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선지자와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과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 비교
이사야 40장 3절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주(יהוה)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마태복음 3장 3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יהוה)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1장 3절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יהוה)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누가복음 3장 4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יהוה)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말씀 “너희는 광야에서 주(יהוה)의 길을 예비하라”은 신약성경에서 그대로 “너희는 주(יהוה)의 길을 예비하라” 이루어졌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말씀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은 신약성경에서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다르게 기록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말씀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여 오신 주(יהוה)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실 것이라고 기록되었고, 그 말씀 그대로 주(יהוה)님께서 오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말씀 ‘만군의 주(יהוה)가 이르노라...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은 신약성경에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은 주(יהוה)님으로서 1인칭 곧 주(יהוה)님 자신께서 오실 것임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주(יהוה)님의 1인칭 말씀 그대로 주(יהוה)님 1인칭으로 이루어졌으나,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주(יהוה)님의 1인칭의 말씀이 신약성경에서 예수 Iesu 예수스 Iesus 지저스 Jesus라는 2인칭으로 이루어졌다고 기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611kjv가 바른 진리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절
1 만군의 주(יהוה)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마태복음 11장 10절
개역개정 : 10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한글개역 수정 : 10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내 길을 내 앞에서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마가복음 1장 2절
개역개정 :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글개역 수정 : 2 선지자들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내 길을 예비하리라
누가복음 7장 27절
개역개정 : 27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한글개역 수정 : 27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내 앞에서 내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이와 같이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예언된 말씀이 신약에서 다르게 기록된 것은 신약성경의 원문이라는 헬라어 신약성경이 잘못 기록되었기 때문이고, 1611kjv가 신약성경의 원문이라는 헬라어 성경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0절
헬라어 : 10 Διότι ούτος είναι, περί του οποίου είναι γεγραμμένον· Ιδού, εγώ αποστέλλω τον άγγελόν μου προ προσώπου σου, όστις θέλει κατασκευάσει την οδόν σου έμπροσθέν σου.
1611kjv : 10 For this is he of whom it is written, Behold, I send my messenger before thy face, which shall prepare thy way before thee.
흠정역 : 10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하신 말씀이 가리키는 자가 곧 이 사람이니라.
상기의 성구는 신약성경의 원문이라는 헬라어 신약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 중에 현재까지는 유일하게 마태복음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고 그 히브리어로 기록된 마태복음을 “Shem-Tob’s Hebrew Matthew” 라고 합니다.
셈 토브 히브리어 마태복음 Shem-Tob’s Hebrew Matthew PDF 출처
http://adamoh.org/TreeOfLife.lan.io/SDAcomms/Hebrew%20Gospel%20of%20MATTHEW%20by%20George%20Howard%20-%20Part%20One.pdf
Shem-Tob’s Hebrew Matthew 셈 토브 히브리어 마태복음 11장 10절에 기록된 말씀은 히브리어 구약 성경 말라기 3장 1절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여 “This is he about whom it is written: Behold I am sending my messenger and he will make the way clear before me.” 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לפני 앞인가? 네 לפניך 앞인가?


이 말씀을 분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참고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1611년) 영어 성경 KJV는 맛소라 원본 하나만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당시 영국에서 번역되어 사용되어지던 뿌리가 바른 여러 성경을 총망라하여 수 년을 50여 명의 믿음의 학자 분들이 번역하였습니다.
제임스 왕의 명령으로 '여러 좋은 성경 중에서 더 나은 하나의 성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지금의 그 누구도 그 당시의 번역자 분들보다 히브리어[헤브레우]어를 더 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존 성경 중에서 신구유언[신구약]이 모두 합쳐진 단 하나의 성경'을 기준으로 잡아야 합니다.
참고로, 조도마님처럼 너무 융단적으로 글을 올리시지는 않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조규진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지 저의 주장을 늘어놓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제가 주장하는 것이 일방적인 것이라면 더욱 이곳에 올릴 이유가 없습니다.
찾는 이들도 적고 관심을 갖지 않는 카페에 글을 올릴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조규진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는 1611kjv가 몇명의 학자가 참여하여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변개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학자들의 면면이 아니라 주 예슈아님의 말씀이 증거하고 있는 진리를 바로 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1611kjv가 틀렸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조규진님이 바라보는 시각만으로 대화를 나누죠.
@최윤남(자유인) 자유인님께서 글의 뜻을 알리시고, 저의 믿음을 아셨으니, 시간을 두고 서로 참고하여 영적 유익을 삼았으면 합니다. 서로 주입하다 보면 논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믿음을 주장하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상대의 믿음이 어떤지 확인하고 성경에 재어서 같아지거나 영적 교제나 토론을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강제하거나 주입하는 것은 극히 삼가야 하겠지만...
항상 죄에 대한 통회와 구원 복음 위에서 교제하지 않으면, 지식논쟁으로 이어져 서로 상처를 주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구원 빠진 지식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님의 글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성경KJV조규진 저는 주(YHUH)님께서 예슈아(Yeshua)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예수 Iesu 예수스 Iesus란 이름이 어떤 이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알게 된 것은 영적인 지식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누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진리의 말씀을 다 알고 지켜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조규진님도 저도 거듭난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지식적으로 다르게 알고 믿고 있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하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조규진님께서 거듭난 성도로서 안식함이 없이 괴로운 마음을 토로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저는 이런 대화를 신청한 것이니 오해없으셨으면 합니다.
@최윤남(자유인) 아닙니다. 저도 저의 믿음을 알릴 뿐, 강제하거나 주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참고로만 삼으시기 바랍니다. 님의 의도를 알겠습니다. 지금 모임에서 떨어져 마음이 가라앉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님의 위로에 감사드립니다.
인칭 변화는 아버지 하나님께옵서 창조주·심판주로 직접 오시지 않고, 구원주[the Savior]로 오셨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옵서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스[Jesus: 예수]님께 '너[thou]'라고 지칭하신 것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지금은 위로주[the Comforter]이신 성령님으로 계십니다. 한 하나님이시지만, 죄를 대속하기 위해 아버지께옵서 피를 흘리실 수 있는 육신을 입으시고 아들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영어 성경 KJV에서는 구유언의 Jehovah[예호브흐아ㅎ: 여호와]란 하나님의 존함을 the LORD[Lord: 주님]으로 바꾸어 표기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육신의 아버지 존함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인칭변화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은 구약에서 말씀하신 주(YHUH)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이시고, 아들 하나님과의 관계는 나와 너라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이사야 9장 6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서의 말씀은 한 아기, 한 아들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라는 말씀과는 일치하지 않는 주장이십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40장 3절의 말씀 "너희는 광야에서 주(YHUH)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과도 일치가 되지 않습니다.
@최윤남(자유인) 하나님이 아버지, 성령님, 아드님으로 구분되지만, 하나님은 지금 셋째 하늘에 한 분만 계십니다. 예수스[예수]님께옵서 지금은 하나님이시죠.
아버지께옵서 직접 오시지 않고, 아들로 오셨으므로 신유언 성경 KJV 번역자 분들이 옮긴 것입니다. 변개가 아니라, 성경 기록자 분들이 옮겼고, 성경 KJV 번역자 분들도 뜻을 이해하고 옮긴 것입니다. 내용을 변개시킨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달은 것이지요.
님께서 위에 언급하신 이사이아ㅎ[Isaiah: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예수스님은 원래 아버지이십니다. 다만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피를 흘리실 수 있는 육신을 입으시고 오셨으므로 아들 하나님[the Son]이라고 칭하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성경KJV조규진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 한 아들로 오셨기 때문에 이사야 9장 6절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아들이라고 불리셨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아버지이셨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예수 Iesu 예수스 Iesus라는 이름의 근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611kjv가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다수의 영문 성경들이 있었으나,
이들 영문 성경들이 있기 전에 헬라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원문이라는 헬라어 신약성경이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헬라어 성경에 기록된 예수 Iesu 예수스 Iesus란 이름이 밝혀지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밝혀질 것입니다.
@최윤남(자유인)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옵서는 사도행전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사도 파울[Paul: 바울]의 복음을 배척함으로서 이스라엘에서 이방인들로 복음이 옮겨졌음을 상기하셨으면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헤브레우[hebrew: 히브리]어에서 Greece[헬라]어로 성경이 옮겨지고, 만국공통어처럼 영어를 쓰시기 위해 1611년 영국에서 영어로 번역케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님께옵서 하나로 합쳐진 하나의 성경[영어 성경 KJV]을 각 민족[국가]이 자기 언어로 번역하여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헤브레우어에 머물면 신약으로 마음이 옮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인들처럼...
@성경KJV조규진 저는 현재의 신약성경은 헬라의 다신론 사상을 따라서 기록되었다는 확인하였습니다.
저는 조규진님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시는 것에 놀라울뿐입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주(YHUH)님의 가르침을 벗어난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주(YHUH)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씀을 증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성경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여 오신 주(YHUH)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씀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헬라어 성경이 전하고 있는 예수 Iesu 예수스 Iesus라는 이름의 사상인 것입니다.
@최윤남(자유인) 이런 부분은 강한 충돌이 일어나는군요. 신약성경을 이렇게 인식하신다면, 예수스[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고, 따라서 심판받은 이스라엘처럼 예수스님을 부인하고 아직 구원자가 오지 않았다는 결론이 되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이나 헤브레우에 머무는 것은 지금의 이스라엘인들처럼, 자기가 지은 죄를 가볍게 여겨서, 죄에 대한 통회·심판이 빠져 구원을 받지 못함으로, 아직 예수스님의 피의 십자가를 통과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찬송시편[시편] 12편 말씀처럼 말씀을 기록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제가 성경을 번역(?)[공부]함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깨닫기 위함입니다.
@성경KJV조규진 엄청난 충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규진님께서 헬라어 구약성경과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서로 비교하여 보시고 1611kjv나 이전의 역본과도 비교하여 보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1611kjv만이 보존된 성경이라고 믿고 그 안에 머물러 계시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거짓으로 미혹을 한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미리 판단하시지 말고 단한번만이라도 1611kjv외에 헬라어나 히브리어 구약성경으로 검증을 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주(YHUH)님 외에 다른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3장 10절
10 나 주(YHUH)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라고 밝히시고 있습니다.
또한
이사야 44장 24절
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주(YHUH)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주(YHUH)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이사야서에 예언된 말씀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듯이, 말라기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맞습니다. 주님 외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엄연히 아버지와 성령님과 아들 하나님의 역할이 구분되어져 있습니다. 물론 한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세 분은 결코 아니지요. 죄용서함 받은 사람만이 부활 후에야 아버지이신 예수스[예수]님을 친히 뵈올 것입니다.
Zechariah[스가랴]서 2: 10에서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오신다고 하셨습니다[I come, and I will dwell~]. 그분이 바로 예수스[예수]님이시죠.
님과 공통 부분도 있고 다소 다른 믿음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KJV조규진 '그분이 바로 예수스[예수]님이시죠.'
이 말씀이 바로 너무나 중요한 구분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조규진님께서 예수 Iesu 예수스 Iesus라고 부르는 그 이름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제가 지식을 자랑한다고 판단하지 마시고 돌아 보자는 것입니다.
예수 Iesu 예수스 Iesus란 이름은 눈의 아들 호쉐아 곧 예호슈아의 헬라어 이름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구약성경을 살펴 보시면 확인이 될 것입니다.
@최윤남(자유인) 그것은 구유언[구약]의 Joshua가 신유언[신약]에서 이방인들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Jesus가 된 것이지요. 히브리[헤브레우]서 4: 8에서 Joshua가 Jesus로 언급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Jehovah 아버지 하나님께옵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구유언의 Joshua이시며 그리스어로 Jesus님이시죠. Joshua=Jehoshua=Jesus.
마치 지금도 Ronald가 로날드와 호나우두로 발음되며, Henry가 헨리와 앙리로 발음되는 것과 같이 국가마다 언어의 차이로 들리는 것이지, 동일인이죠.
복음이 사도행전에서 Stephen이 돌에 맞아 죽은 이후에 이방인들의 사도 파울[바울]에 의해서 이방인들에게 확장되었다는 것을 상기하시기를 권고합니다.
@성경KJV조규진 지저스 Jesus란 이름은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1611kjv에는 예수스 Iesus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스 Iesus란 이름은 16세기의 프랑스 수사학자 페트루스 라무스란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 알파벳 'J'란 이름으로 수정되어 1655kjv에 사용되게 되었고, 1769kjv에 의하여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된 이름입니다.
지저스 Jesus란 이름을 '예수스'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지저스 Jesus란 이름은 16세기에 만들어져 사용되기전 까지는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이름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대다수의 모든 성경들은 대부분 지저스 Jesus란 이름과 동일한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윤남(자유인) 저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언어 변천 과정에서 Iesus가 Jesus로 변하였습니다. 변개가 아니라, 변화지요. 우리나라도 많은 고어가 간단하게 정리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Torah 낭독을 들어보면 Juda가 유다, 이우다, 이후다로 들리곤 하지요. 성경 영어 KJV의 단어를 영어발음식으로 표기하지 않고, 알파벳을 발음부호화하여 표기하면 됩니다. 발음문제는 저의 사이트의 첫부분에 그 어려움을 정리한 코너가 있습니다.
이에수스님이나 예수스님 하는 것은 변개는 아나라, 변화입니다. 내용의 변질을 변개하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단어[word: 낱말]가 곧 말씀입니다. Henry가 헨리나 앙리로 읽히는 것은 언어 차이이죠.
@성경KJV조규진 성경의 말씀은 시대에 따라서 변할 수가 없습니다.
변해서도 안됩니다.
성경은 수 천 년 전부터 기록된 주 예슈아님의 말씀입니다.
지저스 Jesus란 이름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지저스 Jesus란 이름이 존재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 17절
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예슈아(Yeshua)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히브리어 구약성경 느헤미야 8장 17절의 말씀에 "눈의 아들 예슈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611kjv에는 'Ieshua the sonne of Nun'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구약성경은 이를 'Ιησο? υιο? του Ναυ?' 예수 Iesou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 Iesu는 예수스 Iesus로 헬라어 성경에 기록된 같은 이름입니다.
헬라어 구약성경은 눈의 아들 호쉐아 곧 예호슈아의 이름을 예수 Iesu 예수스 Iesus로 기록한 것입니다.
헬라어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름 눈의 아들 호쉐아,
눈의 아들 예호슈아,
눈의 아들 예슈아란 이름을 헬라어 구약성경은 예수 Iesu 예수스 Iesus로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직접 헬라어 구약성경으로 확인을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헬라어 성경에 기록된 이름인 눈의 아들 호쉐아 곧 예호슈아의 이름은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것입니다.
세상 어떤 사람도 아들 하나님께서 저주의 사형 틀 타브(십자가)에 매달리시어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예수 Iesu 예수스 Iesus란 이름의 구주 구세주 구원자가 타브(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 14:13 모쉐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주(YHUH)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Yeshuat 예슈아트)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이집트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어 단어 "Yeshuat 예슈아트"란 단어 속에 주 예슈아님께서 저주의 사형 틀 타브(십자가)에 매달리시어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실 주님이심이 계시되었습니다.
Hebrew어는 참고는 할 수 있으나, 그곳에 머무르면 결코 신유언[신약]이나 서신서에 계신 구원자 예수스[예수]님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도 구원자를 기다라는 문자적 이스라엘처럼, 구원자가 이미 오셨었는데, 아직도 기다리며, 모스크를 파괴하고 그곳에 저주의 건물 전을 짓기를 희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죄에 둔감하여 예수스님의 피를 부정하는 결과입니다.
이방인들에게 헤브레우어는 우리나라의 이미 지나간 신라, 고려와 같이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옵서 보존하시는 이방인들의 쉬운 언어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은혜의 복음의 시대에 그 어려운 헤브레우어에 왜 이방인들이 시간을 낭비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위의 내용과 같은 내용인데, Jehovah님께옵서 아버지 하나님이신데,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Jesus님이십니다. 구유언의 Joshua는 Jesus[예수스: Jesus]님의 모형이며 그림자입니다.
결국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은 같은 분으로서, "그분이 그분"이십니다. 다만, 창조주, 심판자 하나님 아버지께옵서 육신을 입고 아들이신 Jesus님으로 오셨을 뿐이지요. 지금은 대속의 사역을 이루시고 동일한 본래의 자리에 되돌아가 계십니다. 동일한 분입니다. 지금 셋째 하늘에 한 분 하나님만 계십니다.
@성경KJV조규진 그래서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헬라어 구약성경과 1611kjv와 같은 동일한 성구를 가지고 비교하여 살펴 보시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주 예슈아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주 예슈아님을 알지를 못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변개된 헬라어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주 예슈아님의 거룩하신 성호를 알지를 못하게 된 것입니다.
σωτ?ριαν(소테리안)=saluation=deliverance=구원으로 기록된 히브리어 단어에는 주 예슈아님의 성호와 거룩하신 희생의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헬라어 구약성경이 이를 변개하였고 1611kjv는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님께서도 어려운 Hebrew[헤브레우: 히브리]의 깊은 함정에서 나오시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쉬운 언어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도 잘못, 단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옵서는 성경을 Hebrew와 Greek에서 이방인들 언어인 영어로 '이미' 옮기셔서 보존하십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경 KJV는 Torah를 보존한 맛소라 원본만 사용하지 않고, 당시 영국의 번역본 중에서 뿌리가 바른 성경 모두를 비교하여, '더 나은 하나의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 시대입니다. 다시 신라나 고려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구유언은 이제 이루어졌습니다. '유언[Testament]과 하나[one]'의 의미를 숙고하시기를 권고드립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떠나서는 어떤 진리도 밝혀 질 수가 없습니다.
단 한번 만이라도 제가 댓글로 올려드린 사진 파일의 내용을 분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것은 영적인 지식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알아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거듭난 성도로서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행하자는 것입니다.
동의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규진님께서 이러한 부분들을 묵상하시며 살펴 보시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시는 그 시간동안은 감사가 넘치는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제가 조규진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에 대하여 지금 이순간에 댓그로서 답을 한다면 논쟁으로 끝이 날 것입니다.
저는 정말 어렵게 조규진님께 이러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단 한번이라도 살펴주시길.
알겠습니다. 님의 믿음을 알았으니, 참고로 성경에 비추어 보겠습니다. 님께서도 죄에 대한 깊은 통회를 통한 구원 점검과, 지금 가고 계시는 영적 여정이 과연 하나님께옵서 가르치시는 길인지 돌아보시는 계기로 삼으셨으면 합니다. (저를 비롯한 모두가 자기 죄들에 대한 뼈아픈 통회를 거쳐서, 주님의 보혈을 통한 죄 사면이 빠진 성경지식은 하나님의 길로 접어들지 못하는 정말 무서운 착각의 늪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은 결코 주님의 보혈로 다시 태어나지 못합니다.)
서로 정죄하거나 단정짓지 말고 참고로 하십시다. 이만 멈추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KJV조규진 감사합니다.
여기서 더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면 논쟁으로 끝이 날 것입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