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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해군 사상 첫 여성 파일럿 탄생
해군 최초로 여성 파일럿이 탄생했다. 4일 14개월의 초.중등 비행교육 및 야간 공중
조작.해상 전술비행 과정을 마치는 양기진
(24.해사 58기) 중위다. 양 중위는 잠수함 탐지 등 대잠 작전에 투입되는링스(LYNX)
헬기를 조종하게 된다.
해군 헬기 조종사는 파도치는 해상에 떠있
는 구축함 갑판 위에서 헬기를 이.착륙하
고, 해상 15m 높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수색 작전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고난도의 헬기 운용술과 담력이 필요하다.
▶ 2016년 - 대한민국과 프랑스가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이하다.
▶2009년 북한 경비정 51분간 서해 NLL 침범.
👉🏿 서해 북한한계선(NLL)에서 남북 간 무력충돌의 기운이 감돈다. 국방일보(2009.6.5)에 의하면 북한경비정 1척이 2009년 6월4일 14시47분쯤 연평도 서방에서 NLL을 1.6km 침범했다. 약51분간 머물다가 우리 軍의 경고통신을 받고 돌아갔다. 우리는 남북함정 간 통신망으로 두 차례 경고송신(“우리 관할해역에 접근 중”, “즉각 북상하라”)을 하였으나 북측은 응신하지 않았다. 이날 北경비정은 조업 중인 3척의 중국어선에 대한 단속을 벌이던 중 침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참은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정당한 통신(2004년 6월, 남북합의사항)에 응답치 않으면서 우리 영토를 장시간 유린(蹂躪)했다. 중국어선 식별이 목적이었다면, 그들은 통신에 응답했을 것이다. 도발을 위한 기만기동으로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 북한은 과거에도 중국어선을 이용했다. 北경비정(등산곶684, 我357정을 침몰시킨 주적함)은 2004년 7월14일 중국어선으로 위장통신하면서 NLL을 침범했다가 경고사격을 받고 도주했다. 그간의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북한함선(함정·어선 등)이 연간 17회 정도 NLL을 불법으로 침범하고 있다. 2009년에 들어와서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 사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경고사격(警告射擊) 미 실시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北경비정에게 경고사격을 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것은 우리해군에게 준 1·2차 연평해전(1999년·2002년)의 뼈아픈 교훈이기도 하다. 두 차례 모두 敵함정에게 기습공격(奇襲攻擊)을 당했다. 북한은 근거리에서 차단기동하는 우리함정을 먼저 공격했다. 그것도 NLL남방의 우리해역에서다. 敵에게 기습을 당하는 것은 군인의 수치다.
1·2차 연평해전의 경우는 우리해군이 정부의 잘못된 방침(지시)을 준수하다가 그렇게 당한 것이다. 다시는 현장지휘관의 손발을 묶는 지시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장지휘관이 교전규칙(交戰規則)에 따라 자위권(自衛權)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현장지휘관은 정치적 고려 없이 전장상황에 따라 군인으로서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혹자는 지금과 같이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한 상황에서 경고사격은 위험하다. 자칫 전투로 이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들 한다. 그러나 경고사격은 말 그대로 상대방에게 경고를 주는 것이다. 격파사격(擊破射擊)과는 성격이 다르다. 예를 들면 육군의 경우,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을 월경하면 바로 경고사격을 한다. 현장지휘관이 작전예규에 따라 한다. 바다의 경우도 같은 이치다.
NLL은 남북이 합의한(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등) 해상 군사경계선이다. 그래서 이남 해역은 분명한 한국의 해양영토다. 敵함정이 우리 해역을 유린하는데도 경고사격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미 해양영토를 포기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敵함정이 NLL을 침범하는 즉시 경고사격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대한민국의 국군인 것이다.
그리고 경고사격은 표적의 근처(500미터, 1000미터)에 착탄(着彈)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표적 주위에 다른 선박이 있을 경우에는 공중높이 발사하면 된다. 소구경포(40미리·20미리)로 무장한 함정은 원거리에서 공중발사(공중폭파)로 경고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이 경고사격은 상대에게 해(害)를 주지 않는다.
만약 앞으로 경고사격을 계속하여 주저(躊躇)한다면 敵에게 또다시 치욕적인 기습을 허용하게 될 것이다. 과거와 같이 함정과 국군장병을 잃고 더 큰 전투로 확대될 수도 있다. 북한함정은 소형(150~250톤)이면서도 대구경포(85미리, 57미리)로 무장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함정이 근거리(5~10Km 이내)에 접근하게 하는 것은 전술적으로 위험하다.
북한은 서해NL근해의 무력도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금년 1월부터 대남전면대결, NLL무효화, 남북불가침 약속 폐기, 서해5도 법적지위 부정 등을 이미 선언해 놓고 있다. 우리는 북한에게 도발의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해군이 내일부터 바로 원거리에서 경고사격을 시작한다면 3차 연평해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전투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최선이다. 우리 합참은 해군함정의 경고사격을 적극 독려(督勵)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NLL현장에서 “전우가 사수한 NLL, 우리가 지킨다.”로 무장한 우리 해군장병들의 큰 무운(武運)을 기원한다.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 http://konas.net/]
http://m.allinkorea.net/a.html?uid=13853§ion=section39§ion2=
▶2009년 한국어 위키백과의 문서수가 10만개를 넘었다.
▶2006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2006년 세계선교대회 개최
▶2005년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 중국 천안문 민주화시위 16주년 기념 집회
▶2005년 3600년 전 이집트 제13왕조의 파라오 네페르호텝 1세의 석상 공개
▶2005년 해군 사상 첫 여성 파일럿 탄생
▶2003년 ‘이빨 가진 새’ 7000만년 만에 부활, 활동중단 유전자 살려내
▶ 2003년 - 라오스의 먀오족 주거지역을 취재하던 프랑스인 기자 2명, 벨기에인 기자 1명과 통역이 체포되다. 이들은 6월 30일에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002년 2002 FIFA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 48년 만에 첫승(폴란드를 상대로 2-0 승,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
👉🏿 한국이 2002년 6월 4일 부산에서 벌어진 2002한일월드컵 축구대회 D조 첫 경기에서 유럽의 강호 폴란드를 시종 압도한 끝에 황선홍과 유상철의 골로 2대0 쾌승을 거뒀다. 지난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여섯 차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노크한 끝에 거둔 첫 승리였다. 한국은 역대 4무10패의 치욕적 월드컵 성적표에 드디어 1승을 보탰다.
부산 주경기장은 경기시작 6시간 전부터 관중들이 몰려들기 시작, 경기개시 휘슬이 울릴 때쯤엔 이미 열광의 도가니였다. 붉은 옷 차림으로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열렬한 성원을 보냈다.
전반 초반 폴란드의 거센 공세에 잠시 주춤했던 한국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한국은 최종 수비 홍명보가 상대 진영 깊숙이 침투하는 등 총력 공세를 폈다.
전반 26분 드디어 기다리던 골이 터졌다. 이을용이 왼쪽에서 강하게 밀어준 볼에 황선홍이 가볍게 왼발을 갖다댄 것. 월드컵 1승과 16강 진출의 염원을 담은 이 슈팅은 여지없이 폴란드 골대를 갈랐다. 한국은 후반 8분 유상철이 아크 정면에서 통렬한 오른발 중거리슛을 날려 다시 한번 골대를 흔들었다. 사실상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한국은 계속 승승장구하여 월드컵 4강 진출의 기쁨을 맛보았다.
▶2001년 대한민국·멕시코 4일 정상회담. ▶2001년 이란 대통령, 샐먼 루시디의 `악마의 시` 관련사건 종결 선언
▶2001년 북한 상선, 서해안 북방한계선(NLL)과 제주해협 침범
▶2000년 박지은, 美LPGA캐시아일랜드 그린스닷컴 골프대회서 우승
👉🏿 수퍼 루키` 박지은이 2000년 6월 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뮤렐스인렛의 캐시아일랜드 그린스닷컴 클래식 골드대회 4라운드에서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백전노장 줄리 잉스터와의 기싸움에서 이겼다. 외견상 4라운드 내내 선두를 지킨 완성이었지만 마지막 3홀을 남겨두고 3타 뒤진 상황에서 일궈낸 대역전극이었다. 2000년 LPGA투어 한국선수로는 가장 먼저 우승한 선수가 됐다.
여섯살때 `리틀 미스코리아`로 뽑히며 `미의 여왕`을 꿈꾸던 박지은(미국명 그레이스 박)은 리라초등학교 2학년인 여덟살 때 골프채를 잡았다. 그리고 클럽을 잡은지 한 달 만에 93타를 쳐 주위를 놀라게 했다. 박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1991년 하와이 친척집으로 유학을 떠나 이후 미국의 주니어대회에서만 33승을 올렸다. 1995년 US여자오픈 역대 최연소(16세) 출전, 1997년 외국인으로 첫 전미체육대상 수상. 애리조나주립대 진학 후 학업과 골프를 병행하며 아마추어 랭킹 1위를 달리던 박지은은 1999년 5월 NCAA(전미대학체육협회)여자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아마추어 통산 55승을 달성했다.
1백67cm,55kg의 체격조건에 엄청난 장타가 주특기. 이번대회 2라운드에서는 드라이버샷을 303야드나 날렸다. 한편 서울에서 갈빗집 `삼원가든`을 운영하고 있는 박지은의 아버지 박수남씨는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음식점을 찾아온 손님 모두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9년 400년전 강화조약 체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 일기 일본서 발견
▶1998년 남북한 개신교 첫 합의문 채택.
▶1998년 인도·파키스탄 분쟁 카슈미르서 이슬람 분리주의자 총파업.
▶1998년 6.4 지방선거 실시
▶1997년 브라질 상원, 대통령 중임 허용.
▶1997년 프랑스, 좌파정부 공식 출범.
▶1997년 아프리카단결기구(OAU) 30개국 정상회담, 쿠데타 없는 대륙 선언.
▶1996년 유럽 우주국(European Space Agency)의 로켓 아리안 5호(Ariane 5), 발사 1분만에 폭발.
▶1996년 일본 NEC의 해외컴퓨터 부문, 미국 패커드 벨사와 합병 발표.
▶1996년 나이지리아 야당 지도자 아비올라의 부인, 괴한 총격에 사망.
▶1996년 유럽 차세대로켓 '아리안-5호' 발사에 실패.
▶1995년 중국에 대홍수, 이재민 3백여 만명 발생.
▶1994년 대한민국-우즈베키스탄, 정상회담.
▶1993년 과학로켓 `과학1호`, 서해안에서 발사(96초동안 오존층 측정)
👉🏿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한국최초의 과학로켓 ‘과학1호’ 가 1993년 6월 4일 서해안에서 발사됐다. 로켓은 인공위성이나 우주왕복선을 쏘아올리는 수송수단으로, 우주 개발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로켓 개발이 1차적으로 돌파해야 할 관문이라는 의미에서 ‘과학1호’ 발사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우주기술 보유국의 대열에 서게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번에 발사된 ‘과학1호’ 가 비록 과학실험 및 원격탐사용 소형 과학위성을 저궤도상에 올리기 위한 중형과학로켓으로 선진국에서 방송통신위성이나 우주왕복선을 쏘아 올릴 때 활용하는 3단추진 로켓에 비해서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한번 추진으로 지구상공 75km까지 올라갈 수 있어 다른 나라의 과학로켓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다.
‘과학1호’ 는 길이 6.7m, 무게 1.4t, 직경 42cm의 고체연료추진형 로켓으로, 발사 후 최고 비행고도 38.6km, 비행거리 77km를 188초 동안 비행하면서 한반도 상공의 오존층 농도를 측정했다.
‘과학1호’ 는 1990년 7월부터 3년간 항공우주연구소 유장수 박사팀과 서울대, 삼성항공 등 3개 대학, 5개 기업이 공동참여, 28억4천7백만원의 연구개발비와 총3백22명의 연구인력이 투입돼 설계 제작했으며 탑재되는 전파송수신기 오존측정기, 온도측정기 등 전자장치의 경우 국산화율이 약70%나 됐다.
▶1992년 미국 우정성, 엘비스 프레슬리 기념우표 발행 발표
▶1992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OMS와 선교협정을 체결.
▶1991년 한기총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본부, 사할린에 쌀 80톤과 생필품 전달.
▶1990년 마리온 배리 전워싱턴시장 코카인복용혐의 재판개정
▶1990년 한 미국여성, `자살기계'로 자살
▶1990년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 제8대 이사장에 배태준 장로가 취임하다.
▶1990년 북경대 등 11개대 대학생 3천여명, 천안문사태 1주년을 맞아 현정권 퇴진등을 요구하며 시위.
▶1990년 韓蘇 정상회담(노태우-고르바초프,샌프란시스코에서 첫 회담)
▶1989년 중국, 천안문 민주화요구 시위를 유혈진압
▶1989년 폴란드 자유노조(Solidarity), 폴란드 의회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
▶1989년 하메네이 이란 대통령, 이란 최고지도자로 선출
▶1988년 폴란드, 동국권국가 처음으로 다당제 총선
▶1987년 영국정부, 자국의 외교납치와 관련 이란 영사관 폐쇄. 외교관7명에구속영장. 5명에 추방령.
▶1985년 한국기독교사회교육원 개원
▶1985년 북한 보천보전자악단 창단
👉🏿 북한의 `보천보 전자악단`이 1985년 6월 4일 결성됐다. 북한의 2대 경음악단의 하나로 김일성의 혁명 전적지인 보천보에서 이름을 따왔다. 최고의 음악교육을 받고 기량이 가장 뛰어난 연주가, 가수, 작곡가로 구성됐으며 평양을 주무대로 활동했다.
신디사이저 등 전자악기를 주축으로 해서 피아노 등의 양악기와 전통악기를 혼용하고 있으며 음악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성악 무용을 하는 전속배우와 합창단을 사이에 두고 있다. 노동당의 문예방침에 의해 리듬보다는 가사를 중시하는 북한식 음악을 지향하고 있으나 팝송 등 세계 각국의 대중음악 여러 곡도 레퍼토리로 갖고 있다.
▶1983년 중국-소련 국경무역 재개합의
▶1982년 제8회 주요선진국 정상회담 개최(프랑스 베르사유)
▶1981년 사다트와 베긴, 팔레스타인과 시나이문제로 회담
▶1980년 우리나라 첫 태양광발전소 가와군 아북도에 준공
▶1980년 카터 행정부, 한국에 항모 '코랄 씨'를 포함한 함대 급파.
▶1980년 신라시대 최초의 비구니 사찰 영여사지 발견
▶1980년 우리나라 첫 태양광 발전소가 아차도에 준공
▶1979년 가나에서 군부 쿠데타 발생.
▶1978년 콜롬비아 대통령선거, 여당 자유당의 트르바이 당선.
▶1977년 소련 새 헌법초안 발표
▶1970년 엘살바도르-온두라스 국경분쟁 종결(1969년 7월이래)
▶1970년 연평도 서방서 해군방송선 북한경비정에 피랍
▶1970년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국경분쟁 종결
▶1970년 연평도 서방서 해군방송선, 북한경비정에 납북
▶1970년 통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9년 서독, 캄보디아와 단교.
▶1967년 영국여객기 하루 2대 추락, 160명 사망
▶1967년 기독장교회(OCU)주최, NCC후원으로 군민합동 현충일추도예배
▶1966년 장면 전 국무총리 사망. 6.12 국민장으로 장례식 거행.
👉🏿 1966년 6월 4일 제2공화국 총리였던 장면이 간염으로 작고했다. 1899년 인천에서 출생했고 호는 운석(雲石)이다.
YMCA 영어학교를 거쳐 도미(渡美), 맨해튼 가톨릭대학을 졸업했고 외국대학 여러곳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동성상업학교 교장으로 근무했고 1946년에는 정계에 진출했으며 1948년에는 제헌 국회의원이 됐다. 초대 주미대사로 한미국교수립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1951년에는 국무총리가 됐다.
그 후 민주당을 조직하여 최고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56년에는 부통령이 됐다. 부통령 시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피격됐으나 미비한 상처였다. 1960년에는 부통령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했다. 1960년 8월 19일 제2공화국의 국무총리로 피선되어 정권을 장악했으나 5ㆍ16군사정변으로 취임 9개월 만에 물러나야했다.
제2공화국이 대한민국 역사상에서 가장 민주적이었던 시기였던만큼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민주주의자`라고 평가하지만 한편에서는 성격이 부드럽고 온순한 탓에 한 국가의 최고권력자로서는 의지가 강건하지 못
했다는 평도 받았다.
▶1965년 소련-월맹(베트남) 원조협정 조인
▶1961년 자유 감리교 창립
▶1959년 추풍령 터널 개통식.
▶1956년 이집트, 1968년 기간 만료 이후, 수에즈 운하 회사(Suez Canal Company)의 권리가 연장되는 것이 아님을 발표.
▶1956년 쿠바 내 미국 소유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과 제조소 전원 몰수.
▶1954년 프랑스-베트남 독립협정 조인
▶1953년 배우 파커 스티븐슨 출생
▶1952년 교육자치제실시
👉🏿 대한민국의 문교부 장관 백낙준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교육자치제가 실시, 전국 각지에 시청 구청 학무과가 독립, 교육청으로 창설되었다.
▶1950년 상공은행 발족
▶1950년 선린마을 창립.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길리 산78번지(현 강동구 길동)에 조성된 기독교인 공동마을.
▶1950년 대한민국-일본 무역협정 조인
▶1950년 상공은행 발족. 한국-일본 무역협정 조인
▶1946년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취임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미국-영국군 로마입성.
▶1944년 허성도 목사 사망. 옥중에서 굶어 죽었다.
▶1944년 미국-영국군 로마 점령
▶1943년 아르헨티나에 페론 지휘하의 쿠데타
▶1942년 일본, 미얀마에 군정 실시
▶1942년 미국 해군과 일본 해군, 태평양에서 미드웨이 해전 개전.
👉🏿 2차 세계대전 중 하나인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을 결정지은 미드웨이 해전이 발발했다.
*미드웨이 해전: 6월 4일부터 6월 7일까지 벌어진 태평양 전쟁의 결정적인 해전이다.
▶1942년 일본 버어마에 군정시행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군 프랑스점령후 영국-프랑스-벨기에군 덩케르트 철수완료.
👉🏿 2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군과 영국 원정군 (BEF) 및 3개 프랑스군은 덩케르트에서 철수했다.
*5월 26일 시작하여 6월 4일 연합군의 다이나모 작전으로 끝
▶1938년 제3회 월드컵(프랑스) 개막
▶1937년 가수 프레디 펜더 출생
▶1937년 피카소 `게르니카` 완성
▶1937년 항일유격대 보천보 급습
👉🏿 1937년 6월 4일,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국 공산당 소속의 항일유격대 동북항일연군 제1군 6사 병력 100여명이 압록강을 건너 함남 갑산군 내 보천보를 급습했다.
보천보는 일본인 50여명과 조선인 13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시골도시. 일본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을 파괴하고 관청을 불태운 뒤 밤늦게 떠난 유격대의 뒤를 인근에 있는 일본 경찰이 추격에 나섰지만 7명의 전사자와 14명의 부상자만 내고 말았다.
이상이 북한이 그들의 영도자 김일성이 주도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보천보 전투`다. 이 전투는 당시 국내신문이 호외를 발행할 정도로 크게 보도됐지만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를 실제로 지휘했는지, 북한의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에서 활약한 김일성과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계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의 레온 브룸 내각 성립. 최초의 사회당정권
▶1935년 카프 산하 좌익극단 신건설사 해체
▶1932년 칠레에 쿠데타, 보수내각을 타도 사회주의적 정책을 채택
▶1929년 배우 데니스 위버 출생
▶1929년 볼드윈 영국내각 총사직
▶1928년 만주 군벌 장작림, 일본군의 열차폭발로 피살
▶1922년 배우 진 배리 출생
▶1921년 합커크 내한.미북 북장로회 선교사 의사 의학박사로 부인과 내한.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의사로 활약.
▶1920년 최초의 공설목욕탕 평양에서 개설
▶1920년 제1차 세계대전, 연합국-헝가리와 트리아논조약 체결.
▶1913년 박용만 등, 미국 네브라스카주에서 유학생회 조직
▶1912년 여배우 로절란드 러셀 출생
▶1906년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킴
▶1903년 헌트 출생. 미국 정통장로교 선교사, 목사, 수난자. 한국명 한부선. 1928,10,4 내한 충북 청주선교부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함.
▶1900년 미국 작가 크레인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