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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아련한 옛사랑을 남기고 넋이 되어 떠나다, 故이영훈
'이문세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이영훈 작곡가는 2008년, 대장암으로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났다. 사람은 떠나도 그가 만든 아름다운 노래와 시적인 가사는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 스산한 가을 바람 속에 애잔하게 묻어나고 있다.
오늘처럼 태풍이 휘몰아쳐 온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날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맑은 날씨인데도 왠지 모르게 쓸쓸한 기분이 들 때면 이영훈의 노래들이 떠오른다. 이영훈의 노래에는 바스라질 듯 말라 있는 낙엽이 있고, 높다란 가을 하늘이 있으며, 아련한 추억이 있다.
1. 이문세
이영훈을 이야기하면서 이문세를 빼놓을 수는 없다. 두 사람은 가수와 작곡가라는 관계를 초월하여 반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였고, 친구였다. 이영훈이 작곡한 이문세의 노래를 듣다 보면, 노래를 그저 혼자 부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씌어진 멜로디와 함께 교감하며 부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문세와 이영훈의 인간적 교감이 그만큼 긴밀했다는 것이 음악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Track 1. 할말을 하지 못했죠 Track 2. 난 아직 모르잖아요 Track 4. 빗속에서 Track 6. 휘파람 Track 7. 소녀 Track 8. 하얀 느낌 이문세 3집 - 이문세 3 (1985)
이영훈은 이문세의 이 3집 앨범 타이틀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통해 작곡가로 데뷔하였다. 사실 이전에도 음악감독 등으로 일해 오기는 했지만 정식 작곡가가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인 것이다. 하지만 초보 작곡가라고 해서 내공이 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었다. 이때 만든 주옥같은 노래들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전곡 작사, 작곡 이문세 4집 - 이문세 4 (1987)
이른바 이영훈 전곡 작사, 작곡의 위엄 돋는(?) 이문세 4집이다. 이 앨범에서는 아련한 발라드 [사랑이 지나가면], 청아한 목소리의 여가수 고은희와 함께 부른 [이별이야기], 통통 튀는 듯한 바운스와 동화 같은 노랫말이 인상적인 [깊은 밤을 날아서],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이는 큰 스케일의 곡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 명곡 중의 명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에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려 놓고 있다.
전곡 작사, 작곡 이문세 5집 - 이문세 5 (1988)
이영훈에 대한 이문세의 신뢰는 4집의 대성공으로 더욱 깊어졌고, 이는 이듬해 발표한 5집에서까지 이어졌다. 이 5집 또한 이영훈이 전곡을 작사, 작곡했으며, 희대의 명곡들을 많이 배출해냈다.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노랫말로 많은 사랑을 받은 [시를 위한 시], 아직도 눈 내리는 겨울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광화문 연가],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리고 이문세의 불멸의 히트곡 [붉은 노을]까지. 대중들이 좋아하는 이문세의 곡들은 죄다 이 앨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곡 작사, 작곡 이문세 6집 - 이문세 6 (1989)
이때부터는 이영훈 전곡 작사, 작곡이 이문세의 앨범에서는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정도가 되었다. 대중들에게는 이문세 하면 이영훈, 이영훈 하면 이문세라는 인식이 완전히 뿌리박혔다. 이는 이문세가 훗날 이영훈을 잠시 떠나 다른 프로듀서들과 만든 앨범들이 줄줄이 흥행 실패를 기록하는 데에 큰 원인이자 계기가 되었다. 이 앨범은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 앨범에서 그다지 주목할 만한 곡이 없었다기보단 4,5집의 큰 성공의 그늘에 다소 가려졌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이 앨범에 실려 있는 [그게 나였어],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등은 이문세의 곡들 중에서도 숨은 명곡으로 손꼽히는 곡들이다.
전곡 작사, 작곡 이문세 7집 - 이문세 VII (1991)
6집의 흥행 실패 이후 심기일전하여 만든 또 하나의 역작, 이문세 7집이다. 특유의 쓸쓸한 분위기가 잘 살아나 있는 명곡 [옛사랑]은 이영훈-이문세 콤비가 만든 최대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그 밖에도 [겨울의 미소], [저 햇살 속의 먼 여행] 등 좋은 곡들이 많은 앨범이다.
2. 그 밖의 작품들
이영훈은 이문세 말고는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작품 활동이 뜸한 편이었다. 이영훈의 공식 홈페이지(www.leeyounghoon.co.kr)에 가 보면 그가 작업했던 모든 결과물의 리스트가 있는데, 주로 소품집이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들, 그리고 대부분 이문세의 작품들이다.하지만 간간이 낯익은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다.
Track 2. 바람인가, 빗속에서 신촌블루스 2집 - 신촌블루스 II (1989)
엄인호, 이정선, 한영애, 김현식 등을 주축으로 활동한 블루스 밴드 신촌블루스의 두 번째 앨범에서 이영훈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1985년 발표된 이문세의 3집 수록곡 [빗속에서]가 리메이크되어 이 앨범에 실려 있다. 엄인호가 작사, 작곡한 [바람인가]라는 곡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빗속에서]를 부른 김현식의 보컬이 이문세와는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Track 3. 헤어질때면 언제나 JK 김동욱 2집 - Multipersonalize (2003)
남자의 고독과 쓸쓸함을 노래하는 JK김동욱의 2집 앨범에도 이영훈이 멋진 곡을 하나 선사했다. 80년대의 그 아날로그스러움과 참으로 가까이 닿아 있는 JK김동욱의 보컬과 기가 막히도록 잘 어울리는 발라드 [헤어질때면 언제나]이다.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던 곡이었는데 이영훈의 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가슴에 와 닿게 되었다. 그리고 왠지 이 곡은 이문세가 불렀어도 아주 멋있었을 것 같다.
3. 에필로그
오늘은 덧말 대신 이영훈의 추도식에서 이문세가 낭송한 추도사의 일부와, 이영훈의 아들이 고인이 된 아버지에게 남긴 말을 인용해 오려 한다. (출처:스포츠 동아 2008-02-18 기사 中 서울=연합뉴스 http://sports.donga.com/3/all/20080218/5101504/1)
(...연방 눈물을 닦아냈던 이문세는 추도사를 통해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면 편히 가시라"며 "당신의 마지막 문자를 기억한다. ′문세 씨, 창밖을 봐요. 함박눈이 와요. 서정주 시인도 이런 날 하늘에 올라갔는데 나도 이런 날 갔으면 좋겠어요′라고. 숨을 거두기 전까지 시인이었던 당신 앞에 목놓아 운다"고 말하며 목이 메었다. 이영훈의 아들 이정환 군 역시 "창작의 열정이 아버지를 아프게 한 건 아닌지. 만약 작곡가 이영훈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좀 더 우리 곁에 있지 않았을까"라며 "아버지는 죽은 것이 아니라 고통스런 깊은 밤을 날아 지금은 궁전으로 주소를 옮긴 것이라고 믿는다. 아버지는 나의 자랑스러운 영원한 영웅"이라며 울었다. (후략))
창작자의 숭고한 영혼은 넋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지만, 그의 작품들은 유행도 타지 않고 꾸준히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며 우리들 곁에 남아 있다. 더운 계절이 끝나고 완연한 가을의 문턱에 다다를 때면 낡은 찬장에서 이문세의 옛날 LP를 꺼내어 보자.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작곡가 이영훈의 모습을 그려 보자. 이렇게 그리워하면서, 추억하면서 그가 영원히 죽지 않고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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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히 한줄한줄 읽었습니다~그는 갔지만 그의 노래는 오래오래 사랑받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