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정치가 지역을 주목하는 이유
지역정치운동을 통해 대안 정당으로
오창엽 기자 메일보내기
△ 4월 25일 인권위에서 초록정치연대 주최의 “왜 ‘지역정치운동’을 시작하는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 프로메테우스 오창엽
대안 사회의 고민은 기존 사회의 반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국가주도 중앙 집중 등의 구조, 개발 중심의 경제, 권력지향 중심의 정치를 비판하고 초록의 정치, 연대의 정치, 지역 자치를 주요한 정책과 가치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4월 25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초록정치연대가 주최한 “왜 ‘지역정치운동’을 시작하는가?” 토론회가 열렸다.
조현옥 초록정치연대 정책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지역정치운동, 왜 시작했고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라는 주제의 구체적인 사례로서 몇 개 지역의 성과와 의미를 공유하고 대안의 정치 일반에 대해 다루었다.
△ 정보연 도봉 시민정치네트워크 무지개 회원
ⓒ 프로메테우스 오창엽
민주개혁세력 vs 초록 그리고 적색
정보연 도봉 시민정치네트워크 <무지개> 회원이 도봉 지역 활동을 소개했다. 그들은 95년부터 지방선거에 참여했고 2002년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2명의 당선자를 냈다. 현재 <무지개>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한살림, 서울동북여성민우회, 도봉시민회, 도봉여성의집, 복지관 등의 활동가들이다. <무지개>는 내년 2006년 지방선거에서 5명의 구의원을 당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지역정치를 바꾸기 위한 전략과 테이블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역이 통으로 바뀐다. 그래서 무지개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개혁과 적색과 초록의 관계에 대해서도 개인적 의견이라며 조심스레 설명한다.
그는 “향후 10년 사회전체도 지역도 열린우리당 세력이 정치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다. 현재 이 사회의 주요한 전선인 민주개혁-수구보수의 전선 뒤에서 자유주의-적색의 전선이 강화되고 있으며 그와 유사한 속도로 성장개발중앙-초록의 전선도 만들어지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그는 “민주개혁세력과 초록의 차이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초록과 적색의 차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규명될 것이다”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관점’,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전략의 차이’, ‘여성성, 평화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 등을 짚었다.
정보연씨는 초록정치는 연대의 과정이라며 “세력을 키우는 문제가 아니라 그 동안 성장한 시민운동의 역량을 모으는 것이다”라고 했다. “오랫동안 정치적 중립을 통해서 성장한 시민운동의 특성상 정치적 영역에 진출하는 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중한 경향이 있다. 좀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민노당, 우리당 개혁파까지 문호를 개방
김혜련(고양초록정치연대 대표간사) 고양시의회 의원이 고양시 상황을 전했다. 95년 고양시민회의 참여로 시작해서 현재 고양시민행동 후보로 당선된 의원은 전체 32명 가운데 8명이나 된다. 이번에도 가칭 2006 고양시민행동을 만들어서 선거에 대응한다는 게 합의되었고 준비 중이다.
준비모임에는 고양시민회, 고양청년회, 고양환경연합, 민주노총, 고양여성민우회 등이 참가하고 있다. 그러한 합의 가운데 한 가지로 “시민행동은 시민사회단체만으로 꾸려가되, 일정 단계 후 초록정치연대와 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 개혁파에까지도 문호를 개방해두고 폭넓은 연대틀을 구축해간다.”는 것이다.
가령 여성민우회는 지방선거에 여성의원 1/3이상 만들기로 목표로 하고 있다. 무소속을 원칙으로 하여 독자후보를 낸다는 것이다. 고양환경운동연합은 “적극적으로 후보를 만들어내며, 초록정치연대와 함께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고양초록정치연대는 현직의원 3명과 출마 예정자 2명 정도로 지방선거에 나서며 1/3이상의 지역에 후보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이대수 군포·경기풀뿌리정치연대 준비위원장이 발제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서형원, 남광우, 이대수 토론자
ⓒ 프로메테우스 오창엽
생활인인 시민이 주체가 되는 생활정치
세 번째 토론자로 이대수 군포풀뿌리정치연대 준비위원장이 군포지역의 활동을 전했다. 96년부터 수도권주민자치연구모임을 해왔고 2003년에 해소하고 다음해 6월 가칭 ‘풀뿌리정치경기연대 추진모임’을 발족했다.
그는 <풀뿌리정치연대 운동을 제안하며>라는 발제에서 “한국의 NGO들은 사회(노동/소비자/환경)와 문화 그리고 경제를 거쳐 이제 정치 분야로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치적 분권화’, ‘실질적인 주민자치의 실현’, ‘생활인인 시민이 주체가 되는 생활정치’, ‘양성평등의 지역사회’ 등을 주장했다.
그는 “여성들은 정치 문제에 관심이 적고 남성들은 많으나 참여가 어렵다”며 남성들과 자주 만나 “놀고 나니 논의가 되더라”고 했다. 먼저 친분을 쌓고 모임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지역정치의 주제들도 논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술을 1시까지만 먹자” 등의 원칙을 정하고 “부부번개팅”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선거에 참여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의 발제대로 “상설화된 정책연구조직”도 있어야 하고 “후보 기준”도 만들어야 하고 “후보 선정과 대리인협약 체결”도 해야 한다. 기존 정당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과 ‘내부 공천’ 대신 자체적인 선거 원칙과 방법을 제시하고 설득하고 지지자들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양의 축적으로 질을 바꾸자
남광우 성남 생활자치네트워크 희망21(준) 기획위원장이 성남지역 상황을 보고했다. 성남은 오랜 민주화운동에 힘입은 까닭인지 많은 수의 회원들을 조직하고 있다. 지난번 준비위 모임에 “500명을 예상했으나 700명이 왔”고 현재 회원은 1000여명이다.
그는 “가치중심보다 지역중심”이라며 “기본적인 양의 축적으로 질을 바꾸자”는 기조라고 했다. 다른 지역이 초록과 관련하여 혹은 시민운동과 관련하여 주로 대안 가치를 강조한다면 성남은 상대적으로 뚜렷한 가치를 덜 강조하기 때문에 훨씬 폭넓은 사람들을 조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발제문에서 그는 “진보정당의 지구당도 서울 중심 또는 전국적 이슈나 사안에만 집중”한다고 지적했다. “희망21은 시민사회단체 출신들을 중심으로 지역의 지방자치발전을 위해 힘썼던 그룹과 개인들이 그 동안의 중심적 활동이었던 비판, 감시를 넘어 우리의 가치와 정책을 지역사회에서 실현하기 위해 출발 - 비중 있고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발돋움하고자 한다. 생활자치네트워크 ‘희망21’은 5월 13일 창립총회를 앞두고 있다.
그들은 분당 가는 부근에 텃밭 500평을 마련하여 채소도 심고 다양한 소모임을 하고 있다. 희망산악회, 텃밭공동체 희망농원, 서예반모임, 사진반모임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역의 보수화와 세계의 양극화”를 말하며 “연고주의와 기득권 개발세력 중심의 지역정치 주류를 교체하는 대안의 현실화”를 과제로 삼았다. “현재 성남지방자치 현실은 수구기득권세력의 강물에 떠있는 12척이 배”라고 표현했다.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대정신을 담고 현실에 근거한 참신한 전략을 짜야”한다. “당위만 가지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이행기의 진통을 지혜롭게 넘어가자)”라고 했다. 그리하여 “연고- 지연혈연학연- 중심의 지방자치현실과 선거를 가치와 정책과 이념 중심의 지역사회로 재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 프로메테우스 오창엽
세계화가 우리 동네에 주는 영향
끝으로 서형원 초록정치연대 간사가 <지역정치운동>에 대해 ‘정리’했다. 네 명의 네 곳의 지역이야기에 이어 ‘지역정치운동’ 일반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는 먼저 지난 경험과 배경을 소개했다. “지금까지 시민사회운동의 지방자치 참여는 주로 개인 당선자를 만들어내는 일에 초점을 두었다. 단체들의 연대로 참여한 경우도 질적으로 다르진 않았다.” … “국가 수준의 운동은 정부, 기성정당, 재벌에 대한 비판, 감시, 개혁에 성공적이었지만, 생명, 평화, 풀뿌리, 성평등, 복지 등 시민사회운동의 대안가치를 실제로 실현하는 일은 지역을 통해 가능하다는 인식이 점점 더 확대되었다.”… “전국적 반핵운동이 비판과 저지에 주력해온 반면 부안의 반핵주민운동은 자치역량과 결합하여 지역의 생태적 발전을 꾀하고 있다는 것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 지구화, 세계화가 우리 동네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환기했다. 예를 들어 “지역 아동들의 건강을 지키려는 친환경 우리 농산물 학교급식 조례가 세계무역기구(WTO)와 충돌하고 있고, 경차에 주차비 혜택을 주자는 (서울 어느) 지방의회의 결정이 초국적 자동차회사들의 반대로 좌절되기도 한다. 이 와중에 중앙정부는 생활인의 요구가 아닌 초국적 기구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풀뿌리 주민자치 역량을 키워 생활인 스스로를 지키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 서형원 초록정치연대 간사
ⓒ 프로메테우스 오창엽
집중된 권력의 분산을 위해
서형원 간사는 “새판짜기를 지향하는 독립적인 풀뿌리 정치운동”을 주장한다. “지역정치운동은 그 (존재) 자체가 중앙집권적인 정치 ·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며 현재의 구조에 기반을 둔 지배적 가치를 전복하려는 (비판이고) 실천이다.”라고 한다. “새로운 정치운동은 권력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전제로 한다. 바람직한 세력으로 권력을 교체한다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중된 권력을 생활인들 자신의 결정으로 분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권력을 장악해야 그 권력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념을 거부한다.”
서형원 간사의 생각들은 음미해 볼만할 고민들이 많다. 그는 협의체와 운동체의 차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 협의체는 모두가 동의하는 만큼의 일을 추진할 수 있을 뿐이며, 자기의 근본 가치를 담는 대중적 활동은 각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작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담는 정치운동체를 가지고 협의체에 참여하는 것이 옳다.”
그는 연대의 문제도 지적한다. “관성적으로 맺어지는 연대를 극복하자”고 주장하며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연대가 아닌 … 연대를 통해서 운동은 이익집단이 아니라 사회운동이 된다.” … “특히 정치운동은, 특정 부문의 관심사의 이해가 아니라 공동의 가치와 비전을 실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경계를 넘어선 연대라고 할 수 있다.”
지역정치를 통해 중앙정치를 포위해야
연대의 필요성은 또한 구체적이다. “생활은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시의 교통체계개편과 각 구 및 경기도의 광역 통근자들”의 경우에 그렇다. 서형원 간사는 “지역정치를 통해 중앙정치를 포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는 결국 중앙에 몰려 있는 힘과 권위, 명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숙명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작지만 단단한 정치운동이 서로 연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정치세력이 가능하다는 전제로 지역을 넘어선 지방선거 참여 네트워크 형성을 제안한다.” … “선거에 도움이 되겠다는 실용적 연대가 아니라, 2006년 선거참여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풀뿌리 정치운동의 리더십으로 대안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정치적 비전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약속으로 연대.”를 주장한다.
끝으로 그는 “지역정치운동이 곧 초록정치운동이고” … “중요한 것은 정치운동의 가치, 원칙, 정책 즉 내용이다”라고 한다.
네트워크로 하나 되는 지역정당?
질의응답 과정에서 정당법과 선거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광역자치단체 내에서 지역정당이 가능한가도 제기됐다. 기초단체장과 의원의 정당공천이 필요한가 불필요한가도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 중이다.
현재 개정 정당법은 5개 광역시도 이상에서 각각 천명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정당으로 등록이 가능하다.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하면 정당공천 비례대표 후보를 낼 수 없다. 각각의 지역에서는 구의원도 당선시키고 지역정치를 다양하게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대로 각 지역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하고 하나의 정당이 되려할 때 만만치 않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초록정치연대는 2004년 6월 창립되었고 2003년 4월부터 활동한 녹색정치모임의 후신이다. 직업정치인들의 정치가 아니라 생활인들의 정치를 추구한다. ‘운영위원회’도 회원 모두가 순번제로 참여하고 있다. 다른 여러 토론회들은 심각한 주제들을 심각하게 발표하고 표정이 어두운 발표자들도 많다. 그런데 이번 초록정치기획토론의 발표자들은 밝은 모습으로 즐겁고 보람된 성과들을 보고하고 서로를 격려했다. 서로 말하겠다고 다투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거나 묵살하지도 않는다. 마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모인 내부 행사 같았다.
정당으로 지방선거를 치르고 대안 정당 건설하나?
그러나 그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기존 정당들과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이 초록정치연대나 ‘지역정치운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열린우리당 당원은 얼마나 되는지, 민주노동당과는 어떤 관계인지 애매하다. 이들이 새로운 정당을 시작할 때 그 정당들은 연대할 정당인지 경쟁할 정당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지난 2002년 지방선거를 볼 때 ‘초록정당’ 혹은 ‘녹색당’이 전국적으로 망라되어 총선에 참여할 때, 비례대표에서 상당한 표를 얻게 될 것이다. 그 표는 열린우리당에서도 오고 특히 민주노동당의 표를 잠식할 것이다. 지방선거 비례대표 득표율에 따라 정당보조금을 지급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중앙정치 정당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지켜볼 시간이 있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기존 정당들과는 다른 결성방식, 운영방식의 제안과 실험이다. 과연 네트워크형 정당은 가능한가? 토론회의 취지를 안내한 보도자료에서 그들은 “시민사회운동의 2006년 지방선거 참여 방향은 무엇인가? 풀뿌리 시민사회 기반의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은 가능한가? 풀뿌리 정치운동의 연대를 통해 중앙집권적인 한국 정치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라고 자문했다. 첫 번째 토론회에서 그들의 주장과 생각을 살펴본 결과 지역정치운동은 정치개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동이 대안 정당으로 출현하게 될 것인가는 지켜볼 일이다.
2005/04/26 [16:40] ⓒprometheus