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단체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이중과세라는 점도 있지만 공공의 복리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종교의 기능을 생각한 국가의 배려이다.
그렇다면 그 기부금 즉, 보시금을 거두어 들이는 방법 또한 종교적이어야
하지 않을까.필자는 10여 년간 영남불교대학.관음사를 운영해 오면서,
보시금을 맏는 네 가지 정도의 패러다임을생각하게 되었다.
첫째 신심의 촉발이다.
우리 불자들이 시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나도록 기도나 불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경전에 근거해서 해주어야 한다.
막연한 상태에서 다짜고짜 권선책을 들이밀 경우 반감을 사는 수가 있다.
인등기도,초하루기도,지장재일 등의 일반적인 기도는 말할 것도 없고 원불을
모신다거나 새로 부처님을 조성할 때,법당을 신축할 때는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론과 법문을 통해서 신심을 일으켜야 한다.
본 사찰에서는 땅을 사기위해서 한 가족이 108만원을 넣는 108통장 갖기
운동을 전개한 적이 있었는데 '법당짓기 촛불서원법회'를 여는 등 분위기
연출이 잘 되어 무리없이 진행,회향되었다.
물론 극히 미미한 부작용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둘째,보시 종류의 다양성 장치이다.
'공양은 평등공양,보시는 차별보시'라는 말이 있듯이 법당의 혜택을 누리거나
공양을 할 때는 누구든 평등해야 함이 원칙이다.
그러나 보시는 능력껏 하는 것이 옳다.예를 들면 초파일에 등값 보시를
받으면서 획일적으로 시주를 받는다면 그것이 맞는 일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등을 달아주는 기간에 따라 만원,2만원,3만원,5만원,10만원등의 차별을
두는것이 오히려 평등임을 경험하게 된다.
모든것을 고르게 하느라고 황새다리를 잘라 뱁새다리에 이으려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있는데 이는 회향의 정신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사찰재정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시주금이 쓰여질 때는 소외감을 느끼는 신도가 없도록 세심한 신경을
써야한다.
셋째,직접적으로 답례를 할 일이다.
대부분의 절은 시주를 받기는 하되 신도들에게 다시 선물로 화답하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원칙적으로 시주는 시주로 끝나는 것이 맞겠지만 답례를 한다고
해서 나쁠것은 없다.초파일에 등 시주를 한 분들에게 책 한 권씩이라도
드린다면 서로의 교감도 생기리라.
본 영남불교대학.관음사는 정초산림기도등 큰 기도에 동참한 전 신도들에게
기념이 될 만한 선물을 한다.책일 경우에는 책 뒷면에 동참가족의 이름을 올려서
영원히 공덕 축원이 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가끔 사찰을 다니다 보면 시주자 명단이 새겨진 현판을 만나게 되는데 이도
또한 시주자에 대한 답례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초발심이 었을 때는 이런 일을 비판적으로 생각하였으나 후일 철이
들고 보니 옛사람의 자취가 마땅하였다.
넷째,신도의 편의적 입장이다.
현재 보시금의 대부분이 사찰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요구되는 기부금의
성격이 짙다.이런 점은 다소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아무런 대안 없이 신도들의 주머니끈만 바라보는 사찰경영 방식은 구태의연하고
너무 상대 의존적이다.신도와 사찰이 서로 사이클이 잘 맞아서 자연스레
신도는 개인적으로 편의를 제공받고,사찰은 힘들이지 않고 시주금을
확보하는 불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납골당 운영이 그렇다.본 사찰의 납골당은 대구도심사찰 제1호로서
기독교인들도 더러 찾는다.최첨단의 시설로서 아주 쾌적하게 꾸며 놓았기 때문에
무리하게 권하지 않아도 자발적,자의적으로 납골을 모시게 된다.
소비자인 신도도 만족하고 공급자인 사찰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다.
그 외에도 소비센터,불교상조회 등도 신도의 편의적 입장에서 좋은 시주 장치가
될 수 있다.앞으로 우리 절들이 나아가야 할 재정확충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P.S 200%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