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시대에 필요한 교육
文 熙 鳳
인생 최초의 40년은 텍스트를 주는 시기요 그 후 30년은 그 텍스트에 대한 주석을 주는 시기라고 쇼펜하우어는 일찍이 말했다.
올초 시사 주간지 '타임' 특집호는 표지 모델로 갓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실었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142세까지 살 수도 있다.'고 예측한 이 기사는 최근에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노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다루었다. 젊은 피를 수혈 받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을 입증하는 연구부터 박테리아에서 채취한 노화 방지약, 그리고 유전자를 이용해 생체 시계를 늦춘 연구 등이 다양하게 소개돼 있다. 자동차의 수명을 일이십 년이 아닌 백 년까지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기대 수명 142세가 아직은 과장일지 몰라도 미래학자들은 예외 없이 100세까지 사는 시대가 온다고 예측한다. 이게 맞는다면 올해 대입 신입생은 어림잡아 2100년까지 산다. 2100년?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대학 졸업 후 장장 80여 년의 세월을 더 살아야 할 젊은이들의 머리를 무엇으로 채워 졸업시켜야 할지 대학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현행 대학(고등) 교육 모델은 평균 수명이 60세가 채 안 됐던 산업사회 초기에 개발됐다. 찍어내듯 전공 지식을 주입해 30년 정도 써먹으라고 산업 현장에 투입한 대량 교육 시스템인 것이다. 빠른 과학기술 발전으로 지식이 급변하고 장수 혁명이 다가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은 지식 전달 교육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고민을 시작한 선진국의 일류 대학들은 직장에서 바로 쓰일 수 있는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사고 능력을 배양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100세까지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기초 교육을 통해서 배양되는 사고 능력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제 지식은 검색하는 손가락 끝에 와 있다. 몇 년 전 한 학생의 답안지가 담당교수를 놀라게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답안지 맨 끝에 당구장 표시를 하고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교수님, 채점하시다 의문 사항이 있으면 이 번호로 전화해 주세요.' 휴대전화 번호를 남긴 이 학생의 답안지는 커다란 시대 변화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교수가 모르는 내용을 답안에 담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려는 교육은 시대착오적이다. 대학 강의는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지식 만들기를 위한 사고 능력 강화로 교육 목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그 학생은 교수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고 능력은 정답 문제 풀이에서 벗어나야 키워진다. 수능에서 정답이 두 개이면 온 나라가 시끄러워지는 데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학생들이 받는 교육은 정답 풀이 연습에 매몰돼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발산적 사고 교육'이 중요하다.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요?'라는 질문을 받고 짧은 시간 안에 그에 대한 답을 여러 가지로 빠르게 열거할 수 있는 게 '발산적 사고'다.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다. ‘병마개의 용도는 병마개로 쓰이는 것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주어진 시간 안에 많은 용도를 써내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전문 지식을 주입하고 정답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장수 시대가 요구하는 고등교육의 새로운 목표다. 이것이 집에서 숙제하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관습을 뒤집어서 집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교수와 함께 문제를 푸는 '뒤집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식정보화사회에 맞게 고등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나라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하게 뒷걸음질 칠 뿐이다.
획일적이고 주입식교육으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오늘날을 살아갈 수 있는 역량 있는 영재교육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