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04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 번제에 관한 법은 이러하니라.”
“그때에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말하라. 번제에 관한 법은 이러하니라. (그것이 번제인 것은 아침이 이르기까지 밤새도록 제단 위에서 태우기 때문이니 제단의 불이 그 안에서 계속해서 타게 할지니라.) 제사장은 베옷을 입고 또 맨살에 베 속옷을 입고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불로 태운 그 재를 가져다 제단 옆에 두고 자기의 의복들을 벗고 다른 의복들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밖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 오직 제단 위의 불은 그 안에서 계속해서 타게 하여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며 또 번제물을 그 위에 가지런히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태울 것이며 불은 제단 위에서 항상 타게 하여 결코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레위기 6:8-13)
(Then the LORD spoke to Moses, saying, "Command Aaron and his sons, saying, 'This is the law of the burnt offering: The burnt offering shall be on the hearth upon the altar all night until morning, and the fire of the altar shall be kept burning on it. 'And the priest shall put on his linen garment, and his linen trousers he shall put on his body, and take up the ashes of the burnt offering which the fire has consumed on the altar, and he shall put them beside the altar. 'Then he shall take off his garments, put on other garments, and carry the ashes outside the camp to a clean place. 'And the fire on the altar shall be kept burning on it ; it shall not be put out. And the priest shall burn wood on it every morning, and lay the burnt offering in order on it ; and he shall burn on it the fat of the peace offerings. 'A fire shall always be burning on the altar ; it shall never go out.)
임마누엘!!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주제는 ‘번제(燔祭)’입니다.
히브리어 'ola(올라)'로 ‘전번제(물)(whole burnt offering)입니다.
올라(명여)는 알라(alla)에서 유래했으며, (1) '올라가는 것, 번제물, 번제', (2) '오르막 길, 계단'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90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명사 올라를 흔히 '번제물'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그 제물에서 나오는 연기가 하나님께로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일반적으로 설명되어집니다. 그러나 태우는 다른 제사도 있기 때문에 이 제사를 기술하는 데에 사용된 올라에는 그 이상의 어떤 개념이 연루되어 있을 듯 합니다.
이스라엘의 제사 가운데서 오직 올라만이 완전히 태워졌으며, 올라를 부분적으로 태워서 예배자들이나 제사장들이 먹거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해결의 열쇠가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동물 전체가 제단으로 올리워져 전부가 야훼에 대한 존경의 선물(민하)로 바쳐집니다.
올라의 신학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제사(물,'whole offering’)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올라가 태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태운다는 것은 야훼에게 전체 피조물을 바친다는 사실에 본질상 부수하는 것입니다.
레 1장에 의하면 수소, 수양, 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가 ‘올라’가 될 수 있습니다. 번제로 바쳐지는 동물은 흠 없는 완전한 수컷이어야 하며 새들에게는 특별한 성별 규정이 없습니다. 제사 방법은 다소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지만, 제사의 여러 단계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대부분 주어져 있지 않다고 있습니다.
올라는 맨 먼저 여호와께 대한 예물(고르반)이기 때문에 바쳐집니다(레 1:2, 레 1:10, 레 1:14). 제물이 수소이면 (그리고 비록 이것이 레 1:10과 레 1:14에서 특별히 진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양이거나 염소일 경우에도 역시) 예배자는 그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음(안수)으로 자기 자신과 동물을 동일시하였습니다. 이것은 제물이 예배자를 대신하여 희생당하는 것을 상징하며 죄가 희생 동물에게 전이됨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드보(de vaux)가 지적한 대로 이러한 상징적 안수 행위가 행해지는 유일한 다른 예는 레 16:21에서 민족의 죄를 속죄 염소에게 전이시켜서 광야로 내보내는 경우입니다. 그 염소는 '부정'하기 때문에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지 않고 광야로 내쫓깁니다. 제단은 거룩한 것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일한 안수 행동(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행동)은 제사장들의 속죄제와 번제와 위임식 수양과 같은 중요한 제사( 8:14, 레 8:18, 레 8:22)와 다른 제사에서도 행해집니다.
이러한 안수 행위는 대속을 암시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속죄를 나타내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죄의 제거를 상징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이 안수 행동은 예배자와 올라와의 밀접한 동일성을 암시함이 분명합니다. 희생 동물은 사실상 예배자의 소유입니다. 따라서 예배자는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로서 그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제사 절차에서 세 번째 단계는 제물을 실제로 죽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제사 행위는 제사장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대하 29:20-24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나타납니다. 그 시기는 히스기야왕 하에서 개혁 운동이 시작될 때입니다. 여기에서 제사장은 희생 동물들을 실제로 죽이는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은 야훼에 대한 재헌신과 이들 개인들의 편에서의 참된 봉사를 반영해주는 것 같으며,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올로트는 이들 개개인들의 제물들임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에스겔이 올로트를 바치는 권리를 레위인에게로 옮기운 일이 그 배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겔 44:11).
비록 올라 자체가 속죄 효과를 지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올라는 다른 제물(예: 민하)과 함께 드려졌습니다(레 1:4, 참조: 레 16:24).
올라는 특수한 이유 때문에 드려졌습니다. 기쁠 때와 절기에 올라는 그 기쁨을 표현하고, 여호와를 예배하는 예물이었습니다(창 8:20이하, 삼상 6:14). 이 제사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연관이 없습니다.
맥카시(McCarthy)는 피를 제사에 사용하는 구약성경의 관습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사한 참된 실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올라는 또한 필요의 때에 하나님의 간섭을 바라는 기도를 수반하기도 합니다(삿 21:4, 렘 14:12). 이러한 부류의 올로트에 공통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존경과 충성을 드려야 한다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인식입니다.
올로트와 연루된 두 가지 특별히 난해한 사건은 삼상 13장에 있는 사울에 대한 기사와 삿 11장에 있는 입다에 대한 기사입니다. 사울의 죄는 블레셋인과의 성전(holy war)에 대비하여 올라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예배자 자신이 희생 동물을 죽였기 때문에 이것은 사울의 죄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희생 동물과 그 피를 취하여 제단으로 가져갈 제사장이 없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동물은 예배자가 죽였지만 그것을 제단에 가져가는 일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사울은 사무엘이 와서 희생제사를 드리고 그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줄 때 까지 길갈에서 7일간 기다리라고 한 사무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삼상 10:8).
입다의 올라는 이와 성질이 다릅니다. 임박한 패배에 대한 긴장 하에 취해진 서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만 하는 서원이었으며 입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자기의 유일한 자식을 여호와께 올라로 바쳤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논쟁적인 기사를 입다가 그의 딸을 종신 처녀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바쳤으며 따라서 그의 형통의 끊어짐을 초래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혹자는 입다의 딸이 인신제물로 바쳐졌다고 주장합니다. 이 경우에 이 행위가 입다와 이스라엘 민족 둘 다를 전율케 했다는 사실(삿 11:29-40)은 인신제물이 이스라엘에서 통상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충분히 입증합니다.
전번제(whole burnt offerings)는 메소포타미아인의 제의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가나안인 가운데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신제사는 가나안에서도 만연하지는 않았습니다.
구약성경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우가릿 자료에서 나온 증거와 구약성경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페니키아 본문에서 나온 증거는 히브리의 올라와 유사한 의식이 있었음을 입증해 줍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제사 의식에는 히브리인의 제사 구조에서 한 가지 필수적인 요소, 즉 피를 제물로 바치는 것과 제단에 피를 붓는 것이 없습니다. 생명의 하나님께 생명의 제물을 드리는 것(참조: 레 17:11, 피는 생명이다)은 단순한 도살과 열납될수 있는 희생제사적 예물 사이에 차이를 낳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