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서른아홉
김 종숙
아침부터 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 제법 썰렁함을 느끼며 열어놓았던 현관문을 꼭 닫았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면 나는 왠지 모를 우울함과 쓸쓸함을 느끼며 정신적인 침체기를 맞는다. 올해도 벌써 옆집에선 벌초들을 한다고 수선들을 떨고 있다.
아주 오래전 봄비가 보슬보슬 하루 종일 내리고 또 하루를 내리면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가 기지개를 켜고 세상은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즈음이면 엄마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래되어 색깔이 바랜 무명 앞치마를 두르고 야트막한 산자락에서부터 시작해 산꼭대기까지 오르내리며 산나물을 뜯는다. 이른 아침 엄마는 커다란 광주리에 삶아놓은 산나물과 고사리를 수북이담아 머리에 이고 십 오리 길을 걸어서 읍내 장에 가시곤 했다.
‘산나물 사세요, 고사리 사세요’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며 그 가녀린 목으로 당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나물 광주리를 받쳐 이고 온종일 소리친다.
어쩌다 한번 맛있는 것 얻어먹고 읍내 구경할 요량으로 떼를 써서 엄마를 따라가면 기쁨은 잠간이고 얼마나 힘이든지 모른다.
그만 집에 가자 조르면 “다리 아프지 그러게 왜 따라왔어 가자 맛있는 것 사줄게” 하고는 빵을 굽는 아줌마가 있는 아주 작은 가게로가 풀빵을 사주셨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 하늘을 넘으려 하면 엄마의 광주리는 텅 비고 축축 히 젖어 풋풋한 산나물 냄새가배인 보자기만 남는다. 시장 안에 들어서면 긴 탁자와 길 다란 나무 의자가 거무죽죽하게 놓여있는 국수와 찐빵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나는 찐빵을 먹고 엄마는 사리를 말아 논 면에 멸치로 맛 을 낸 국물을 그득히 부어주는 국수를 먹었다. 어두 어진 밤길을 엄마 손을 잡고 두 모녀가 나란히 걸어 집에 가노라면 어느 땐 휘영청 밝은 달이 환하게 밝혀주고 때론 수없이 많은 별들이 길동무를 해 줄때도 있었다.
그렇게 엄마가 번 돈은 우리들 학비로 다 쓰였다. 그땐 지금처럼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철 이른 채소를 키울 수 없는 때여서 제철농사에만 의존하다 보니 돈이 여간 귀 한 게 아니었다.
엄만 봄엔 산나물을 뜯어 팔고 여름이면 부화장에서 병아리를 사다 키운 닭을 파셨는데 그 돈은 모두 우리들이 썼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런 일이 많다. 엄마는 무거운 짐을 많이 이고 다녀서 그런지 항상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매셨고 어깨 좀 두드려라 팔 좀 주물러라 하셨다. 그럴 때면 내가 많이 불려갔는데 귀찮고 짜증이 나서 인상을 쓰고 투덜대다 싸가지 없다고 맞기도 여러 번 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 후회가 된다. 그때 좀 더 시원하게 꼭꼭 잘 주물러 들일것을! 그땐 그 일들이 왜 그리 귀 찬고 싫었던지, 나의 철없는 행각은 그 뒤로 더 심하게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 내가 사춘기로 접어 들 때 오빠하고 읍내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걸어가고 있었는데 저만치서 엄마가 나물 광주리를 이고 이집 저집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봄볕에 산나물을 뜯느라 까맣게 그 을은 얼굴에 빛바랜 스웨터를 입은 모습이 창피해서 엄마를 부르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혼자가 되었을 때 얼마나 후회를 했던지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렀었다.
엄마는 외아들 에게 시집와 외롭다고 우리들을 위해 당신은 자식을 여러 명 두겠다며 여섯 번째 아이를 낳다 서른아홉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의 주검 앞에서 동생들과 부둥켜안고 통곡하였지만 육신은 차갑게 굳어 갈뿐 나에게 어린동생들과 어떻게 살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고생스런 삶 속에서 떠나가셨다.
세월이 훌쩍 지나고 나도 엄마가 되었다.
하나만 낳을 생각이었는데 애들이 외울까봐 둘을 낳았다. 엄마가 그랬던 것 처럼 나도 애들이 들이대고 철없이 행동하면 버르장머릴 고칠 요량으로 쥐어박고 후려치기도 한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런 내 자식들! 내 어머니의 사랑은 이보다 깊으셨으리라!
남편과 다투어 속상할 때도 애들이 말을 듣지 않아 화가 날 때 도 언제나 엄마는 서른아홉의 젊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있다. 세상 에서 제일 그립고 정겹고, 평온한 내 가슴을 아리게 하는 단어 엄마,
언제 불러 봐도 목이 메 이고 눈가에 이슬이 맺히게 하는 그리운 이름 어머니! 나의 유년이 고스란히 숨 쉬고 당신의 자취가 살아있는 금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곳 내 고향 뒷동산 양지쪽엔 엄마가 계신다.
십 수 년 동안 한 번도 찾지 못한 딸을 올해는 오려나! 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아! 이번 추석엔 내 아이들 앞세우고 내려가 술 한 잔 따라 드리고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그리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씀 드려야겠다.
첫댓글 감상 잘하고 갑니다.
자식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님이 더 그립고 철없이 어머님께 불효한 기억들이 가슴을 아프게 하지요 좋은 글.잘 보고 갑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홍선생님 감사합니다.
어머니! 언제 불러도 그리운 단어. 어머니께 못해 드린 것이 가슴 아픕니다. 누군들 부모님께 원없이 효도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다 지나고 보면 후회! 돌아 보아도 후회!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봐도 후회 뿐인 지난 세월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호소력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어머니들께 사랑과 존경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저 읽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저에게도 평생토록 그리워하며 추억할 어머니와의 이야기들이 있으니까요 감동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