 힘들어 할 텐데 괜찮겠소?"
"내 자식들도 물론 고생스럽기는 하겠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이겠지... 자네가 신경 쓸 것 없네, 어느덧 다 왔구먼."
진궁은 이렇게 말하면서 발아래 펼쳐진 산하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조조가 진궁의 손을 다시 잡으며,
"공대 형! 내가 부탁은 잘 안 하지만, 오늘만은... 진심으로 보내고 싶지 않소..."
하고 말을 하면서 진궁의 마음이 돌아서 주기를 바랬다. 그러자,
"내 자신이 진정 가고 싶어 그러네, 부탁하네. 원 대로 해 주게."
이렇게 말한 진궁이 발아래 산하를 굽어보며 말한다.
"멋진 강산이로다."
이윽고 조조가 뒤로 돌아서 나오자 도부수가 진궁의 뒤로 다가섰다.
"정말, 멋진 강산이야."
이 말을 끝으로 진궁은 갔다.
"주공, 우시는 겁니까?"
조조의 수행 장수가 조조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조조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헛소리! 누가 운다고 그러는거냐?"
이렇게 호통을 쳐놓고 돌아서면서, 조조도 진궁의 마지막 말을 되씹었다.
"멋진 강산이야! 멋~진 강산이로다!"
그리고 조조는 옷깃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렸다.
...
첫댓글 진궁.... 그래요. 조조한티 정나미가 떨어졌을께요.
하지만, 당신의 노모나 일곱살짜리 딸이나,
다섯살 짜리 아들를 그렇게 내팽겨 치다니....
간웅????? 간웅..... 이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 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